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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115화 (115/317)

1번 황금가면이 둘 중 하나를 가졌다고 생각했으나 이들 모두가 같은 상태라면 단순한 히든 특성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곳에 있는 열한 명 모두가 같은 히든 특성을 갖고 있을 리 없으므로.

그러기 위해선 같은 재능의 테크 트리를 올려야만 하는데.

············ 그건 게이머나, 플레이어가 아니라면 불가능하니까.

심지어 게이머나 플레이어도 대부분 모르는 게 ‘히든 특성’이다.

그걸 모두가 사이좋게 올렸다?

‘재밌는 놈들이군.’

정말이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재밌었다.

나는 판게니아의 모든 것을 정복했다고 생각했다.

대원정에서 비록 패배하긴 하였으나, 그건 변수로 인한 것일 뿐 마왕과의 전투 자체는 승리하지 않았나.

그런데 내가 닿지 못한 미지의 장소에, 미지의 존재들이 이만큼이나 있다.

‘내가 너희를 모르는 것처럼, 너희도 나를 알 수 없을 테지.’

무엇보다 서로가 서로를 모른다는 건 상당히 흥미로운 상황이었다.

정체를 숨기거나 바꾼 적은 많았으나, 그것들과도 맥이 다르다.

누가 먼저 파악하느냐의 싸움.

마치 눈치 게임 같았다.

그것도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수준의 눈치게임.

“··· 삼검이 그랬다면 사실일 거다.”

이윽고 황금 여우가면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허스키한 여인의 목소리.

나른하기 그지없는 태도다.

그나저나.

‘황금 여우가면이라.’

내가 여태껏 제국에서 만난 모든 초월자는 ‘여우가면’을 쓰고 있었다.

설마 모든 여우가면의 시초가 바로 저 여자란 말인가?

옛적 키운 부캐로 추정되는 ‘뇌신강림’도 마찬가지로 은여우가면을 쓴 채였다.

의아한 건 그뿐만이 아니다.

10명은 각기 다른 짐승의 탈을, 오직 ‘황금가면’만은 그냥 가면을 쓰고 있는 것도 의뭉스러운 부분이었다.

미치도록 궁금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여기서 먼저 궁금증을 내보이는 것은 패배를 자인하는 꼴.

“그렇다면 ‘정통’을 보이면 되겠군.”

“음. 마지막 확인이다. 아무리 삼검이 확신한다지만, 우리가 직접 보는 것과는 다를 터.”

“보여봐라.”

보아라. 알아서 궁금해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과 같은 정통의 후견자임을 밝히라고.

제국삼검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한 서약, 그리고 황금가면의 의견조차 쉬이 믿지 않는다.

두 황금탈의 주인이 직접 인증했음에도.

말인즉슨.

‘서로에게 믿음이 없다.’

이놈들은 서로를 믿지 않는다.

그냥 믿음이라는 게 없었다.

이로써 하나 더 알았다.

이들은 경쟁자다.

여기 모인 자들은 모두 언제 뒤통수를 때려도 이상하지 않을 관계였다.

11명의 경쟁자가 12명이 된다는 것이니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웃기는 놈들이군.”

그리곤 피식 웃으며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궁금증이라고는 1g도 느껴지지 않는 음성.

저들의 저런 행태가 정말로 웃겨서 그렇다는 듯이 행동했다.

원래 궁금해하는 사람부터 패를 까는 게 순리이므로.

‘정통을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금 섣불리 ‘헬’을 보일 수는 없었다.

저들이 말하는 ‘정통’이라는 게 무엇인지 나는 정확히 모른다.

제국삼검이 확인했지만 그게 단순히 헬의 외견 때문인지, 다른 무엇 때문인지 여전히 모르는 상태였다.

“······ 웃기는 놈들? 다른 놈들은 몰라도 내가 말이냐?”

“허.”

처음에는 재밌었지만, 이젠 더 재밌지 않다는 태도다.

한 마디로 선을 넘었다.

살기 어린 눈빛으로 하나, 둘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허나 상관없다.

그런 살기조차도 이 ‘빛의 벽’을 넘을 순 없다.

‘무적. 모든 피해와 효과를 차단한다.’

찬란한 빛의 옥좌는 영역에 있는 한 무적이 되는 효과를 갖고 있었다. 지고룡 라일리로부터 한참을 버틴 것도 이 덕이었다.

가장 찬란한 빛의 옥좌 역시 마찬가지.

살기 어린 눈빛만이 아니라, 직접 살기를 담아 온갖 공격을 해와도 이곳에 앉아 있는 한 나는 무적이다.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나는 팔짱을 낀 채, 다리를 꼬았다.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내 행동만 봐도 자신이 넘친다는 걸 알 수 있을 테니.

“······.”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침묵이 오갔다.

그리고.

“···어차피 ‘만찬회’를 진행하려면 모두가 ‘정통’을 보여야만 한다. 그러니, 나부터 하지.”

황금가면이 입을 열었다.

이어 그가 손을 들어 원을 그리자.

치지지직!

손을 따라 푸른 선이 그려진다.

선은 정전기가 일 듯 스파크를 튀겼다.

이윽고 원이 완성되자.

-크크크크!

황금가면의 ‘정통’이 모습을 드러냈다.

*

황금 가면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자. 어찌 나올 테냐.’

처음, 허드슨의 호위로 등장한 남자.

허드슨을 내세워 정체를 숨기고 있음은 알았지만, ‘정통’의 후견자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러나 사신교에 존재하는 정통은 모두 열하나.

오랫동안 ‘11’은 완벽한 숫자로 자리잡혀 있었건만, 편견을 깨고 12가 완성된 것이다.

그럼 가짜인가?

하지만, 제국삼검이 서약했다면 틀림없었다.

삼검의 칭호를 가진 자는 ‘집행자’이며 동시에 ‘충실한 종’이다.

본디 종은 주인을 알아보는 법.

12번째 정통이 진짜로 존재한다면, 남은 것은 후견자뿐이었다.

하여, 황금 가면은 후견자의 그릇을 파악해보기로 했다.

‘평범한 자들은 이들의 영역에 갇혀 질식하고 말지.’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는 장.

이들이 뿜어내는 ‘기운’이 한데 얽히면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제아무리 강자라 할지라도 반응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히든특성 ‘철혈군주의 심장’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백왕이나, 흑왕, 그 이상의 격을 지닌 존재라도 마찬가지였다.

한데.

빛의 옥좌를 꺼내 들어 자리에 앉은 그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도리어 도발을 하면 했지.

‘······ 정말 재밌는 놈이다.’

어디서 저런 놈이 튀어나왔을까.

아니면, 저 옥좌의 능력인가?

하여간 예상을 뛰어넘는 놈임은 분명했다.

어디 ‘정통’ 역시도 그럴 수 있을지.

“예전보다 날개가 하나 늘었군.”

“하긴, ‘죄인의 혼’을 그렇게나 먹었으니 늘만하지.”

“여섯 장. 세 쌍이라.”

워프를 통해 나타난 황금가면의 정통.

모두가 눈여겨보았다.

몇몇은 감탄하고 놀랐으며, 몇몇은 침묵한 채 마음에 안 든다는 눈빛을 보였다.

-크크크크!

황금가면의 정통은 여섯 장의 검은 날개를 지녔으며, ‘낫’을 든 작은 사신의 모습이었다.

황금가면의 손 위에 앉은 그 작은 사신은 무엇이 그리도 재밌는지 기분 나쁘게 웃곤 황금탈의 주인들을 바라보았다.

“흠, 이 만찬회의 주인공이 황금 가면이 되게 둘 수는 없지. 내 ‘정통’의 성장도 보여줘야겠군.”

동시에 황금색 사자의 탈을 쓴 자가 똑같이 손으로 작은 원을 그렸다.

손가락을 따라 원은 스파크가 튀겼다.

그리고 워프가 열리자.

-커커커!

이번에는 우람하게 생긴 사신이 나타났다.

크기는 작지만 몸집이 컸으며, 다섯 장의 날개와 이마에 두꺼운 뿔이 나 있었다.

“···뿔이 하나 늘었군.”

“몸도 커진 거 같은데.”

“대체 뭘 먹기에 볼 때마다 커져 있지?”

후견자들은 우람한 정통의 모습을 보며 작게 놀랐다.

황금 가면의 정통만큼은 아니지만 확실한 성장.

질 수 없다는 듯 그들은 한 명씩 정통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케케케케!

-키키키키키!

황금 늑대의 탈을 쓴 자가 소환한, 장난스럽게 웃는 홀쭉한 사신.

황금 양의 탈을 쓴 자가 소환한, 악동처럼 얄밉게 웃는 둥그런 사신.

각기 다른 모습의 ‘작은 사신’들이 나타났다.

정통이라 불리는 그것들은 모두 사신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날개의 숫자, 그리고 뿔이 나 있거나 공허한 눈동자에 별이 떠 있는 등 약간의 특색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가 날개 달린 ‘사신’의 형태다.

그리하여 열 한 명의 정통이 모두 모습을 보였다.

“자. 이제 그대의 차례다.”

······ 황금 가면이 나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이제는 확실히 알겠다.

‘헬’과 다른 정통들의 차이.

나와 그들의 차이를.

“왜 가만히 있지?”

“‘선’을 그리지 못하는 건가?”

“설마. 정통의 후견자라면 ‘선’을 그릴 줄 아는 건 필수이거늘.”

“역시 가짜로군.”

선.

저들이 원을 그리자 워프가 형성됐다.

그리고 ‘정통’들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나는 저들이 말하는 ‘선’을 그릴 필요가 없었다.

쩌적!

공간이 찢겼다.

낫의 형태로.

치직! 치지지지직!

이후 찢긴 ‘선’에 스파크가 몰아쳤다.

손가락으로 그린 작은 원의 스파크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장면.

“음?”

“저건······!”

“정통이 워프를 직접 연다고?”

그들 역시도 그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저들의 정통은 ‘후견자’가 공간을 열어줘야 나올 수 있지만, 헬은 ‘직접’ 문을 열고 나올 수 있었다.

후견자. 이끌어주는 자. 그들은 그 이름처럼, 정통을 직접 소환하여 이끄는 자들이다.

이게 그들과 나의 첫 번째 차이다.

애초에 나는 선을 그릴 줄 몰라도 된다. 그릴 필요가 없으니까.

하지만, 첫 번째 차이는 두 번째 차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들과 나의 결정적인 두 번째 차이.

-캬캬캬캬컄!

호탕하기 짝이없는 웃음소리와 함께, 헬이 공간을 격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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