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110화 (110/317)

마지막으로 묻겠다

‘빌어먹을 새끼.’

마스터는 가면의 사이로 인상을 찌푸렸다.

입이 바짝 말랐다. 의식하지 않으면 숨도 막힐 것만 같았다.

-53번, 저새끼! 저놈도 ‘플레이어’야! 가면으로 가렸지만 확실해! 그러니까 제발······!

사신에게 목이 잘려 죽은 남자.

이후 ‘플레이어’임이 드러나며 소각된 그놈이 자신을 또 다른 ‘플레이어’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가시밭길 위에 맨발로 서있는 기분이 이러할까.

연회장의 모든 사람이 수군대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심지어 흑요, 그년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접근하는 게 아니었는데.’

보름간 진행되는 경매. ‘내 편’을 만들고자 안면을 틀 생각으로 접근한 게 패착이었다.

같은 플레이어라고 생각해 풀었던 몇 가지 정보가 독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아예 접근조차 하지 않았으리라.

입안이 쓰다.

‘모든 워프는 중단됐다. 달아날 곳도, 몸을 숨길 장소도 없다.’

절망적인 상황.

일시적으로 워프를 동결시켰다.

넘어가지도 오지도 못하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몸을 숨길 장소?

다르칸 영지 전체가 이미 봉쇄되어 있었다.

개미 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할 만큼 철저하게.

더욱이 어이가 없는 건.

‘시민도 없다. 처음부터 이 경매는 플레이어를 찾기 위한 낚시였던 거다.’

도시에 다른 시민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워프를 동결시키기 전에, 모두가 경매에 집중하고 있을 그 시간에 미리 탈출시킨 것이다.

당연히, 오늘 경매장에서 죽은 남자가 플레이어임을 알고 나서 취한 조치치고는 너무 빠르다.

이미 플레이어가 다르칸 영지에 더 있음을 알고 조치한 것이다.

어쩌면 ‘특급 경매’ 자체가 플레이어를 찾기 위한 덫일 수도 있었다.

덫에 걸린 가련한 짐승.

혹은 어항에 갇힌 물고기.

자신의 신세가 그와 다를 게 없었다.

‘밀고? 사신을 이용해서 알아내는 건가?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 내가 플레이어임을 입증한다는 거지?’

자신에게 몰린 이 시선부터 해소해야만 된다.

하지만, 어떻게?

다른 사람을 플레이어로 지목할까?

사신교의 방식을 모르니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아무 행동이라도 해야 할 때.

툭.

그때, 누군가가 연회장에서 발길을 옮겼다.

골통파괴자의 주인.

초월자를 압살한 2번의 호위.

그가 천천히 1번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조용히 무언가를 내밀고, 확인하더니 1번은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자는 ‘죄인’이 아니다.”

죄인이 아니다.

그가 말하자, 곧 ‘확정’되었다.

귀족들의 태도가 180도 변한 것이다.

“그에겐 ‘죄인’의 흉물스러운 냄새가 풍기지 않는군.”

“음. ‘골통파괴자’를 휘두른다면 거인족일 터. 거인족이 ‘죄인’인 경우는 없으니.”

이해가 안 가는 건 또 있었다.

······ 1번이 대체 누구기에?

귀족들은 마치 1번의 남자를 존재하지 않는 듯이 취급했다.

정면으로 보아선 안 되고 그가 하는 말을 제대로 들은 척을 해서도 안 되는 것처럼.

하지만 그의 말과 행동은 분명히 모두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

저 남자가 이름을 불러선 안 되는 볼드모트라도 된다는 말인가?

‘뭘 보인 거지?’

마스터는 눈이 빠지도록 남자를 바라봤다.

무엇을 보이고 죄인이 아님을 증명한 건지 궁금해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띠링.

띠링.

띠리링.

그 순간 들려오는 종소리.

연회장의 커다란 문이 열리며, 검은 후드를 눌러쓴 ‘사신교’의 집행자들이 나타났다.

그들 중 은색의 여우가면을 쓴 자.

경매장에서 마지막에 ‘소각’시킨 그가 앞장서서 말했다.

“한 명씩 차례대로 ‘소독’할 것이다. 번호의 순서대로 내 앞에 나오도록.”

번호의 순서라니.

뭔가 이상하다.

귀족 중 한 명이 나서서 입을 열었다.

“잠깐. 설마 제국의 귀족인 우리도 그 대상이란 뜻인가?”

“당연하다.”

“······ 우리를 ‘죄인’ 취급한다는 것이냐?”

동시에 제국의 귀족들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항변하기 시작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감히 우리를 의심한다고?”

“괘씸하기 그지없군···!!”

“다르칸 영주!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소?”

외부에서 초청된 초청자들만 ‘의심’의 대상일 줄 알았건만.

제국의 귀족들까지 소독한다는 건 도를 넘은 행위였다.

그러나 은여우가면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르칸 영주 역시도 팔짱만 낀 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다는 의미다.

‘저 하얀 가루는······.’

다만, 마스터의 시선을 계속해서 뺏는 건 사신교의 집행자들이 들고 있는 가루다.

저 가루는 분명히 지구와 판게니아의 몸을 바꾸었다.

만약 저 정체 모를 가루가 차원을 넘어 작용한다면, 위험하다.

“거부할 경우 ‘죄인’으로 낙인찍겠다. 2번.”

2번.

그의 호위는 죄인이 아니라고 확정됐으나 2번은 아니었다.

곧이어 호명된 2번이 은여우가면의 앞으로 나섰다.

“······.”

둘 사이엔 침묵이 오갔다.

그러나 시시각각 미묘하게 2번의 표정이 변하고 있었다.

분명히 대화를 나누고 있다. 들리지 않게 생각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거지?’

마스터의 입이 바짝 탔다. 궁금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내 오른쪽으로 가도록. 다음, 3번.”

잠시 후 2번은 은여우가면의 오른쪽에 위치했다.

결과는 말해주지 않는다.

호위로 보였던 자가 의심의 목록에서 지워졌다면 2번 역시도 ‘정상’의 판정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허나 이조차도 확신할 순 없다.

탐문을 했다는 건 어쨌든 의심자의 태를 벗지 못했다는 뜻이니까.

“내 왼쪽으로 가도록. 다음, 4번.”

한 명씩 ‘소독’은 계속해서 진행됐다.

무슨 기준으로 나누는지 모르겠지만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뉘는 숫자는 20번이 넘어갈 때까지 비슷했다.

‘젠장할.’

반반이라니.

이건 이곳에 모인 플레이어가 무려 절반이라는 뜻 아닌가.

특급 경매는 처음부터 플레이어를 잡기 위한 ‘덫’이었다.

판게니아의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는 플레이어는 많았으니, 설령 제국에 침투해 있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 덫에 좋다고 걸려든 자신의 선택이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후회는 늦었다.

마스터는 다시 1번을 바라봤다.

‘저 둘. 왜 계속 같이 있는 거지?’

1번은 독자적인 위치의 존재였다.

그런 그가, 계속해서 2번의 호위와 함께 있었다.

단순히 ‘죄인’이 아니라는 확답을 넘어 무언가가 더 있다는 의미리라.

제국의 귀족들조차도, 다르칸 영지의 영주마저도 함께 서지 못했던 1번의 근처에, 계속해서 있다는 것은······.

‘저 둘이 판별하고 있구나!’

사신교의 여우가면들은 들러리다.

진짜로 ‘죄인’을, ‘플레이어’를 판별하는 건 1번의 남자와 저 호위가 분명했다.

“다음, 53번.”

마스터는 내심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느덧 자신의 차례.

‘······ 개 같은!’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

‘저 둘의 생각이 다를지도 모르지······.’

판별자가 두 명인 이상, 약간의 희망이 있을지도 몰랐으니.

*

-후계자의 표식을 새겨놓았군. 이 패를 전해준 ‘집행자’가.

집행자가 제국패에 은밀하게 새겨놓은 표식.

그것은 ‘후계자’를 찾았음을 증명하는 증거였다.

-그럼 ‘후계자’는 어디있지?

헬을 말하는 것이리라.

나는 최대한 의연하게 행동했다.

-지금 보여줘야하나?

-아니, 정통은 아무데서나 모습을 보여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나와 함께 ‘본교’에서 확인하면 될 일. 그런데 왜 ‘검은 염소의 탈’을 쓰고 온 것이냐?

본교.

사신교의 본단!

그를 직접 언급했다는 건, 1번의 남자는 역시 ‘사신교’의 관계자라는 뜻이다. 그것도 그냥 관계자가 아니라 제법 직급이 높은 자가 분명했다.

제국패를 보인 건 어느 쪽이든 어떻게든 결론이 나리라고 생각해서였다.

황실의 관계자라면 제국패에 찍힌 황제의 인장이, 사신교의 관계자라면 제국패를 알아본 뒤 반응할 줄 예상하고 있었다.

‘검은 염소탈이라.’

심연 미궁에서 헬을 보고, 내게 제국패를 넘긴 은여우가면의 검사는 제국에 들를 때 분명히 황금색의 염소탈을 쓰고 가라고 말했다.

-황금색 탈이 없어서.

-······ 음.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군. 어찌됐든 그대가 진정 ‘정통의 후견자’라면······ 플레이어는 아닐 터.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지난번에 떠본 일은 미안하게 됐다는 태도로.

그럼 ‘민트초코맛있어요’가 자신이라는 말은 단순한 낚시였나?

내가 플레이어임을 확인해보기 위한?

-그대는 나와 같은 권한을 지닌 ‘정통의 후견자’다. 적어도 그대에게 패를 전한 ‘집행자’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 확신을 믿도록하지.

제국삼검. 은여우가면의 확신이 나를 살렸다.

일단 어떻게든 넘어간 듯싶었다.

게다가 그가 나를 보는 눈빛마저도 묘하게 변했다.

-새로운 ‘후견자’는 무척이나 오랜만이다. 그것도 ‘바알’의 상징인 염소의 탈이라······, 어떠한 후계자의 후견자인지 진심으로 궁금해지는군. 좋다, 황금빛 정통의 후견자여. 이제부터 그대와 나는 ‘소독’을 함께할 것이다.

후견자들마다 ‘상징’이 다른 건가?

내가 염소의 탈을 쓴 걸 그는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사신교의 교도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을 보며 그가 말했다.

-번호대로 호명되는 자들이 죄인인지 아닌지, 1차 선별을 우리 둘이 함께 진행하게 된다. 후견자는 높은 확률로 플레이어를 판별할 수 있는 바, 그대와 나의 뜻이 합치하면 강력한 ‘죄인 후보자’로 판명될 것이다.

-합치하지 않으면?

-일단은 오명을 벗겠지.

일단은, 오명을 벗는다.

의심자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정말 그럴까?

정말로 이놈이 나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버린 걸까?

‘이건 테스트다.’

1번은 내심 플레이어로 확정한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통의 후견자’라면, 어느정도 플레이어를 알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나의 안목을, 정말로 내가 정통의 후견자인지를 확인하는 테스트가 분명하다.

문제는 허드슨이었다.

2번, 곧바로 호출된 허드슨.

나는 플레이어임을 알고 있지만, 1번은 어떨지.

-플레이어로군.

머지않아 1번은 확정지었다.

··· 어쩌면 처음부터, 허드슨을 플레이어라고 확신하고 있지는 않았을지.

어떻게 해야 되지?

만약 이게 내 의도를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라면?

이 또한 ‘덫’이라면······.

-플레이어가 아니다.

-호오.

내 대답을 듣자 묘한 웃음기를 내뱉는다.

잠시 후 허드슨은 오른쪽 자리로 옮겨갔다.

의견 불일치.

오른쪽 자리가 ‘의심 회피자’의 위치인 듯싶었다.

다음 3번.

-데르시안 영애. 그대와 다툼이 잦았던 인물이지. 그러니, 그대부터 답해보아라. 그녀가 죄인으로 보이나?

이자벨라와 같은 이름을 지닌 여자, 데르시안 가문의 영애.

그녀가 자존심이 상한다는 표정으로 앞에 나섰다.

그녀의 생사여탈권을 내게 쥐어준다는 말인지. 묘하기 그지 없는 이야기였다.

-아니다.

-나 또한 그리 생각한다.

아니라는 쪽으로 의견이 일치했다.

그러자 데르시안 영애가 왼쪽으로 이동했다.

······ 오른쪽이 ‘의심 회피자’의 자리 아니었나?

이후 계속해서 ‘소독’이 진행됐다.

왼쪽과 오른쪽이 거의 반반.

아무래도 왼쪽이 회피자의 자리인 것 같았다.

그리고 허드슨은 여전히 오른쪽 자리에 있었다.

“다음, 53번.”

53번.

마스터가 호명되었다.

일전 경매장에서 지목되어, 모두가 확신하고 있는 자.

-플레이어.

-······ 플레이어다.

부정할 수가 없었다.

마스터.

그는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허드슨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모든 경매의 참가자들에 대한 ‘소독’이 끝나자.

왼쪽에도 48명이, 오른쪽엔 48명이 위치하게 되었다.

정확히 5:5의 비율.

이윽고, 그가 재차 내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아직도 허드슨이 플레이어가 아니라고 생각하나?

밝혀진 진실

한국, 영웅연합.

침식률이 높아지며 워프를 통해 빈번하게 괴물들이 출현하기 시작한 이후, 그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연합으로 우뚝 섰다.

-영웅연합! 한국의 빛!

-영웅연합이 부산의 대참사를 막아내다.

-영웅연합의 연합장 박태우 희망의 목소리를 내다!

날이 갈수록 쏟아지는 기사의 양은 더욱 많아지고 있었다.

어느덧 그들을 한국의 희망으로, 세계적인 영웅으로 보는 시선들이 늘어나는 중이었다.

그러한 찬양의 가운데에 있는 남자, 영웅연합의 연합장 박태우.

탁!

펼쳐 읽던 신문을 책상 위에 던진 박태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 하, 염병할.”

“왜 그러십니까, 연합장님?”

옆에서 힐끔 신문의 내용을 살핀 연합원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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