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냐, 너는.’
누구일까.
미궁에서 나왔으며 오주력의 신임을 받는 자라고?
그게 전부가 아닐 것이다. 숨겨둔 게 더욱 많다.
그리고.
‘그만한 물건을 꺼냈다는 것은, 원하는 물건이 있다는 의미일 터.’
그 자신감.
유일급의 매물을 모두에게 선보였다.
태양신이 앉았다는 빛의 옥좌를.
미궁에서 나온 것인지, 본인이 소유하고 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난 자신감이다.
그것도 자신의 땅도 아닌 제국 내에서.
수많은 귀족들의 앞에서 말이다.
단순히 과시하고자, 혹은 천억골드를 정말 원해서 등장시킨 건 아닐 것이다.
어디 한 번 이 정도로 떨릴만한 물건을 내놓아 보라는 뜻이었다.
이게 전부냐고. 실망스럽다고.
좋다. 아주 재밌었다.
그만한 매물을 보였다면, 자신 역시도 그가 눈독들일 매물을 보여야겠지.
무엇을 보여야할까.
어떤 물건을 내놔야 그를 흔들 수 있을까?
“아. 그리고 새롭게 ‘죄인’으로 판명된 자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르칸 영주가 물었다.
뭐 그런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태도로, 1번의 남자가 말했다.
“‘죄인’은 모두 죽인다. 그게 규칙이다.”
죄인. 플레이어.
그들은 모두 죽여야 하는 게 규칙이었으므로.
*
셋째 날부터, 본격적으로 경매 물건의 ‘질’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설 등급 이상의 무구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심지어는 신화 등급의 것들도 심심치않게 포함되어 있었다.
눈이 절로 휘둥그레지는 보물들에 경매의 참가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중 하나.
“다음 경매의 물건은 ‘바알 갑옷’입니다! 최근 델피안을 함락시킨 ‘사흉 바알’과도 관계가 있으리라 추정되는 갑옷! 온갖 저주가 서려있는 것만 같은 흉악한 이 자태를 보십시오! 정말 경악스럽습니다!”
······ 바알 갑옷이 경매의 물건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사신교
검선일기를 통해 확인한 바알 갑옷의 위치는 제국의 어딘가였다.
하지만 적어도 이곳, 다르칸 영지는 아니었다.
없던 게 생겼다.
누군가가 경매에 내놓고자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1번.’
최소 전설 등급의 물건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는 자.
제국의 창고라도 털지 않는 이상에야 쉬이 볼 수 없는 것들을 꺼내어 경매에 부칠 수 있는 능력자는 1번뿐이었다.
‘빛의 옥좌를 보고 반응을 한 거다.’
그러나 갑자기 고품격의 매물을 내놓을 리가 없다.
모두 소화하지도 못할 가격대의 보물을 보여주는 건 경각심만 살 따름이므로.
어제 내가 내놓은 빛의 옥좌를 보며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입찰하려고 기회를 엿봤지만, 경매장의 ‘규칙’에 따라 그러질 못했으니, 나 역시도 어디 ‘구경’만 해보라는 건지.
‘내가 무슨 물건에 반응하는지 알아내려는 거로군.’
이만한 물건들을 본다면 그중 하나는 끌릴 수밖에 없다.
특히 바알 갑옷은 ‘바알 세트’의 완성을 위해 반드시 손에 넣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반응하기 싫어도, 할 수밖에 없을 만큼.
“고귀하신 손님 여러분! ‘바알 갑옷’은 단순히 불길하기만 한 물건은 아닙니다. 저희 경매단이 책정한 등급은 ‘궁극신화’ 등급! 오늘 나온 물건 중에서도 감히 최고라 자부하는 보물 중의 보물이며, 현재 수련자의 산과 델피안을 몰락시킨 고대 전설의 존재 ‘사흉 바알’과 관계된 것이니만큼 그 희소성은 두말하지 않으셔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궁극신화.
그리고 사흉 바알과 관계된 갑옷!
제아무리 강렬한 불길함을 품었다고 해도, 이만한 물건을 경매장에서 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궁극신화면 유일급에 가까운 등급 아닌가?”
“사흉은 구제국을 몰락시키는데 일조한 흉물들······.”
“허. 그 사흉의 보물이라.”
제국의 귀족들 역시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타난 바알 갑옷은, 일반적인 갑옷의 형태와는 거리가 멀었다.
검은색의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모습.
처음에는 꺼림칙했으나 경매 진행자의 설명을 듣자 그마저도 특별해 보인다.
“경매 입찰 시작가는 5억 골드! 입찰 단위는 일억 골드! 절대 후회하지 않을 보물. 오직 선택받은 자만이 가질 수 있습니다!”
시작가가 5억 골드.
당연히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일 터.
펄럭!
누군가가 부채를 펼쳤다.
“영예로우신 3번 손님! 역시 안목이 예사롭지 않으시군요!”
데르시안 영애가 다시 한번 참전했다.
이틀 연속 나는 2번의 자리에, 데르시안 영애는 3번의 자리에 고정된 상태였다.
의도한 건 아니다.
입찰가 대비 가치있는 물건을 죄다 사들이다보니 2번에 자리했을 뿐.
‘낙찰되어도 1번은 방관만 하고 있다. 물건이 팔리는데 개의치 않아.’
앞선 경매에서 1번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중이었다.
낙찰 돼도 상관이 없다는 듯이 여유를 보이고 있었다.
“더 안계십니까? 바알 갑옷은 충분히 10억 골드 이상의 가치가 있는 보물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오랜기간 살펴본 기록에 따르면 ‘사흉의 무장’은 ‘사흉의 근원’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그들이 어디서 나타난 건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알고싶지 않으싶니까?”
궁금하다. 알고싶다.
하지만, 6억 골드는 제국 귀족들도 많이 부담되는 액수다.
그만한 금액을 경매에 쓰고자 가져온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기껏해야 다섯이 넘지 않으리라.
··· 그중 한 명이 나고.
“아아······!!!”
그때였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가 허공을 바라보며 기겁했다.
병이라도 걸린 듯 안색이 창백하고 미칠 듯이 땀을 흘려대는 남자.
그는 처음 오른쪽에 앉아있던, 외부에서 초청된 자였다.
모두의 시선이 쏠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가 외쳤다.
“사, 사신! 살려줘! 말할게! 말할테니까 제발 나는 살려달라고!”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사신?
곧이어 남자가 좌석에 앉아있는 다른 사람을 가리켰다.
“53번, 저새끼! 저놈도 ‘플레이어’야! 가면으로 가렸지만 확실해! 그러니까 제발······!”
툭!
떼구르르.
순간 잘려나간 남자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내심 이맛살을 구겼다.
무엇에 잘려나간 건지 알 수가 없었던 탓이다.
아무런 기색도, 낌새도 느끼지 못했다.
누군가가 공격의 의도를 갖고 움직이지조차 않았다.
돌연 듯 잘려나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사신이 낫으로 자른 것처럼 깔끔하게.
“뭐, 뭐야?”
“이게 무슨 일이야?”
사람들은 당황했다.
특히 ‘초청된 사람들’이.
반면, 제국의 귀족들과 경매의 진행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태도다.
사람이 죽었는데 쳐다도 보지 않는다.
더러운 오물이라도 되는양 아예 외면해버렸다.
그리고.
‘······ 웃고 있다?’
············ 그들은, 입가를 가린 채 웃고 있었다.
지금 일어난 일이 익숙하기라도 하다는 듯이.
앞으로 일어날 일이 기대라도 된다는 듯이.
띠링!
띠리링!
머지않아 검은 후드를 쓴 존재들이 경매장에 난입했다.
깊게 눌러쓴 후드와 ‘동색의 여우가면’을 쓴 채로.
그들은 허리춤에 ‘검은 종’을 달고 있었다.
일전에 심연 미궁에서 만난 ‘은여우가면의 검사’가 달고 있던 종과 같은 것이다.
시체를 둘러싼 그들이 검은 종을 들고 합장을 하였다.
띠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링!
쉴 새 없이 종을 흔들며 흰색의 알 수 없는 가루를 뿌렸다.
동시에.
“헛······!”
“모, 모습이 변한다!”
······ 목이 잘린 남자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얼굴도, 육신도, 입고 있는 옷마저도 전부 다르다.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
이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허드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은, 분명히 지구인었기 때문이다.
금발의 머리칼을 가진 외국인.
흰색의 티셔츠 위엔 ‘I’m Champion’이란 영어와 함께 그의 얼굴이 프린트되어있었다.
누가 봐도 자기애가 강한 지구인이다.
그 또한 목이 잘린 채 죽어있었다.
처참하기 그지없는 모습.
“‘죄인’이다.”
“‘죄인’이다.”
“‘죄인’이다.”
검은 후드를 눌러쓴 자들 모두가 같은 말을 쏟아냈다.
그러자.
띠링!
은색의 여우가면을 쓴 또 다른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시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찰나.
치직! 치지지직!
그의 손에서 번개가 소용돌이 쳤고, 이내 그 번개의 소용돌이는 사나운 짐승의 입처럼 변하며 시체를 삼켜버렸다.
그렇게 시체의 ‘소각’을 끝낸 그들은 다시 경매장 바깥으로 물러났다.
“······ 잠시 경매를 중단하겠습니다.”
“잠깐, 제대로 된 설명을 해야할 것이다. 아니면 더 이상 이곳에 머물지 않을 테니!”
“그럴 순 없습니다, 손님.”
초청된 사람들 중 한 명이 항의하자, 진행자가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순 없다니?”
“‘죄인’이 영지에서 나타난 이상, 아무도 영지를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소독을 해야하니까요. 초청된 분들이 모두 ‘정상’의 판정을 받으면 그땐 가능합니다.”
“나는 죄인이 아니다.”
“예. 하지만 이게 ‘규칙’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개같은 소리! 그런 규칙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다!”
“거부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쯤이면 영지의 모든 워프가 ‘정지’ 되었을 테니.”
“······ 뭐?”
모든 워프를 정지시켰다?
심연에 가라앉고 싶어서 작정하지 않는 이상 벌일 수 없는 짓이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죄인을 색출하고, ‘소독’을 끝내면 풀어주겠단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한 곳으로 향했다.
죽은 남자가 죽기 전에 외친 말.
플레이어가, 죄인이 한 명 더 있다는 소리.
53번.
········· 마스터.
진행자가 말했다.
“경매가 재개될 때까지, 손님들께선 연회장에서 대기해주시면 매우 감사하겠습니다.”
*
연회장에 모인 모두가, 53번을 멀리했다.
당연한 일이다.
죄인으로 지목된 자와 괜히 같이 있다간 불똥이 튈 것이 자명했으므로.
마스터는 굳어있었다.
워프가 모두 정지된 걸 확인한 탓이다.
도망칠 장소 따윈 어디에도 없었다.
그가 2성의 초월자라고는 하지만, 이곳은 다르칸 영지다. 수호기사 파멜을 비롯하여 온갖 강자들이 모여있는 곳.
‘검은후드를 눌러쓴 채 동색의 여우가면을 쓴 자들. 검은 종을 지녔다면 틀림없이 사신교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마스터도 안중에 없었다.
생각할 거리가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경매장에 난입한 사신교.
그들은 모두 초월자였다.
‘클로버(♣) 표식의 초월자들이었지.’
데르시안 영애가 데리고 있던 광전사는 스페이드(♠) 표식이었다.
같은 초월자라도 표식이 다른 모양이다.
그리고 트럼프 카드의 순서대로 작용하고 있는 듯싶었다.
클로버(♣) 하트(♥) 다이아(◆) 스페이드(♠)의 순서대로 강함과 약함이 결정되는 건지.
‘트럼프 카드 표식의 초월자들이 동색의 여우가면을 쓰는 건가?’
여우가면을 쓰는 기준이 있을 것이다.
의아한 건 또 있었다.
‘이후에 나타난 은여우가면.’
시체를 ‘소각’시킨 은여우가면.
그는 2성의 초월자였다.
심연 미궁에서 만난 자와 마찬가지로.
하지만, 동일인은 아니었다.
‘별과 함께 스페이드 표식을 지닌 초월자라.’
그건 나 역시도 난생 처음보는 경우였다.
【Lv.★♠】
별로 초월한 자가, 스페이드 표식으로 2차 초월을 했다.
제국은 별이 아닌 또 다른 방식으로 초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게 확실해졌다.
하지만 강하게 걸린다.
내가 보았던 그것.
소각시킬 때 보인 ‘번개 스킬’이 말이다.
‘그 스킬은 분명히······.’
아니라고,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고유스킬’을 내가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고유스킬, 번개의 대마법사가 초월하여 마침내 갖게 된 ‘천둥 사자’ 스킬을!
‘천둥 사자는 뇌신강림의 고유 스킬일진대.’
······ 내 부캐, 뇌신강림.
초월한, 번개류 스킬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대마법사.
그러나 이게 가능한 일인가?
1성의 초월자가 2성의 초월자가 되어있었다.
게다가 별이 아닌 다른 초월의 표식과 함께, 사신교의 집행자가 된 상태였다.
이것만 보면 다른 사람이겠지만, ‘고유 스킬’이란 두 개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 하나뿐이기에 고유다.
이미 누군가가 가졌다면, 다른 자는 절대로 같은 스킬을 가질 수 없다.
“이봐! 나는 초청받아서 온 것 뿐이라고!”
“이럴 줄 알았으면 오지도 않았을 거다!”
“제국의 횡포가 아니면 이게 뭐란 말이냐!”
사람들은 울분을 토했다.
이 경매는 처음부터 순수한 의도의 경매가 아니었다.
어쩌면, ‘플레이어’라고 의심되는 사람들을 초청한 건 아닐는지.
그렇다면 허드슨 역시도 그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말이다.
“‘죄인’이 아니라면 어디 증명해봐라.”
“더러운 죄인들이 같은 공간에 있다고 생각하니 구역질이 나는군.”
제국의 귀족들은 연회장에서 멀리 떨어져있었다.
혐오하는 표정과 함께.
헌데, 증명하라니.
플레이어가 아님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제멋대로 ‘판별’당할 터.
무슨 기준으로 판별을 하고, 확정을 하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렇다면.
툭.
-······ 어디가십니까?
그리 말하는 듯한 허드슨의 눈을 무시하며, 나는 중심으로 걸어갔다.
“가까이오지 마라.”
“‘의심자’가 어딜 옆으로 오려고!”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제국인들의 표정은 더욱 일그러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내가 관심있는 건 단 한 명.
-오호라. 멋대로 끊어낸 것을 다시 연결한 이유가 무엇이지?
1번의 남자.
정면으로 그에게 다가가, 그와 ‘황금률의 선’을 연결하자, 흥미롭게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의 앞에서 ‘그것’을 꺼냈다.
-제국패? 제국패를 내게 보여서 뭐 어쩌자는 거지?
심연 미궁에서 은여우가면에게 받았던 제국패.
이걸 보여서 뭐 어쩌냐며 반문한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제국패가 아니다.
그를 증명하듯, 다시 한 번 제국패를 살피던 1번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음? 잠깐. 이 표식은 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