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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108화 (108/317)

나는 천천히, 결론내린 바를 전했다.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못알아듣겠군. 계속 개소리를 지껄일거면 말 걸지 마라.

진짜든, 아니든, 반응을 해선 안 된다고.

이후 나는 곧장 황금률의 선을 끊었다.

정보에 우위를 가진 놈과 길게 대화하면 밑바닥만 보이게 되는 법이다.

하물며 ‘황금률의 선’을 이용한 대화도 처음이지 않나.

여기선 한 발 물러나는 게 맞다.

내가 황금률의 선을 끊자, 1번은 어깨를 으쓱했다.

‘위험한 놈이다.’

속을 알 수가 없다.

확실한 건 놈과는 엮여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이었다.

하여, 아예 신경을 접었다.

당장은 경매에 집중해야할 때.

“다음 경매 물품은 신화등급의 물건입니다! 현재의 고귀하신 3번 손님께서 직접 내놓으신 상품 ‘천옥의 도자기’! 보기만 해도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이 아름다운 이 도자기의 입찰 시작가는 100억 골드입니다!”

3번, 데르시안 영애가 특별한 물건을 내놨다.

허나 가격이 말도 안 된다.

100억 골드.

당연히, 입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리고 그것을 데르시안 영애도 노리고 있었다.

과시.

이처럼 아무도 입찰하지 못할 금액을 설정해, ‘과시’하는 것이다.

보아라. 데르시안 가문에는 이런 물건이 있노라!

“허어.”

“저게 그 유명한 천옥의 도자기인가?”

“저 도자기를 데르시안 가문이 갖고 있었다니.”

“이름처럼 아름답구나.”

제국의 귀족들은 순수히 감탄했다.

동시에 데르시안 영애의 콧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았다.

당연히 입찰자는 아무도 없었다.

“입찰자가 안 계시면 다음 물건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자, 다음 물건은 이보다도 훨씬 아름답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천옥의 도자기보다?”

“그런게 세상에 있나?”

천옥의 도자기는 비추는 면에 따라 천 가지 아름다움을 내는 물건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자기로 손꼽히는 그것보다 더 아름다운 물건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곧이어 경매의 진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다음 경매 물품은 무려! 유일급 물건입니다! 제가 보고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모두 눈을 크게 뜨고 보십시오! 오늘 2번으로 오른 고귀한 손님께서 등록하신 ‘빛의 옥좌’입니다!! 시작가는 1,000억 골드! 아아······ 이건 이 세상에서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이 한분말곤 안계시겠군요.”

“-?”

“!!!”

경매에 참가한 모두가 경악하며 시선을 던졌다.

잠시 후 빛으로 이루어진 옥좌가 그 자태를 드러냈다.

“······ 유일급?”

그중에는, 당연히 1번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은 경매에 집중해야할 때였다.

어차피 너도 집중해야 할테니까.

*

경매 입찰로 쓸 수 있는 돈은, 사전에 확인시킨 금액뿐이다.

천억골드는커녕 백억골드도 등록한 사람이 없을 테니, 당연히 입찰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리 없었다.

아니, 애초에 저만한 돈을 갖고 있는 곳은 황실을 제외하면 없을 것이었다.

그야말로 황제가 아니라면 살 수 없는 물건.

“저건······.”

“말도 안 되게 아름답군.”

모두가 넋을 잃고 빛의 옥좌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설정하여 빛의 옥좌를 등록한 건 이를 위함이었다.

아무리 제국이라도 갖지 못할 물건을, 나는 갖고 있노라고.

“가, 감정이 안 됩니다.”

“스킬로도 확인을 할 수가······.”

동시에, 감정사들이 난색을 표했다.

유일급의 물건은 소유자가 아니면 그 상세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다.

“저 옥좌가 유일급의 물건인지 어떻게 확신하지?”

“고귀하신 손님들께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방금전 겨우 확인이 되긴 했습니다만, 등급만큼은 저희가 보증하겠습니다.”

확인했다.

등급만.

진행자의 발언에 모두의 눈에 탐욕이 서렸다.

하지만 그뿐이다.

천억 골드나 되는 금액을 입찰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대신 모두의 시선이 나와 허드슨에게로 향했다.

3번, 데르시안 영애는 아예 두 눈을 부릅뜬 채 떨리는 동공으로 물건과 우리를 번갈아보고 있었다.

잠시간의 침묵.

“입찰자가 안 계신 관계로 다음 물건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입찰이 없이 유찰되면 물건은 다시 주인에게로 돌아간다.

이후 다시 입찰가를 설정해 경매에 등록하는 건 물건의 주인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로써 나는 광역 도발을 하게 된 셈이다.

이곳 다르칸 영지만이 아니라, 제국 전역에.

‘바알 갑옷을 찾으려면 이게 제일 빠르다.’

제국 어딘가에 있을 바알 갑옷을 찾기 위해선 이 이상의 방법은 없었다.

사흉 바알이 지구로 넘어갈 가능성이 생긴 이상 최대한 빠르게 찾아야 했으므로.

“잠깐.”

“······ 이, 일번 손님?”

다음 경매로 넘어가려는 찰나.

1번의 남자가 손을 들자 진행자가 경기를 일으키며 반응했다.

그가 경매 처음으로 자신의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바알 갑옷

경매 진행자의 반응.

그리고 제국 귀족들의 태도.

마치 어려운 주인을 대하는 행동이다.

아예 눈을 피하거나 낮추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칸 영지였다.

제국의 뛰어난 검술 명가이자, 수많은 귀족의 질서를 주도하는 존재.

그런 다르칸의 영주가 2순위를 자처하며, ‘특급’이라 이름 붙은 경매에서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는······.

‘황실.’

아무리 생각해도, 황실밖에 없다.

그러나 황실이라 생각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절대로 제국 황실에 소속될 수 없으니까.

그들의 병적인 폐쇄성.

그 안에서 정체를 숨긴 채 생활을 영위하는 건 불가능하다.

1번. 여유롭게 손을 든 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진행자여. 사전에 등록된 금액만 입찰에 사용할 수 있는 건가?”

“예, 그것이 경매의 규칙입니다. 고귀하신 1번 손님.”

경매가 시작하기 전에 사전 확인된 현물.

오직 그 현물을 기준으로 입찰할 수 있다.

1번의 남자는 가만히 턱을 쓸었다.

당연히 1천억 골드를 현물로 확인시켰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묘하게 저 여유가 걸린다.

‘1천억 골드의 규모를 움직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

아무리 제국 황실이라 한들, 그만한 금액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자는 손에 꼽힐 것이다.

진행자의 말마따나 황제가 아니라면 쉽지 않을 터.

황실의 관계자라면 강제로 규칙을 바꿔버릴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만에 하나의 경우, 나와 허드슨을 ‘플레이어’로 지목하여 물건을 강탈하려는 속셈일 수도 있었다.

물론 백왕을 적대한다는 리스크를 안기는 하지만 ‘빛의 옥좌’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

빛의 옥좌가 가진 진정한 가치를 알아봤다면 도박을 걸 수도 있을 테지.

“규칙이라면 어쩔 수 없지. 규칙은 존중해야 하니.”

······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천억 골드로 입찰 시작가를 정해놨는데, 입찰하려는 정신 나간 놈이 있을 줄은 나도 예상 못 했으니.

천억 골드면 왕국을 살 수도 있는 금액.

설령 제국의 황제라도 그만한 금액을 선뜻 내진 못하리라 생각했다.

‘안일했군.’

제국에 대한 평가를 격상시켜야겠다.

구제국의 땅을 전부 수복하지 못한 제국이라면, 천억 골드는 쉽지 않으리라 여겼거늘.

안일했다. 하지만, 이러한 실수는 두 번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1번의 남자는 ‘규칙’을 중요시한다고 말했다.

저건 진행자가 아니라 내게 말한 것이다.

강제로 진행할 수 있지만, 강제로 진행하진 않겠다고.

······ 뭐 하는 놈일까.

황실의 관계자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민트초코맛있어요’라고 밝힌 남자.

절대로 공생할 수 없는 두 이름이 함께하고 있었다.

놈의 정체를 알 수가 없는 이유는 또 있었다.

【Lv. ??】

레벨이, 보이지 않는다.

여태껏 레벨이 물음표로 뜬 경우는 딱 두 번뿐이었다.

‘지고룡 라일리와 사흉 바알.’

그 둘만 물음표로 보였다.

앞선 둘은 거대의 괴수이며 레벨을 확정하기 모호한 부분들이 있었다.

하지만, 저놈은 인간이다.

아니······ 인간인가?

이제는 인간인지 아닌지도 확신이 안 선다.

10을 넘는 레벨인 건 분명할진대.

‘레벨이 물음표로 뜨는 기준이 있을 거다.’

그 기준을 아직 내가 모를 뿐이다.

셋의 공통점이 뭘까.

지고룡 라일리와 사흉 바알, 그리고 1번의 남자.

셋 다 너무나 강력해서?

내심 고개를 젓는다.

‘백왕의 레벨도 확인했다. 강함은 기준이 아니야.’

대현자를 이용하여 보이는 지식.

15레벨의 그 괴물, 백왕마저 확정할 수 있지 않았나.

사흉은 몰라도 지고룡 라일리는 백왕보다 강하진 않았다.

지고룡 라일리와 검성 라일리가 합쳐진 뒤라면 모르겠지만, 지고룡만 보았을 땐 분명히 그랬다.

강함이 아닌 다른 기준.

히든 특성 ‘대현자’를 피해 레벨을 감추는 효과······.

‘히든 특성을 막을 수 있는 건, 히든 특성뿐이다.’

물론 히든 특성도 무적은 아니다.

예컨대 ‘거인의 항마력’은 ‘마력 관통’ 효과에 뚫리므로.

하지만, 완벽하게 히든 특성을 무력화시킬 수는 없다. 관통 100%가 존재할 리 없으니까.

마찬가지로 ‘대현자’의 관찰 기능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는 건 ‘관찰 방해’, 혹은 ‘관찰 방어’의 효과를 지닌 아이템이나 스킬뿐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완전히 무력화시킬 순 없다.

아예 ‘물음표’로 만들 수 있는 건 같은 히든 특성밖엔 없을 터.

‘아마도······ 철혈군주의 심장. 혹은 대현자.’

지고룡 라일리, 사흉 바알 역시 히든 특성을 지니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라일리는 수많은 재능이 찍힌 검성. 거기에 지고룡의 특성까지 더해져 상상을 초월하는 격을 지닌 자였다.

사흉 바알?

숙련도 경험치를 그만큼이나 봉인해둘 정도로 온갖 것의 ‘격’을 높인 괴물이었다. 히든 특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도리어 이상할 지경.

나와 같이 14개나 지니진 못했겠지만, 겹치는 게 있을 수는 있었다.

아마도 철혈군주의 심장이나 대현자.

철혈군주는 영원군주로 진화하긴 했지만, 대현자는 그대로니.

마찬가지로 1번의 남자 역시 둘 중 하나를, 혹은 둘 다를 지녔을 것이다. 말마따나 민트초코맛있어요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황실 역시도 히든 특성의 존재는 알고 있을 테니, 이 또한 부정하긴 어렵다.

‘누구냐, 넌.’

이만한 혼란을 주는 인간은 나도 처음이었다.

상종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쯤 되자 궁금해진다.

저 가면 너머의 얼굴이.

진정한 녀석의 정체가.

*

“어떠셨습니까, 오늘의 경매는?”

너른 방.

영주성에 따로 준비된 특실에서, 다르칸 영주가 말했다.

그러자 창밖을 보며 앉아있던, 여전히 가면을 쓴 1번의 남자가 어깨를 으쓱하였다.

“재밌더군.”

실로 재미있었다.

그는 오랜시간 무료했던 찰나, 이러한 흥미를 느낀 건 무척 오랜만이었다.

“역시 ‘빛의 옥좌’가 눈에 띄셨는지요?”

“음. 확실히, 괜찮은 물건이더군.”

“···죄송합니다. 총력을 다해 관찰자들이 달려들었습니다만, 유일급의 등급 외에 ‘빛의 옥좌’의 상세내용을 파악할 순 없었습니다.”

“괜찮다. 나도 그랬으니.”

1번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일급의 물건을 전부 파악하는 건 소유자 외엔 불가하다.

하지만, 그가 가진 능력으로 기본적인 골자는 파악할 수 있었다.

“허나··· 먼 옛날, 태양을 떠받든 신이 앉았던 옥좌라는군. 당연히 내가 가져가야하지 않겠나?”

딱 한줄.

그마저도 저 한줄만 파악했을 따름이다.

하지만, 이만한 설명이면 충분하다.

다르칸 영주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거기까지 파악하셨군요. 역시······!”

“쉿.”

1번의 남자가 검지를 들어 코에 가져갔다.

조용히 하라는 의미다.

그를 보며 다르칸 영주가 몸을 떨었다.

“아······.”

“나에 대한 어떠한 것도 언급을 금한다. 그것이 제국의 규칙이다.”

“죄, 죄송합니다. 1번님.”

다르칸 영주가 당황하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1번의 남자. 그는 다르칸 영주도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였기에.

그가 작정한다면 다르칸 영지는 개미 한 마리 남기지 않고 사라질 것이었다.

겁에 질린 다르칸 영주를 보며 그가 씽긋 웃었다.

“규칙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경매 역시 마찬가지.”

“경매를 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와 직접 거래를 하시면.”

“아니, 그는 경매를 위해 이곳에 왔다. 당연히 경매로 풀어야하지 않겠느냐?”

“하오나······ 허드슨이라면 말이 통할 겁니다. 미궁에서 왔다지만 그는 인간이니까요. 빛의 옥좌도 미궁에서 나왔을 겁니다.”

미궁의 대리인으로 나온 허드슨.

그는 이미 황금도시 아르카나에 구제국의 보물을 판 경력이 있다.

모두 미궁에서 나온 보물들을.

빛의 옥좌도 미궁에서 발견했을 가능성이 컸다.

당연히 충분한 골드만 쥐어주면 거래가 가능하리라 보았다.

“허드슨? 아아, 나는 그자를 말하는 게 아니다.”

허드슨이 아니라니.

경매를 진행하는 건 미궁의 대리자인 허드슨 아니었던가.

“그럼 뒤에 있는 바바리안 말씀입니까?”

“그래. 그자야말로 내게 진한 여운과 재미를 가져다준 자이니.”

그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빛의 옥좌도 훌륭하지만, 그보다 더욱 훌륭한 것은 바로 검은 염소의 탈을 쓴 남자였다.

허드슨은 그 남자의 꼭두각시일뿐이다.

다르칸 영주는 그의 말을 듣고 경악했다.

그가 이 정도로 다른 자에게 관심을 주며 ‘여운과 재미’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자.

하여, 언제나 누군가를 평가할 때 무료하고 따분한 감상만을 늘어놓았다.

‘내가 볼 수 없다. 그는 히든 특성을 지니고 있다.’

재밌었다.

자신의 히든 특성으로도 볼 수 없는 자.

필시 자신과 같은 ‘관찰 방해’의 히든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리라.

그래서 플레이어인 줄 알고, 떠봤다.

한데, 반응이 없다.

68번을 언급하고, 플레이어라면 반드시 알고 있을 터인 닉네임까지 말했음에도, 미묘한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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