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칸 영주님. 이분은 단순히 제 호위가 아닙니다.”
“호위가 아니라면?”
“오주력께서 가장 총애하시는 분입니다.”
“············.”
“만에 하나, 이분을 건드린다면, 오주력께선 결코 가만히 계시지 않을 겁니다.”
“가만히 있지 않는다, 라. 이곳 다르칸 영지를 공격이라도 할 것이라는 말인가?”
“예.”
“······ 광오하군.”
다르칸 영주가 이맛살을 구겼다.
예상을 하는 것과, 상대에게서 말로 듣는 것에는 차이가 많다.
하물며 저 바바리안 같은 사내가 오주력이 총애하는 자라니.
그나마 백왕이나 사주력들에 관해선 정보가 있지만, 오주력에 대한 정보는 전무하다.
그 백왕이 직접 두둔할 정도로 애정하는 존재임은 분명할 터.
다르칸 영주는 고개를 돌려, 수호기사 파멜을 쳐다봤다.
그러자 수호기사 파멜 역시도 작게 고개를 저었다.
‘파멜조차 가늠할 수 없다. 저 사내가 범상찮은 자임은 분명하군.’
뿐만인가.
‘데르시안 가문의 광전사를 압살했다고 했지.’
전해들은 보고는 쉬이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거인족 최고전사의 증표인 골통파괴자를 들고 검강을 흩날리는 강자!
무기의 이름처럼 광전사를 파괴시켜버렸다고.
오주력은 최강의 종족인 거인족까지 포섭하고 있다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허드슨이 자신의 앞에서 자신있게 내뱉는 게 이해는 됐다.
그때 허드슨이 첨언했다.
“··· 물론, 오주력께서 나서지 않으셔도 처벌은 불가능할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이분을 해할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
허세인가?
하지만 분명히 저 사내는 오주력이 총애하는 자라고 말했다.
그런 오주력 또한 저 사내를 해할 수 없다는 뜻.
즉.
‘설마······ 저 사내가 오주력이란 말인가?’
······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당장 판단하여 건드리면 귀찮아질 것임은 틀림없었다.
“흠. 어차피 처벌할 명분도 없다. 먼저 공격을 한 것이 데르시안 영애가 확실하니.”
“여, 영주님!!”
“데르시안 영애. 이곳은 그대가 저지른 실수를 덮어주는 곳이 아니다. 도리어 자신이 죄를 저지르고 그를 덮고자 나를 찾아왔으니, 내 명예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의미 아닌가?”
“그,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 뜻이 아니다? 아직도 억울한가보군. 정 그렇다면 공개재판을 열어주마.”
“······!!!”
“다르칸의 영주인 나를 얼마나 쉽게 보았으면 감히 너 따위가 이딴 짓을 저지른단 말이냐? 명예로운 내게 고짓을 고하라? 오냐, 이는 곧 데르시안 가문의 의지로 알겠다.”
“겨,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저, 저는 단지······!”
공개재판.
재판을 열면 모든 영지민들과 데르시안 가문의 어른들이 직관하게 될 것이었다.
이는 다르칸 영주가 데르시안 가문에게 보내는 경고였다.
이렇게 강하게 나올 줄은 전혀 몰랐기에 데르시안 영애는 경악한 채 몸을 떨어대고 있었다.
“또한, 재판이 열릴 때까지 이자벨라, 너를 구금할 것이다. 너희 가문에도 이와 같은 내용을 고지할 터.”
이제는 가문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는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기에 데르시안 영애의 낯빛이 새하얗게 변했다.
“여, 영주님!”
“당장 데려가거라.”
“제, 제발!!”
병사들에 의해 데르시안의 영애가 질질 끌려갔다.
끌려가는 와중에도 데르시안 영애는 억울하다는 듯 외쳐댔지만 영주는 가볍게 무시
해버렸다.
“······ 이 정도면, 만족하시겠소?”
다르칸 영주가 허드슨이 아닌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영주 나름대로 우리를 위해 초강수를 둔 것이다.
허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직접 무릎 꿇고 사죄하는 것 외엔 받아들이지 않겠다.”
“······ 좋소. 그리하게 하리다.”
머지않아 끌려갔던 데르시안 영애가 내 앞에 처참한 몰골로 세워졌다.
당황하여 울었는지 화장기가 지워져 너저분한 모습.
하기야 설마 다르칸 영주가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으리라고 상상도 못했겠지.
더욱이 미궁도시에서 나온 자들이라는 걸 알았다면 이런 식으로 우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제 다르칸 영주가 돌아선 이상,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으면 달리 방법이 없었기에, 데르시안 영애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할 수밖에 없었다.
“죄······ 죄송······ 죄송합니다······.”
뚝뚝.
바닥에 눈물을 떨어트리며 데르시안 영애가 마저 이야기했다.
“제가 잠시 눈이 돌았었나 봅니다. 부디······ 부디, 용서를······.”
*
사죄를 받기는 했지만, 그렇게 사죄만 받고 모든 것을 용서해줄 생각은 없었다.
진정한 참교육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
“지금부터 특급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수많은 귀족들이 모인 거대한 돔 형태의 경매장.
그곳에서, 마침내 특급경매가 시작되었다.
사흉 토벌
굴욕이다.
치욕이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이 모욕, 모멸감.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번 ‘특급 경매’를 반드시 성황리에 성사시켜야만 했기에.
-이자벨라. 데르시안 가문의 대표로 다르칸 영주와 협력하여 ‘특급 경매’를 성사시키거라. 너의 능력을 보여다오.
가문에 자신의 능력을 보일 절호의 기회.
이번 특급경매의 결과에 따라, 데르시안 가에서 자신의 위치가 정해질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경매에만 집중하라는 말은 아니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해.’
보름간 진행되는 특급 경매는 제국 사교계의 연장선이었다.
넘쳐나는 금은보화를 주체 못하는 ‘제국의 귀족’과, 외부에서 인정받은 ‘도시의 주인’들이 서로 돈을 걸고 경쟁을 하는 장이다.
더불어 보름간 경쟁상대와 연을 잇고 더 큰 도약을 도모하는 자리였다.
한 마디로, 주인공이 되어 ‘내 편’을 만들어 오라는 것이다.
후계구도에서 온전하게 승리하고 싶거든 외부의 세력도 필수였으니까.
뛰어난 안목으로 특별한 물건을 구매하는 것 역시도 같은 맥락이었다.
‘······ 지금 다르칸 영주를 거스를 순 없어.’
데르시안 가문과 다르칸 가문은 깊은 사이다.
그러나 다르칸 영주는 이번에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데르시안 가문의 주인도 아닌, 그저 대표로 들렀을 뿐인 자신 따윈 안중에도 없노라고.
공개적으로 재판에서 치욕을 당하고 싶지 않으면, 꿇으라고 말이다.
만약 꿇지 않았다면 그녀는 데르시안 가로 강제송환되었을 터다.
경매의 진행은 가문의 다른 후계자가 책임지게 됐을 것이고, 그녀는 뒷방에 갇힌 채 허송세월이나 보내게 될 것이었다.
그럴 순 없었다.
절대로,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하여 무릎을 꿇었다. 빌었다.
‘미궁의 대리자라고? 그래봤자 괴물들이지. 괴물들이 돈이 어디 있겠어?’
경매의 시작을 보며 데르시안 영애가 여유를 되찾았다.
마침내 막이 오른 특급 경매의 시작.
돈이 없는 자는 손가락이나 빨며 구경만 해야된다.
미궁에서 찾아온 괴물들이 돈이 어디있겠는가.
하물며 첫날은 가장 중요한 날이다.
서로가 서로를 파악하고 가늠하는 자리.
이곳에서 진정한 ‘돈질’이 뭔지 보여주리라.
데르시안 가문의 위엄을, 자신의 위치를 확실히 두 눈에 새겨주겠다.
*
돔형태의 경매장엔 족히 오백은 되어보이는 자들이 앉아있었다.
돔의 왼쪽엔 가면을 쓴 제국의 귀족들과 호위가 있었다.
그 반대인 오른쪽엔 외부에서 초청받은 자들이 모여있는 상태였다.
정확하게 반반.
같은 자리를 쓰는 것조차도 싫다는 듯, 나누어 놓았다.
허드슨과 발테, 그리고 나는 정확히 오른쪽에 있었다. 외지인들의 자리에.
영주가 직접 초청을 했더라도 자리만은 어쩔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도시의 지배자. 혹은 거대 세력의 주인들.’
나는 천천히 ‘외부인’들을 살폈다.
호위를 제외하면 대략 백여명.
그들 모두가 도시의 지배자거나, 그에 준하는 자리에 위치한 자들이었다.
‘다르칸의 오후’에서 스치듯 본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초면이다.
‘이들 중에 플레이어도 섞여 있다.’
허나, 나는 확신했다.
이들 중에는 필시 플레이어들도 섞여있으리라고.
플레이어가 아닌척, 연기를 하고 있는 자들이 분명히 있을 터.
누굴까?
어떤 플레이어가, 판게니아인인 척 연기를 하고 있을까.
‘제국은 플레이어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고 있다.’
알다뿐인가.
제국은 노골적으로 플레이어를 배척하고 있었다.
빌헬름으로 플레이할 때 제국과 연을 잇지 못한 건 그 때문이다.
심지어 대원정을 일으킬 때도 제국은 참가하지 않았다. 여신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세력에서 작고 큰 지원을 보냈음에도, 정말 코빼기도 안 비췄다.
왜겠나.
빌헬름이 일으킨 대원정.
빌헬름을 판게니아인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니겠나.
단순히 빌헬름이 판게니아인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국은 마계를 공략하는 대원정에서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은 것이다.
지독할 정도로 플레이어를 배척하고 있는 셈.
그런데 플레이어가 제국 내부로 들어왔다?
‘죽이려고 들겠지.’
절대로 가만히 놔두지 않으리라.
사신교를 이용하거나, 아예 죽이려 할 가능성이 컸다.
제국 내부에 사신교의 본단이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닐 테니.
어쩌면.
‘플레이어를 판별하는 자들도 어딘가에 있을 터. 아예 이곳에 섞여있을 수도 있다.’
외부인들이 이렇게나 많이 모이는 자리.
섞어내려는 자는 당연히 있다고 생각해야 했다.
초청할 때 이미 조사를 거쳤겠지만, 제국의 철두철미함은 유명했다.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플레이어에겐 쥐약과도 같은 장소.
다만, 그럼에도 이들 중에 플레이어가 섞여있으리라 확신하는 이유가 있었다.
‘···허드슨이 가져온 정보가 확실하다면 이곳에 마스터가 있다.’
최소 한 명.
아니, 두 명 이상.
마스터를 포함한 플레이어가, 이곳에 있다.
허드슨은 마스터의 도시 ‘유적도시’에서 판매되는 유적들의 판매경로를 조사했다.
물론, 그 대부분이 황금도시 아르카나에서 소비되었으니 사실 조사할 것도 없기는 하지만.
그리고 마스터가 노골적으로 골드를 모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유적의 가격을 깎더라도 최대한 빠르게, 대금의 지급 기일을 대놓고 ‘특급 경매’가 이루어지기 직전으로 몰아넣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저놈들.’
그리고 마스터의 얼굴은 이미 여러번 공개가 된 상태였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7영웅들의 ‘강림체’는 모두.
비록 가면을 쓰고 있어 자세한 파악은 힘들지만, 그래도 가릴 수 없는 게 있다.
【★★】
바로 레벨.
2성의 초월자!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여자 역시도.
【★】
1성의 초월자였다.
정식으로 여신의 별을 먹은 진성 초월자들.
저 두 명 모두 플레이어다.
‘마스터는 아직 나를 파악하지 못했다.’
반면 나는 마스터를 특정해냈다.
먼저 아는 것과, 나중에 아는 것은 천차만별이다.
내가 선수를 칠 수 있다는 뜻이므로.
스피커 중 하나인 마스터가 특급 경매에 참가했다.
마스터.
저놈을 어찌해야할까.
‘세렝게티만 있었어도······.’
세렝게티가 있었으면, 각개격파와 기습으로 충분히 암살을 기도할 수 있었을 텐데.
나와 세렝게티가 힘을 합치면 2성 초월자도 해볼 만은 했다.
허나 이 자리엔 세렝게티가 없었다.
나 혼자 마스터를 죽이는 건 쉽지 않은 일.
고개를 젓는다.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재료를 먹여서 찬란한 빛의 옥좌를 만들면 되긴 하지.’
수는 많다.
마침 이곳은 특급의 물건을 판매하는 경매장이고, 재료가 될 것들을 구매할만한 돈적인 여유는 충분히 있었다.
어쨌든 간에.
‘마스터가 있다는 건, 다른 플레이어가 더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다만 저 둘이 전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분명히 더있다.
플레이어들도 모르는 플레이어가.
완벽하게 판게니아인처럼 둔갑한 자가 숨어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스터를 족치는 것만큼이나 그들을 파악하고 내 정체를 들키지 않는 것도 아주 중요했다.
“고귀하신 분들에게 첫 번째 경매 물품부터 소개드리겠습니다! ‘차가운 불의 종족’! 옛 북구에서 끊임없이 타오르던 전설적인 종족의 아이입니다!”
정작을 입은 경매사가 고개를 숙이며 소개하자, 사람들이 유리관 하나를 가져왔다.
유리관 안에는 머리가 푸른 불로 타오르는 중성적인 외모의 아이가 무릎을 끌어안고 있었다.
매질을 당한 듯 전신에 타박상을 입은 아이.
머리에선 피가 줄줄 흐른다.
상품으로 내놨음에도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슬며시, 허드슨의 등을 아무도 모르게 살짝 쳤다.
-절대로 반응하지 마라.
이곳은 제국이고, 모인 자들 역시 노예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부류들뿐이다.
판게니아에서 노예는 생각보다 흔하니까.
그럼에도 노예를 불쌍히 여기는 자들은, 플레이어밖에 없다.
지구인 말이다.
처음부터 심하게 다친 노예를 내다놓은 저의가 무엇일까.
경매사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좌중을 살핀다.
특히, ‘외부인’이 있는 자리를.
그럼 경매사가 ‘플레이어 판별자’인 건가?
“시작가는 백만 골드! 백만 골드로 시작하겠습니다. 입찰가는 50만 골드 단위. 입찰을 희망하시는 고귀하신 분은 사전에 드린 ‘부채’를 펼쳐주십시오!”
좌중이 조용해졌다.
첫 경매물품으로 노예라.
아무리 전설적인 종족의 노예라고는 하지만, 상태가 나쁘다.
먹이고, 재우고, 키워야하는데 그만한 가치를 할 지도 확신할 수 없다.
“차가운 불의 종족?”
“저게 무슨 전설적인 종족이야, 그냥 쓰레기지.”
“몸도 약하고, 벙어리 아닌가?”
“구매하고 1년 이상 생존한 놈을 본 적이 없다.”
아무리 돈이 많아 ‘돈질’을 하더라도 ‘안목’이 없다면 무시당하는 법.
경매사의 소개와 달리 저 ‘차가운 불의 종족’에 대한 인식은 최악이었다.
그때, 허드슨이 처음으로 부채를 펼쳤다.
“55번 손님! 100만 골드 입찰했습니다!”
55번은 허드슨에게 부여된 숫자다.
불쌍해서 구매하려는 걸까?
그런 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