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르칸의 오후’는 음식점치곤 시스템이 특이했다.
먼저 돈을 주면, 그 돈에 따른 음식을 준비해주는 식이다.
당연히 층수에도 차이가 났다.
“최고로 대우해드리겠습니다!”
100만 골드를 쥐어주자, 1층에 있던 종업원 전부가 고개를 숙였다.
이어 4층의 창가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가장 커다란 식탁.
12인이 앉을 수 있는 자리에 셋이 앉았다.
“저희 다르칸의 오후를 이용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혹시 못 드시는 종류의 음식이 있으십니까?”
깔끔한 양복차림을 한 종업원의 물음에 허드슨이 고개를 저었다.
“없다.”
“그럼 먼저 ‘레비아탄의 콧물’로 만든 특제 쥬스를 맛보시지요. 저희 가게의 자랑이자 특급 손님에게만 선보이는 특별한 음료입니다.”
“······?”
레비아탄의 뭐?
레비아탄은 용종의 괴물이다.
그렇다는건 용의 콧물로 만든 쥬스라는 뜻이었다.
잠시후 종업원이 하얀 액상의 쥬스를 긴 컵에 따라 내왔다.
······ 뭐냐 이 걸쭉한 건.
못 먹는 게 없는 사람도 못 먹을 거 같은 비쥬얼.
이걸 진짜 마시라고 갖다준 건가?
한창을 고민하고 있을 때, 옆자리가 소란스러워졌다.
“잠깐. 저 자리 우린 안 줬잖아? 장난해?”
“데르시안 영애님. 저 자리는 50만 골드 이상 소모하신 손님분들에게만······.”
“닥쳐. 평민 주제에 누구한테 토를 다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당장 우리도 같은 자리로 옮겨줘.”
“그, 그건 가게 원칙상······.”
짜악!
종업원의 얼굴이 반쯤 돌아갔다.
이어 뺨을 쥐고 어안이 벙벙해하는 종업원을 향해 소녀가 폭언을 내뱉었다.
“쓰레기같은 놈. 네가 죽고싶어서 환장했구나? 내가 돈이 없어서 이러는 거 같아?”
“죄, 죄송합니다.”
“됐고. 저 자리, 우리한테 줘.”
“그건 곤란······.”
“알트. 한 마디만 더 하면 베어버려.”
“예.”
스릉.
옆에 서있던 검사가 검을 겨눴다.
그러자 종업원의 얼굴이 백지처럼 하얘졌다.
촌극이 따로없지만, 절로 시선이 갔다.
‘데르시안?’
이자벨라의 성, 데르시안.
··· 저 철없는 소녀가 그 데르시안 가문의 영애라고?
다르칸과 함께 특급 경매를 주체하는?
그래서 주변에서도 찍소리 못하고 있는 건지.
무엇보다.
‘동여우가면이라.’
데르시안 영애의 옆에 선 검사가 동색의 여우가면을 쓰고 있었다.
일전 심연미궁에서 2성 초월자가 은색의 여우가면을 쓰고 있던 것과 같은 모양이다.
【Lv. ♠】
다만, 은여우가면과 다른 게 있다면 그건 동여우가면 검사의 머리 위로 떠오른 레벨이었다.
숫자도, 별도 아니고 스페이드다.
저 이상한 표기가 이곳에 들어올 때부터 나의 시선을 강탈해가고 있었다.
‘초월자임은 틀림없는데.’
초월한 건 분명한데, 별을 먹고 초월한 게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아는 인간의 초월방법은 오직 별을 먹는 것뿐이었다.
아니면 아예 ‘인간’을 벗어난 다른 방식으로 레벨을 올리던가.
인외 취급 받는 성녀나, 데몬하트를 이용해 10.5레벨을 달성한 막심처럼 말이다.
제국은 별을 먹는 것 외의 다른 방식으로 초월하는 방법을 찾아낸 건가?
“······.”
허드슨이 미간을 찌푸렸다.
발테와 함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밥먹는 곳에서 저런 행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물며 허드슨은 영국의 귀족.
저런 버릇 없는 짓을 가만히 묵과하긴 어려울 것이었다.
다만, 내가 있어서 나서지 못하고 있을뿐.
내게 해가 될까봐 참고 있을 따름이다.
‘처음에는 연기인가 싶었다만.’
너무나도 어이가 없는 촌극에, 처음에는 우리를 떠보기 위한 연극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가게에 온 것도 4층에 오른 것도 모두 즉흥적이었다.
미리 대비하고 데르시안 가문의 영애를 배치해두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
말인 즉, 저 데르시안 가문의 소녀는 진짜로 맛이 갔다는 의미다.
‘마음대로 해라.’
하여, 나를 보는 허드슨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네 마음대로 하라고.
참는 것도, 참지 않는 것도 허드슨의 자유다.
초대장을 받고 온 자는 내가 아니라 그였으니.
“3초 줄게. 제대로 답해야할 거야.”
“······!”
그 순간 데르시안 영애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3.”
숫자를 세자 종업원의 얼굴은 새하얌을 넘어 파래졌다.
진짜로 죽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2.”
“자, 잠깐······!”
“1. 알트, 베어버려.”
알트라 불린 동여우가면의 검사가 검을 휘두르려던 찰나.
“제발 좀 닥쳐라, 철없는 꼬마야.”
허드슨이 외쳤다.
동시에, 데르시안 영애의 표정이 잔뜩 굳어버렸다.
“······ 지금 그거 나한테 하는 소리야?”
“밥을 먹을 땐 조용히 하는 거라고 부모한테 배우지 않았나? 아, 부모가 안 계신가보군.”
“뭐, 뭐?”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부디 사람이 되거라.”
“알트······! 저 새끼 죽여버려!”
데르시안 영애가 악을 질렀다.
그런데 허드슨, 설마 내 말투를 따라하는 건가?
쉬이이익!
채엥!
허드슨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가볍게 쳐냈다.
‘제법.’
손이 얼얼하다.
역시, 저 스페이드가 초월자의 표식이 맞는 모양이었다.
초월자를 상대로 정면에서 정식으로 맞붙어본 적은 여태껏 없었다.
그리고 진정으로 저 동여우가면이 초월자라면 10.5레벨의 막심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아무런 대비 없이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다.
수련자의 산을 오르기 전이었다면 빛의 옥좌 같이 최대한 다른 수를 사용했겠으나.
‘할만하다.’
지금의 나는 초월자조차도 있는 그대로 상대할만 했다.
탐욕을 상대할 때처럼 가치를 걸고 내기를 하거나, 사막여왕의 신비를 파괴했을 때와 달리, 오롯이 나의 ‘무력(武力)’만으로 말이다.
그 정도 수준의 성장과 성과는 이뤄냈다고 자부한다.
그러니, 그간 쌓은 나의 노력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지, 나 역시도 궁금했던 참이다.
오히려 잘됐다.
데르시안의 가문과 스페이드 표식의 초월자.
이 궁금증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 죽고싶나보군.”
나는 골통파괴자를 쥔 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참교육(1)
“······ 죽고싶나보군.”
나는 골통파괴자를 쥔 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동여우가면의 검사가 어느덧 눈앞에서 검을 들이밀고 있었다.
슈아아악!
정확히 내 목줄기를 노리고 달려드는 검.
콰아아아앙-!!
순간적으로 발을 들어 차내자 동여우가면의 검사는 벽을 뚫고 그대로 날아갔다.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
예상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목이 잘렸을 터.
초월자의 속도를 처음 경험하는 자는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서 죽었으리라.
하지만, 예상했다.
초월자와의 대결 경험 자체는 나보다 많은 자가 없을 것이기에.
처음 가게에 입장했을 때부터 나는 동여우가면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
주변의 경악 어린 눈빛을 뒤로한다. 빠르게 바닥을 박차고 뚫린 벽을 넘었다. 이어 허공을 날며 골통파괴자를 양손에 쥐자 검기의 실이 검을 감쌌다.
《‘검강’이 발현되어 피해량이 50% 증폭합니다.》
《‘골통파괴자’의 효과로 검강의 피해량이 30% 증가합니다.》
도합 80%의 피해량 증가!
골통파괴자는 검 숙련도 레벨에 따른 검기의 피해량을 늘려줬고, 그 결과 거의 두 배에 달하는 파괴력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전신의 근육이 팽창하는 느낌과 함께 있는 힘껏 동여우가면의 검사를 꽂아 넣었다.
꽈아아아앙-!
바닥이 움푹 패며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촉.
동여우가면의 검사가 곤죽이 되어 박살 난 게 먼지 사이로 보였다.
가면이 으스러지고, 괴물같이 주름이 자글자글한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쉬이익!
그 순간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
날아오는 검을 맨손으로 낚아챘다.
일순간 살점이 튀었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어 잡은 검을 끌어당기자 중심을 잃은 상대가 주춤거렸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가까이 다가온 상대의 얼굴을 이마로 때려 박았다.
쩌적!
동여우가면이 깨지며 얼굴이 드러났다.
조금 전 검으로 곤죽을 만든 자와 똑같은 얼굴.
똑같은 자가 한 명이 더 있다.
‘한 명이 아니군.’
주변으로 동여우가면을 쓴 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숫자가 열하나.
【♠】
하물며 모두가 스페이드 표식의 초월자다.
그러나 방금 확인한 두 명의 얼굴로 확신할 수 있었다.
‘분신. 초월하여 얻은 권능이다.’
초월자들이 지닌 특별한 권능.
동여우가면의 권능이 바로 이 분신술인 듯싶었다.
허나 권능이라면 저것들은 분신이되 분신이 아니다.
저것들 전부가 진체(眞體)였다.
도합 열둘의 진체를 전부 박살 내야, 마침내 죽일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죽인 건 한 명.
남은 숫자는 열하나.
귀찮기 그지없는 권능이었다.
하기야, 초월자가 한 방에 끝났다면 그건 그것대로 시시했을 테다.
게다가 검강을 봐놓고도 반응이 없다.
분신 한 명이 죽을 때도 얼굴에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마치 인형처럼.
‘전부 박살 내주지.
분신을 전부 박살 내도 지금처럼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진정으로 궁금했다.
*
“알트! 죽여! 죽여버려! 뭐 하는 거야!”
데르시안 영애가 건물 안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악을 질렀다.
알트라 불린 그녀의 호위는 패배를 모르는 강자였다.
열두 개의 목숨을 지닌 괴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광전사!
여태껏 저 ‘열두 목숨’을 모두 거둬간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 역시 괴물이었다.
알트와 마찬가지로 타격을 도외시하며 미친 황소처럼 맞붙고 있었다.
“······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저건 검기가 아니라······ 검강 아닌가?”
“검강? 검강을 구사할 줄 아는 자라고?”
이 가게에 모인 자들은 모두 최소 한 도시의 지배자들이다.
그들을 따르는 기사들 역시도 지금의 광경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검강이라니!
검기는 그저 기운을 덧씌워 파괴력을 올리는 용도다.
하지만 검강은, 그 기운을 정형화하여 틀을 입힌 지고의 경지였다.
단순히 비교해도 검기와는 파괴력 자체가 차원이 다르다.
그때 데르시안 영애의 귀로 또 다른 자들의 말이 들려왔다.
“저 거대한 검은 무엇이냐?”
“골통파괴자. 거인족 전용의 무기입니다. 거인족의 최고전사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장비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럼 저자가 거인족이란 말이냐?”
“아무래도······.”
“거인족치고는 작은데?”
“간혹 거인족 중에서도 몸을 작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가 있습니다. 최고전사라면 필히 그 능력을 지니고 있을 겁니다.”
거인족의 최고전사라니.
그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인가.
‘거인족이 여기에 왜 있는 거야?’
거인족은 신화종이다.
인간을 압도하는 괴물이지만 이 세상에 극소수만이 남아있다.
또한, 거인족은 여신의 수호를 자처하는 지상 최강의 종족이었다.
감히 그 강력함은 용족에 비견할 만했다.
심지어 어지간한 용족보다도 강력하다고 알려진 게 거인족이었다.
그런 거인족의 최고전사라면 그 무력은 두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혹여나 착각일 수도 있지만, 기사들은 확신했다.
저 검강이 바로 그 증거였다.
경지에 오른 기사들 모두가 선망하는 증표!
“검강을 휘두르는 거인족 최고의 전사라······.”
“저런 존재를 호위로 쓴다?”
“바깥의 히드라곤 마차도 저자의 것 아니었나?”
“··· 대체 누구지?”
모두의 시선이, 허드슨에게로 향했다.
대관절 누구이기에 거인족 최고의 전사를 그저 호위로 쓸 수 있단 말인가?
태도는 더 가관이었다.
후루룩!
여유롭게 앉아, 특제 음료를 마시며,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당연히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대단한 여유로군.’
‘저 데르시안 가문의 광전사를 상대로······.’
물론, 그런 그들의 생각과 달리, 허드슨은 가시방석이었다.
헛구역질이 나오려는 걸 겨우 인내하며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이딴 걸 돈주고 누가 마신다는 거지?’
걸쭉한 레비아탄의 콧물.
생긴 것 그대로의 맛이었다.
영국의 수많은 음식들을 맛봤던 허드슨이지만, 이 맛은 정말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여유를 잃어선 안 된다.
주변에 보이는 자신의 품격이 곧 영주인 란돌프의 품격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