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압도적인 차이로.
그라시아가 420점으로 오랜시간 1위의 자리에 군림했건만.
난데없이 600점이란 말도 안 되는 점수가 나타나며 1위를 탈환했으니,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라시아가 검 숙련도 24레벨 달성하고 산 내려온 거 아니었음?
-맞음ㅇㅇ 그래서 420점이고
-600점이면 대체 몇 레벨을 찍은 거야?
-600점이 존재하는 점수였어?
-;;; 버그 아니냐?
-진짜 미쳤네.... 메인퀘스트 6 파티 던전 깬지 얼마나 됐다고
-데미갓 특성 던전이었나... 그것도
-이게 말이 됨? 그라시아도 24레벨 찍는데 한 세 달 걸렸다고 들었는데
-24레벨이 420점이고 23레벨이 410점이고 22레벨이 400점이니까 180점 차이면 42레벨 찍었다는 거임?
-???????
-600점 어케했누
-어떤 놈이 아무리 팬텀이라도 메인 퀘스트 7은 1등 못한다고 하지 않았나ㅋㅋㅋ
-솔직히 다들 그렇게 생각했잖아
-... 아니 이게 진짜 가능한 거임?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점수와 속도.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에 모든 플레이어는 물음표를 그릴 수밖에 없었다.
-심연 미궁이야 이름만 같은 오주력 란돌프라고 쳐도, 그냥 란돌프 자체가 이제 넘을 수 없는 벽임을 완벽하게 증명했네
-그라시아 좆밥행ㅋㅋㅋㅋ
-랭커들 다 반성해야된다 그간 쌓아둔 것들이 어째 팬텀 하나만 못하냐?
-다 거품이었던 거지ㅋㅋㅋ
-쌉거품 ㅇㅈㅇㅈ
-야 진짜 사흉 바알이랑 팬텀이랑 관계 있는 거 같은데?
-바알이 숙련도 레벨이랑 관련이 있는 괴물인가?
-구제국 육각의 영웅들이 바알 소탕하면서 한꺼번에 확 강해진 기록이 있음
-뭔가 있기는 한가보네
-진짜 사흉 소환한 게 팬텀이라고?
-;;; 존나 무섭네 팬텀이 그럼 나머지 사흉 봉인 깨는 방법도 알고 있는 거 아님?
-사흉 봉인 전부 풀리면 판게니아 멸망각 아니냐?
-그랬다간 지구도 멸망임ㅋ
-지금이라도 마스터는 팬텀의 음해를 멈추고 대가리를 박아야한다
-마스터 뿐이냐ㅋㅋㅋ여기도 대가리 박아야할 놈들 많아보이는데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대원정 실패하자마자 빌헬름 욕한 놈들 여기 한트럭 아님? 괜히 벌집만 건드렸다고?
-별이랑 유일급 독식한다고도 말 많았지
-지들이 부족해서 못 얻은 걸 팬텀한테 뺏겼다고 생각하던 사람 한, 둘 이었겠냐?
-‘팬텀 방해하기 캠페인’ 대놓고 하던 곳 아님 여기? 그랬던 놈들이 가면쓰고 팬텀신, 팬텀신 거리는 거 역겹긴 해ㅋㅋㅋㅋㅋ
-팬텀이 숙청 시작하면 어케됨?
-...이젠 진짜 좆될 거 같은데
-피가 강을 이루고 시체가 산을 쌓음
-아니 팬텀이 사흉을 왜 푸냐고요;;; 말이 되는 소릴하세요들
-명예로운 팬텀신을 모욕하지 마라!
-팬텀신!
-팬텀신!
*
텔레포트 북을 사용해 미궁도시로 돌아오자 풍경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워프공학자들.’
열 명이 넘는 워프 공학자들이 워프를 세우고 있었다.
이미 완성된 몇몇 워프는 입구 곳곳에서 위용을 내뿜었다.
‘워프가 전부 고장나서 가라앉을 일은 없겠군.’
눈에 보이는 워프만 다섯 개가량.
워프 하나를 설치하는데 500만 골드 정도가 들어가는 걸 감안하면 수천만 골드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었다.
“다녀오셨습니까, 영주님.”
그리고 그 가운데에 허드슨이 있었다.
도시의 총괄을 맡겼기에, 이 워프 공사도 허드슨이 주도하고 있는 듯싶었다.
나를 발견한 허드슨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전당의 변화 잘 봤습니다. 역시 영주님이십니다!”
영주님이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직은 낯간지럽다.
어깨를 으쓱하며 공사현장을 바라봤다.
“워프가 너무 많은 거 아닌가?”
“도시에 있는 워프의 숫자는 곧 그 도시의 경쟁력입니다. ‘심연’으로부터 안전하다는 보증수표와 같습니다.”
확실히.
도시를 건설하려거든 ‘안전’을 증명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가장 먼저 보이는 워프의 숫자가 곧 도시의 경쟁력이라는 허드슨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허드슨이 슬며시 말했다.
“··· 줄일까요?”
“음. 아니다. 들어보니 맞는 말이로군.”
“그런데 세아 성녀님은 어디 가셨습니까?”
“용병도시 카르텔에 있다.”
“아, 거기서 따로 할 일이 있으신가보군요?”
고개를 끄덕였다.
카르텔에서 세아는 백왕의 딸 아리아를 치료하는 중이다.
호아킨과 다른 용병들은 자신이 본 것들을 보고하고자 도시의 영주에게 달려갔다.
“영주님. 영주님께서 맡기신 구제국의 보물은 모두 성공적으로 처분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여기 보고서에 적혀있습니다.”
허드슨이 서류 한 뭉치를 건넸다.
단순히 구제국 보물의 판매에 대한 서류는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보고서를 살피곤 고개를 갸웃했다.
“금액이 예상한 것보다 늘어났군.”
구제국의 보물을 판매해서 얻은 이득이 15억 골드.
내 예상을 웃도는 금액이라 되묻자 허드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르카나의 시의회와 거래가 잘 트였습니다.”
“15억 골드가 전부가 아닌 듯싶은데.”
“아르카나는 이곳 미궁도시와의 전면적인 거래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걸 빌미로 제가 몇 가지 이권을 좀 뜯어냈죠.”
이 정도로 많은 구제국의 보물을 정체를 숨기고 팔 수는 없다.
분할판매도 불가능하다.
필연적으로 심연 미궁과 관계되어 있다는 걸 눈치챌 수밖에 없는데, 아예 그 정보를 오픈하고 대신 이권을 뜯어냈다는 말이었다.
카지노 허드슨, 그리고 은행과 관련된 사항들.
하기야 이곳엔 구제국의 보물만이 묻혀있는 게 아니다.
백왕의 은혜를 직접적으로 입은 도시.
백왕과도 연을 지어놓고 싶다는 발로이리라.
이윽고 허드슨이 품에서 편지 한 장을 꺼냈다.
“그런데 시의회 시의원 중 한 명이 제국인이더군요. 제게 몰래 접선해왔습니다.”
“······ 제국인이?”
제국인이 황금도시 아르카나의 시의원 중 한 명이라는 것도 의외인데, 허드슨에게 몰래 접선까지 했다는 말은 더욱 의외였다.
“예. 제게 상당히 흥미가 깊었나봅니다. 제국에서 열리는 ‘특급 경매’에 참가할 의사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럼 이 편지는?”
“참가할 생각이면 편지를 뜯어보라고 했습니다. 아직 뜯지는 않았습니다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의미다.
천천히 허드슨에게서 편지를 건네받았다.
쫘아악!
인두를 제거하고 편지를 뜯자, 고풍스러운 편지지 한 장이 담겨있었다.
편지지에 적힌 내용을 확인한 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판매되는 물건들이 엄청나군.’
편지지에 적힌 내용은 특급경매가 열리는 위치와, 경매에 나오는 물건 몇 가지에 대해서였다.
대표적으로 나오는 물건들을 확인하곤 그 수준에 나는 제법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잘하면 바알 갑옷이 나올지도.’
이 정도 수준이면, 바알 갑옷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설령 나오지 않더라도 제국에 잠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평범한 방식으로는 제국에 접근할 수 없으니까.
물론 은여우 가면에게서 받은 황제의 인장이 있긴 했지만, 그런걸 내보였다간 그 즉시 엄청난 관심과 함께 내 정체가 탄로날 것이다.
그러니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칠 수는 없었다.
제국, 다르칸 영지
“······ 음?”
“왜 그러십니까?”
의아해하는 내 반응을 보며 허드슨이 물었다.
나는 다시 허드슨에게 편지지를 넘겼다.
“읽어봐라. 뭔가 이상한 부분이 보이지 않나?”
“제, 제가 읽어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너한테 보낸 초청장 아니냐.”
애당초 내 것이 아니라 허드슨의 것이다.
허드슨이 떨리는 손으로 편지지를 받아들곤 쭉 읽어나갔다.
“··· 특급경매에 올라오는 대표적인 물건들이 적혀있군요. ‘앗쉬무트의 혁도’, ‘디아로스의 투구’, ‘버서커 세트’······ 컥! 하나같이 전설 등급 이상의 보물들 아닙니까?”
“일반적인 루트로는 구할 수 없는 것들이지.”
모두 천운이 닿지 않는다면 구할 수 없는 보물이다.
그걸 골드를 이용해 구매할 수 있는 경매 물품으로 내놓는다는 것이다.
“역시 제국은 제국인가 봅니다. 스케일도 제국 스케일입니다.”
“계속 읽어봐라.”
“······ 어디 보자. 이번 특급 경매는 다르칸 가문과 데르시안 가문이 공동으로 주체한다는 내용 외엔 크게 이상한 점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외엔······ 아, 물건을 경매에 부칠 수도 있다는데 위에 예시로 들어준 정도의 등급이 아니면 꿈도 꾸지 말라는 뜻이로군요.”
“다르칸, 데르시안. 익숙하지 않나?”
내 물음을 듣고 허드슨이 턱을 쓸었다.
“다르칸은 제국에서도 유명한 검술명가 중 한 곳입니다. 제국의 수많은 정규기사를 배출한 곳이고요. 데르시안은······ 데르시안이라. 처음 들어봅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자 허드슨이 고개를 갸웃했다.
다르칸 가문은 검술명가로 이름이 드높지만 데르시안은 생소했던 탓이다.
하기야, 허드슨은 모를 수도 있었다.
‘이자벨라의 성.’
이자벨라 폰 데르시안.
이자벨라의 뿌리는 데르시안 가문에서 왔다.
사막에 납치되어 뱀공주라 불렸으나, 그 본질은 데르시안 가문의 핏줄이었다.
하지만 현재 이자벨라는 사막여왕이 죽은 틈을 타 사막도시 파이살메르로 혼자서 향한 상태.
사막을 계승한 뒤 돌아오겠다며 떠난 상황이다.
‘공교롭군.’
특급경매의 주체가 하필이면 데르시안이라.
그 이름이 제국에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빠른 접촉이었다.
이자벨라를 기다려야 할까?
내심 고개를 저었다.
‘내가 먼저 접촉해보는 게 맞다.’
이름 외엔 나 역시 데르시안 가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왜 제국인인 이자벨라가 사막에서 눈을 뜬 건지, 뭔가의 사연이 있는 건지는 내가 먼저 파악해보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혹시 두 가문과 엮인 일이 있으십니까?”
“유명한 검술 명가가 사람을 끌어모아 ‘경매’를 한다는 게 다소 이상해서 말이다.”
“으음. 확실히······ 게다가 그 폐쇄적인 제국이 외지에서 유망해 보이는 자들을 초청해 진행하는 거 보면, 단순한 경매가 아닐지도 모르겠군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게 전부인 경매가 아니다.
제국식 사교의 장.
유망한 자들을 모아,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자들과 따로 접선하는 게 아닐는지.
다르칸 정도의 제국 명가가 주체로 끼어있다면 추가적인 무언가가 더 있다고 봐야 했다.
그들은 단순히 돈으로만 움직이는 자들이 아니니까.
“물건을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파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살 엄두도 내지 못할 물건을 보여줘야겠지.”
요컨대 다르칸이나 데르시안 가문과 접촉하기 위해선, 물건을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판매대에 올려 ‘보여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
두 가문과 접촉하면 제국의 더 깊은 내부로 들어가는 것도 가능할 터.
물론, 그 과정에서 운이 좋으면 바알 갑옷을 구할 수도 있을 테고 말이다.
“경매대에 올릴 물건이 있으십니까?”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있기는 있다.
바알 투구를 올려서 바알 갑옷의 소유자를 찾는 것도 고려해볼 일이다.
바알 갑옷의 소유자라면 반드시 바알 투구를 구매하고 싶을 테니.
이번에 얻은 골통파괴자 역시 등장하면 난리가 날 건 자명했다.
아니면 아예 ‘빛의 옥좌’를 올려 제국의 모든 시선을 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굳이 경매대에 안 올려도 두 가문에서 접선해올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골드가 많아서 말입니까?”
“그들은 우리를 백왕의 관계자로 여기지 않겠느냐?”
“아. 하긴······ 그것도 그렇습니다.”
허드슨이 동의했다.
그들이 자신을 초청한 배경에는, 이곳 미궁과 백왕이 연관되어 있을 공산이 크다.
그것을 보고하지 않을 리 만무하니 굳이 경매에 참여하지 않아도 두 가문이 접선해올 확률은 높았다.
백왕과 제국은 서로 교류가 전무했으므로.
헌데 갑자기 출현한 오주력의 도시에서 허드슨이란 인물이 나타나 미궁의 물건을 판매하고 있으니, 제국에선 떡밥을 던져볼 만하다.
내가 그 떡밥을 문 이상, 제국은 다시 고민에 빠질 것이다.
우리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오주력과 백왕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무던 애를 쓸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영주님.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사흉 바알’······ 깨우셨습니까?”
“의도한 건 아니다.”
“······ 쿨럭! 쿨럭!”
허드슨이 사레가 들렸다.
설마설마했건만,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걱정하지 마라. 제어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니.”
본의는 아니지만 사흉을 깨운 이상 최대한 처리는 해볼 생각이었다.
바알 갑옷만 구하면 일단 제어가 된다고 했으니, 여기에 걸어볼 수밖에.
그리고 내가 나서지 않아도 토벌단에 토벌될 수도 있었다.
머리가 모자라지 않은 이상, 주변 도시들이 십시일반 하여 토벌단을 꾸릴 것이다.
수련자의 산과 연결된 중립도시 다섯 곳 중 한 곳만 막으면 되는 쉬운 일이니까.
‘워프를 끊고 단교를 한다거나 하는 멍청한 짓은 안 하겠지. 그래도 명색이 도시의 주인들인데.’
중립도시 선에서 막지 않으면 사흉이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알 수 없게 된다.
사흉이 갈 수 있는 선택지가 수십, 수백 가지로 늘어나는 순간 힘을 모으기도 힘들어진다.
그리하여 제국이나 여신교가 나서게 되면 처음 중립도시를 단교했던 도시들은 책임을 면하기 어려워질 터였다.
억지로 도시를 빼앗길 가능성도 농후했다.
그러니, 괜히 일 커지기 전에 힘을 모으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헌데 아이작은 어디갔지?”
“아······ 그게.”
허드슨이 머리를 긁적였다.
말하기 껄끄러워하는 태도.
내가 유심히 지켜보자, 허드슨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 가출했습니다.”
“············?”
*
백왕전.
백왕은 가만히 자신의 앞에 선 자를 바라보았다.
“······ 살아돌아왔구나.”
“제가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셨습니까?”
백왕의 딸, 아리아.
그녀가 정신을 차린 뒤 크람델로 복귀한 것이다.
백왕은 고개를 저었다.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가장 빠른 궁기를 보내려 했지만, 이미 한 발 늦었더구나.”
“흑왕이 두려우셨겠죠.”
“두렵지 않다.”
“저는 두려웠습니다.”
“무엇이 말이냐?”
“락투샤. 그는 사주력보다도 강했습니다. 다른 흑왕의 직속들도 마찬가지이겠지요.”
본래, 비슷했다.
하지만 지금은 흑왕 쪽의 전력이 백왕을 넘어섰다는 말이다.
락투샤는 흑왕의 직속들 중에서 가장 강한 자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사주력을 넘어섰다.
아리아가 그렇게 보았다면, 그게 맞을 것이다.
“걱정말거라. 나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
“대비하고 있으신 겁니까?”
“음. 사주력 모두 강해질 거다. 그리고, 오주력 역시 추가되었지.”
“··· 오주력, 말입니까?”
아리아 역시 크람델에 오며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