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100화 (100/317)

차라리 정해진 도시들을 공격할 때 힘을 모아 퇴치하는 게, 최소한의 피해로 사흉을 막을 방법이다.

하지만 도시의 지배자 대다수는 이 발언에 회의적이었다.

“사흉이 ‘심연 그 자체인 자’가 된다는 보장도 없지 않소.”

“으음. 다른 심연의 주인들이 사흉을 견제할 수도 있지.”

“아예 침략을 안 할 수도 있고.”

“내 말이. 제라프 그대의 의견은 너무 ‘최악’만을 가정하는 것 아닌가?”

부르르르!

제라프가 전신을 떨었다.

‘이 개새끼들이!’

말이 안 통한다.

처음부터 팽할 목적으로 회의를 연 것이다.

이미 연결된 도시의 워프를 끊으려면 어느 정도 동의가 필요하니까.

“······ 워프를 끊는다고, 그대들의 도시에 피해를 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침묵하고 있던 중립 도시의 주인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주황색의 수도승 차림을 한 대머리의 승려.

그가 얌전한 어투로 계속해서 말했다.

“허락이 필요 없는 주인 없는 지역의 워프와 연결하면 그만. 사흉이 ‘심연 그 자체인 자’가 되지 않아도 무한하게 뻗어 나갈 발판이야 만들어주면 되는 것 아닌가?”

“······ 다 죽자는 건가?”

“그딴 짓을 했다간 도시가 무사하지 못할 텐데!”

승려가 작게 비웃었다.

“어차피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우리는 죽은 목숨 아니오? 그대들이 이기심을 부리겠다면 나 역시도 이기적으로 굴 수밖에.”

일방적으로 단교를 행하면 물귀신이 되어주겠다는 말이었다.

정 안전해지고 싶다면 모든 워프를 끊고 심연에 가라앉으면 된다.

그럼 사흉 대신 다른 심연의 주인이 반겨줄 테니까.

“허어.”

“이것 참······.”

결국, 회의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 타협점에 도달하고자 쉬지 않고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

“······ 변명은 준비됐나, 흑요?”

흑요의 은둔지를 직접 습격한 마스터가 인상을 구겼다.

무려 5천만 골드를 받아먹고 입을 싹 닫아버린 탓이다.

“그게··· 갑자기 ‘사흉’이 나타날 줄은······ 나도 몰랐지·········.”

잠적하려다가 잡힌 흑요가 온몸을 베베 꼬았다.

“그래서 팬텀에 대한 정보도, 백왕의 딸을 납치하지도 못했다?”

“아하하하.”

“농담하는 거 아니다. 흑요.”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마스터의 두 눈에서 느껴지는 살기.

흑요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것도 못 건진 건 아니거든? 흑왕과 사흉에 대한 정보는 비싸게 팔리지 않겠어?”

“지껄여봐라.”

“흑왕의 직속 부하 락투샤가 사흉과 직접 붙었어.”

“락투샤라······ 소드마스터 락투샤, 그 오크 대전사 말이냐?”

“그래! 더 놀라운 게 뭔 줄 알아? 그 오크가 갑자기 거인화 한 거야. 내가 그간 얻어온 정보에 의하면, 흑왕은 직속 부하들에게 ‘히든 특성’을 부여할 수 있는 것 같거든?”

마스터가 턱을 쓸었다.

거인의 특성은 ‘거인의 항마력’을 말하는 것일 테다.

흑왕이 히든 특성을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니.

백왕을 자신 있게 노리는 이유가 이거 때문이었나?

‘현재까지 알아낸 히든 특성은 일곱 개. 흑왕이라면 더 알고 있을지도.’

히든 특성을 알아내는 것만 하더라도 흑왕과의 접선은 가치 있는 일이다.

히든 특성의 종류와 히든 특성과 연계된 재능을 알아낼 수만 있다면 천만금을 줘도 아깝지 않았다.

마스터가 몇 년간 공들여 알아낸 히든 특성은 고작 7종.

―허무

―손재주

―웨폰 마스터

―비스트 로드

―거인의 항마력

―황금의 은총

―대식가

이 외에도 다른 히든 특성이 더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허나, 아무리 노력해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흑왕이 나머지를 알고 있다면 무리해서라도 접선할 만한 가치가 있다.

“문제는 그러고도 사흉한테 락투샤가 패배했다는 거야. 락투샤의 레벨이 13인데도 불구하고.”

“사흉은 그 이상이란 말이냐?”

“그래. 14레벨 이상의 존재라니. 백왕이나 흑왕급의 괴물을 어떻게 막겠어? 여신교의 ‘성배 기사단’이 직접 나서는 게 아닌 이상이야.”

이건 꽤 쓸만한 정보였다.

사흉의 레벨이 14 이상이라는 건, 제법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장 수련자의 산과 연결된 도시들에 이 정보를 팔 수도 있고.

하지만 여전히 오천만 골드 어치의 정보는 아니다.

심상찮은 낌새를 느꼈는지 흑요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리고 팬텀은 수련자의 산에 이미 없었던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하지?”

“있었다면 이미 내가 알거나 죽었을 테니까?”

산의 초입부엔 흑요가 깔아둔 눈이 많았다. 중심부엔 괴물병단이 자리했으며, 상단에는 락투샤와 사흉이 있었다.

있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발견이 되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숙련도 레벨의 최대치는 한계가 있으니······.’

검성 그라시아가 24레벨로 1위였다.

자신 역시 22레벨로 3위였고.

그 이상을 산에서 올리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은 일이다.

차라리 적당히 올리고 다음 퀘스트를 대비하는 게 효율적이리라.

“무엇보다 수련자의 산이 가라앉았잖아. 숙련도 레벨을 더 높게 올리기는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하지 않겠어?”

이 역시 맞는 이야기다.

공을 들이는 시간과 숙련도 레벨은 비례하므로.

아무리 역대급의 재능을 지녔다한들 산이 가라앉은 이상 수련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럼 정말 전당에 욕심 없이 15레벨만 찍고 내려온 건가?’

메인 퀘스트 6까지 압도적인 1위를 달리던 란돌프다.

그 란돌프가 느닷없이 7에서 타협을 했다?

의아하긴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게 맞기는 하다.

란돌프가 정말 심연 미궁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수련자의 산에서 수련한 시간은 기껏해야 한 달 전후일 것이다.

그 시간에 24레벨을 넘게 찍는 건 불가능하다.

아무리 압도적인 재능과 좋은 클래스를 지녔대도 마찬가지.

‘그래. 그렇단 말이지······.’

묘하게 안심이 된다.

흑요가 확신하며 말하자 더욱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다.

그래.

천하의 팬텀이라도, 할 수 없는 게 있는 것이다.

아무리 기상천외한 방식의 버그성 플레이를 하더라도, 팬텀이 모든 걸 가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팬텀 역시 인간이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팬텀을 신으로 여기는 자들이 있지만, 팬텀은 결코 신이 아니었다.

‘팬텀도 인간이다.’

인간이라면, 경쟁할 수 있다.

인간이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그간의 피해와 압도적인 점수로 인해 잠시 눈이 멀었을뿐.

드디어!

······ 그 인간 같지도 않던 놈이 인간임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자신의 제국을 고작 인간이 무너트릴 수는 없으니까.

그것을 안 것만으로도 오천만 골드의 가치는 충분하다.

먹고 잠적해서 죽여버리려고 했지만, 넓은 아량으로 살려주기로 했다.

‘아! 살았다!’

마스터의 눈빛을 본 흑요가 내심 안심했다.

자신이 내뱉은 정보들이 제법 요긴했던 모양이다.

마스터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흑요도 함께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명예의 전당 순위가 변경되었습니다.》

“······.”

“······?”

《메인 퀘스트 7의 전당 순위가 3위 -> 4위로 변경되었습니다.》

“······.”

“······??”

《1위 – 란돌프(500)》

《2위 – 그라시아(420)》

《3위 – 민트초코맛있어요(410)》

《4위 – 마스터(400)》

“······.”

“······???”

흑요가 당황했다.

거친 생각, 불안한 눈빛.

‘아, 잠깐만.’

그걸 지켜보는, 무저갱의 지옥에서 나온 듯한 마스터.

············ 아무래도 좆된 것 같았다.

*

《내용을 정산합니다.》

《정해놓은 규격을 한참이나 초과한 레벨입니다.》

《검 숙련도 레벨 30, ‘천상의 경지’를 달성했습니다.》

《총점 500점!》

《‘황금률의 가장 큰 조각(300h)’을 획득합니다.》

《이권점수 100점을 획득합니다.》

《이권점수로 이권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당신을 지켜본 성좌 전원이 보상의 규격을 올리는데 강제 동원됩니다.》

《행운 주사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도합 101단계의 보상목록 등급이 올라갑니다.》

《아래 다섯 자루의 ‘검’ 중 한 자루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대참격》, 《용살검》, 《골통파괴자》, 《루-》, 《초월지검》

검의 숙련도로 달성한 레벨이어서일까.

보상 전부가 검이었다.

심지어, 다섯 자루 모두 눈이 돌아갈만한 수준의 검이었다.

‘······ 검 숙련도의 맥스 레벨을 올려주는 격의 것들이다.’

클래스와 별, 그리고 아주 희귀하게 ‘무기’에 의해 숙련도 레벨 맥스치가 올라가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유일급이 아닌 무기가 숙련도 레벨의 맥스치를 올려주는 경우는 더더욱 적었다.

그런데 지금 나타난 다섯 자루의 검은 모두 검의 숙련도 레벨 맥스치를 올려주는 옵션을 갖고 있었다.

‘모두 사용 용도가 거의 정해진 검들이다. 신중하게 고를 필요가 있다.’

또한, 특성화 된 검이었다.

그냥 써도 강력하긴 하지만 특정 조건에서 더욱 큰 위력을 발휘하는.

나는 가만히 턱을 쓸었다.

허나, 입가엔 절로 미소가 맺혔다.

‘더 연장해도 되겠군.’

이게 전부가 아니었으니까.

《히든 퀘스트(6)의 보상을 거절합니다.》

《더 높은 숙련도 레벨에 도전합니다!》

《업적 ‘숙련도 레벨의 신화를 쓰는 도전자’를 달성했습니다!》

《명예가 300 상승합니다.》

산의 주인이 내건 히든 퀘스트!

검 숙련도 레벨 30을 달성하여 무려 여섯 번이나 보상이 격상했지만, 맥스 레벨을 더 올릴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업적이 떴다는 건, 이 이상을 달성하면 오롯이 나만의 ‘신화’를 완성할 수 있다는 뜻.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로군.’

31레벨을 넘으면 뭘 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신화의 관에서 모든 시련을 넘어서며 규격외의 신비를 얻었던 것처럼, 나 자신이 이룩한 신화의 완성은 최소 유일급 보상을 뜻했으니!

제국에서 보낸 편지

심연 미궁을 클리어하며 생존보상을 받았을 때.

찬란한 빛의 옥좌로 말미암아 검성 라일리의 영혼을 소환한 뒤, 천 시간이 넘는 황금률을 사용하고 열일곱 성좌를 성불시켰을 그때!

바알 투구와 우로보로스의 낙인을 골랐던 그 당시보다도, 나는 확실하게 긴장하고 있었다.

‘《대참격》, 이름그대로 참격의 효과를 지닌 검이다.’

판게니아의 개념에서 타격과 참격의 차이는 ‘깊이감’에 있다.

타격은 치고, 때리는 다소 얕은 공격을 의미하지만 참격은 ‘깊은 상처’를 내며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공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참격》은 검을 이용한 타격에 ‘관통’ 효과를 5% 부여한다.

그리고 관통한 공격에 대하여 재생불가의 피해를 추가로 남긴다.

관통의 효과야 두말할 것 없이 챙길 수 있을 때 반드시 챙겨야만하는 옵션이었다.

‘《용살검》, 용종을 상대할 때 강력한 관통 효과를 지닌다.’

허나, 용살검은 용종을 대상으로 무려 10%의 관통 옵션을 갖고 있었다.

용종 한정으로 대참격의 두 배다.

용종은 하나같이 강력하기에 두고두고 요긴하게 사용할 건 자명했다.

앞으로도 필연적으로 만날 용종들이 몇 있었다. 예컨대 메인 퀘스트 10을 진행하다가 만나게 될 ‘광룡 아인하사르’라거나.

‘《골통파괴자》, 둔기형 대검이지. 검기에 추가 효과를 준다.’

이름이 골때리지만 거인족의 최고전사가 사용하는 무기다.

내 몸집보다 큰 대검인데, 둔기처럼 타격용으로 쓸 수도 있다.

검기를 다루는 자만이 가볍게 사용할 수 있기에, 검기의 피해량을 늘려주는 추가효과가 있었다.

‘《루-》, 조합형 성검. 조합만 되면 유용하겠지.’

루-는 그 이름처럼 완성되지 않은 성검이다.

또한 성검이기에 당연히 신성력과 연관이 있다.

성기사 관련 클래스가 사용하면 ‘신성효과’를 50%나 증대시켜주는 미친 성능을 지녔다.

다른 검과 함께 조합하면 추가효과를 내는데, 문제는 내가 성기사나 신성력과는 상관이 전혀 없는 클래스라는 것이다.

다만, 루-와 조합되는 검에 따라선 나도 사용할 수가 있다.

그러나 루-를 완성시키려면 이름 앞에 –가 붙은 검이 필요하다.

‘-라’나, ‘-아이에’처럼.

당장은 아니어도 골라놓으면 완성한 즉시 확실한 성능을 발휘할 건 자명했다.

‘마지막으로 《초월지검》, 성장형 검.’

성장형 검이다.

성장한 뒤 특정 구간에 도달하면 제알아서 강화를 이루어 ‘극, 진, 멸, 참’의 효과를 지니게 된다.

그리고 네 번의 강화를 모두 달성하면 다섯 번째 초월효과를 지니고 ‘완성’되는 검이었다.

‘······ 이중에 하나.’

모두 색깔이 확실한 검들이다.

이중 단 하나만 고를 수 있다.

앞으로 내가 향할 길을 살피고 그중 가장 효과적인 검을 골라야만 했다.

당장 향할 곳은 정해져 있었다.

‘제국.’

제국으로 가서 바알 갑옷을 구할 때 전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제국의 병사와 기사들을 상대해야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바알 갑옷을 구한다 하더라도, 사흉이나 그에 준하는 괴수와 전투가 벌어질 경우 또한 상정해둬야했다.

모든 변수에서 가장 확실하게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검.

‘성장형, 조합형 검은 제외시켜야겠지.’

당장 강해져야 한다.

이 대전제를 나는 지금까지 어긴 적이 없었다.

두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면 하나 정도는 여유롭게 미래를 대비하겠지만, 단 한 자루의 검만 고를 수 있는 이상 즉각적으로 강해질 무기가 필요했다.

루-와 초월지검, 이 두 자루는 전제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살짝 아쉽긴 하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두루두루 쓸만한 대참격, 용 자체에 엄청난 효과를 지니니는 용살검, 거인의 무기 골통파괴자.’

남은 후보군은 이 셋.

고르기 쉽지 않다.

한참의 고민 끝에 나는 결정을 내렸다.

《‘골통파괴자’를 선택했습니다!》

*

플레이어 톡은 다시 팬텀의 이야기로 게시판이 도배되는 중이었다.

-600점······?

-2등이랑 180점 차이 실화냐?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메인퀘스트 7을 진행한 모든 플레이어들은 순위가 바뀌는 순간을 목격했다.

메인퀘스트를 진행하는 플레이어들의 달성 점수를 모아둔 명예의 전당.

그곳에서 1위가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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