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뜬 메시지 봄?
-사흉 바알? 미친... 사흉이 갑자기 왜 나와?
플레이어 톡은 돌연이 떠오른 공지사항으로 인해 시끄러워졌다.
-어떤 미친놈이 사흉 바알 부활시킴?
-사흉이 뭐냐?
-고대 퀘스트 진행하면 무조건 나오는 이름임. 태초에 존재했던 네 괴수를 사흉이라 부름
-그 강성했던 구제국 절반 무너트린 게 저 사흉임
-구제국이 현제국보다 강함?
-당연히 비교가 안 되지;; 그땐 대륙 전체가 있었던 때고 지금은 대륙 절반 이상이 심연에 가라앉아 있는데 그때랑 비교가 되겠냐
-그래서 어디서 부활했다는 건데?
-모름
-수련자의 산이다 지금 연결된 도시들 죄다 난리 남
-수련자의 산에서 바알이 왜 부활을 해?
-몰라.... 근데 주변 도시 파괴면 워프 연결된 도시 말하는 건가?
수련자의 산과 연결된 도시는 다섯 곳.
용병도시 카르텔을 포함하여 모두 중립인 도시들이다.
사흉 바알의 부활 소식에, 수련자의 산과 연결된 모든 중립 도시가 비상이 걸렸다는 말이었다.
-그럼 플레이어들 도시랑은 거리가 멀지 않음?
-일단은 다행이네
-다행은. 사흉이 좆으로 보이냐.... 제국이나 여신교가 전면에 안 나서면 못 잡을걸
-근데 수련자의 산이면 지금 팬텀 있는 곳 아님? 생각해보니까 메인 퀘스트 7하러 들어갔을텐데
-에이 설마
-이미 깨고 내려왔겠지
-맞아ㅇㅇ 어차피 숙련도 레벨이라 대충 15만 찍고 내려왔을 듯
-아예 사흉 바알 깨운 것도 팬텀이라 하지 왜ㅋㅋㅋㅋ
-팬텀이 아무리 기상천외해도 설마 사흉을 깨우려고
-그래도 명색이 기사왕이라 불렸던 사람인데 그딴 짓을 하겠냐
-우리 팬텀신께선 명예로우시다!
-믿습니다, 팬텀신!
-팬텀신!
-팬텀신!!!!
*
콰릉!
바닥에 처박힌 락투샤가 다시 몸을 일으켜세웠다.
“쿨럭!”
동시에 피를 토해냈다.
검게 물든 피.
“······ 재밌군.”
락투샤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과연 사흉이라 불렸던 존재.
백왕이나 흑왕보다도 강력한 괴수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듯싶다.
‘확실히 강하긴 하다만.’
자신의 검기를 튕기며 폐부 깊숙하게 저주를 꽂아넣었다.
정신이 아찔해졌다.
한순간 반탄의 강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순살당했을 것이다.
‘한낱 미물 따위가 흑왕님보다 강할 수는 없다.’
락투샤의 전신에서 더욱 짙은 검기가 흘러나왔다.
결국 자신을 죽이지 못했다. 그렇다면 사흉은 자신에게 죽으리라.
락투샤가 검기를 더욱 집중시켰다.
빠득!
빠드득!
전신의 근육이 폭발할 듯 늘어나며 덩치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쩌어어억!
흑왕의 은혜로 말미암아, 락투샤는 오크의 한계를 벗어났다.
이내 거인의 신체를 갖게 된 락투샤는 천천히 몸을 풀었다.
‘역시. 이 은혜는 대단하군.’
거인의 신체와 항마력을 갖게 되자, 더 이상 사흉의 저주가 두렵지 않다.
한낱 미물의 저주는 자신에게 그 어떤 영향도 줄 수 없었다.
모두 종을 초월하는, 대격변의 힘을 주는 흑왕의 은혜 덕이다.
구오오오오오오-
그러자 흉악한 사흉 바알의 눈이 락투샤에게 향했다.
*
“······.”
신전을 나오자 수련자의 산 정상과 연결되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곤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기 때문이다.
곳곳에 쓰러진 수행자들과 황폐화하여 파괴된 산.
저 멀리선 사흉 바알로 보이는 거대괴수와 웬 거인 하나가 싸우고 있다.
“거인?”
잠깐. 거인이 왜 여기있지?
아니, 그리고 저걸 싸운다고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 샌드백이로군.”
맷집 좋은 샌드백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았다.
면적이 넓어서 그런가 사흉에게 신나게 얻어터지고 있었다.
잠시 어지러워서 미간을 문질렀다.
【Lv. 13】
거인의 레벨이 무려 13이었다.
이 산에 있는 전부가 달려들어도 어찌 못할 레벨 말이다.
얻어맞고 있어서 그렇지 크람델의 사주력보다 한끗 더 강한 진짜 괴물이었다.
그런 거인도 사흉에게 쩔쩔매고 있다.
【???】
사흉의 레벨은 물음표.
알 수 없다.
하지만.
‘저게 불완전한 부활 맞나.’
······ 저게 불완전하게 부활한 사흉이라는 게 더 소름돋을 지경이었다.
완전한 사흉은 그럼 얼마나 강한 걸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
당장은 방법이 없었다.
일단······ 벗어나자.
발을 옮겨 걷자 머지않아 뭔가 눈에 익은 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백왕의 것과 같은 가죽을 한 수인.
‘백왕의 자식인가?’
본 순간 든 생각이었다.
이 정도로 깨끗한 백호의 가죽을 지닌 수인은 백왕밖에 없었다.
게다가 주변에서 수행자들이 지키려다가 쓰러진 자국들이 즐비했다.
특별한 존재임은 틀림없었다.
천천히 들쳐맸다.
“기천석?”
그러자 멀지 않은 곳에 세워진 기천석에도 눈길이 간다.
분명히 신전의 것과 비슷한 재질의 기천석이다.
울퉁불퉁하고 검흔 같은 게 많은 걸 보아, 미묘하게 다른 것 같긴 하지만, 확인해볼 필요는 있었다.
천천히 검을 들어, 베어냈다.
그러자.
쿠르릉!
기천석으로 추정되는 돌이 깔끔하게 갈라지고 부숴졌다.
“흠. 아닌가보군.”
신전의 것과 같은 기천석이 아닌가보다.
작게 혀를 차며 조금 더 발을 움직이자, 창과 함께 널브러진 남자 한 명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놈이 창술사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창의 형태가 내가 어둠 속에서 마주한 윤곽과 같았기 때문이다.
창술사도 들쳐 맨 뒤, 나는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
“꺼헉!”
락투샤가 검은 피를 한움큼 뱉어냈다.
“빌어먹을.”
아무래도 사흉을 혼자 상대하는 건 무리인 듯싶었다.
은혜로 종을 초월하기까지 했지만, 상대는 사흉이었다.
‘나 혼자선 무리다.’
확신했다.
저 괴수를 죽이려면 적어도 자신과 같은 급의 무력을 지닌 자가 두 명은 더 필요하다.
흑왕에게 보고를 한 뒤 사흉의 처리에 대해선 따로 고민을 해봐야할 것 같았다.
‘일단 후퇴한다.’
락투샤가 산의 정상을 바라봤다.
맨손으로 후퇴할 순 없었다.
최소한 백왕의 딸이라도 데려가야 면이 서지 않겠는가.
빠르게 산에 오른 락투샤는 이내 인상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 어딜 간 거지?”
아리아가 없다.
그리고 창잡이도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에 정신을 차리고 도망친 걸까?
허나 산의 밑에는 자신의 부하들이 널려있다.
도망치는 것도 쉽지는 않을 터.
“········· 저건?”
그때, 락투샤의 두 눈에 동강난 비석이 들어왔다.
평범한 돌이었다면 그냥 무시했을 터이나.
저 비석은, 분명히 자신이 ‘검흔’을 새겨놓은 것이었다.
그게 왜 반으로 나뉘어 부서져있는 걸까?
‘사흉이 부순 건가?’
즉시 고개를 저었다.
사흉이 부쉈다면 흔적이 저렇게 깔끔할 리 없었다.
비석이 잘려나간 흔적을 살핀 락투샤가 표정을 굳혔다.
“·················· 일격에, 검으로, 베어냈다.”
이건 검으로 베인 흔적이다.
그것도 일격에.
자신조차 검흔을 새기는 게 전부였던 비석을, 단번에 잘라냈다.
대체 누가?
검선도 넘어선 자신의 검술마저, 뛰어넘은 자가 있다고?
“말도 안 되는······!”
말이 안 된다.
불가능하다.
락투샤의 두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사흉을 상대할 때보다도 훨씬 더 당황한 눈빛으로.
사흉의 제어 방법
오크 최고의 전사이며 소드마스터로 추앙받던 락투샤.
이미 성인이 되기 전부터 차기 오크로드로 명성이 드높았던 그다.
적어도 ‘검’을 쥔 자라면 그 누구에게도 패배하지 않았다.
불세출의 천재?
그런 수준이 아니다.
전무후무.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유일무이한 검사.
락투샤의 검술을 본 모두가 입을 모아 칭송했다.
락투샤 역시도 ‘최고의 검사’가 누구냐 묻는다면 자신 외엔 없다고 생각했다.
‘검신······.’
······ 없다고, 생각했다.
헌데 비석을 자른 검의 자국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검신.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검의 신이라 불리는 존재.
하지만 그런 자가 수련자의 산에 나타나서 비석만 자르고 사라졌다는 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혹, 백왕이 보낸 자일까?
‘백왕의 수하 중에 검을 깊이 있게 다루는 자는 없다.’
사주력도 마찬가지다.
대토룡도, 사왕도, 궁기도, 메두사도, 모두 무기를 다루는 자들은 아니었다.
그럼 누구일까.
백왕이 보낸 자가 아니라면.
백왕의 딸을 구하고, 비석을 단칼에 갈라놓은 자는 대체?
‘백왕의 딸, 아리아라면 알 것이다.’
이 궁금증을 해결해야만 한다.
락투샤의 자존심이 뭉개졌다.
평생을 갈고 닦은 검사로서의 자존심이.
검신의 정체를 밝혀야만 이 뭉개진 자존심을 되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구오오오오오!
저주를 담은 꼬리가 순간 락투샤를 감쌌다.
얌전히 벗어나게 두지는 않겠다는 듯.
세 개의 꼬리에서 흘러나오는 지독한 저주가 거인의 항마력을 뚫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빠드득!
“······ 이 빌어먹을 새끼가!”
락투샤가 흑왕의 은혜를 최대치로 사용했다.
*
아리아는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락투샤에게 제압된 뒤, 갑자기 나타난 사흉 바알로 인해 저주를 온몸에 품었다.
사흉이라니.
태초의 네 괴물이라 일컬어지는 거대괴수가 왜 갑자기 수련자의 산에서 나타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저항할 수도 없었다.
저 저주는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황폐화하는 힘.
아직 수련자의 길을 걷고 있는 아리아가 저항하기엔 너무나도 흉악한 힘이다.
‘나는 천재가······.’
그러나 더욱이 그녀를 절망에 빠트린 건 락투샤다.
소드마스터 락투샤는 아이 다루듯 그녀를 가지고 놀았다.
단순히 능력치의 압도적인 차이로 인한 굴욕이 아니다.
락투샤는 도리어 자신의 능력을 낮추고, 맞춰주며 아리아를 순수 검술로만 상대했다.
게다가 검선보다도 더 깊은 자국을 남겨 압도적인 실력의 차이를 보였다.
하늘 위의 하늘.
락투샤야말로 진정한 천재가 아닐까.
‘분명히··· 비석이, 잘렸어······.’
헌데, 그런 락투샤를 넘어선 검신을 보았다.
오로지 검 숙련도 레벨에만 반응하는 수련자의 비석.
그 비석이 단칼에 반으로 깔끔하게 잘려나간 것이다.
‘혼돈 수련자 영역에서 봤던 인간.’
창술사를 꺾고, 찬란한 검기를 흩뿌렸던 인간이다.
쫓아가려 했지만, 어느 순간 절벽의 아래로 사라져 쫓을 수 없었던.
그랬던 인간이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을 구하고 비석을 잘랐다.
비석을 잘랐다는 것은, 검선이나 락투샤보다도 훨씬 더 높은 상승의 경지에 있다는 뜻이었다.
-‘수련자의 비석’을 가르는 자가 곧 ‘검의 주인’이다.
수련자의 산에 내려오는 전승.
검선이 남겨놓은 수기에 적힌 내용이다.
아리아는 한동안 수련자의 산에서 주인 노릇을 했기에, 검선과 관련된 서적을 접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분명히 ‘비석을 가르는 자’에 대한 것도 적혀있었다.
-가장 강력한 ‘검’은 이 산에 묻혀있으며, ‘비석을 가르는 자’만이 그 ‘흉악한 검’을 다룰 수 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수련자의 산 어딘가에 엄청난 검이 묻혀있기라도 한 건지.
하지만, 검선은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가장 강력하며 흉악한 검.
그건 바로 저 괴수, 사흉 바알이 아닐는지.
오직 수련자의 비석을 잘라내는 자만이 사흉 바알을 다룰 수 있다고 검선은 말한 것이다.
물론 단순히 비석을 자른다고 사흉을 다룰 수 있지는 않을 터.
-‘검’을 막을 갑옷과 투구, 그리고 정수가 갖춰지면 진정한 ‘검의 주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검의 주인은 자신을 들쳐맨 남자를 말하는 게 분명했다.
아리아는 다시 기절하기 직전, 품에서 검선이 남긴 서책 한 권을 꺼내어 남자에게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