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97화 (97/317)

쩌어억!

쿵!

《‘저주받은 기천석(20)’을 파괴했습니다.》

《검 숙련도의 레벨이 27을 달성했습니다.》

《백성전의 모든 성좌가 여러 가지 의미에서 경악합니다.》

《백성전의 새로운 성좌 전부가 계약조건을 높인 사도 계약을 제안합니다.》

《‘히든 퀘스트의 보상(3)’을 거절합니다.》

《더 높은 숙련도 레벨에 도전합니다!》

《‘저주받은 기천석(21)’을 파괴하십시오.》

그렇게 기천석 20개를 파괴하자, 어느덧 검 숙련도 레벨이 27에 도달했다.

숙련도 레벨은 특정 구간에서 경험치가 말도 안 되게 늘어나기 때문에, 올리면 올릴수록 더뎌지는 게 맞다.

“27······!”

짧게 환호했다.

애초에 내 1차 목표가 23레벨이었던 걸 고려하면 27이라는 숫자는 이미 말도 안 되는 수준이고.

수련자의 산에서 올릴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그러나 아직도 저주받은 기천석은 많았다.

‘사도 계약은 뭔데 계속 하자는 거지?’

어느 순간부터 새롭게 떠오른 성좌들이 사도 계약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조건 자체가 고작해야 ‘황금률의 조각’ 조금과 ‘쓸만한 스킬’ 하나가 전부였기에 무시했는데, 조건을 높여가며 계약하길 바라고 있었다.

그래 봤자 크게 구미가 당기는 수준은 아니다.

‘황금률의 조각 100시간 정도에 신화급 스킬 하나. 대신 벌어들이는 조각 10%를 달라?’

일반적인 플레이어라면 눈이 휘둥그레질 법하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여태껏 내가 벌어들인 조각만 천 시간이 아득히 넘는다.

앞으로 벌어들일 기대수익을 합치면 그야말로 밑지는 수준.

밑지는 계약을 굳이 할 필요는 없을 터.

‘새로운 성좌들은 기존의 성좌들과 다른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아마도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도 권유하고 있겠지.’

일종의 투자방식을 채택했다.

만약 이 계약이 성행한다면 성좌에 따른 파벌이 대두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내키진 않는다.

기존의 성좌 중에서 모험의 성좌나 행운의 성좌가 권유하면 1분 정도는 예의상 고민해줄 순 있을 것 같지만.

‘내게는 새로운 보상 업그레이드 셔틀일 뿐.’

어쨌든, 저 관심 자체가 내게는 이롭다.

그간의 경험으로 대략적으로나마 성좌들의 보상 메카니즘을 이해했다.

아예 안 봤다면 모를까, 한 번 보기 시작한 이상, 일정 기준을 돌파하면 보상을 업그레이드시켜줘야만 하였다.

그리고 이미 백성전의 모든 성좌가 나를 유념이 여겨보고 있었다.

즉, 아무리 해주기 싫어도 나 하기에 따라서 그들 역시도 강제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였다.

“전부 부숴라, 까악! 하나도 남겨두지 마라, 까악!”

*

툭-.

정상에 오른 락투샤가 바닥에 기절한 창잡이를 던졌다.

그 락투샤의 주변으로 백이 넘는 수행자들이 긴장한 채 둘러싸고 있었다.

“창잡이가 제법이더군. 아무리 능력을 맞춰줬다고는 하나, 내 뺨에 생체기를 남길 줄이야.”

락투샤가 뺨에 난 작은 상처를 만졌다.

창잡이의 ‘난무’는 확실히 볼만했다.

만약 레벨이 조금만 더 높았다면 더 재밌었을 것이다.

그래서 살려주었다.

어쨌든 자신에게 ‘재미’를 준 녀석이니까.

“소드마스터 락투샤! 이 이상은 올라갈 수 없소!”

가장 나이가 많은 수행자가 나와서 무기를 겨눴다.

락투샤가 비웃었다.

“그래도 올라가겠다면? 날 막을 건가?”

“당연한 말을!”

“그럼 막아보거라.”

“108천령진을 펼쳐라!”

108천령진.

수련자의 산에서 수행자들이 익히는 가장 고절한 연합진이었다.

본래 수련자의 산의 주인이 되려면 108천령진을 30초이상 버티는 게 첫 과제다.

108천령진의 중심부에 서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압박감에 서있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초월자조차도 이 진의 안에서 그들을 모두 상대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락투샤는 중심부에 선 채 어깨만 으쓱해보였다.

“부디 그 창잡이보단 더 재밌게 해주기를 바라마.”

*

108명의 수행자들 전원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괴물······!”

수행자들은 락투샤를 보며 경악했다.

108천령진을 중심에서 혼자 받아낸 걸로도 모자라, 수행자들 전원을 꺾었다.

저 초월적인 검기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초월자도 두려워하는 108천령진이건만.

락투샤는 그렇다면 초월자도 넘어서는 초월자란 말인가?

“시시하군.”

천천히 걸어나간 락투샤가 이내 정상에 섰다.

정상에 놓인 거대한 벽.

그 벽에는 수많은 검흔들이 있었다.

“아리아, 이 벽에 검흔을 남긴 자가 두 번째 시련의 통과자가 된다지?”

“······.”

그 옆에서 아리아가 조용히 락투샤를 노려보고 있었다.

벽은 오직 숙련도 레벨에만 반응한다.

높은 무기 숙련도 레벨을 지닌 자만이 검흔을 남기는 게 가능하다.

락투샤가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제일 깊은 검흔은 이건가? 검선? 오래되어보이는군.”

벽의 중심부에 나있는 깊은 검흔.

처음 이 산의 주인이 된 자, ‘검선’이라 불리는 존재가 남긴 검흔이었다.

이 산에서 가장 강했다 전해지는 특별한 존재 말이다.

락투샤는 천천히 검흔을 매만졌다.

“아리아, 백왕의 딸아. 내가 재밌는 걸 알려줄까?”

“······.”

“백왕은 너를 구할 생각이 없다. 밑에서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아무도 안 오더군. 크람델의 사주력조차도 말이다.”

락투샤는 일부러 산에 늦게 올랐다.

준비도 준비지만, 그보단 아리아를 구하려는 백왕 산하의 사주력을 잡을 생각이었다.

헌데 아무리 기다려도 사주력은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쉬웠다.

그 유명한 사주력을 직접 절단낼 기회였는데 그러질 못해서.

“겁을 먹었겠지. 자신이 죽는 미래를 봤을 테니.”

락투샤가 작게 웃었다.

백왕은 자신의 위험을 감지하는데 도가 텄다.

미래를 읽는 수준으로.

그런 백왕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아리아를 납치하는 건 수많은 방법 중에 하나일뿐이다.

딸을 납치할 기미를 대놓고 보였음에도 사주력을 보내지 않았다는 건, 딸을 포기해서라도 자신의 안위를 살피겠다는 의도가 아니겠나.

“백왕이 너를 버린 시점에서, 너의 목숨은 사실 의미가 없다.”

죽여도 그만, 죽이지 않아도 그만.

락투샤는 곰곰이 고민하다가 대검을 들었다.

“그러니 내 검이 이 ‘검선’의 검흔보다 얕다면 살려주마.”

지이이이이이이이-!!

맹렬하게 대검에서 검기가 피어올랐다.

락투샤는 주저없이 검을 휘둘렀다.

쩌정!

한차례 크게 벽이 흔들렸고, 검선의 검흔 옆에 락투샤의 검흔이 새겨졌다.

그것을 본 락투샤가 웃어보였다.

“내가 조금 더 깊구나.”

검선의 검흔보다 락투샤의 검흔이 조금 더 깊다.

이 이상 깊은 검흔도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보다 강한 자가 이 산에 없다는 의미다.

그것을 본 아리아의 두 눈이 작게 흔들렸다.

검선의 검흔보다 깊다니!

소드마스터 락투샤의 실력이 진짜라는 것이다.

요행이나 다른 요소에 의해 강해진 게 아니라 순수하게 수련한 힘이 검선을 뛰어넘는다는 뜻이었다.

“백왕의 딸, 불세출의 천재라 불리는 기재여. 부디 나를 재밌게 해다오.”

*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다.

락투샤는 하늘 밖의 하늘이었다.

그의 검술은 진짜였고, 비슷한 체급으로 상대해줬음에도 역부족이었다.

한 마디로, 유린당했다.

장난감처럼 락투샤는 아리아를 갖고 놀았다.

백왕과 다른 길. 단순한 짐승으로서의 길이 아닌 검의 길을 걷고자 했고, 자신의 넘쳐나는 재능에 취한 것도 사실이었다.

“확실히 재능은 있으나, 부족하다. 내 성에는 차지 않는군.”

그러나 그것도 락투샤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락투샤가 대검을 들었다.

약속대로 죽이기 위함이다.

“음?”

쓰러진 아리아의 명줄을 끊으려던 순간.

락투샤는 고개를 갸웃했다.

쿠릉!

쿠르르릉!

산이 급격하게 흔들린 탓이다.

흔들림은 빠르게 커져갔다.

콰르르릉!

쾅! 쾅! 쾅!

이내 지진이 나며 산이 갈라지고 있다.

그리고 산의 갈라진 틈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거대하고, 압도적인 무언가가.

그것을 본 락투샤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 뭐냐, 저건.”

*

《‘저주받은 기천석(100)’을 파괴했습니다.》

《‘신전의 봉인’이 풀리기 시작합니다.》

《‘사흉’이 깨어납니다!》

“······?”

사흉

······ 뭐냐 이건.

저주받은 기천석 100개를 파괴하자 떠오른 메시지.

신전의 봉인이 풀리며 사흉이 깨어났다는 말이었다.

‘이 기천석들이 다 봉인석이었다고?’

나를 위한 안배가 아니라, 사흉을 가두기 위한 봉인석이라니.

그런데 사흉은 먼 옛날 전부 토벌당하지 않았던가?

‘이 신전은 봉인이 아니라, 부활을 위해 만들어진 장소다.’

신전에 놓인 수많은 바알의 석상들.

그것들은 ‘나쁜 것’을 ‘가두고자’ 만들어진 게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기리고자’ 세워진 것이었다.

사흉을 숭배하는 무리가 사흉의 부활을 위해 만든 신전이라는 뜻이다.

아니면 바알 본인이 세웠을 수도 있고.

뭐가 됐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임은 확실하다.

《봉인의 해제가 완전하지 않습니다.》

《봉인의 해제가 완전하지 않습니다.》

《봉인의 해제가 완전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문구들.

100개의 기천석을 부쉈지만, 아직 신전 내부에는 저주받은 기천석이 20개쯤 남아있었다.

‘남은 기천석을 전부 부수면 완전하게 부활하는 건가?’

정상적인 경우라면 여기서 멈추는 게 맞다.

사흉의 부활이라니.

그 전승이 절반만 맞아도 재난이 따로 없다.

하물며 부활한 사흉을 내가 따로 조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불완전한 상태로 부활시키는 게 그나마 더 큰 재해를 막을 방법이리라.

‘숙련도 레벨이 아쉬운데.’

문제는 내 숙련도 레벨이다.

남은 20개를 부수면, 레벨을 한 단계 더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기천석을 부순다고 완전하게 부활하리라는 확신도 없었다.

‘남은 기천석을 마저 부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기천석에는 바알이 담아둔 막대한 숙련도 경험치가 존재한다.

그것을 단순한 미끼로 사용하려고 담아뒀다는 건 어불성설, 말이 안 된다.

그러기엔 너무나도 막대했던 탓이다.

부활한 사흉 본인이 사용하려고 담아뒀을 가능성이 오히려 더 크다.

‘나를 제외하면, 기천석에 담긴 숙련도 경험치를 전부 활용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 리가 없지.’

기천석을 부순 자가 아무리 많은 숙련도 경험치를 먹어봤자 한계가 있다.

30의 맥스 레벨을 보유한 클래스가 이 세계에 몇이나 되겠나.

생각을 달리한다.

만약 여분의 경험치가 부활하는 사흉에게 전달되는 방식이라면?

미끼임과 동시에 부활의 재료라면?

‘남은 저주받은 기천석의 표면이 벗겨지고 있다. 경험치가 사흉에게 흘러 들어가고 있는 거다.’

내 생각을 뒷받침해주듯 남은 20여 개의 기천석에 변화가 생겼다.

표면이 벗겨지고 갈라지며 그 틈에서 새 나온 숙련도 경험치가 부활한 사흉을 향해 흐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쿠릉! 쿠르릉!

신전이 흔들린다.

신전 또한 무너지고 있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이제, 결정을 내릴 시간이었다.

부수거나, 부수지 않거나.

머리가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

구미호 흑요는 100여 명의 사람을 수련자의 산에 풀었다.

그중 일곱을 흑요가 직접 조종하고 있었다.

그녀가 가진 구미호의 아홉 꼬리는 아홉 명을 직접 조종할 수 있는 능력.

하지만 도저히 산에 올라갈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락투샤! 혼자서 올라갔다고?’

소드마스터 락투샤가 혼자서 산을 정복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를 따르던 괴물병단은 다른 자들이 산을 오르고 빠져나가는 것만 막고 있었다.

그래서 이도 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이러면 백왕의 딸과 팬텀을 찾을 수가 없잖아!’

락투샤가 괴물병단과 함께 산을 총공격하면, 정신이 팔린 그 틈에 납치하려고 했다.

팬텀으로 추정되는 자도 한 번 떠보고 말이다.

하지만 이래선 산을 오르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마스터한테 큰소리는 뻥뻥 쳐놨는데, 실패한다면 면목이 없다.

흑요가 잘근잘근 손톱을 깨물었다.

쿠릉!

쿠르르릉!

그때였다.

미친 듯이 산이 흔들리며 산 자체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산이 왜······!”

수련자의 산에 입산한 사람들이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단순한 지진이라 하기엔 너무 강력하다.

“저건······!”

“컥! 저, 저게 뭐야?!”

곧이어 산의 정상을 가리키며 사람들은 경악했다.

이에 흑요도 조종하는 인간들의 시선을 돌려 정상을 바라보았다.

“······ 저게········· 뭐야?”

그리고 흑요 역시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거대하기 짝이 없는, 흉악한 고대의 괴물.

그간 수많은 괴물을 접해온 흑요도 처음 보는 종이었다.

하물며 저토록 흉흉한 기운을 떨치는 괴물 역시 처음 보았다.

검은 염소의 얼굴과 짐승의 몸통, 세 개의 꼬리를 가진 거대한 괴수가 산을 열고 나타났으니!

《어딘가에서 사흉 ‘바알’이 부활하고 있습니다.》

《사흉 ‘바알’이 주변 공간을 침식하기 시작합니다.》

《사흉 ‘바알’을 저지하십시오. 저지하지 않을 시 주변의 모든 도시가 침략당하고 황폐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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