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써 벌써 두 개.
갑옷만 모으면 바알 세트가 완성된다.
심호흡을 깊게 하며 탈리스만의 옵션을 확인했다.
【바알 탈리스만(궁극신화)】
-먼 옛날, 세상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 ‘사흉(四凶)’ 중 하나인 ‘바알’의 정수가 담긴 탈리스만.
-바알 투구나 갑옷에 적용 시 해당 장비의 성능이 강화됩니다.
-저주 반사 : 25%
-대상에게 건 저주의 유지시간 증가 : 25%
-저주 관통 : 10%
-귀속
-적용 제한(1) : ‘신화를 완성한 자’ 이상의 칭호 보유자
-적용 제한(2) : 모든 능력치 90 이상
-세트 무구(2/3)
-바알 갑옷과 함께 착용 시 성능이 강화됩니다.
-바알 탈리스만을 적용 시 성능이 강화됩니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 알차다.
이보다 더 알찰 수가 없다.
투구의 성능을 강화시키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저주와 관련된 엄청난 기능들을 내포하고 있었다.
‘미쳤군.’
그야말로 미쳤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옵션이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저주 반사와, 상대에게 건 저주시간 증가, 저주 관통은 이보다 더 균형을 잡기가 힘든 수준이었다.
‘나한테 저주를 걸면 그 저주의 25%를 반사하고, 반사된 25%의 저주는 유지시간이 25% 늘어나며, 저주면역조차 뚫는 관통의 피해를 본다.’
저주 술사가 땅을 치고 개탄할 옵션이다.
‘관통이라니.’
특히 마지막 ‘관통’ 관련 옵션은 유일급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이름이다.
관통은 면역도 뚫으니까.
면역인데 어떻게 뚫리냐 싶긴 하지만, 판게니아에서 ‘절대 면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뚫거나 돌아가는 방법이 있는데 관통은 그중 가장 기본이자 최상단에서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이 관통은 심지어 히든 특성도 뚫는다.
그래서 구할 수만 있다면 무조건 구해야 하는 옵션이고,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아무튼.
‘적용하면 투구의 성능이 뭐가 달라질지도 궁금하군.’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다.
나는 즉시 탈리스만을 사용했다.
《‘바알 탈리스만’을 ‘바알 투구’에 적용시켰습니다.》
《‘바알 투구’의 성능이 향상됩니다.》
【바알 투구(궁극신화) ●】
-먼 옛날, 세상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 ‘사흉(四凶)’ 중 하나인 ‘바알’이 착용하던 투구
-‘바알 탈리스만’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한계 돌파’ : 저주계열 스킬의 최대레벨이 5 증가합니다.
-‘초월의 저주’ : 저주계열 스킬 중 하나를 초월 강화합니다.
-‘상속을 완료한 자’ : 마력+10
-‘이면의 고수’ : 모든 숙련도가 100% 빠르게 상승합니다.
-착용 시 영구적용
-귀속
-착용 제한(1) : ‘신화를 완성한 자’ 이상의 칭호 보유자
-착용 제한(2) : 모든 능력치 90 이상
-세트 무구(1/3)
-바알 갑옷과 함께 착용 시 성능이 강화됩니다.
-바알 탈리스만을 적용 시 성능이 강화됩니다.
“······ 미친.”
변한 투구의 옵션을 보자 절로 입이 열렸다.
단순히 두 배가 올라간 수준이 아니다.
몇몇은 아예 대놓고 비교 불가의 수준으로 바뀌었다.
‘최대레벨 5 상승.’
단순 강화는 최대레벨 1상승이었다.
상급 시체까마귀 소환술 11레벨을 찍을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런데 탈리스만을 바르자, 폭이 5배가 늘어났다.
이제 저주계열 스킬들을 초월하지 않아도 15레벨까지 올릴 수 있다는 말이다.
맥스 레벨을 올려주는 아이템의 귀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것만 해도 놀라운데, 이게 시작이다.
‘초월강화.’
궁극 강화였을 땐 시체 까마귀가 내 스킬을 따라서 사용했다.
헌데 초월 강화가 이루어지자, 정말로 스킬이 초월해버렸다.
‘고대 시체 까마귀 소환술로 스킬 자체가 초월했다.’
상급 시체 까마귀 소환술이 끝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조건 없이 마력 10. 변신하지 않아도 적용된다.’
저주 스킬을 사용할 때만 일시적으로 마력이 10 올랐던 옵션이, 상시 옵션으로 개변됐다.
훌륭하다.
미치도록 훌륭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좋은 건 마지막 부분.
‘숙련도 상승률 2배까지!’
바알 투구 2배, 손재주 2배, 제약 최대치 1.5배에 기본 숙련도 100%를 더하면 무려 700%!
총합 550%였던 숙련도 상승률이, 순식간에 700%를 달성한 순간이었다.
정말 뭐 하나 버릴 옵션이 없었다.
꿀꺽!
두 개를 모아도 이 정도인데, 세 개를 모아 완성하면 어떻게 변할지 상상도 안 간다.
바알 세트를 모두 모으면 유일급과도 비빌 수 있다는 소문이 사실인 듯싶었다.
어쩌면, 어지간한 유일급보다도 좋을 수도 있다.
게다가.
《‘저주받은 기천석(1)’을 파괴하여 신전의 내부가 드러납니다.》
《‘저주받은 기천석(2)’을 파괴하면 다음 관문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숙련도 작업은, 이제 시작이었다.
*
산의 입구에 수많은 괴물이 모여들었다.
일만가량의 대군.
각기 다른 형태의 괴물들이 질서정연하게 서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건 대검을 쥔 위대한 전사라 일컬어지는 오크 ‘락투샤’였다.
“이제 때가 무르익었다!”
종족특성상 무기를 다루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오크.
그 오크들 중 가장 뛰어난 전사 락투샤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무기의 숙련도 레벨이 가장 높은 자가 산의 주인이 된다지.’
여태껏 준비를 해온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산의 정복 때문이다.
수련자의 산, 그 정상에 닿기 위해서였다.
온전하게 산의 주도권을 쥐어야만 수행자들과 백왕의 딸을 무릎꿇릴 수 있으니까.
‘이 산을 정복할 수 있는 건 오직 나, 락투샤 뿐이다.’
걱정은 하지 않았다.
자신보다 무기 숙련도 레벨이 높은 자가 있을 리 없다.
소드마스터!
검을 완숙하여 깨우친 자, 그리하여 격을 깬 게 자신이었으므로.
‘깨달음을 내것으로 만들었다. 이제 주저할 이유가 없다.’
최근 깨달음을 얻어 이제는 더 이상 적수가 없다고 확신했다.
뿐만인가.
‘흑왕님의 은혜에 보답해야만 된다.’
더 강해질 수가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흑왕의 은혜, 그 압도적인 저주가 더해져 락투샤는 종을 초월하는 격을 지니게 되었다.
가뜩이나 적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크람델의 사주력을 상대해도 질 것 같지가 않았다.
백왕의 딸이 불세출의 천재로 이름이 높다지만 그래봤자 풋내기.
수련자의 산을 정복하고, 백왕의 딸을 무릎꿇릴 수 있는 건 자신뿐이다.
흑왕의 총애를 받은 자들 중에서도 특출난 자신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여기에 산의 수행자들도 흑왕의 세력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더욱 큰 총애를 받으리라.
락투샤가 대검을 하늘 높이 치켜올렸다.
“산을 올라라! 산을 정복하라! 명예로운 흑왕님을 위하여!”
지이이이이!
락투샤의 대검에서 불길한 검은색의 검기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
수련자의 산에 있는 수행자들이 모두 선계로 모여들었다.
“소드마스터 락투샤가 산을 침범했다는 말입니까?”
“락투샤는 흑왕의 직속 중 하나 아닌지?”
“흑왕의 직속이 수련자의 산엔 대체 왜?”
“그야, 아리아님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공격적인 침투에 수행자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종족을 불문하고 열려있는 중립의 땅.
여태껏 누군가가 악의를 갖고 공격을 해온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락투샤가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모두 락투샤가 이대로 이곳까지 닿게 넋놓고 가만히 보고만 있을 겁니까?”
“아직 사상자는 없지 않나요? 그럼 우리 수행자들이 막을 명분도 없습니다.”
락투샤는 자신있게 산을 오르는 중이다.
산을 묶어둔 채로.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구류하고선 산 전체를 정복해나가고 있었다.
문제는 락투샤의 태도다.
무차별적으로 살상을 벌이면, 수행자들이 나설 근거가 되지만 락투샤는 조용히 산만 오르고 있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정상에 도전하겠다는 의미 아닌가?”
“설마 산의 주인이 되려고 올라오는 중이라고요?”
“지금 주인은 아리아님인데······.”
가장 깊게 수련한 자가 시련 끝에 산의 주인이 된다.
수행자들은, 산의 주인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었다.
하여 락투샤가 아리아를 노리면 수행자들은 싸워야만 했다.
하지만, 산의 주인이 락투샤로 바뀐다면?
모든 수행자들의 시선이 아리아에게로 향했다.
“······.”
단순히 자신을 무력으로 납치하려는 게 아니다.
지금 락투샤의 의도는 산의 정상에서 시련을 깨고 주인의 자리를 빼앗아, 아리아를 완전하게 굴복시키겠다는 의미다.
여기서 피한다면, 도전을 무서워하는 겁쟁이가 되고 만다.
‘피할 수도 없겠지만.’
아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산의 주인이 되기 위한 시련은 세 가지.
그중 마지막 시련은 이전 주인과의 순수 대결이었다.
그렇다면, 락투샤의 도전을 받아줄 수밖에.
봉인해제
마침내 락투샤가 선계에 닿았다.
“시시하군.”
무혈입성.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막힘없이 올라왔다.
락투샤를 막아서는 수행자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패기로운 놈이 하나쯤은 있을 줄 알았거늘.”
쯧쯧.
락투샤가 싱겁다는 듯이 혀를 찼다.
수련자 중에서도 실력이 괜찮은 자들이 이 산에는 많다고 들었다.
그러나 자신을 막아서는 용기 있는 자도 없었다.
하기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자신의 전신에서 이글거리는 검은 검기를 보고서도 도망치지 않을 존재가 있을 리가.
굳이 겪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격의 차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며 진절머리가 쳐질 것이니.
“······ 오호라.”
헌데, 있었다.
도망치지 않는 인간 하나가.
창을 든 창잡이가 천천히 산을 오르고 있었다.
창을 쥔 자세와 보폭의 거리. 몸을 움직이는 균형을 보아 제법 실력이 있는 놈이다.
락투샤가 대검을 들고 한 차례 휘둘렀다.
꽈르릉!
우레가 치는 소리와 함께 날카롭게 쏘아진 검기가 창잡이를 덮쳤다.
*
고대 시체 까마귀.
스킬 초월로 변신한 녀석들은 상급 시체 까마귀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뒤뚱! 뒤뚱!
일단 크기부터가 다르다.
어린아이만 한 몸집과 두툼하게 올라온 살집.
날개를 펼치자 살집처럼 보이던 품속에서 백여 마리의 시체 까마귀가 추가로 나타났다.
까악! 까악!
까아아악!
“······ 걸어 다니는 둥지냐.”
족히 천 마리가 넘는 숫자.
신전을 가득 채울 만큼 그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물론, 단순히 숫자만 늘어난 것도 아니다.
까아아!
까아아!
훨씬 질서정연하다.
예전에 소환한 상급 시체 까마귀들은 질서 없이 날아다니는 느낌이었다면, 고대 시체 까마귀들은 마치 장군들처럼 자신이 품었던 시체 까마귀들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내 명령을 기다리듯 멀뚱히 시선을 주면서 말이다.
“효율적으로 저주받은 기천석을 부숴라, 까악!”
까아아아악!
명령을 내리자 고대 시체 까마귀들이 입을 벌렸다.
‘음?’
그러곤 나를 향해 저주의 파동을 쏘아냈다.
주인을 공격하다니.
순간 미친 건가 싶었지만.
《고대 시체 까마귀가 ‘저주의 파동’을 사용합니다.》
《‘저주 반사(25%)’가 적용됩니다.》
《‘저주 유지시간 증가(25%)’가 적용됩니다.》
《반사된 저주에 관통 효과(10%)가 부여됩니다.》
《고대 시체 까마귀가 ‘저주 증폭’ 스킬을 사용합니다.》
뭘 하려는지 곧장 이해가 됐다.
저주의 파동을 내게 쏘아내어, 바알 투구로 한 차례 증폭시킨 그 파동을 자신의 스킬로 다시 증폭시키고 있다.
한 마디로 무한 증폭이다.
그렇게 무한히 증폭된 저주의 파동을 다시 ‘저주받은 기천석’에 퍼붓자.
쩌저적!
때리지 않았음에도 기천석에 금이 갔다.
본래라면 수천만 번은 때려야 가능한 일.
까마귀들과 반나절은 함께 부숴야만 가능했던 게 고작 1분여 만에 끝났다.
‘······ 바알 투구의 관통 효과를 이용하고 있는 거로군.’
관통으로 인한 고정피해!
저주를 증폭시켜, 10%의 관통 효과를 극대화하여 이용한 것이다.
저주받은 기천석은 모든 피해를 면역에 가깝도록 방어해내지만, 관통에 의한 고정피해만큼은 막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똑똑한데?’
이 녀석들, 설마 내가 가진 바알 투구의 효과를 이용할 줄이야.
효율적으로 부수라는 말에 즉각 취한 행동치고는 더할 나위 없었다.
처음엔 다소 당황스럽긴 했지만 이 정도면 훌륭한 시체 까마귀 군단이었다.
‘증폭된 저주를 맨몸으로 받는 게 쉽지 않기는 하다만.’
그래도 이 속도면 하루 이틀 내로 신전의 저주받은 기천석을 전부 부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신전에만 기천석이 100개가 넘게 있다.’
이렇게나 많은 저주받은 기천석을 준비해둔 이유가 뭘까?
바알이 직접 만든 신전.
틀림없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신전에 무언가를 봉인해둔 느낌이군.’
부수는데 한세월이 걸릴 저주받은 기천석을 신전에만 백 개 넘게 깔아뒀다.
만약 봉인을 위해서라면, 대체 무엇을 봉인했기에 이 정도의 안배를 해놓은 건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