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하면서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쉐에에엑!
······ 창잡이가 나를 향해 쇄도해오고 있었다.
드디어 찾았다
촤륵!
검을 들어 투로를 흘려냈다.
그러자 창잡이는 더욱 가까이 붙으며 연달아 궤적을 그렸다.
쳐내면 붙고, 공격하면 붙들고 늘어진다.
창의 사정거리를 극한으로 이용하여 까다롭게 굴고 있다.
창의 대가.
창술을 평생 연마하여 달인의 경지에 이른 자가 분명했다.
‘이상하군.’
하지만, 이상하다.
이 정도로 정교한 기술을 소유했음에도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적의가 없다.
아무런 살기도, 악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계산하여 행동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야말로 무의식의 극치.
‘무의식적으로 이 정도의 창술을 구가하는 자라.’
흥미가 인다.
하물며 상대는 나와 마찬가지로 제약을 최대치로 설정한 존재.
그럼에도 이만한 움직임을 보인다.
나처럼 ‘돌연변이’ 히든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닐진대.
‘최소 1년 이상 이 상태로 지내왔다······.’
완전하게 적응을 했다는 의미다.
모든 감각을 잃은 채 오로지 창만 휘둘러왔다는 방증이었다.
최소 1년.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정상은 아니다. 허나.’
말은 쉽다. 하지만 모든 감각이 없는 상태에서 연 단위로 무기를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오로지 경지에 오르겠다는 일념만을 갖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 나 역시 정상은 아니지.’
내심 미소를 짓는다.
이 정도로 순수한 기술의 고수를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어울려주기로 했다.
마침 나도 어울려줄 상대가 필요했으니까.
*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쉬지 않고 검과 창을 나눈 뒤에야 나는 묘한 익숙함을 느꼈다.
확신할 순 없지만, 녀석이 사용하는 창술이 일반적인 창술과는 분명히 달랐던 탓이다.
흔히 창을 사용하는 창잡이의 공격은 간결하다.
하지만 지금 내 앞의 창잡이는 ‘연격’ 위주의 공격을 해오고 있었다.
‘최대 8연격. 연격이 이어질 때마다 더 부드럽고 강하게 찔러온다. 이거······.’
뭔가, 익숙하다.
이 연격의 느낌이.
연격을 위주로 수련하며 마침내 10연격에 이르면 ‘난무’를 사용할 수 있는 ‘그 클래스’와 미치도록 비슷하지 않은가.
‘설마······.’
아니다.
아닐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부정은 긍정이 되어갔다.
창을 쓰는 주제에 끈적하게 달라붙어서 연격을 내지르는 창잡이는 이 세상에 내가 알기로 하나뿐이었으니.
‘이거 설마 내가 숙작하다가 버리고 간 창술사 캐릭터인가······?’
맙소사.
맞는 것 같다.
2년 전, 수련자의 산에 박아둔 채 로그아웃하고 단 한 번도 로그인하지 않았던 그 비운의 캐릭터가.
슬슬 빌헬름을 완성하는데 집중하는 시기이기도 했거니와, 숙련도 작업이 도저히 끝날 기미가 안 보여서 내버려 둔 것이다.
‘미친.’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왜 여기에 아직도 남아서 살아있는 거지?
진즉에 누군가에게 살해당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도 그럴 것이.
‘2년 동안 8연격? 진짜로 재능이 없긴 없었구나.’
창술사 캐릭터는, 재능이 없었다.
창술사 클래스는 숙련도 맥스 레벨 20 제한으로 제법 쓸만했지만, 문제는 창술사 캐릭터가 가진 가장 중요한 스킬이 10연격에 이르면 사용할 수 있는 ‘난무’라는 점이었다.
9연격과 10연격에 다다르기 위해선 ‘외기’를 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숙련도 레벨 20을 찍어도 이 외기를 피워내는 건 따로 재능이 필요했다.
예컨대 감각부분의 재능과 자연의 기운을 다루는 재능 따위가 어느정도는 뒷받침이 되어줘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창술사 캐릭터를 만들 때 기본적인 재능을 찍어두긴 했으나, 당연히 외기를 피워내기엔 한참 부족했다.
‘···설정 제한 최대치는 괜히 해가지고.’
부족한 재능에 제약을 많이 건 게 독이 됐다.
그 결과, 키우는 재미가 없어졌다.
하루종일 검은 화면에서 창만 휘둘러야하는데 그게 무슨 재미인가.
숙련도가 올라가는 속도도 느리고, 그런 주제에 이것저것 챙겨야할 것은 많아서, 그냥 미련없이 접었던 기억이 난다.
그랬던 캐릭터가 홀로 이 지옥에서 살아남아 지금 내게 창을 휘두르고 있다.
‘숙련도 레벨 20은 찍은 거 같다만.’
2년간 그래도 숙련도 레벨은 맥스를 찍은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 외기를 펼치지 못하고 있다.
외기를 피워내기 위한 재능이 부족해서일까?
‘일반적으로 외기를 피우려면 재능과 스승이 있어야하지.’
재능을 지녔더라도 그 요령을 ‘스승’한테 배워야만 한다.
물론, 나처럼 압도적인 재능을 지녔다면 그 과정도 필요가 없었다.
아니면 외기훈련을 따로 계속하는 방법도 있다.
내기를 다스려 외기로 만드는, 명상법 혹은 내공수련법이라 불리는 게 게임상에 분명히 있기는 있었다.
허나 2년이면 어지간해선 외기를 피워내야 정상이었다.
그도 그럴 게 이곳은 ‘수련자의 산’이니까.
수련자의 산은 단순히 숙련도를 올리기 위한 장소가 아니다.
‘수련자의 산이 존재하는 진짜 이유는 외기훈련 때문이다. 20레벨을 찍고 산의 정상에서 명상만 해도 절로 외기를 피울 수 있건만.’
아무래도,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창술사가 외기를 아직도 피워내지 못하는 이유가.
‘······ 이것도 내 업보다.’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바로 앞에 두고서 외면할 수가 없었다.
어찌됐든 아이작과 이자벨라와 마찬가지로 내가 키웠던 캐릭터.
2년을 홀로 수련해왔을 창술사를 또 내버리고 갈 순 없지 않은가.
‘찾아봐야겠군.’
그러니 뭐가 문제인지 제대로 들여다봐야겠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해왔던 경험과 보는 시야 자체가 다르니까.
*
“아리아님. 오늘도 혼돈 영역으로 가십니까?”
수행자가 묻자, 아리아는 반응조차 하지 않은 채 산을 내려갔다.
본래 그녀가 있는 곳은 수련자의 산 최상단.
선계라 불리는 기운이 충만한 땅.
내려갈 필요가 없지만,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씩 혼돈 영역이 열릴 때마다 해당장소로 향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매번 그 창잡이를 만신창이로 만드시니······.’
혼돈 영역이 열리며 창잡이가 모습을 드러내면, 대련을 시작한다.
대련이라 하지만 일방적인 폭력이다.
창잡이를 반죽음 상태까지 몰아넣곤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아리아님은 재능없는 자를 싫어하시지.’
창잡이는 재능이 없다.
제약을 최대로 설정하면 뭐하나.
그렇게 쉬지 않고 노력하면 뭐하나.
몇 년을 외기 하나 못 피워내고 있는데.
그러니, 포기하고 수련자의 산을 나가라는 강압이었다.
그게 벌써 1년이 한참 넘도록 이어지고 있음에도, 창잡이는 아직도 산을 나가지 않았다.
‘창잡이가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는 이유도 그 덕분이긴 하지만.’
아리아가 아니었다면 창잡이는 진즉에 죽었을 터다.
아리아가 찍은 자라는 인식이 퍼져, 아무도 창잡이를 건드리지 못하는 탓이다.
이곳에서 그녀는 왕이었다.
그녀는 수련자의 산에 등장한 순간부터 가장 빠르게 선계에 닿은 자였다.
그 압도적인 재능과 가공할 능력은 수행자와 수련자 모두를 경악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오늘도 죽어나가겠군.’
수행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창잡이는 대체 왜 포기를 안 하는 걸까.
이쯤하면 자신의 재능이 부족함을 여실하게 느끼고 있을 텐데도.
게다가 수련자의 산에서 제한을 최대치로 설정한들, 고통과 고통스러운 감각만은 살아있다.
‘이쯤되면 미련함을 넘어서 멍청한 거지. 쯧쯧.’
혀를 차며 혼돈 영역까지 내려갔다.
이후 갑자기 아리아가 멈춰섰다.
“······?”
수행자도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창잡이가 있기는 있는데.
창잡이 말고도 한 명이 더 있다.
“아······ 최근에 제한 설정을 최대로 하고 입산한 인간이 있다는데, 그 인간인가봅니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어떻게 벌써 혼돈 영역에······?”
그 소식을 들은 게 불과 일주일 전이다.
이제 막 입산한 미련한 인간이 있다는 이야기.
모든 제약 설정을 최대치로 하고, 숙련도 레벨 역시 형편 없어서 머지않아 죽으리라 확신한 수련자 말이다.
“잠깐. 19레벨?”
수행자가 양쪽 눈을 비빈 후 두 눈을 크게 떴다.
··· 잘못 본 게 아니다.
분명히 숙련도 레벨이 형편없다고 들었건만, 19레벨?
이 단기간에 저게 가능하단 말인가?
“2, 20! 20레벨로 올랐습니다!”
그 순간 불현 듯 레벨이 오른 게 수행자의 눈에 목격됐다.
20레벨은 일종의 기준선이다.
천재라 불리는 자들도 쉽게 넘어서지 못하는 영역이거늘.
하지만, 더욱 놀라운 일은 그 직후에 일어났다.
“···검, 기······!”
검에서 외기가, 검기가 피어오른 것이다.
레벨 20을 찍자마자 검기를 피워내다니.
아무리 재능이 충만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경우는 오랜 수행자 생활을 하며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
무감정하던 아리아의 두 눈에 약간의 흥미가 차올랐다.
*
《검 숙련도가 20Lv로 상승했습니다.》
《검 숙련도가 20Lv을 달성해, ‘검기’가 해제되었습니다.》
《검기를 피워냈습니다. 피해량이 20% 상승합니다.》
《검기는 검의 숙련도 레벨만큼 피해량이 증가합니다.》
《천지개벽의 ‘지’의 사용조건을 만족했습니다.》
20레벨에 도달해 검기를 피워내자, 일전 지고룡과의 대결에서 펼쳤던 기술이 사용가능해졌다.
천지개벽의 지.
모든 공격에 공명하며 파훼하는 검술.
지고룡의 공격을 받았던 그 검술이다.
최소사용조건이 ‘검기 발현’이었으니 당연한 것이다.
‘뭐가 문제인지 알겠다.’
동시에 창술사가 외기를 피우지 못하는 원인도 파악이 됐다.
‘무의식. 저게 문제였군.’
너무 오랜 시간을 어둠 속에 있던 탓에, 무의식이 생성됐다.
무의식은 모든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유일한 수단이었으리라.
하지만 저 깊은 무의식이 새로운 배움 역시도 가로막고 있었다.
그렇다면, 깨워야한다.
의식을. 저 창술사를.
방법은 간단했다.
‘둘 중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
그저 계속 싸우는 것!
2년간 쌓인 모든 걸 발산시켜야만 저 무의식을 깰 수 있다.
또한, 나는 공명하여 창술사의 의식이 깨어나도록 유도했다.
그렇게 얼마나 오래 싸웠는지조차 희미해질 때쯤.
털썩!
창술사가 바닥에 몸을 눕히곤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창에 희미한 외기를 두른 채.
*
이런 흥미는 얼마만일까.
아니, 이 정도의 흥미는 처음인 것 같다.
오랜시간 아리아는 지루했다. 1년간의 정체기와 더불어, 세상의 모든 게 시시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따분하고 재능없는 자들에게 도리어 화가 날 지경이었다.
인간 창잡이도 그랬다.
외기 하나 못 피워내는 주제에, 몇 년을 산에 처박혀 허송세월을 보내는 자.
평생 제자리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거늘.
그래서 항상 포기하라고, 너는 재능이 없으니 이제 그만 하산하라고 압박을 해왔다.
‘외기······.’
그럴진대.
창잡이는 마지막에 이르러 외기를 피워냈다.
창에 아른거리는 저 기운은 분명히 그것이었으니.
하지만 그게 가능했던 건 모두 새로이 나타난 인간 덕분이었다.
창잡이와 마찬가지로 제약을 최대치로 설정한 인간 말이다.
‘천재.’
그는 자신과 같은 부류인 듯싶었다.
영역에 닿자마자 검기를 사용하고, 창잡이가 외기를 끌어낼 수 있게끔 유도할 정도의 넘치는 재능을 소유하고 있었다.
저런 건 처음봤다.
크람델에 있을 때도, 백왕이나 사주력에게서도 느끼지 못했던 감각.
수많은 강자를 만나봤지만 이만한 감동을 준 적은 없다.
두근! 두근!
그를 보자, 심장이 미칠 듯이 뛰어댔다.
“······ 드디어 찾았다.”
바알 탈리스만
창술사 발테는 깊은 심해 속에 가라앉았다.
2년이 넘도록 큰 발전이 없는 자신의 실력이 절망스러워서.
그런데도 창을 놓지는 않았다.
언젠가 자신의 노력이 빛을 발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돈 영역을 벗어날 때마다 발테는 매번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나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찬란한 재능.’
누군지는 모른다.
하지만 매번 자신을 압도적인 실력 차로 꺾는 자가 있었다.
그 존재는 그럴 때마다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너는 재능이 없다.
-노력만 하는 자는 이 수련자의 산에 필요 없다.
-그만 포기하고 내려가라.
자신이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상대는 순간마다 더 강해졌다.
처음에는 그 격차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이제는 까마득히 보이지도 않을 만큼 멀어진 상태였다.
필시 하늘이 택한 찬란한 재능의 소유자이리라.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그런 재능 말이다.
‘발테. 창을 휘둘러라. 백 번이 부족하면 천 번을, 천 번이 부족하면 만 번을!’
이를 악물고 더더욱 자신을 채찍질했다.
허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말은 틀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현격해지는 실력의 격차와 재능의 차이에 발테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발테, 약해지지 마라. 생각이 많아지면 잡아먹힌다.’
결국, 무의식 속에 자신을 가두고 오로지 창만 휘두르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까지.
‘누구지?’
어느덧 자신의 바로 앞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
자신과 같이 제약을 최대치로 설정한 자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