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92화 (92/317)

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이런 걸 봤을 때의 내 결정은 항상 한결같았다.

《히든 퀘스트에 도전합니다.》

《업적 ‘숙련도의 신이 되길 바라는 모험가’를 달성했습니다.》

《‘백성전’의 새로운 성좌들이 당신을 주시하기 시작합니다.》

불세출의 천재

“대장, 돌아가죠?”

활잡이 말리부가 호아킨에게 말했다.

30일을 여기서 더 체류하라니.

입구까지 다시 찾으려면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한 마디로 죽으라는 말과 같았다.

“아무리 돈이 중요해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정령사 숀도 한마디 거들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에도 몇 번이나 죽을뻔하지 않았던가.

“110만 골드를 아무렇지도 않게 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하지만 호아킨의 생각은 달랐다.

그 남자, 범상치 않다.

단순히 돈의 많음을 떠나서 느껴지는 태가 비범하기 짝이 없었다.

같이 다니던 그 여자도 거의 성녀에 필적할만한 신성력을 지니고 있었다.

‘괴물들의 습격에 전혀 놀란 기색이 없었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남자의 태도는 평온함 그 자체였다.

처음부터 그랬다.

보통 추악한 짐승 무리를 마주하면 아무리 간이 큰 사람도 기겁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전혀 요동이 없었다.

눈빛 한점 흔들리지 않았다.

적어도 범인(凡人)은 아니라는 말이다.

도리어 그 이상. 범상치 않음으로만 따지면 천재의 영역이었다.

“게다가 돈만 많은 집 자식도 아니야. 최소한 명문 기사 가문 자제다.”

“제국의 검술명가 다르칸 가문 같은 곳 말입니까?”

숀의 물음에 호아킨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사 숀과 호아킨은 다르칸 가문의 자재들을 직접 접해본 적이 있었다.

“다르칸······ 그래,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돈 백만 골드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어.”

300만 골드를 각자 나누면 100만 골드.

웬만한 도시에서 웬만큼 떵떵거리며 살 수준은 되지만, 100만 골드로 인생이 180도 달라지진 않는다.

하지만 그 돈을 초월한 가치가 있다면?

-판단은 알아서 하도록.

계속해서 귓가에 울리는 말.

계속해서 뇌리에 머무는 단어, 판단.

호아킨이 추측한 게 맞는다면.

“그 남자는 우리에게 기회를 준 거다. 더 높이 올라갈 기회를.”

이건, 지긋지긋한 카르텔을 벗어날 기회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단원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대장. 갖고 온 식량 비축도 얼마 없습니다. 차라리 30일 뒤에 다시 찾아오죠?”

“맞습니다. 현실적으로 여기서 30일을 더 버티는 건 불가능해요. 그리고 우리가 도시에 들렀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건 어차피 모를 거 아닙니까?”

차라리 돌아가서 제대로 정비한 뒤에 입구를 찾자.

어차피 그래도 모를 테니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나, 호아킨은 고개를 저었다.

“버티는 것 자체가 시험이라는 생각이 드는군. 돌아갈 사람은 돌아가도 돼.”

“대장, 그렇게 말하면 서운합니다.”

“에에. 그냥 해본 소리죠. 대장이 우릴 살려준 게 몇 번인데.”

그래도 명색이 같은 용병대로 묶인 동료다.

쓰레기 같았던 막심과 그의 용병단과는 분명히 다르다.

‘범상치 않아. 제국 다르칸에서 본 자제들보다 더욱.’

개인적인 생각이라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기색은 제국의 검술명가 다르칸의 자제들 그 이상이었다.

물론 착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호아킨은 전장을 구르고 구르던 용병이었다.

용병의 평균 수명은 10년 안팎.

대부분은 끝이 좋지 않다.

여태까지 살아남아 현역으로 뛰고 있다는 건 그만큼 감이 좋다는 의미다.

호아킨은 자신의 감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

심연 미궁이 클리어된 이후.

침식률이 15%를 넘어가자, 전 세계적으로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워프를 통해 괴물들이 튀어나오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괴물의 종도 다양해지고, 더 강력합니다.”

“워리어들은 어디 갔죠?”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다.

괴물을 죽일 수 있는 건 디맨션 워리어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그들의 등장이 적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연합장님. 강원도 워프에서 ‘흡혈종’이 등장했답니다. 시 차원에서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부산 해운대 앞바다에서 ‘죽음뿔 상어’가······.”

계속해서 들려오는 침략 소식.

연합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젠장. 가진 조각이 턱없이 부족한데. 지금 지원 나갈 수 있는 사람 있나?”

“한계입니다.”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부터 수급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국의 영웅연합도 골머리가 아프긴 매한가지였다.

심연 미궁에 입장하고자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을 상당 시간 소모한 탓이다.

연합장이 미간을 쥔 채 말했다.

“무슨 수로?”

“메인 퀘스트를 민다거나······.”

“초월자 레벨 던전을 클리어해도 얻을 수 있지 않습니까?”

정론이다.

하지만 메인 퀘스트는 모두가 이미 한계치 이상으로 밀어두었다.

더 도전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

던전의 클리어도 마찬가지다.

초월자 레벨. 11레벨 이상의 던전을 클리어하면,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을 다량으로 수급할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들어가는 노력으로 치면 그 양이 많지 않다.

일전 11레벨의 ‘천공고래 던전’을 클리어하며 얻은 조각은 총 40시간. 도전한 20명의 연합원이 각각 2시간 정도 수급한 셈이다.

도전을 준비하고 클리어하는데 걸린 시간이 한 달가량이었음을 생각하면 그다지 효율이 높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고 도전했다간 다량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고로, 이 방법 역시 현실적이진 못했다.

“단기간에 조각을 수급할 방법······ PK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군. 젠장.”

플레이어 킬.

조각을 다량 보유한 플레이어를 찾아, 사냥하는 것.

영웅연합의 신조와는 맞지 않는다.

그때 한 길드원이 의견을 냈다.

“팬텀은 알고 있지 않을까요?”

“팬텀이 어디 있는 줄 알고?”

“그야 수련자의 산에 있겠죠.”

“거기 입산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연합에 있나?”

“······ 당장은 없죠?”

7레벨에 도달하면 단 한 번 올라갈 수 있는 산.

어지간한 플레이어들은 이미 전부 한 번씩 올라갔다가 왔다.

팬텀이 수련자의 산에 있으리라는 건 모두가 알지만,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아직 6레벨인 친구 한 명 있지 않습니까. 억지로라도 키워서 입산시키는 건 어떻습니까?”

“7레벨로 말아올려서 수련자의 산에 박아버리자? 만에 하나 찾는다고 해도 팬텀이 얌전히 알려줄까?”

“팬텀이라면 제약 설정도 최대치로 했을텐데, 제약 설정없이 들어가면 죽지는 않겠죠.”

“제약 설정 최대치?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그딴 짓을 해?”

수련자의 산은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오르는만큼 공략이 세분화되어있다.

제약 설정 최대치는 그야말로 미친짓이다.

자살 희망자가 아니고서야, 제약 설정 최대치는 아무도 하지 않았다.

또한, 숙련도 상승률 몇십 프로를 올려봤자 제약률이 높으면 오히려 마이너스다.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숙련도 상승률이 아무리 높아봤자 소용이 없는 것이다.

팬텀도 그정도 사실은 알고 있을 터.

무엇보다, 억지로 접선하려 들다간 도리어 화만 불러일으킬 것이었다.

“그거 말고 정말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

연합장의 물음에 다른 연합원이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백성전에 등장했다는 새로운 성좌들 말입니다.”

“갑자기 물갈이됐다는 성좌들?”

“예. 그들 중 하나가 실은 저한테 ‘사도 계약’을 권유하던데요. 조각도 어느 정도 챙겨준다고.”

“뭐? 계약 조건이 뭔데?”

“조각 10시간 분과 제 클래스 관련 스킬 하나를 쥐어주는 대신 앞으로 벌어들이는 조각의 30%를 바치라고요.”

“······ 30%면 노예 계약 아닌가?”

“근데 스킬이 제법 쓸만합니다.”

백성전의 성좌들이 사도계약을 요구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새로 물갈이된 성좌들은 이전의 성좌들과는 성향 자체가 다른 듯했다.

30%는 조금 비율이 높기는 하지만 제코가 석자다.

당장 필요한 조각과 클래스 관련 스킬 추가라면 생각하기에 따라선 나쁘지도 않았다.

“아. ‘온전한 황금률’을 바치면 30% 안 내도 된다고 했습니다.”

“온전한 황금률?”

금시초문이었다.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이 아니라, 온전한 황금률이라니.

“저도 그게 뭔지는 모릅니다. 아무튼 사도계약을 하면 급한불은 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그 순간이었다.

연합장의 눈앞에 불현 듯 메시지 하나가 떠오른 건.

《‘해일의 성좌’가 당신을 높게 평가합니다.》

《‘해일의 성좌’가 당신에게 ‘사도계약’을 권유합니다.》

《계약을 맺을 시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 20시간과 ‘파도의 창’스킬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앞으로 벌어들이는 모든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 28%를 성좌에게 바쳐야합니다.》

《‘온전한 황금률’을 바치면 제물의 제약이 해제됩니다.》

*

······ 눈앞이 흐리멍텅하다.

온 몸에 납덩이를 얹은 듯 전신이 천근만근이었다.

모든 제약 최대치 설정.

그건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게끔 만드는 설정이었으므로.

시각, 후각, 촉각을 비롯한 모든 감각이 99% 이상 마비되었다.

있으나 마나한 수준.

지금은 그나마 윤곽이라도 보이고, 미묘한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조차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제약 설정 최대치? 오랜만에 자살희망자가 들어왔군.”

주변에서 말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수련자의 산에서 수행하는 수행자일 것이다.

이곳에 터를 잡고, 수련자들을 도와주는 일종의 도우미 NPC였다.

수행자는 산에 오르는 수련자들의 제약 설정과 관련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으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제약설정 최대치.

모든 능력치가 –99% 감소하고, 오감이 사라진다.

거의 모든 능력치가 1에 육박하니 당연히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다.

수행자가 말했다.

“이봐. 좋은 말 할 때 나가라. 그 상태로 산을 올랐다간 죽는다.”

걱정되어 하는 소리겠지만, 히든 퀘스트를 승낙한 순간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다.

나는 천근과도 같은 몸을 움직이며 무기고에서 검 한 자루를 빼어들었다.

“하······ 마음대로 해라. 죽어도 난 모른다.”

그를 본 수행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상태면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 텐데. 어디 한 번 휘둘러나 봐라. ‘수련자 인형’을 치다보면 생각이 바뀔 지도 모르지.”

“세아.”

“예~”

세아가 나를 축복했다.

《성녀의 축복으로 제약이 5% 감소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1에서 5가 됐다.

그래봤자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만하면 적당히 움직일 만은 하였다.

검을 들고 느릿하게 휘두르며 ‘수련자 인형’의 앞으로 다가갔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그냥 목각인형이다.

수련자의 산에 입산하는 자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

제약은 건 사람들은 이 목각인형을 치며 몸상태를 점검하곤 한다.

“······ 축복으로 제약을 어느정도 상쇄하다니. 믿는 구석은 있었나보군.”

수행자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스스로 건 제약을 조금이나마 만회할 정도의 축복이라. 성녀급이나 되지 않으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저 여자가 성녀라는 말인가?

하지만 성녀가 수련자의 산을 올랐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래봤자······.’

수행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봤자 저만한 상쇄로는 티도 나지 않는다.

산을 오르면, 죽을 것이다.

이곳은 만만한 장소가 아니니까.

‘확실히 상상이상이군.’

몸이 무거운만큼 검도 무겁다.

100kg짜리 철근을 쥔 느낌.

그래도 작정한 바다.

나는 천천히 검을 휘둘렀다.

툭!

《검 숙련도가 7Lv로 상승했습니다.》

툭툭!

《검 숙련도가 8Lv로 상승했습니다.》

몇 번 휘두르지도 않았는데 8레벨이 됐다.

역시 숙련도 상승률 450%.

기본 숙련도 상승률과 합치면 550%에 육박하니, 레벨이 오르는 속도자체가 넘을 수 없는 벽이다.

뿐만인가.

‘확실히 검성 라일리의 경험이 크긴 크군.’

나는 이미 검성 라일리의 영혼을 소환해 26Lv에 이르는 검 숙련도를 보유해봤다.

별로 계승한 빌헬름의 기억과는 질적으로 다른 경험이 몸에 익어있다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숙련도 상승률을 감안해도 레벨이 오르는 속도가 더 빠른 느낌이었다.

후웁. 후우웁.

문제는 그만큼 힘들다는 점이었다.

피로도가 장난이 아니다. 모든 근육과 세포가 비명을 내질렀다.

나는 오른손 손을 들었다.

“치료해드릴게요~”

쏴아아!

전신에 빛이 어리며 피로도가 날아갔다.

역시 힐셔틀.

좋아. 이 상태면 할만하다.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 이게, 무슨············.”

그 모습을 본 수행자의 동공이 흔들렸다.

오랜시간 수많은 수련자를 봐왔지만, 이런 수련자들은 처음이었다.

성녀 수준의 힐러와 모든 제약을 최대치로 설정한 수련자.

게다가 그 이상으로 빠르게 숙련도 레벨이 상승하는 게 느껴졌다.

검을 쥐고 휘두르는 게 급속도로 자연스러워지고 있었으니까.

‘저렇게 무리하다간 정신이 무너질텐데.’

하지만 힐을 사용해 몸을 치유한다고 해도 인간의 정신이란 한계가 있다. 단시간에 많은 힐을 받으면 결국 정신이 무너지고 만다.

실제 힐러를 데리고 수련자의 입산한 사람들도 있기는 있었다.

제약을 높인 채 산을 오르던 자들.

하지만 그중 대부분이 결국 포기했다.

몸이 회복된다고 정신이 회복되진 않았던 탓이다.

도리어 더 빠르게 마모되어 한계를 맞이한다.

툭! 툭!

쏴아아!

툭툭툭!

쏴아아아!

투툭! 투투툭!

쏴아아아아아!

“············.”

그런데 저 수련자는, 뭔가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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