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91화 (91/317)

안내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수련자의 산은 ‘금지(禁地)’로 지정돼서요. 갈 수 있는 용병이 없습니다.”

“금지? 왜지?”

“최근들어 그 주변으로 고레벨의 괴물이 급증한데다, ‘흑왕’의 주력 중 하나로 추정되는 괴물이 발견되어서요.”

흑왕 산하의 주력이 발견되었다?

수련자의 산이 대륙지도로 치자면 남쪽에 위치하긴 했지만, 그래도 흑왕의 영역을 벗어나있다.

문득 백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흑왕이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고 했지.’

그런데 하필 수련자의 산이라.

수련자의 산은 산 외엔 정말 영양가가 없는 곳이다.

그곳을 정복해봤자 시간만 낭비일텐데.

아니, 애초에 정복이 불가능한 곳이다.

탑과 같이 특수지역이니까.

그것을 모를 리가 없는 흑왕이 산하의 주력을 보냈다는 건 무언가 큰건이 있다는 소리.

‘다른 이유가 있나보군.’

그게 뭔지는 몰라도, 흑왕과 관련되어 있다면 금지로 지정되는 것 역시 당연한 수순이었다.

목숨이 열 개라도 되지 않는 이상 수련자의 산으로 향할 용병은 없을 것이다.

“손님. 죄송하지만 다른 의뢰를 하실 건······?”

“가장 최근들어 수련자의 산으로 향한 길잡이 용병이 누구지?”

“나다.”

옆에서 거무튀튀한 수염을 지닌 남자가 일어났다.

홍조진 얼굴.

수염에 묻은 맥주.

전형적으로 믿음이 안 가는 행색이지만 산의 입구는 그 위치가 매번 바뀐다. 최소 한 달 주기로.

“15일 전에 갔다가 뒈질 뻔했지. 그 뒤로는 다신 안 간다.”

15일 전이면 아직 입구의 위치가 바뀌진 않았을 것이다.

다른 용병들도 말이 없는 걸 보면 거짓은 아닌 듯했다.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거긴 안 갈 거다. 그러기엔 너무 위험하니까.”

“그래?”

짤랑!

가죽주머니를 바닥에 던지자 골드가 쏟아져흘렀다.

“저, 저게 얼마야?”

“최소 만 골드는 되어보이는데?”

“어디 부잣집 도련님이신가?”

용병들의 눈빛이 단박에 달라졌다.

돈에 살고 돈에 죽는 게 용병 아니던가.

길잡이 노릇 한 번에 만 골드라니!

평소보다 몇 배는 높은 단가.

“분명히 말했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안 간다고. 금지로 지정된 건 다 이유가 있어서다. 성공해도 금지로 향한 벌점이 부여되니, 맡으려느 자가 있을리······.”

철그럭!

10만 골드의 가치를 지닌 골드바가 가죽주머니 위에 포개어졌다.

“······!”

“미친. 십만 골드?”

“누구야 저놈?”

용병들의 눈에 탐욕이 깃들었다.

10만 골드면 최소 백여번은 의뢰를 맡아야 만질 수 있는 금액.

그것도 어느 정도 급이 되는 용병들이나 벌 수 있는 재화였으므로.

“시, 십만 골드로 내 생명을 팔 수는 없다.”

“착각하지 마라. 이건 착수금이다.”

“······?”

“성공보수는 이 열배를 주마. 물론, 길드 수수료도 내가 부담해주지.”

백만 골드!

길드 수수료까지 부담해준다면 온전하게 백만 골드를 전부 주겠다는 의미다.

웬만한 도시에 집 하나를 구할 수 있는 금액.

하지만 수련자의 산 주변의 위험도는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아무리 능숙한 길잡이라도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는다.

그 위험한 길에 오르라고?

하물며 금지로 지정된 장소를?

실패하면 죽고, 성공하더라도 길드 내부에서 평판이 떨어진다.

용병도시 카르텔의 용병들은 철저하게 규칙을 지킨다.

하나와 같이 움직인다.

그게 이곳 용병들의 자존심이었다.

“······ 환영합니다, 의뢰인님. 왕처럼 모시겠습니다.”

그러나 자존심을 지켜가며 거절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돈이었다.

*

잠시 기다리라며 사라진 그는 잠시후 말끔해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두 명의 용병들과 함께.

“의뢰인님. 아주 잘 찾아오셨습니다. 푸르펜 용병단의 대장 호아킨이라고 합니다.”

“저는 활잡이 말리부입니다.”

“정령사 숀입니다.”

세 명으로 이루어진 용병단이었다.

그나저나 푸르펜이라.

“푸르펜이라면 메아리 계곡의 와이번을 말하는 건가?”

“······ 오, 푸르펜을 아십니까?”

호아킨이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모를 전설적인 와이번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

“보통은 모르는데, 의뢰인께선 박학하시군요.”

의뢰를 맡기자 부담스러울 정도로 태도가 바뀌었다.

하기야 이런 태도 탓에 카르텔의 용병들이 유명한 것도 있었지만.

“수련의 산까지 3일 안에 도착할 수 있나?”

“괴물만 안 마주치면 이틀 안에도 가능합니다.”

“마주치면?”

“산의 입구가 바뀌는 주기가 대략 5일 남았습니다. 5일이 넘어가면, 다시 길을 찾아야하죠.”

한 마디로 기약이 없다는 말이다.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면서 진행하는 것 외엔.

호아킨이 가슴을 두드렸다.

“그러나 걱정마십시오. 저희에겐 정령사 숀이 있으니까요. 정령이 안전한 길을 알려줄 겁니다.”

정령사는 희귀하다.

용병단에 정령사가 있는 일도 당연히 드물었다.

이제 의뢰인의 혼을 쏙 빼놓을 차례.

“예. 맞습니다. 저만 믿으십시오. 모습을 보여라, 룬카!”

정령사 숀이 정령을 소환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정령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적이 없었기에 호아킨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래, 숀?”

“얘, 얘가 왜 이러지??”

“왜?”

“룬카가 뭔가를 두려워하고 있어.”

정령사가 정령을 소환 못한다니.

그럼 그냥 일반인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호아킨이 한손으로 콧잔등을 훑으며 머쓱하게 웃었다.

“하하. 정령이 수줍음을 타나 봅니다. 그래도 정령사인 건 분명하니 마음 놓으십시오, 의뢰인님.”

어깨를 으쓱했다.

걱정은 하지 않았다.

정령사를 제외해도 확실히 푸르펜 용병단의 수준은 높았다.

【Lv.8】

호아킨의 레벨은 8.

나머지 둘의 레벨도 7이다.

이만하면 어지간한 중상급 용병단 수준.

충분하다.

길잡이 노릇을 하는데 이보다 더 강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럼, 한 시간 뒤에 출발하겠습니다. 시간이 생명이니, 최대한 짐은 조촐하게 준비해주시길.”

*

워프를 넘어 수련자의 산이 있는 영역에 발을 들였다.

“일단 워프 주변이 안전하면 반은 성공한 겁니다.”

호아킨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워프 주변으로 위협적인 괴물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주변이 안전함을 확신한 이후에야 호아킨은 긴장을 풀었다.

“흔적이 없는 걸 보면 이곳에는 괴물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행이군.”

“길잡이 경력만 10년이 넘었습니다. 저만 믿으십시오.”

“믿고 있다.”

“하하. 좋습니다. 그럼 긴장도 풀겸, 궁금한 건 없으십니까? 특별히 제 빤쓰 색깔까진 답해드리겠습니다.”

그건 별로 안 궁금했다.

“······ 카르텔의 용병들이 많이 놀고 있던데. 의뢰가 없나?”

순간 호아킨의 표정이 굳었다.

다른 용병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내 미간을 좁힌 호아킨이 힘겨이 입을 열었다.

“아··· 예. 요즘 의뢰가 뚝 끊겼습니다. 막심 그 개새끼 덕분에요.”

“8영웅 막심 말이냐?”

“다른 막심이 또 누가 있겠습니까? 이번에 막심이 죽으면서 그의 만행이 전부 까발려진 뒤로는 카르텔에 의뢰하려는 사람이 절반 이상으로 줄었습니다.”

“만행이라니?”

“용병단 내 의뢰금 갈취, 의뢰인의 납치, 강도, 살인 등등입니다. 아주 쓰레기 자식이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대원정에서도 가장 먼저 도망쳤다더군요.”

막심은 카르텔 도시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용병이었다.

용병단의 규모도 가장 컸다.

그런 주제에 온갖 불법적인 일을 서슴치 않아 용병들의 평판이 떨어졌다는 말이다.

“그딴 놈은 카르텔의 용병이 아닙니다.”

죽어서도 평판이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동거동락한 동료이자 용병들에게도 욕을 먹을 정도면 말은 다했다.

물론, 동정심은 전혀 들지 않았다.

욕을 먹어도 싼 놈이었으니까.

*

결국 전투는 피할 수 없었다.

아귀의 얼굴을 한 네 발 달린 짐승들, ‘추악한 짐승’이라 불리는 괴물.

“젠장. 하필이면······!”

“룬카!”

“너무 많아!”

수십마리씩 무리를 지어 다니는 이 추악한 짐승은 발견한 먹잇감을 끝까지 놓아주지 않기로도 유명했다.

“강철의 벽이여!”

호아킨이 방패를 내리치자 벽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좁은 벽의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추악한 짐승들을 전부 막을 수는 없었다.

“끄으윽! 말리부! 빨리 처리해!”

다만, 모든 공격이 호아킨에게 향했다.

전형적인 어그로 방패전사의 느낌.

지능이 낮은 괴물들은 죽을 때까지 호아킨만 공격하게 되어있다.

“많이 아프신가요~?”

“지금 뭐라는······ 커헉!”

“치료해 드릴게요~”

세아가 손을 뻗자 호아킨의 전신에서 빛이 흘렀다.

순식간에 뜯겨진 살점이 붙고, 재생되며 말끔하게 나았다.

최상급 물약이나, 설령 엘릭서라 할지라도 불가능한 기적.

“······!!”

호아킨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이 정도의 신성력과 회복능력이라니!

대체 저 얼굴을 가린 여자가 누구기에?

세아가 작게 웃었다.

“그럼 계속 힘내주세요~”

*

계속되는 전투는 같은 양상이 이어졌다.

호아킨이 벽을 세우고 어그로를 끌면 세아가 치료한 뒤 다른 용병들이 처리하는 식으로.

호아킨의 정신은 너덜너덜해졌지만, 그로 인해 도착은 예상보다 더 빨랐다.

“여, 여기가 입구입니다. 허억, 허억.”

호아킨이 힘겹게 말했다.

분명히 몸은 괜찮은데 뭔가 지치고 힘들다.

전신이 걸레짝이 된 것만 같았다.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넘겼음에도 저 여자는 자신을 끝끝내 회복시켰다.

분명히 살려주기 위해 치료해준 것일 텐데, 이상하게도 순순한 악마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다치는 걸 보며 행복해하는 것만 같은 그런 웃음소리.

여자의 얼굴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호아킨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무서워. 저 여자 너무 무서워!’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

진저리치게 무서운 고문과도 같았다.

“성공보수다.”

“아······!”

깔끔하게 백만골드.

골드바 열 개가 들어있는 가죽주머니가 손 위에 올라가자, 호아킨이 언제 그랬냐는 듯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살아 돌아오시거든, 저희 푸르펜 용병단을 꼭 찾아주십시오. 언제나 의뢰자님을 왕처럼 모시겠습니다.”

“우리가 하산할 때까지 기다리면 그 두배를 더 주지.”

“예?”

“30일 정도 체류할 것이다. 판단은 알아서 하도록.”

“예?”

호아킨은 꽤 쓸모있는 용병이었다.

깔끔하게 일을 수행하는 능력이 발군이다.

돌아가는 길도 최대한 안전하고 신속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어그로 방패전사는 굉장히 귀하다.

‘잘만 키우면 훌륭한 방패전사가 되겠군.’

호아킨. 카르텔에서 괜찮은 인재를 만났다.

“그, 그게 말입니다······.”

“우리가 하산할 때 입구에 있으면 승낙한 것으로 생각하겠다.”

“입구의 위치가 그때쯤이면 바뀌어 있을 텐데요.”

“그건 내가 알 바 아니다.”

“······.”

호아킨의 두 눈에 당혹감이 새겨졌다.

이건 일종의 테스트였다.

이 숲에서 30일간 생존하고, 나를 마중한다면, 키워줄만 하다.

하지만 강요하진 않는다.

선택은 온전히 호아킨의 몫.

“가자.”

“예~”

선택지를 남겨둔 채, 나는 수련자의 산 입구로 생성된 워프에 발을 옮겼다.

그 순간.

《‘수련자의 산’에 입장합니다.》

《입장조건을 만족합니다.》

《수련자의 산에 오르는 자는 자체적인 제약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제약에 따라 숙련도의 상승률 등에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Tip : 무리한 제약은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

《모든 제약을 최대치로 설정했습니다.》

《업적 ‘마조히스트’를 달성했습니다.》

《숙련도 상승률이 50% 추가보정됩니다.》

《‘바알 투구’와 히든 특성 ‘손재주’에 의해 450%의 숙련도 상승률이 보정되었습니다.》

《업적 ‘숙련도의 왕’을 달성했습니다.》

《‘모든 제약 최대치’, ‘숙련도 400% 이상’, ‘맥스 레벨 25이상의 스킬이나 무기 숙련도 보유’를 달성해 숨겨진 최고등급 히든피스를 발견했습니다.》

《‘수련자의 산의 주인’이 남겨둔 ‘히든 퀘스트(Hidden Quest)’가 도달합니다.》

《히든 퀘스트 : ‘숙련도 25레벨 달성’》

《도전하시겠습니까?》

《도전할 경우 숙련도 25레벨을 찍거나, 죽기 전엔 하산할 수 없습니다.》

《도전하지 않을 시, 해당 퀘스트는 소멸됩니다.》

이건 또 뭐지?

처음 보는 문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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