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87화 (87/317)

“역시······! 이름을 보고 확신했지. 틀림없이 그대일 것이라고.”

사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심연 미궁의 주인이 오주력이라니?”

“허. 오주력이 된지 얼마나 됐다고 그 사이에······.”

“이러면 잡음도 사라지겠군.”

“주력의 자리를 노리던 자들도 찍소리 못하겠지.”

“백왕보다 강한 건 아니야?”

구경거리가 된 기분이었다.

이곳은 크람델의 입구.

수많은 괴물이 오가는 곳.

안 그래도 눈에 띄는 사왕인데 그가 내뱉는 말들로 인해 나에 대한 오해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게 궁금했던 거냐, 까악?”

사왕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보다, 그대에게서 이전과 다른 흉흉한 기색이 느껴지는군. 이 기색은 설마··· 사흉 ‘바알’인가?”

바알 투구의 옵션은 다른 투구를 끼지 않는한 계속해서 적용된다.

그나저나, 예외였다. 설마 알아차릴 줄이야.

여기까지 왔는데 숨길 필요는 없으리라.

“맞다, 까악.”

사왕이 진심으로 놀랐다는 말투로 말했다.

“허. 사흉 바알의 힘까지 갖게 되었다? 그럼 그대의 까마귀들이 많아진 게 바알의 권능 때문이었나 보군.”

까악! 까악!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수많은 시체 까마귀들.

하지만 평범한 시체 까마귀가 아니다.

바알 투구로 강화되고, 궁극 강화까지 이뤄졌다.

그러자 상급 시체 까마귀들은 내가 사용하는 스킬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상급 시체 까마귀 소환술(2Lv)’을 사용하자, 소환된 11마리의 상급 시체 까마귀가 ‘일반 시체 까마귀 소환술(10Lv)’을 사용한 것이다.

그로 인해 하늘엔 110마리의 시체 까마귀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별다른 성력의 추가적인 소모 없이.

이게 바로 궁극 강화의 힘인가 싶었다.

“사흉 바알?”

“그 전설 속 사흉?”

“허어어!”

주변의 소란이 더 커진 건 덤이었다.

괴물들에게도 사흉은 전설인 듯싶었다.

구제국의 검성과 마찬가지로 이들에겐 사흉이 전설이고 신화인 것이다.

어쨌든 간에.

대략 알겠다.

왜 사왕이 나를 마중나와 있던 건지.

“사왕이여, 까악. 지금 내겐 검성 라일리의 시체가 없다, 까악.”

처음부터 ‘검성 라일리’를 언급한 걸 보면 틀림없이 라일리의 시체의 유무를 물어보고 싶어서 대기탄 게 분명했다.

차마 대놓고 말할 수가 없어서 대화를 빙빙 돌린 것이다.

역시나.

사왕의 어깨가 아주 살짝 늘어졌다.

“음, 그런가.”

“지금 없을 뿐이다, 까악. 미궁을 찾아보면 나올지도 모른다, 까악.”

미궁에 대해선 아직 완전히 밝혀진 게 없다.

유적도시에서 지금도 계속 유적이 나오는 것처럼, 나 역시 시간을 들여 미궁을 더 살펴봐야만 했다.

사왕이 약간의 기대감이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은 즉······?”

“가면서 이야기하지, 까악.”

“좋은 생각이다! 긴급 호출이니, 더 시간을 끌어선 안 될 일이지.”

신났다.

역시 라일리의 시체에 관심이 지대했던 모양.

미궁을 도전한 것도 그럼 라일리의 시체를 얻기 위해서였을까?

차라리 잘 됐다.

라일리의 시체를 핑계로 사왕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터.

물론 찾다가 나오면 미련 없이 줄 생각이다.

사왕에게 빚을 지어두면 나쁠 게 없으므로.

“그런데 무슨 이유로 긴급 호출을 한 건지 알고 있나, 까악?”

걸으면서 이야기했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미리 알아둬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러자 사왕이 턱을 쓸었다.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두 가지 안건이 있다는 것 외엔. 아마도 한 가지는 그대의 도시에 관한 것일 거다.”

“백왕이 미궁에 관심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까악.”

“그대가 생각하는 그런 이유는 아닐 것이다. 다만······.”

“······?”

“음, 아니다. 그대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그럼 더욱 궁금하군, 까악.”

“으음. 오주력이 되었으니 알고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군.”

잠시 고민하던 사왕이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몇 년 전, 부끄럽지만 우린 한 인간에 의해 패배를 맛봤다. 그때 백왕께서도 자신의 송곳니를 잃으셨지.”

갑자기 빌헬름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사주력을 패배시키고 백왕의 송곳니를 빼앗은 건 빌헬름 외엔 없었다.

내가 유심히 듣고 있자, 사왕이 어깨를 으쓱했다.

“심연 미궁에 그 송곳니가 있지 않겠냐고 삼주력 궁기가 말했다. 우리 모두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치부했으나, 그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군, 까악.”

“궁금하지 않나? 우리 모두를 쓰러트린 인간이 누구인지?”

“별로 안 궁금하다, 까악.”

“······ 역시 그대는 보통이 아니야.”

내 이야기를 내가 궁금해할 필요가 없을 따름이다.

그런 태도를 보고 사왕은 새삼 놀라하고 있었다.

다만, 백왕이 아직도 자신의 송곳니를 찾고 있다는 건 의외였다.

‘아직 황금률 상점에 백왕의 송곳니가 남아있지.’

무려 천 시간의 조각을 사용하면 살 수 있다.

그만한 가치를 투자하여 백왕에게서 무언가를 받아낼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간절하게 찾고 있따면 생각은 해둬서 나쁠 게 없을 듯했다.

그렇게 잡담을 나누는 사이 우린 백왕전에 도착했다.

*

숨막히는 공기.

모든 주력과 함께 다시 같은 자리에 섰다.

대토룡, 사왕, 궁기, 메두사.

하나같이 정점이라 불리우는 괴물들!

‘여전히 살벌하군.’

긴장되긴 하지만 주눅 들지 않는다.

사왕이 반응했듯 이들 역시 내가 미궁의 주인이 되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전과 달리 확실히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이게 뭐하는 놈인가 싶어하는 눈빛에서, 확실하게 뭐가 있는 놈이다 싶은 눈빛으로.

“다들 모였구나.”

백왕이 등장했다.

여전히 백호의 가면을 쓴 채로.

“긴급하게 오주력 전원을 호출한 이유가 궁금할 것이다. 지체없이 이야기하마.”

백왕이 모든 주력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쳤다.

마지막에 이르러 내 눈을 본 백왕.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말했다.

“첫번째 이유는 심연 미궁 때문이다. 오주력, 란돌프여. 그대가 정녕 미궁의 주인이 된 건가?”

모두의 시선 속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까악.”

“사왕보다 먼저 미궁을 차지하다니, 대단하다.”

“미궁에 무슨 볼 일이 있는 거냐, 까악?”

“그래. 오주력의 미궁 도시를 백왕의 이름으로 천명할 생각이다. 크람델과 워프를 잇고 공식적으로 선언하고자 한다.”

“······!”

“······!”

“백왕이시여. 공식적으로 선언하다니요? 크람델을 제외하곤 그런 적이 없지 않으셨습니까?”

모두가 놀라하는 사이, 대토룡이 말했다.

백왕이 공식적으로 천명한 도시는 오직 크람델뿐이다.

북부로 향하는 크람델을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이유였다.

거대한 용의 물음에 백왕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들을 소집한 두 번째 이유와 이어진다. 남쪽 흑왕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흑왕이······?”

“남쪽을 벗어나려고 한다는 겁니까?”

흑왕.

백왕이 북부를 지배하는 절대자라면, 흑왕은 남부를 지배하는 절대자다.

궁기와 대토룡이 기겁하며 묻자 백왕이 긍정하였다.

“녀석이 급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자신 있게 세력을 넓히면서. 예감이 좋지 않아.”

백왕의 ‘예감’은 적중률 백프로다.

그의 예감이 좋지 않다면, 실제로 불길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었다.

“만에 하나 녀석이 나를 노린다면 오주력부터 공격해올 것이다. 그리고 구제국의 땅인 만큼, 아르혼 제국도 미궁에 눈독을 들일 테지. 나의 이름으로 공식발언을 하면 둘 다 오주력과 미궁을 쉽사리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 워프만 연결할 생각이었는데.

백왕의 공식 천명이라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이었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진짜로 미궁은 안전지대가 된다.

정신나간, 겁대가리 없는 놈들은 항상 존재하는 법이니 침략 자체가 아예 없진 않겠지만, 적어도 거대세력이 전면에 나서진 못할 것이었다.

확실한 억제력.

이보다 더 든든할 수가 없다.

백왕의 그늘이 엄마의 품처럼 따듯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긴급하게 호출한 마지막 이유는 그대들 중 흑왕의 의도를 알아낼 자를 선출하기 위함이다.”

안건이 두 개가 아니었나?

한 마디로 남쪽으로 침투하라는 소리다.

흑왕의 영역에서 흑왕의 의도를 비밀리에 알아낼 자.

위험천만하기 그지 없는 모험이 될 건 자명했다.

“자원할 자, 있는가?”

백왕이 주력들을 훑었다.

하지만 쉽게 자원할 수 없는 일이다.

흑왕은 백왕과 백팔십도 다르다.

결코 온화하지 않다.

마음에 안 드는 모든 걸 참살하는 미치광이. 그게 흑왕이다.

이윽고 백왕의 시선이 내게서 멈췄다.

······ 그리고 백왕의 눈은 움직이지 않았다.

‘잠깐.’

설마 지금 나보고 가라는 무언의 압박인가?

너를 내가 지켜줄 테니, 공식적으로 천명해주는 대신 갔다 오라고?

아니, 아니다.

어쩌면, 흑왕과 내가 부딪히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모두 이 마지막을 위한 떡밥에 지나지 않았다.

‘······ 한 번 해보자는 건가?’

엄마의 품은 개뿔.

하여, 나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백왕의 뻔한 의도에 놀아날 생각은 없었다.

까악! 까아아악!

시체 까마귀들이 더 공격적으로 울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이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알고 있을 터.

“으음.”

“뭐 하는 짓이냐, 오주력!”

모두가 침음을 흘렸고, 대토룡은 소리를 내질렀다.

그야 그럴 수밖에.

이건 네놈의 신비를 파괴해버리겠다는 위협.

그뿐만이 아니라.

“백왕. 죽기 싫으면 허튼 수작 부리지 마라, 까악.”

진정한 왕좌 (수정)

블러핑.

상대보다 좋지 못한 패를 들고 있을 때 거짓으로 강하게 베팅하는 수법.

일종의 공갈이다.

지금 내 상황과 같다.

백왕은커녕 사주력 중 한 명만 공격을 해와도 목숨이 날아가니까.

아무런 근거 없이 블러핑을 쳤다간 패가망신하기 마련.

하지만 근거가 있는 블러핑이라면?

‘신비의 관을 달성했을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지.’

입구를 넘어서며 들었던 수많은 말.

나에 대한 소문을 내 귀로 직접 듣지 않았는가.

그 소문을 사주력이나 백왕이 모르는 건 말도 안 된다.

하물며.

‘사왕이 밑간을 제대로 쳐놨다.’

심연 미궁과 검성 라일리에 대한 양념을 제대로 쳐놨을 것이다.

그 백왕이 스스로 ‘대단하다’고 할 정도였으니 입이 닳도록 말한 게 분명했다.

신비의 관에서 신화를 넘어섰을 때도, 망자왕 아흐람을 봉인했을 때도 내 실질적인 무력에 대해서 예측할 수 있는 구석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 일로 말미암아 내 무력의 수위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게 되었을 터.

모르긴 몰라도 꽤 놀라지 않았을까.

···사왕보다 빠르게 미궁을 돌파해, 검성 라일리를 죽였다니! 하고.

‘검성 라일리는 사흉과 비견되던 존재.’

이들에게 전설이자 신화인 사흉(四凶).

그 사흉에게 큰 상처를 남긴 게 검성 라일리다.

그렇다면 나의 최소 무력은 최소 사흉을 위협할 정도라는 소리.

적어도 저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공산이 컸다.

물론, 근거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사왕이 알아본 걸 백왕이 못 알아볼 리 없으니.’

바알 투구.

사흉 중 하나인 바알의 권능이 담긴 물건.

그것을 내가 갖고 있다는 걸 지금쯤이면 백왕도 파악했으리라.

‘백왕은 내분을 바라지 않는다. 놈은 겁쟁이니까.’

마지막 근거.

내가 빌헬름을 플레이하며 지긋지긋하게 겪었던 놈의 겁쟁이 기질!

백왕은 강렬하게 불길한 예감이 들면 일단 숨는다.

사주력 전부가 패배하여 인질로 잡혀있는 상황에서도 놈은 끝끝내 안 튀어나왔다.

결국, 송곳니라는 ‘거래’를 통해서야 극적 타결됐을 뿐.

이번에도 예감이 좋지 않다고 언급한바, 백왕은 절대로 내분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자신의 신비를 파괴하는 걸 그는 크게 경계하고 있었다.

나를 죽이려 들면 최소 하나는 잃는다.

“······ 죽기 싫으면, 수작을 부리지 마라? 정녕 나한테 한 말인가?”

백왕이 입을 열었다.

그 순간, 모든 게 얼어붙었다.

허튼수작을 부리면 죽는다니.

그런 협박을, 이곳 백왕전에서 자신에게 하였다.

결코 가만히 넘어갈 수 없다.

넘어가서도 안 된다.

지금 이 발언은 명백하게 선을 넘었다.

그리고 이러한 백왕의 반응 역시 예상했다.

아무리 겁이 많다고 한들, 자신을 따르는 사주력의 앞에서 바로 물러나는 짓을 했다간 왕이라는 이름이 아까울 것이므로.

‘으음!’

예상했지만, 입이 마르는 기분이었다.

영원군주의 심장이 없었다면 지금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심장이 터질 듯이 뛰어대고 있었겠지.

어쩌면 이미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모든건 결국 예상에 지나지 않았으니.

실제 백왕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백왕 외엔 아무도 100% 확신할 수 없다.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까악. 주력과 백왕은 ‘동등한 자격’을 갖췄다고, 까악. 나는 너의 밑에 있는 게 아니니 이 ‘긴급 호출’도 내겐 매우 불편하게 느껴지는구나, 까악.”

하지만 한번 시작한 블러핑을 멈출 수도 없다.

발사된 로켓은 격추되는 것 외엔 멈춰 서지 않는 법이었다.

백왕과 주력은 서로 특별한 서열 관계가 아니라고 분명히 그리 알렸다.

하지만 말만 그럴 뿐 실제 서열이 있었다.

당장 백왕은 ‘긴급 호출’로 주력들 모두를 모았다.

그 호출의 권한은 오직 백왕에게만 있다.

이 자체가 내게는 매우 불편하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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