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플레이어가 동시다발적으로 목격한 그 문구에 게시판은 폭주를 넘어 폭발하고 있었다.
-미궁 도시의 지배자ㄷㄷㄷ
-유적 도시가 더 좋냐 미궁 도시가 더 좋냐?
-미궁 도시 여기 구제국 관련 땅이다
-뭐? ㄹㅇ?
-ㅇㅇ지하 미궁에서 구제국 유물 나오더라
-미친;; 구제국 관련 유물이면 다 비싸던데
-먹을 거 없다더니 ㅅㅂ 다 몰래 꿀빨고 있었던 거임?
-당연하지 이미 아는사람들은 조용히 지하 미궁에서 파밍 중이었음
-근데 지금은 전부 강제 추방된 듯
-그래서 유적 도시랑 미궁 도시랑 어디가 더 좋냐고
심연에서 떠오른 도시들은 저마다 지닌 고유의 가치가 다르다.
옛적에 가라앉은 땅이기에 품고 있는 유물이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플레이어가 지배한 도시 중에 마스터가 지배한 유적도시는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유적을 품고 있었다.
하여 진정한 노른자 땅이라 칭해졌으나.
-당연한 소릴 왜 묻냐. 구제국 땅이 훨씬 좋지
-아르혼 제국이 개쎈 이유가 구제국 땅 다 병합해서임
미궁 도시의 출현으로 순위가 밀려날 것은 자명했다.
구제국의 땅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지배하고 있는 현 아르혼 제국.
제국이 대륙 제일인 이유가 바로 저 구제국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덕이었다.
-그럼 위험한 거 아님? 제국이 가만히 안 있을 거 같은데
-보호기간 끝나면 두고봐야지... 세력있는 플레이어들도 눈독 들일텐데
-워프 잠가두면 되잖아
-보호기간 지나서도 잠가두면 다시 심연으로 가라앉음
-ㅇㅇ워프들끼리 연결돼서 천공에 떠있는 거니까. 허공에서 연결된 줄 없으면 떨어지는 거랑 같은 이치
-최소 세 개 도시랑 연결해야 유지된다더라
-누가 팬텀신을 건드리는가!!!
-근데 미궁이라 침략하기 빡세지 않을까ㅋㅋㅋ
-미궁 클리어한 거 봤는데도 건드리면 그게 사람새끼냐 금붕어새끼지
미궁 도시가 정말 구제국과 연관되어 있다면 눈독들이는 세력들이 많을 터.
이에 대해 란돌프가 어떻게 대처할지도 궁금증을 모았다.
-아 후련하다 이게 바로 사이다지
-ㄹㅇ영화 한편 다봤다
-그라시아 지금 어떤 표정 짓고 있을지가 제일 궁금하닼ㅋㅋㅋㅋㅋㅋㅋ
-백프로 똥씹은 표정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듯ㅋㅋㅋㅋ
-란돌프 이름 보고 안 믿었을 거 같은데
-민초가 도전했을 때 네놈 따위가 나도 못깬걸 깬다고? 이러고 있었다 무조건
-그래도 민초가 24시간 도전하니까 솔직히 긴장했을 걸ㅋㅋㅋㅋㅋㅋ
-나였으면 창피해서 한동안 얼굴 못 들고 다닌다
-그라시아는 몰라도 마스터는 뻔뻔해서 들고다님
-그런데 란돌프 벌써 그라시아 이상으로 강해진 거임 그럼? 그게 가능한가?
-란돌프는 무적이다. 팬텀은 신이고!
-팬텀신은 전지전능하시다!
-팬텀신!
-팬텀신!
-팬텀신!
*
《백성전의 몇몇 성좌가 당황하고 있습니다.》
《미궁의 클리어 점수, 거짓 신화를 완성한 점수, 특히 생존 시간으로 얻은 점수의 합이 성좌들의 예상을 크게 웃돌고있습니다.》
찬란한 빛의 옥좌로 불러온 라일리의 영혼.
그의 영혼을 소환한 동안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이 1,400시간 넘게 사용되었다.
백성전의 성좌들도 그 정도나 사용할 줄은 몰랐다는 듯 당황하고 있었다.
‘생존 보상. 미궁에서의 생존 시간에 따라 보상에 추가 합산되는 모양이군.’
아무래도 미궁을 공략하는 점수와 생존한 시간에 따른 점수가 따로 있는 듯싶었다.
혼자서 심연 미궁을 클리어했고, 생존 시간은 더더욱 압도적이니 보상의 등급을 올리는데 차질이 생긴 것 같다.
‘성좌가 보상목록의 등급을 올려주는 데에는 출혈이 필요하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건 성좌들이 아무 보상이나 등급을 막 올려줄 순 없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성좌가 가진 무언가를 포기해야 가능한 일.
출혈 없이는 보상 등급을 올려줄 수 없고, 그래서 기준을 넘은 자에 한해서만 선심 쓰듯 등장하는 건 아닐까.
보상의 격이 커지면 커질수록, 출혈 역시 커져서 주저하는 건 아닌지.
‘신비를 완성했을 땐 탑에서 획득할 수 있는 보상이 없다면서 성좌들이 따로 보상안을 내밀었지.’
성좌의 보물.
이름 없는 성좌의 머리카락으로 긴고아를 얻었다.
그로 인해 1차 침공직전 아흐람을 성공적으로 봉인할 수 있었다.
그럼 이번에도 성좌의 보물을 내밀면 되는 거 아닌가?
불현 듯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곤 턱을 쓸었다.
‘······ 생각해보니 그땐 보상목록을 업그레이드 한 게 아니라 아예 대체한거였군.’
신비의 탑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목록이 없기에 그냥 메인 퀘스트 점수만 주고 보상을 대체해버렸다.
하지만 이번 심연미궁 공략에선 아니다.
보상을 업그레이드 시켜준다고 말했는데 그 뒤에 점수가 공개되어 당황하고 있었다.
설마 1,400시간이나 사용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듯.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뜻이다.
《보상목록의 100단계 업그레이드가 진행됩니다.》
《열일곱 성좌의 존재감이 희미해졌습니다.》
《새로운 열일곱 성좌가 대두됩니다.》
역시 엎질러진 물을 되담을 순 없었다.
······ 처음 겪는 상황.
보상목록을 업그레이드 할 때 성좌의 존재감을 유지하는 무언가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그것을 무리하게 사용하여, 17명이나 되는 성좌의 자리를 다른 성좌가 차지했다는 말이었다.
설마 성좌 후보같은 것이라도 있는 걸까?
명예의 전당처럼 100순위에 들 수 있는 존재만이 백성전에 들어가는 그런 시스템인지.
‘저중에 자주 보이던 성좌는 없었으면 좋겠는데.’
예를들어 행운의 성좌라거나, 탐험의 성좌라거나.
매번 나타나 친근한 성좌들이 저 열 일곱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하지만 그런 상념은 계속해서 이어지지 않았다.
곧장 떠오른 메시지들.
마침내 나타난 보상에 온 정신이 쏠렸으니까.
《‘온전한 황금률(1)’을 획득했습니다.》
《행운 주사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도합 101단계의 보상목록 등급이 올라갑니다.》
《아래 여덟 개의 목록 중 두 가지 보상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극진멸참의 화신도》, 《우로보로스의 낙인》, 《바알 투구》, 《순혈자 도안》, 《화신 지그렛의 갑옷》, 《도리안의 위상》, 《용암거인의 혼》, 《람의 눈》
휘유!
절로 휘파람이 나왔다.
떠오른 모든 보상이 최소 신화 등급이기 때문이다.
같은 신화 등급이지만, 샤티로스의 공포보다도 반단계 더 윗급이다.
‘온전한 황금률이라.’
게다가 조각이 아닌 온전한 황금률 자체도 처음이다.
나는 천천히 보상들을 살폈다.
‘순혈자 도안. 저건 유일등급 도안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띠인 건 나도 처음보는 유일급 도안.
저 도안에는 필요한 재료와 자격 따위도 함께 적혀있을 터.
절로 흥미가 인다.
하지만 도안 외에도 다른 물건들 역시 너무나도 훌륭했다.
‘······ 우로보로스의 낙인. 이건 설마 별의 위치를 알려주는 낙인인가?’
여태껏 등장하지 않은 별 중에 하나의 이름이 우로보로스였다.
이자벨라가 지닌 요르문간드 신비와 마찬가지로 같은 뱀 계열의 별.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우로보로스의 이름을 달고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심상치 않았다.
‘게다가 신화급 바알 세트 중 한피스가 나왔군.’
바알 투구.
바알이라 이름 붙은 세 개의 세트 무구 중 하나.
다 모으면 유일급 수준의 무력을 낸다고 전해진다.
모아본 사람이 없어서 그저 소문일 뿐이지만.
이 역시 탐난다.
용암거인의 혼은 어떤가.
거인족의 혼이라니, 이 역시 처음본다.
화신 지그렛은 6각의 영웅 중 한 명이다. 그의 갑옷은 대서사에 나올만큼 유명했다.
도리안의 위상, 람의 눈 역시 전혀 꿀리지 않으리라.
‘미쳤다.’
탐나지 않는 게 없었다.
하나같이 나조차도 생소한 것들.
이중 두 개를 골라야만 한다.
무엇을 골라야할까?
한참을 고민한 끝에 두 가지 목록을 선택했다.
《보상을 선택했습니다.》
《새로운 경험에 의해 경험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아아.
‘······ 드디어!’
나는 두 눈을 감고 양쪽 주먹을 있는 힘껏 움켜쥐었다.
지고룡과 싸우고 검성 라일리와 대결을 펼쳐도 오르지 않았던 레벨이!
미궁을 클리어해도 꼼짝하지 않았던 레벨이!
드디어 올라, 레벨 7에 도달한 것이다.
감동이 해일처럼 몰려왔다.
레벨 7이 되면 할 수 있는 게 생기기 때문이다.
《레벨 7에 도달하여 ‘수련자의 산’에 입장할 자격을 갖췄습니다.》
《‘메인퀘스트 7 : 수련자의 산에서 숙련도 레벨 15 달성하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메인퀘스트 7은 7레벨을 넘어야만 자동으로 시작된다.
오르지 않는 레벨에 설마 영원히 메인 퀘스트 7을 시작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다행히 시작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에 앞서 해결해야할 일이 있었다.
나는 천천히 황금률의 문을 열고, 다시 동료들이 있는 미궁으로 되돌아갔다.
그러자 탐욕과 아이작, 이자벨라와 여전히 기절한 세야 성녀가 보였다.
‘세아 성녀.’
그중 내 눈은 세아 성녀에게 고정됐다.
이제 그녀를 깨울 시간이었다.
심연 그 자체인 자가 남기고 간 것
별의 기억으로 살핀 세아 성녀의 외관은 거의 일치했다.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른 사람이라 부를 수준은 아니다.
새하얀 백발, 긴 속눈썹, 티 없이 맑은 피부.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계의 저주로 온몸이 썩었을진대.’
대원정에서 세아 성녀의 역할은 지대했다.
수많은 저주로부터 나와 기사들을 지키는 막중한 역할을 혼자서 해냈으니.
함께한 백여 명의 사제와 그 배에 달하는 성기사 모두가 전멸했음에도 그녀는 꿋꿋하게 뒤를 따랐다.
하지만 너무나도 많은 저주를 혼자 받아낸 탓에 온몸이 썩어 문드러졌다.
전신에서 고름이 흐르고 피부와 내장이 부풀며 도저히 인간의 형상이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가, 가십시오. 앞으로 계속 가십시오. 제 목숨을 바쳐 축복하겠습니다!
최후까지 성녀는 의연했으며 아름다웠다.
그 목소리가 어제 일처럼 생생히 귓가에 들려온다.
성녀의 죽음은 확정이었다.
살 수 없다.
그 상황에서 사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살아있다.
기뻐해야 마땅하나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그녀가 살 수 있는 가능성.
‘마왕이 살려냈다······.’
마왕.
놈이 개입한 게 분명하니까.
하지만, 왜?
성녀에게 쌓인 저주의 독기를 제거하고, 피부와 장기를 재생시켜가면서까지 그녀를 이용하려 한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일까.
【Lv. 12】
레벨 12.
있을 수 없는 수치.
인간의 레벨은 10이 넘으면 별을 먹어 초월해야만 한다.
하지만 성녀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의 태를 쓰고 있지만 그녀는 여신을 받들고 받아들이는 자.
하여, 레벨을 10 넘게 올리는 게 가능하다.
대신 별을 먹어 초월할 순 없다.
이처럼 간혹 인간임에도 인간이 아닌 취급을 받는 존재가 있었다.
‘느껴지는 저주는 없다.’
유심히 살핀 바 저주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손가락을 뻗어 피부를 만지자 느껴지는 감촉은 분명 그녀의 것이었다.
이어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동공을 확인했다.
‘······ 적안.’
바뀐 게 있었다.
세아 성녀의 양쪽 눈이 붉게 물들어 있다.
찬란하게 빛나던 황금안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럼 다른 것의 눈인가?
내심 고개를 저었다.
‘세아 성녀의 눈이 맞다. 동공의 색이 바뀐 건 마계에서의 저주 때문이다.’
그녀의 몸에 저주가 쌓일수록 동공이 붉게 변해갔다.
과한 축복으로 찬란한 황금안을 잃은 게다.
마왕도 저 눈동자만큼은 되돌릴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다만.
‘눈 안쪽에 새겨놓았군.’
눈 아래에 작게 새겨져있는 저주를 발견했다.
너무나도 작고 하찮아서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저주.
아니······.
‘저주의 형식을 띤 신비.’
그러면 그렇지.
세상에서 가장 음흉한 마왕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성녀를 바깥으로 내보낼 리가 없다.
‘인간에게 적의를 느끼도록하는 신비다.’
오직 그 하나의 기능만을 담은 신비였다.
그러니까 겉으로 보아선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운이 좋았다.
만약 여신교의 성기사들이 그녀를 먼저 발견하여 옹호했다면 미궁에서 대학살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다분했으니까.
성기사는 일반적인 기사와도 궤를 달리하는 강자이며 광신도다.
그들의 변질만큼이나 두려운 건 없다.
여신교와 접선 전에 아이작과 이자벨라가 성녀를 생포한 건 하늘이 도운 일이었다.
<‘영원의 란돌프’가 발동합니다.>
<상대의 눈에 새겨진 ‘신비, 적의’를 제거했습니다.>
신비라면 제거 자체는 쉽다.
영원의 란돌프는 그야말로 모든 신비 중 하나를 파괴하는 권능과도 같은 힘을 지녔으므로.
도리어 찾고 발견하는 게 더 어려울 지경이다.
“세아 성녀를 어떻게 생포한 거냐?”
내가 묻자 아이작이 답했다.
“기, 기절해있었습니다. 누군가와 전투를 벌인 흔적이 주변에 가득했고요.”
전투라.
성녀는 레벨이 높아도 전투력 자체는 낮다.
자체적인 축복과 재생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긴 하지만.
누가 제압했는지는 몰라도 여러모로 운이 따른 듯싶다.
아무리 전투력이 낮다 한들 아이작과 이자벨라 둘만으로는 생포하기 힘들었을 터.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성녀를 기절만 시켜놔서 고맙군.’
세아 성녀를 제압한 누군지 모를 자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일이 크고 복잡하게 돌아갈 뻔했으니.
이윽고 아이작이 내 머리를 쳐다보며 경악에 가까운 음성을 흘렸다.
“그, 그런데 후계자님. 그 모습, 아니, 머리에 쓴 건······?”
아. 이거 말인가.
어깨를 으쓱하며 답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