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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83화 (83/317)

쩌어억!

동시에 지고룡의 몸이 돌처럼 굳어간다.

툭! 투두두둑!

굳은 몸이 분쇄되어 하나, 둘 떨어져내렸다.

지고룡은 죽어가고 있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마지막 봉인으로서의 의무가 끝났음을 깨달은 채.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의 뜻을 전할 수 있었음에 만족하며 종말을 고했다.

그리고.

《지고룡과 공명했습니다.》

《‘용검사’ 클래스가 ‘용기사’ 클래스로 격상합니다.》

《‘용기사’ 클래스를 계승했습니다.》

《‘용기사’ 클래스에 의해 검의 숙련도 제한이 28Lv까지 해제됩니다.》

용기사 클래스로의 격상!

라일리가 아닌 지고룡에게서 계승을 완료했다.

용기사 클래스를 확정적으로 얻은 셈이다.

《마지막 봉인이 해제되었습니다.》

《‘심연 그 자체인 자’가 탄생하고 있습니다!》

《강제침식이 시작됩니다.》

지이잉.

순간 거대한 워프 하나가 열렸다.

워프의 반대편에 보이는 건, 지구.

지구의 어느 거대 도시가 보인다.

캬캬컄!

하지만 워프는 정지되었다.

헬이 워프를 통한 침식을 거부한 탓이다.

허나 마지막 시련이 남아있었다.

심연 그 자체인 자.

저 시련을 넘어서지 못하면 침식은 그대로 진행될 터.

“내가 틀렸다면······ 증명해다오.”

어느덧, 지고룡이 있던 자리에 라일리가 있었다.

심연 그 자체가 되기 전에 라일리의 영혼이 육체를 움직인 덕이다.

지고룡과 마찬가지로 자멸할 수도 있으나, 그 전에 그는 확인하고 싶었다.

방금 전의 공명을 통해 알게된 지고룡의 의지. 그 의지가 사실인지. 자신이 진정으로 틀린 것인지를.

“그대. 이름은?”

라일리가 이름을 물었다.

지금의 나는 순수히 별의 기억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답해야할 이름은 정해져 있었다.

“빌헬름.”

“명호는?”

“기사왕.”

“과연. 그리 불렸는가!”

라일리가 껄껄 웃었다.

이제는 이해가 된다는 듯.

그 짧은 시간에 보여준 기예는 마땅히 기사왕이라 불려도 이상할 게 없었으니.

이후 똑같이 드래곤 소드를 오른손에 만들며 말했다.

“기사왕 빌헬름. 검성 라일리가 대결을 청한다. ······여기서 끝내기엔 그대도 아쉽지 않나?”

“당연한 말을 묻는군.”

“역시! 옛적에 만났다면 우린 좋은 동료가 됐을 거다.”

“옛적에 만났다면 너는 심연이 아니라 땅에 묻혔을 거다.”

“하하! 그것도 좋았을 것 같다. 그러니······.”

호쾌하게 웃던 라일리의 표정이 거짓말처럼 서늘하게 변했다.

“······ 승리하는 자가, 옳은 것으로 하지.”

지극히 당연한 말이었다.

*

-5페이즈...

-5페이즈.....실화냐?

-심연 그 자체인자? 이게 마지막인가본데?

-란돌프다

-진짜 란돌프야?

-나 지금 소름돋음

-난 팬티 갈아입는 중

-그라시아도, 제국도, 민트초코도 못한걸 란돌프가 해냈다고?

-그야 란돌프가 빌헬름이고 빌헬름은 팬텀이니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게 말이 되나?

플레이어 톡은 순간 반전됐다.

반반이던 여론이 ‘5페이즈’에 돌입한 순간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진짜 란돌프다.

란돌프가 미궁을 공략하고 있다!

-그래도 마지막 페이즈는 조금 힘들지 않을까?

-앞서서 도전한 사람들이 체력 다 빼놔서 가능했던 거 아님?

-민초가 하루넘게 공략했는데 숟가락만 얹은 거지

물론 여전히 부정적인 사람들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여론은 순식간에 묻혔다.

거의 모든 이들이 환호를 내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봐봐라! 내가 찐 란돌프 맞다고 했제?

-우아아아아아아!!!!!

-진짜가 나타났다!!!!

-엄마! 난 커서 란돌프가 될래요! 엄마! 난 커서 란돌프가 될래요!

-제발! 제발! 제발!

-믿습니다 팬텀신!

-팬텀신이시여! 우매한 가짜들에게 진짜가 무엇인지 보여주소서!!

*

쩌엉!

검과 검이 부딪힐 때마다 청량한 소리를 냈다.

같은 능력을 지닌 서로의 육체.

오롯이 검술만을 겨루는 실력의 장.

“······ 내가 졌다.”

하지만 대결은 길지 않았다.

백합을 채 나누기도 전에 라일리는 검을 거뒀다.

“처음부터 이길 생각이 없었군.”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낼 생각도 없었다.

허나 라일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최선을 다했다. 비록 끝까지 검을 나누지 못한 건 아쉬우나, 이 정도만 해도 알 수 있다. 그대가 나보다 뛰어나다는 걸.”

검을 부딪친 순간, 첫합에서 라일리는 알았다.

아니, 지고룡을 상대할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저게 빌헬름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대는 본실력을 숨기고 있다. 지고룡과 나를 상대하면서도, 전부를 내보이지 않아. 본실력을 끌어낼만큼 우리가 강하지 못했다는 방증이겠지.”

······ 아무래도 라일리는 크게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약해서 내가 전부를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최선을 다한 것인데도.

그저 내가 빌헬름의 전체를 끌어내지 못했을 따름이거늘.

라일리가 천천히 주먹을 쥐어보였다.

“비록 우리는 실패했지만, 그대라면 멸망에게 패배를 안기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빛의 옥좌의 주인인 그대는 틀림없이 명예로운 자일 터. 인류의 입장에선 참으로 다행인 일이다.”

감회가 새롭다는 눈빛.

촉촉하게 추억에 잠겨드는 그런 얼굴이었다.

비록 자신은 패배했으나, 눈앞의 남자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찬.

‘낯간지럽군.’

이미 한 번 마왕을 죽였다는 말은 굳이 안 해줘도 될 것 같다.

결과적으로 아직 승리한 건 아니니까.

“무엇보다도······ 심연 그 자체가 되기 전에 스스로 끝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지고룡의 의지를 전해 주어서, 진심으로 고맙다.”

라일리의 육체가 점점 굳어간다.

지고룡 때와 마찬가지로.

심연 그 자체인 자가 되기 전에 자멸을 택한 것이다.

라일리가 웃어보였다.

“내 최후의 최후에 그대를 만나서 다행이다. 그대와 같은 강자와 마주해서 영광이었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땐 꼭······.”

아쉽다는 음성.

하지만 라일리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툭.

투두둑!

전부 돌처럼 굳고 부숴져 심연에 가라앉은 까닭이다.

시시각각 심연에 침식되고 있었으니 애초부터 시간이 없었다.

이윽고 라일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심연 그 자체인 자’를 제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강제 침식이 종료됩니다.》

《히든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용기사’ 클래스가 히든 클래스 ‘용검존’으로 격상합니다.》

《‘용검존’ 클래스에 의해 검의 숙련도 제한이 30Lv까지 해제됩니다.》

《히든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동공이 잘게 흔들렸다.

‘······ 히든 클래스?’

히든 클래스, 용검존!

예상했던 바를 두 단계나 뛰어넘은 자격을 거머쥐었다.

지고룡과 라일리, 둘 모두의 인정에 의해.

어쩌면 라일리가 완성했어야할 극의의 클래스가 바로 이것이었으리라.

오랜 시간을 넘어 내게로 완전하게 계승된 것이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다.

《‘심연 미궁’을 클리어했습니다!》

《‘심연 미궁’이 천공으로 떠오릅니다.》

《‘미궁도시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미궁도시에 워프가 생성됩니다.》

······.

《멀리서 지켜보고있던 백성전의 성좌들이 합류합니다.》

《모든 성좌가 당신이 완성한 신화에 주목합니다.》

《실패한 신화의 완성! 거짓을 진실로 만든 당신의 행적에 환호를 보냅니다.》

《지고룡과 위대한 검성 라일리의 온화한 안식에 모든 성좌가 크게 만족합니다.》

《만장일치로 모든 성좌가 보상의 등급을 올리는데 찬성했습니다!》

《생존정산을 시작합니다.》

《사용한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에 따라 퀘스트 합산 보상이 달라집니다.》

《1,407h 37m을 사용했습니다.》

《사용한 시간을 본 몇몇 성좌들이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생존정산

“음.”

툭!

“으음.”

툭!

“으으음······.”

툭!

성녀 세아가 연신 기절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작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기척만 보여도 기절을 시키는 이자벨라의 손속이 잔인하게 느껴진 탓이다.

“아무리 명령이라지만 그래도 성녀인데······.”

그들은 란돌프의 명령에 따라 세아 성녀를 감시하고 기절시켰다.

하지만, 아이작은 차마 성녀에게 손을 들이밀 수가 없었다.

성녀 세아.

그녀는 성녀 중에서도 가장 헌신적이며 기품있고, 고결한 존재였으니까.

제아무리 아이작이 못 배워먹은 도둑놈이라 할지라도 성녀의 지고지순함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이라면 자연히 경배하게 되는 게 성녀라는 이름.

그러나 이자벨라는 그딴 건 안중에도 없는 듯 행동했다.

“······.”

대답조차 안 한다.

무심하게 성녀만 쳐다보고 있을 뿐.

‘점혈법을 배워놓길 잘했네.’

이자벨라의 입가가 미묘하게 올라갔다.

그것을 본 아이작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설마 지금 성녀를 기절시키면서 희열을 느끼는 건가?

‘어릴 때는 그렇게 배우기 싫었는데······.’

물론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이자벨라는 과거를 회상하는 중이었다.

어릴 적.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이미 사막 도시 파이살메르에 있었다.

헐벗은 아이들과 함께 햇볕 한점 들지 않는 시궁창에서 눈을 떴다.

그곳에서 수많은 아이가 서로 경쟁하며 죽어갔다.

이자벨라는 살기 위해 온갖 잡기를 배워야만 했다.

미칠 듯이 배우기 싫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사막 여왕.

그 괴물의 눈에 들어야만 했으므로.

“넌 걱정 안 되냐?”

“······?”

아이작의 물음에 이자벨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후계자님 말이야. 보아하니 다른 도전자들도 다 실패한 거 같은데.”

“안 돼.”

“안 된다고?”

끄덕!

이자벨라는 긍정의 반응과 함께 다시 성녀에게 눈길을 돌렸다.

걱정보단 명령이 우선이라는 태도.

그야 당연하다.

정말로 걱정이 안 됐으니까.

란돌프의 승리는 이제 이자벨라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사막 여왕을 마주하면서도 한 치의 두려움 없이, 도리어 비웃고 오시하며 뭉개버린 자.

평생 두려움에 떨며 눈도 마주할 수 없었던 존재를 순식간에 죽였다.

이자벨라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였던 그 사막 여왕을.

신과도 같이 군림하며 사막을 다스려온 제왕을 말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아이작이 작게 혀를 찼다.

‘광신도가 다됐군.’

아이작이 보기에 이자벨라는 란돌프의 광신도가 되어가고 있었다.

무한한 믿음. 맹목적인 신뢰.

이후 1년의 봉사가 끝나고 헤어질 때가 되면 그땐 어찌 될지.

경험상 그러한 믿음의 끝이 보통 좋을 수가 없다는 걸 아이작은 잘 알고 있었기에, 약간 걱정이 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누굴 걱정할 처지냐.’

그러다가 아이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만약 정말로 란돌프가 심연 미궁을 클리어한다면, 앞으로 펼쳐질 일은 도저히 상상조차 가지 않았으니.

*

페이즈 5에 돌입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란돌프의 출현을 부정하던 이들은 입을 꾹 닫을 수밖에 없었다.

-심연 미궁 클리어...

-내눈으로 보고서도 믿기지가 않네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와!!!!!

-란돌프! 란돌프!

-팬텀신! 팬텀신!

-팬텀교는 영원하라!!!

-팬텀교 새끼들 오늘은 게시판 점거를 허락한다

-그라시아 개발렸쥬? 마스터 아무고토 못했쥬? 다크스타 도망치기 바빴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정도면 7영웅 아니라 유일영웅 해야지ㅋㅋㅋㅋㅋㅋㅋㅋ

-영웅이라니. 이 불신한 놈. 팬텀신이시다!

도전자 란돌프가 심연 미궁을 클리어했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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