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쫓는 거야.”
“너를? 왜?”
“내가 뱀공주니까.”
“여왕의 딸이라고? 그런데 종족 자체가 너무 다른 거 아니냐?”
“······ 시간이 없어.”
이자벨라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여기서 나뉘어지자. 내가 내간을 벌게.”
“개소리하지마라. 저런 거 상대로 혼자 시간을 벌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개죽음이다. 아이작은 뒤를 따라오는 사막여왕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 그것은, 분명히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을 초월한, 어쩌면 괴물조차도 초월한 무언가.
진짜로 끔찍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으니까.
후퇴하고 싶지만 성녀가 걸린다.
성녀 세아를 두고 가면 그녀는 저 괴물에게 처참하게 찢겨죽는다.
그리고 아직 란돌프가 어떤 상태인지도 모른다.
갑자기 황금빛 워프를 통해 사라진 란돌프가 생존해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한 번 후퇴했다간 이곳까지 도달하지 못할 터. 그러기엔 황금률의 조각이 너무 부족했다. 그를 두고 도저히 후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넌 다쳤잖아.”
이자벨라가 아이작의 허리춤을 쳐다봤다.
갑작스러운 여왕의 습격에서 아이작은 허리를 관통당했다.
주요 장기나 뼈가 다치진 않았지만 계속해서 출혈상태다.
그러나 상처를 치료할만큼 상황은 여의치가 않았다.
“뱀공주! 어딜 그렇게 급히 가느냐?”
“호오. 진짜 뱀공주로군. 파이살메르의 배신자!”
······ 바바리안들.
그들이 앞을 가로막으며 나타났다.
하나같이 뱀공주를 언급하며 살의를 보이고 있다.
아이작은 어이가 없었다.
‘고향에서 쫓기는 신세였어?’
여왕까지 쫓는 걸 보면 대체 무슨 짓을 벌인건가 싶었다.
단순한 도둑질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이자벨라 역시 순탄치는 않은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동질감마저 느껴지지만, 진퇴양난이었다.
“빌어먹을 대머리 변태새끼들. 오냐! 오늘 끝장을 보자! 덤벼 개새끼들아!”
아이작은 기절한 성녀를 내려놓고 검을 들었다.
이자벨라 역시 반대편을 보며 경계했다.
이윽고.
-내 귀여운 아이야. 너는 영원히 나의 것이란다.
······ 사막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본 모습은 인간의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도저히 인간이라 할 수 없는 형태를 하고 있었다.
피부가 벌어져 마치 날개처럼 펼쳐졌다.
얼굴도 반으로 찢어지며 수많은 가시가 보였다.
저걸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수많은 아이들을 잡아먹은 괴물. 피를 탐하는 악귀다.
공주라 불렸던 자들은 모두 여왕에 의해 죽었다.
여왕이 영원불멸하여 도시에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리고 자신 역시 여왕에게 먹힐 운명이었다.
-내가 무섭니? 이리오렴, 이자벨라. 말 잘 듣는 아이 아니었니?
말을 잘 들으면 오래 살 수 있다.
유능해보이면 조금 더 생명이 연장됐다.
철저하게 가면을 쓴 채 인형처럼 명령을 이행했다.
가라면 가고, 죽이라면 죽였다.
하지만 이자벨라는 성각자를 만나며 다시 도주의 꿈을 꾸었다.
지긋지긋한 여왕을 벗어나고자하는 꿈을 꿀 수 있었다.
명령을 어겼으나 후회하지 않았다.
실패하더라도 자신의 선택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려고 하였다.
그래서 분명히 성공했는데.
드디어 벗어났는데.
······ 왜 아직도 몸이 떨린단 말인가.
-이 미궁은 재밌단다. 옛날 기억을 나게하는 곳이야. 그러니 반드시 이곳을 내가 가져야겠다. 그러려거든 너가 필요하단다, 이자벨라. 내 사랑스러운 아이야.
“내가······ 왜?”
-너의 신비. 그 뱀의 신비엔 숨겨진 효과가 있단다. 그리고 이자벨라, 너 역시도 아주 특별한 재능을 지녔지. 나와 영원히 함께하는 모든 아이들보다도 너는 특출나단다.
이자벨라가 몸을 떨었다.
결국, 자신을 먹겠다는 말이다.
여왕은 절대로 자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다.
영원토록. 살아있는 한 계속해서 쫓아올 것이다.
저 괴물과 바바리안들이. 사막의 모든 게.
끔찍하게 싫으나, 방법이 없었다.
“그럼 이 둘은······ 놓아줘. 얌전히 있을 테니까.”
-당연하다마다. 내게 필요한 건 너뿐이란다. 너만 있으면, 이 미궁의 주인은 내가 될 수 있어. 귀찮은 사왕 떨거지도 죽일 수 있지.
······ 사왕?
사왕이 미궁에 있다고?
그럼 저 모습이 된 게 설마 사왕 때문인가?
사막여왕은 아무리 위험한 상황에서도 절대 인간의 모습을 벗지 않는다. 그럼에도 벗었다는 건 그만큼 강한 적을 마주했다는 뜻이었다.
만약 사왕을 마주해 저 상태가 된 것이라면.
······ 사막여왕은, 지금 멀쩡한 상태가 아닐지도 모른다.
-자. 이리오렴. 내 사랑스러운 아이야.
날개 같은 가죽을 더 펼쳤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모습.
몸이 떨리고,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저 모습으로 아이들을 잡아먹는 걸 먼발치에서 몇 번이나 봤기 때문이다.
무섭다. 두렵다.
하지만, 아이작과 성녀를 살리려면 이 수밖에 없다.
이자벨라가 천천히 발을 떼려는 찰나.
“웬 커다란 가오리 한 마리가 미궁에 있군.”
“······ 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가오리라니.
지금 사막 여왕을 뒤에서 보면 비슷하게 생겼긴 하겠지만,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게 아니고서야!
잘못 들은건가 싶었지만, 곧이어 사막여왕의 등 뒤로 그가 나타났다.
“말하는 가오리야, 적당히 하고 비키거라. 언제까지 길을 막고 서 있을 셈이냐?”
순간 현기증이 났다.
아이작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 란돌프.
그가 거대한 황금 고블린의 머리 위에 앉은 채, 언제나와 같이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타났으니까.
너무나도 찬란한
‘왜 탈출하지 않은 거지?’
추적의 기물을 사용하자 아이작과 이자벨라의 위치가 떠오른다.
그렇게 멀지는 않은 장소.
하지만 의아한 일이었다.
습격에서 벗어났다면 그 즉시 탈출해도 모자라거늘.
추적의 기물 위에 떠오른 점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허나 탐욕은 미궁의 지리에 훤했으니 별문제는 없었다.
최적의 길을 찾아 순식간에 둘을 따라잡은 이후 거대한 가오리 한 마리를 목격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바바리안들. 사막 여왕이로군.’
바바리안들이 따르는 괴물이라면 필시 사막 여왕이다.
이자벨라를 목격한 사막 여왕이 사력을 다해 둘을 쫓고 있었던 것이다.
‘마혈족이라······.’
인간으로 둔갑한 채 피부를 열어 날개처럼 보이게끔 하는 괴물.
흡사 가오리처럼 생긴 저것은 흡혈족 중에서도 극소수라 알려진 ‘마혈족’이 분명했다.
마혈족은 특별한 피를 품은 생명체를 취해 자신의 힘을 강화하는 종족. 생명을 취하고 남은 껍데기에 알을 낳기로 유명한 악취미를 가진 놈들이었다.
【Lv.12】
그를 증명하듯, 레벨 역시 12다.
붉은색 글씨. 슈퍼 엘리트 레이드 보스 몬스터!
호적수를 만난 탐욕의 피부표면이 살짝 일렁였다. 사막의 주인과 중첩심연의 주인.
둘 중 누가 이길지 관심은 가지만 패배는 있어선 안 된다.
나는 최대한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적당히 하고 비키거라. 언제까지 길을 막고 서 있을 셈이냐?”
-······ 나를 그렇게 부른 거니? 가오리라고?
가오리. 마혈족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다. 미개한 바다생물과 위대한 마혈족을 동일시에 놓는다고 생각이라도 하는 건지.
등을 돌려 나를 바라본 사막 여왕은 실로 그로테스크하였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느낌을 주는 괴물은 거의 만나본 적이 없건만.
“말실수를 했군. 사과하마.”
실수도 이런 실수가 없다.
작게 웃으며 이어서 말했다.
“말하는 신기한 가오리라고 불렀어야 했는데 말이다.”
-그깟 황금 고블린 따위를 믿고 설치는구나, 아이야.
순간 사막 여왕의 전신이 움찔거렸다.
고작 단어 하나에 발끈하는 게 참으로 인간다웠다.
그때였다.
“도망······ 치십시오, 위험합니다.”
겨우 입을 연 이자벨라. 그녀의 전신은 아직도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고 있었다.
두려운 게다.
미치도록 무서운 것이다.
사막 여왕이.
저 괴물이.
마혈족인 그녀가 자신을 잡아먹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터.
그런데도 내게 도망치라고 말한다.
몸은 떨고 있지만 각오를 다진 눈빛이었다.
자신을 희생해, 나머지를 살리려는.
-아. 그렇구나. 너가 내 사랑스러운 아이와 사랑의 도피를 한 남자로구나?
내 정체를 깨달은 사막 여왕이 깔깔거렸다.
-성각자라고? 호홋! 순진한 처녀를 속이니까 좋았니? 그런데 너 같은 성각자는 본 적이 없단다. ‘성각의 낙인’조차 없는 성각자라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니?
성각의 낙인?
처음 들어본다.
성각자들 중에 문신을 한 자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걸 말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막 여왕만이 아는 성각자의 특징 중 하나임이 틀림없었다.
-별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순진한 아이를 꼬드겼겠지. 저주를 푼 방법은 궁금하지만, 정말로 살려둘 수 없겠구나?
화아아아악!
순간 보랏빛의 심연과도 닮은 기운이 사막 여왕의 전신에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마력을 응집해 만들어진 신비다.
곧이어 탐욕 역시 황금빛의 신비를 발산시켰다.
괴물들에게 있어서 신비란 갈기, 뿔과 같은 것.
더욱 크게, 더욱 치명적이게끔 만들어주는 게 신비였다.
인간의 것과 달리 그 능력 또한 비범했으니.
기선을 제압하고, 상대를 공격하며,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아마도 저게 사막 여왕이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신비일 터.
하지만, 확신은 할 수 없다.
확신해서도 안 된다.
마혈족이라면 다른 신비들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으므로.
-자. 누구부터 죽고 싶니? 특별히 내장을 꺼내어 보여줄게. 팔딱팔딱 뛰는 자기 심장을 보면 감회가 새로울 거란다.
“멋진 신비를 지녔군. 그게 제일 특출난 건가?”
-나는 먹잇감을 두고 최선을 다한단다. 인제 와서 두렵니?
“그래? 그게 네가 지닌 제일 좋은 신비라고?”
-그렇단다. 네까짓 인간은 꿈도 못 꿀 신비지? 자, 이제 끝내자꾸나. 시간을 끌 생각이라면······.
작게 웃었다.
따악!
엄지와 검지를 튕겼다.
그 순간.
-···································· 뭐?
신비가 파괴됐다.
동시에.
【Lv.11】
사막 여왕의 레벨이 다운됐다.
사막 여왕이 지닌 저 신비 자체가 그녀의 격을 이루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하기야, 인간이 별을 먹어 초월한다면, 괴물들은 신비로 레벨을 올리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지금 눈앞의 괴물처럼 말이다.
-아······? 무슨 짓을 한 거니············?
사막 여왕이 당황한 채 사라진 신비를 찾았다.
그러나 파괴된 신비가 돌아올 리 없었다.
영원의 란돌프. 그로 인해 나는 상대의 신비 하나를 무조건 파괴할 수 있으니까.
다만, 신비 파괴는 신중히 행해야 하는 일이다.
상대가 지닌 가장 좋은 신비를 파괴해야만 했다.
제알아서 정답을 알려준 사막 여왕이 고마울 따름.
-내, 내 신비를 어떻게 한 거니? 네가 가져간 거니? 응? 아아!!
좌절하고 절망하는 중이다.
평생을 연마한 신비가 눈깜빡할 사이에 날아갔다.
레벨다운이 될 정도면 어지간히도 신비에 자신의 격을 몰아둔 것일진대.
툭툭.
나는 탐욕의 머리를 두 번 두드렸다.
그러자 탐욕이 손을 뻗었다.
녀석의 손 위에 올라, 천천히 바닥에 내려온 뒤 탐욕에게 말했다.
“알아서 제압하거라.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테지.”
-마, 맡겨만 주신다면 반드시 저 간악한 가오리의 목을 따오겠습니다······!
“제압만 해라.”
탐욕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였다.
신비마저 파괴할 수 있는 인간이라니!
역시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는 모습.
탐욕이 본 나의 가치 안에는 ‘영원의 란돌프’ 역시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다만, 나는 그 수치가 몇인지 모른다.
몇이냐 물어봤으나 녀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이자벨라에게 다가갔다.
“괜찮나?”
“괘, 괜찮으십니까? 그보다 저 고블린은······.”
“내 애완동물이다.”
“······ 예?”
이자벨라가 눈을 깜빡였다.
산만한 덩치의 황금 고블린을 누가 본 적이 있을까.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고블린이다.
그런 괴물을 고작 ‘애완동물’이라니.
“그런데 저 바닥에 엎어진 여자는 누구냐?”
아까부터 궁금했던 바를 이제야 물었다.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채 기절해있는 여자.
마음대로 내동냉이 쳐진 것 같은데, 저 여자와 함께 도주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대답은 아이작에게서 나왔다.
“세아 성녀입니다.”
“······?”
뭐?
세아 성녀?
“그럴 리가.”
곧이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세아 성녀는 죽었다. 온갖 저주와 함께 마계에 매몰됐다.
마계를 관통하며 얻은 모든 저주들을 그녀가 대신 뒤집어썼다.
그 저주의 총량은, 결코 한 인간의 생존을 두둔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불가하다.
하지만, 아이작의 말을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콰릉! 콰드득!
사막 여왕과 탐욕이 맞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괴물의 소리는 내게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 여자의 얼굴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