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76화 (76/317)

*

플레이어 톡의 게시판이 실시간으로 터져나가는 중이었다.

-와, 벌써 페이즈 3?

-10분 전에 2 아니었나?

-근데 페이즈 몇 까지 있는 거냐?

-아무리 많아도 보통 3페이즈가 끝 아님?

-말하는 순간에 4 돌입했다!

-대박사건;;

-검성 라일리가 약한 거 아님?

-개소리. 혼자서 지고룡 대가리 딴 영웅임

-마왕이랑도 한따까리 했을걸?

-전설은 과장되기 마련이지. 걍 라일리가 약한 거 맞는듯

그때였다.

페이즈 4에 돌입했다는 문구가 뜨기 무섭게.

-어?

-응?

-뭐야, 후퇴?

-미궁을 벗어났다는데?

그라시아가 로그아웃하여 미궁을 벗어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정확히 ‘도전자 검성이 후퇴했습니다.’라는 문구가 떠오른 것이다.

빠르게 페이즈 4까지 도달했던 그라시아가 4에 도달하자마자 후퇴하다니.

마치 봐서는 안 될 것을 보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엥, 바로 다음 도전자 나타났다.

-제국 삼검? 이건 또 누구야?

-제국이면 아르혼 제국?

-와. 제국에서도 눈독들이고 있었나보네

-그라시아가 못깬걸 제국이 깨나?

-제국이면 가능할지도. 거기 강자들은 진짜 강하다매?

그렇게 입장한지 30초나 지났을까.

-아, 아니네. 제국도 바로 후퇴했네

-페이즈 4에 뭐가 있나?

-뭘 봤길래 이렇게 빠르게 퇴장하냐?

-그런데 그라시아도, 제국도 못 깨면 그냥 못깨는 거 아님?

-아직 사왕 남았잖아ㅋㅋㅋ 사왕이 깬다에 내 부랄 건다

-백왕 세력이 커지면 더 문제 아니냐 근데

-진짜 그럼 좆될 거 같은데

-오늘부터 집에 백왕 사진 걸어놓는다

-미친새끼.......

*

탐욕과 함께 황금 심연을 벗어났다.

이어 원래 있던 지하 미궁으로 돌아오자 주변이 휑했다.

‘아이작과 이자벨라는 어디 갔지?’

아무도 없다.

당연히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건만.

하지만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핏자국?’

사람은 없고, 대신 핏자국만 있다.

분명히 사람의 피였다.

그럼 아이작과 이자벨라가 위험에 처한 걸까?

혹시 몰라 ‘탐지기’를 사용했지만 잡히는 게 없었다.

확실한 건 전투가 벌어진 것 같다.

격렬한 전투까지는 아니지만 핏자국을 보건대 습격이라도 당한 형태다.

‘습격을 당했다. 그리고 도망갔다.’

다행스럽게도 피의 양이 즉사할 정도의 양은 아니었다.

누구의 피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명의 피다.

습격을 당하고, 자리를 피한 게 분명하다.

‘누가?’

내가 황금 심연에 있는 동안 지하 미궁에 입장한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 중 하나. 누굴까?

그라시아는 검성에게 도전하고 후퇴했다. 제국 삼검이라 칭한 존재는 아마도 은여우 가면일 터였다.

그 둘을 제외한 누군가가 더있다.

‘미궁 상인에게서 필요한 물건을 사야겠군.’

도망간 방향 정도는 파악했지만 피가 계속 이어져있진 않다.

무작정 찾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기약없이 찾는 것보단 미궁상인에게서 추적 관련 도구를 사는 게 훨씬 현실적이었다.

-미궁 상인이 곧 나타날 겁니다. 미리 가서 대기하시죠.

“어디서 나타날지 알고 있나?”

-짐작은 갑니다. 워낙 오랜 시간 이곳에 있다보니······.

다행이다.

하기야 황금 고블린처럼 미궁에 익숙한 존재는 없을 것이다.

그중 대장격인 탐욕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탐욕이 앞장서며 나아갔다.

그렇게 한시간 가량을 걸어나가 멈춰서자.

《‘지하미궁 상인’이 568.1199에 나타났습니다!》

··· 바로 앞에 미궁 상인, 자판기가 나타났다.

놀라운 일이었다. 정말 정확하게 위치를 특정해낸 것이다.

-황금 티켓을 넣으면 문이 열릴 겁니다. 하지만 저도 그 이상을 알지 못합니다.

더 설명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듯 탐욕이 말했다.

직접 황금 티켓을 미궁 상인에게 넣어본 적이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딱히 미안해할 일은 아니다.

어깨를 으쓱하며 천천히 탐욕에게서 받은 황금 티켓을 자판기에 집어넣었다.

그 순간.

《‘탐욕의 황금 티켓’을 사용했습니다.》

《‘히든 이벤트’가 발생했습니다!》

《‘미궁 상인’의 판매목록이 바뀝니다.》

《‘검성 라일리’에게로 향하는 ‘황금률의 문’이 열렸습니다.》

문이 열리고, 상인의 판매목록도 바뀌었다.

그리고 그 판매목록을 확인한 순간.

‘······ 이게 진짜였군.’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구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아이템들.

그것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유일급 도안

지금까지 보여줬던 ‘미궁 상인’의 판매목록은 맛보기였다.

아니,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것에 비하면 맛보기 수준도 되지 않았다.

가짜다. 진짜를 숨기기 위한 떡밥과 다를 게 없다.

‘자판기에 티켓을 넣는다는 행위 자체를 생각하기가 어렵지.’

이벤트.

아마도 미궁 상인이라 이름 붙은 자판기에 티켓을 넣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리라.

지상층에서도 상인에게 산 ‘미궁 티켓’을 다시 넣으면 이와 같은 이벤트가 발생할 가능성이 컸다.

‘넣는 티켓의 종류에 따라 급이 달라진다.’

당연히 넣는 티켓에 따라서도 바뀌는 목록이 달라질 테다.

지금 내가 넣은 ‘탐욕의 황금 티켓’은 무려 중첩 심연의 지배자에게서 얻은 것.

‘히든’이라 이름 붙을 자격이 있다.

지하 미궁을 찾아, 열 마리의 황금 고블린을 혼자서 독식한 뒤, ‘탐욕’을 상대로 이겨야만 얻을 수 있는 티켓이니까.

그게 가능할 확률이 몇 %나 되겠는가?

그러니, 이게 진짜다.

「히드라곤의 혼 - 100점」

「처형자의 혼 - 200점」

「황금용아병의 혼 - 400점」

「칼날사자의 혼 - 400점」

혼의 종류 네 종.

이 네 개 모두 구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종류의 혼들이다.

당장 히드라곤의 혼만 하더라도 나를 제외하면 판게니아에서 보유한 이가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물건이었다.

‘같은 혼으로 초월시킬 수 있지.’

뿐만인가.

이런 종류의 혼들은 대게 ‘유일급’ 아이템의 재료다.

구하기가 힘든 만큼 들어가는 재료로서의 급 자체가 격이 다르다.

무엇 하나 버리기 아깝다.

책정된 점수보다 더 높은 가치의 혼이라 자신한다.

하지만, 점수가 문제다.

여태껏 얻은 점수로는 절대로 구매할 수 없다.

‘탐욕의 마지막 대결에서 승리한 뒤 얻은 점수가 천 점.’

그러나 탐욕에게서 마지막으로 갈취한 점수가 있었다.

그게 무려 1,000점.

기존 점수와 합치면 1,350점가량.

네 종의 혼을 모두 구매하기에 넉넉한 점수다.

그렇다고 바로 지를 순 없다.

목록이 이게 다가 아니니까.

「탐욕의 낙인 - 500점」

「고난의 낙인 - 500점」

「포효의 낙인 - 500점」

「죽음의 낙인 - 500점」

낙인도 네 종.

낙인은 능력을 갖춘 문신이다.

그러나 낙인 자체가 워낙에 구하기가 어렵다.

아주 기초적인 낙인 말고, 특정 낙인의 기술을 계승한 ‘문신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있다면, 9할 9푼 9리의 확률로 사기꾼이다.

위의 네 종의 낙인은 모두 ‘특급 낙인’이었다.

낙인으로서 엄청난 가치를 지닌. 능력 자체도 출중한.

나 역시 이름만 들어봤지, 저 네 개의 낙인을 새길 줄 아는 문신사는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제대로 된 문신사에게 보이면 군침을 줄줄 흘리겠군.’

군침뿐이겠나.

흘릴 수 있는 건 전부 흘릴 것이다.

‘더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도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태양의 반지 - 300점」

「공허한 녹슨 철 반지 - 500점」

「오래된 계약의 반지 - 200점」

「깊은 총애의 반지 - 300점」

마찬가지로 구하기 힘든 반지들.

이 외에도 족히 20종은 더 있었다.

하나 같이 유니크하지만, 내 시선을 끈 건 그중 두 개뿐이었다.

「신록의 씨앗 – 500점」

「유일급 도안 – 1,000점」

‘······ 신록의 씨앗, 유일급 도안이라니.’

신록.

그 이름을 듣자마자 떠오른 도시가 하나 있다.

바로 ‘신록의 도시’라 이름 붙은 대도시.

숲과 관련된 이종의 종족들이 모여 사는 도시로서 그사이에 신록이라 불리는 거대한 나무가 있다.

만약 이 신록의 씨앗과 그곳의 신록이 같은 것이라면, 엄청난 자원이 분명하다.

급속성장과도 연계가 될 것 같기도 하고.

다만, 유일급 도안이 무엇의 도안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모든 유일급 도안과 대체된다는 뜻인가?’

유일급 아이템을 제작하기 위해선 도안이 필요하다.

재료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이 도안이다.

재료를 다 모아도, 도안이 없으면 제작할 수 없으므로.

‘만약 그렇다면······.’

꿀꺽!

나는 숨을 가다듬으며 목록을 재차 살폈다.

그리고 내가 가진 재료들을 확인했다.

이어 양쪽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를 반복했다.

손에서 땀이 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나······ 만들 수 있겠군.’

머릿속에 떠오른 유일급 장비 한 가지.

············ 그것을 만들기 위한 재료가 전부 있었으니까.

그동안 판게니아에 존재한다고 확인된 유일급 아이템은 총 15종.

그중 8종을 빌헬름에게 몰빵 했고, 산화했다.

하지만 그건 마왕의 특수성에 기인해서이지, 유일급 아이템은 그 하나하나가 천지개벽이다.

농담이 아니라 유일급 아이템 하나는 별 하나와 같은 가치다.

사람들이 유일급 장비에 목을 매는 이유가 있다.

하물며 지금 상황에서 유일급 장비를 착용한다?

레벨 10에 도달하는 게 세월아네월아 기약없는 지금 내 상태에서?

‘레벨 10을 찍고 초월하는 것보다 유일급 장비를 모으는 게 더 현실적이다.’

이 미친 경험치 덕분에 내 레벨은 6에 고정된 수준이었다.

탐욕과의 대결에서 승리했음에도 레벨업을 하지 못한 걸 보면, 7레벨로 가는 여정이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다.

10레벨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고.

언젠가는 닿겠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알 수가 없다.

······빌어먹을.

하여간, 차라리 유일급 장비를 두르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른다.

유일급 장비를 착용하면 그만큼 한계가 늘어나고 강한 적과 마주할 수 있을 테니.

더 강한 적과 싸워서 승리하면 레벨업도 빨라지기 마련이었다.

고로, 이 선택은 옳다.

‘황금용아병의 혼, 탐욕의 낙인, 공허한 녹슨 철반지, 유일급 도안. 이 네 개를 사야한다.’

유일한 걸림돌은 사야할 게 많다는 것이다.

정확히 2,400점이 필요하다.

내가 가진 점수보다 천점은 더 필요했다.

여기에 이자벨라와 아이작을 추적하기 위한 물건을 구매하는데 100점이 필요했다.

‘그라시아도, 은여우 가면도 실패했으니 시간은 조금 더 있을 거다.’

냉정하게 상황을 관철해본다.

아직 검성 라일리의 봉인은 4단계에 머물러있다.

5단계에 이르면 ‘심연 그 자체인 자’가 되지만 그라시아도, 은여우 가면도 이미 후퇴한 상태다.

물론 후퇴한 뒤 재정비하고 재도전할 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게 당장은 아닐 터.

사막여왕이 살짝 걸리기는 하는데.

여왕이 그라시아보다 더 강하진 않으리라 판단했다.

‘우선 둘을 구해야겠군.’

히든 이벤트로 등장한 황금 자판기는 유효시간이 무제한이다.

그리고 자판기를 열면 황금률의 문이 나타난다.

이자벨라와 아이작을 구하고, 점수를 구해 유일급 장비를 만든 뒤 도전하자.

생각을 정리한 즉시 탐욕에게 말했다.

“미궁 상인을 들어라.”

-제가 말입니······ 예, 당연히 제가 해야할 일입니다.

*

꽈아악!

이자벨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깨문 입술에선 피가 송글송글 맺혔다.

아이작과 함께 그녀는 도주 중이었다.

“먼저 후퇴하라니까!”

“······ 그쪽이나.”

아이작은 성녀를 엎고 연신 이자벨라에게 후퇴를 권했다. 미궁의 입장자들은 ‘후퇴’하는 순간 다시 대륙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둘 다 쇠고집이었다.

말로는 설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아이작은 이맛살을 잔뜩 구겼다.

“젠장, 대체 저 괴물은 뭐야? 왜 우리를 쫓아오는 건데?”

“사막여왕.”

“뭐?”

“······ 우리를 쫓아오는 건, 사막여왕.”

“사막여왕? 파이살메르의 여왕? 네 고향?”

일전 데미갓 특성 던전에서 나눴던 이야기를 기억해내고 말했다.

분명히 사막여왕이라면 파이살메르의 주인이다. 그리고 이자벨라는 파이살메르의 주민이었다.

이자벨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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