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74화 (74/317)

*

-이건 말도 안 된다······!

탐욕이 절망했다.

당연히 이기리라 생각한 게임에서, 연달아 패배하면 그야 절망할 만도 했다.

단순한 확률게임.

서로 누가 더 운이 좋느냐를 겨루는 싸움이라면, 나는 절대로 패배하지 않는다.

절대적인 가치로 찍어누르는 것?

그딴 수작 역시 내게는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이니까.

《히든 특성 ‘황금의 은총’이 발현됩니다.》

《홀 36.1% / 짝 63.9%》

확률이.

아무리 눈을 현혹시키고 감춰도 ‘황금의 은총’은 확률을 짚어낸다.

100%가 아니라고는 하나, 이만한 적중률이라면 충분했다.

《짝에 5,000의 가치를 베팅했습니다.》

《결과, 짝입니다.》

《보유한 가치가 37,000에 달합니다.》

7,000으로 시작해 어느덧 삼만칠천.

주화로만 따져도 삼억 칠천만 골드의 값어치다.

-······ 게임을 바꾸지.

탐욕이 백기를 들었다. 홀짝으로는 자신이 절대로 이길 수 없음을 인지한 것이다.

현명하다면 현명한 선택이다.

하지만 다음 게임 역시 별 다를 바는 없었다.

-다음은 위아래다. 내가 집어내는 골드가 얼마 이상인지, 이하인지 맞혀보아라.

홀짝 다음엔 업다운이라.

이 녀석, 사실은 진정한 의미에서 황금 고블린인 게 아닐까?

이곳이 카지노였다면 술수를 부리거나 사기를 치려고 유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탐욕은 순수한 의미에서의 겜블을 지향하고 있었다.

오직 압도적인 황금과 가치로 찍어누르는 형태.

물론 그래도 100%는 아니기에 여전히 안심은 할 수 없다.

짜르르르!

보물더미에서 엄청난 양의 금화가 허공에 떠오른다.

업다운을 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이다.

-자, 베팅해라. 5초 주마.

“올인.”

-······?

잠깐. 올인이라니.

탐욕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하는 놈이지?’

놈이 계속해서 승리만 해온 것은 아니다.

승리와 패배를 절묘하게 번갈아가며 하면서 놈은 계속해서 이득을 취해가고 있었다.

안전한 선에서 안전한 게임만을 지향하는 겜블러인 줄 알았건만.

올인?

-잘 생각해라. 모든 가치를 상실한 순간 남은 건 네놈의 허접한 몸뚱아리 뿐이니!

모든 걸 잃거나, 갖은 자만이 이곳에서 나갈 수 있다.

그리고 탐욕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영역에서 모든 것을 잃어본 적이 없다.

설령 아무리 운이 좋아도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게임이기에.

“올인.”

확정하여 말했다.

바꿀 의지 자체가 없다는 듯.

탐욕은 작게 미소지었다.

‘걸려들었구나.’

첫 게임은 손풀기다.

과연 놈이 이것을 맞출 수 있을까?

쿠릉! 쿠르르릉!

더욱 많은 금화가 허공에 떠오른다.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라면 절대로 모든 걸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숫자가.

-10억 골드. 위냐, 아래냐? 10초 주마.

잘 생각해서 답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잘 생각해보면 너무 뻔한 답이었다.

탐욕이 처음 지녔던 가치는 20만가량.

그중 황금의 정수와 탐욕의 항아리가 합쳐서 6만이다.

여기에 지금껏 배팅해서 가져간 가치가 3만.

도합 9만에 이르니, 보유한 골드만을 따지면 당연히 10억 골드 ‘아래’다.

다른 보물들이 아닌 순수 골드로만 게임을 진행하였으니 말이다.

-10, 9······.

“위도 아래도 아니다.”

탐욕이 미간을 찌푸렸다.

-······ 위도 아래도 아니다? 무슨 의미지?

“정확히 10억골드라는 소리다.”

탐욕은 내심 당황했다.

‘어떻게 알았지?’

관찰류 스킬은 자신의 앞에서 사용 불가능하다.

일일이 세어야 한다는 뜻인데, 인간이 10억 개의 금화를 10초 안에 세는 건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그 누구도 불가능하리라.

백만개도, 천만개도, 일억개도 아니 십억개다.

그걸 대체 어떻게 10초 안에 센단 말인가!

-확신하느냐?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답을 바꿀 기회를 주겠다.

“혀가 길군.”

-···정답······이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숫자’를 매기는 게임으로는 절대로 이놈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다음, 다음 게임을 하자.

더 고난도의 복잡한 게임을 할 필요가 있을 듯싶었다.

*

《10억 골드에 37,000의 가치를 베팅했습니다.》

《결과, 10억 골드입니다.》

《보유한 가치가 74,000에 달합니다.》

달달하다.

너무 달아서 이빨이 썩어버릴 것만 같았다.

‘황금의 정수.’

드디어 유일급 장비의 제작 재료가 내게로 왔다.

이제 놈에게서 뜯을 건 탐욕의 항아리뿐.

미궁 탐사는 어느덧 내 머리에서 지워졌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눈앞의 호구를 뜯어내는 게 더욱 중요했다.

‘황금의 은총만이 아니다. 내게는 대현자도 있지.’

히든 특성 황금의 은총과 더불어 내게는 대현자도 있었다.

확률과 함께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기능.

단순한 관찰류 스킬은 봉쇄되었으나, 제아무리 탐욕이라도 히든 특성은 봉쇄할 수 없었다.

홀짝과 달리 감추지 않고 진행한 업다운 게임에선 대현자의 기능이 절대적이었다.

10억 골드라는 정확한 수치가 눈앞에 떡하니 보였으니까.

-아, 아아······!

결국, 탐욕은 무릎 꿇었다.

《보유한 가치가 237,000에 달합니다.》

마지막 하나까지 탐욕을 쪽쪽 빨아먹었기 때문이다.

탐욕의 보물창고는 어느새 텅 비었다.

황금의 정수와 탐욕의 항아리, 모든 금화와 보물들.

그것들을 모조리 내가 쓸어온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만족할 내가 아니었다.

-내, 내 보물들이······!

“아직 걸게 하나 남았지 않느냐.”

-뭐가 남았다는 거냐?

“네놈의 몸.”

탐욕이라 이름 붙은 황금 고블린의 몸뚱아리가 아직 남아있었다.

그러자 탐욕이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

뭐 이런 탐욕스러운 놈이 다 있느냐는 듯이.

검성 vs 검성

탐욕은 생각했다.

여기까지 몰려본 적이 없어서 당황했을 뿐, 아직 하나가 남지 않았나.

가장 큰 가치를 지닌 것.

보유한 모든 것에 가치가 매겨졌지만, 아직 가치가 매겨지지 않은 유일한 것!

바로 ‘탐욕’ 그 자체였다.

이곳에 있는 모든 보물을 합쳐도 자신의 ‘가치’에는 비견되지 못하리라.

탐욕의 얼굴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부족하다.

“무엇이 부족하단 말이냐?”

-네놈이 보유한 가치만으로는 나와 게임을 할 수 없다.

“237,000으로도 부족하다?”

23만 7천.

23억 7천만 골드의 값어치다.

최소로 잡아도 말이다.

작은 도시를 사고도 남을 금액이, 부족하다?

탐욕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모든 것을 걸겠다. 그러나 그러면 네놈도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걸어야 할 것이다.

“서로가 모든 걸 걸고 뭘 하자는 거냐?”

-가치!

여전히 가치를 논했다.

하지만 이미 237,000의 가치를 무시한 순간부터 새로운 국면의 ‘가치’를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너와 나의 가치 그 자체를 걸고 내기를 하자꾸나.

“너의 가치와 나의 가치 중 누가 더 높을지 내기를 하자?”

-바로 그것이다. 네놈의 가치가 더 나갈지, 내 가치가 더 나갈지! 가치가 높은 쪽이 승리하는 것이다. 높은 가치를 지닌 자가 낮은 가치를 지닌 자를 정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탐욕은 자신했다.

이 내기야말로 자신이 질 수가 없는 게임이었다.

여기까지 자신을 몰아붙인 건 대단하다. 칭찬한다.

수많은 도전자 중에서도 처음 있는 일.

황금 심연에 닿았던 자 중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 터.

‘너의 승승장구도 끝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었다.

황금 심연의 지배자.

그 칭호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가치가 매겨지니까.

억겁의 세월 동안 ‘탐욕’이라 이름 붙은 황금 고블린은 자신뿐이었다.

심연 속 수많은 황금 고블린들도 갖지 못한 이름을 자신은 갖고 있었다.

왜겠나?

자신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이었다.

모든 보물을 탐하고 모아왔으며 오로지 순수한 ‘욕망’만을 갖고 임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심연과 하나가 되고, 심연 자체를 주름잡았으며, 그리하여 장악한 탐욕이라 불리는 자신이 고작 인간 따위보다 낮은 가치가 책정되겠는가?

한 번도 자신의 가치를 매겨본 적은 없지만.

‘나야말로 모든 황금의 왕이다.’

태초부터 황금은 가장 높은 가치로 취급되는 보물이었다.

그 황금의 왕인 자신의 가치는 당연히 세상에서 가장 높을 수밖에.

“서로의 가치는 어떤 식으로 책정되지? 기준이 무엇이냐?”

-걱정하지 마라. 나의 권능은 모든 것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잡아내니. 설령 그것이 신이라 할지라도 판단할 수 있다.

사기는 치지 않는다.

순수한 욕망에 의한 게임.

운과 감, 결단력을 시험할뿐이다.

‘그러니 승낙하거라.’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어디한번 자신있게 승낙해봐라.

그러나 아무리 운이 좋아도 이 ‘가치 게임’에선 통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가치가 판단기준이 된다.

그 어떤 운과 꼼수도 이 게임에 들어갈 여지는 없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게임.

과연 승낙할 수 있을까?

“흠······.”

-겁나느냐? 이해한다. 하지만 모든걸 걸라고 말한 건 너다. 네놈이 승낙하지 않으면 여태껏 이겨온 모든게 물거품이 될 것이다.

게임의 종류를 제안한 건 자신이지만, 게임 자체를 제안한 건 인간이었다.

몸뚱아리를 걸라고 말한 것 자체가 방아쇠가 됐다.

그러니 물러설 수 없다.

물러서는 순간 인간은 여태까지 게임하며 얻어온 모든 걸 잃는다.

승낙해도 그만, 승낙하지 않아도 그만.

탐욕은 이 구도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고민이 되는군.’

······ 그리고 그런 탐욕의 태도를 보며 나는 고민하고 있었다.

물론 저 자신만만한 태도는 시작할 때부터 그래왔으니 별반 신경은 쓰이지 않았다.

다만 ‘스스로의 가치’에 대한 명확한 판단 근거가 궁금할 따름이었다.

‘가치판단은 기준으로 무엇을 잡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무엇을 기준하느냐에 따라 가치도 달라지기 마련.

방금전까지의 모든 게임에서 가치가 ‘황금’을 기준에 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같은 가치판단기준을 잡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예컨대 ‘죽을 때까지 벌어들일 수 있는 황금의 양’ 따위를 중심에 두고 책정된다면 당연히 불리한 건 나다.

놈은 영원히 죽지 않고, 나는 언젠가 죽으니까.

그야 끊임없이 황금을 벌어들이는 탐욕이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놀랍도록 탐욕은 순수한 겜블을 해왔다.’

생각을 전환했다.

아무 카지노나 들어가도 기술은 쓰기 마련이었다.

눈을 현혹하고 사기를 치고 으름장을 놓는건 흔한 일이다.

그런데 탐욕은 정말 정석적인 겜블을 하고 있다.

적어도 겜블에 대한 욕망 자체는 지극히 순수하다는 뜻이다.

자신이 유리한 고지를 점할지언정, 사기를 치지는 않는다. 단순히 돈이 많고 게임을 마음대로 정하는 게 사기가 될 수는 없으므로.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이번에도 그러리라 믿어야하는 걸까?

‘심연의 지배자들은 오랜시간동안 굳어져있었다. 그것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아니, 나의 판단을 믿는다.

내가 보아온 모든 심연의 지배자들은 사고가 굳어있었다.

너무나도 오랜시간동안 심연에 있었기에 그 시간 동안 굳어진 사고는 절대로 부드러워지지 않았다.

한 번 정한걸 그대로 밀고가는 고집, 아집.

그런게 탐욕에게도 보인다.

허튼짓을 하지는 않으리라.

결론을 내렸다.

“좋다. 진행하지.”

-크하하하! 오냐, 진정한 가치의 승부를 내보자꾸나! 오랜시간동안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진정한 가치의 승부다! 기뻐하라, 환호하라, 자신을 갖거라!

쓸데없이 혀가 길다.

······이놈도 세렝게티 과인가?

*

그라시아가 한차례 목을 쓸었다.

‘빌어먹을 년이······.’

세아 성녀.

그년이 갑자기 자신을 공격해올 줄은 몰랐다.

육감에 의한 공격의 의도도 읽히지 않았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아무런 살의조차 없이 죽이려 한 것이다.

처음부터 경계하지 않았다면 위험할 뻔했다.

‘세아 성녀가 왜 살아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정상은 아니다.’

죽이려 했지만 찝찝해서 살려는 두었다.

성녀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는 건 여러모로 껄끄러웠다.

게다가 살려두면 제알아서 다른 미궁의 도전자들을 방해할 테니.

“······ 여기로군.”

그라시아는 천 개의 검으로 이벤트 몬스터를 사냥하며 티켓을 싹쓸었다.

천 개의 티켓을 모으자 길이 열렸고 마침내 ‘검성 라일리’가 있는 문앞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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