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69화 (69/317)

올리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모험, 역경, 모든 것을 좇을 만큼 올리버는 팬텀의 열렬한 팬이었으므로.

‘긴장하지 말자. 허드슨일 때처럼 행동하는 거야.’

올리버는 최대한 숨을 가다듬었다.

아픈 사람처럼 보이기 싫다.

그가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는 것도 싫었다.

그랬다간, 판게니아에서 세렝게티와의 약혼도 무산될지 모르는 일이다.

세렝게티에겐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르며, 사실 판게니아의 인간이 아니라는 점을 아직 말하지 못했으니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행히 팬텀은 자신의 병세를 아직 눈치채지 못한 기색이었다.

‘최대한 평범하게.’

그런데 평범하다는 게 뭐지?

오랫동안 외부의 사람을 만나지 않아서 평범하게 대하는 것이 뭔지 까먹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열렬히 추종했던 존재를 현실에서 만나게 된다는 건.

긴장하지 않으려고 해도 계속해서 긴장됐다. 전신이 떨렸다.

마치 꿈 같다.

팬텀이 여전히 자신의 눈앞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도움이 되어드리자. 내 모든 것을 불태워서라도!’

현실에서 이만큼이나 의욕을 느낀 게 몇 년 만일까.

올리버는 그간 그에게 도움만 받았다.

자신을 가둔 알을 깨준 건 팬텀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세렝게티를 다시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곤 영원히 후회만 하다가 죽었으리라.

정령을 얻어 희망을 본 것도, 그의 압도적인 위용을,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보며 의지를 다진 것도 모두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꺾이지 않고 물러서지 않으며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영웅의 면모.

본받고 싶다.

자신에게도 그와 같은 불굴의 의지가 있으면 좋겠다.

그러니 이제는 자신이 도움을 줄 차례였다.

올리버의 두 눈에 열의가 번졌다.

*

《활 숙련도가 10Lv(max)로 상승했습니다.》

《더 높은 숙련도 레벨을 달성하기 위해선 해당하는 클래스가 필요합니다.》

《‘급속성장’의 레벨이 2로 격상합니다.》

《‘제자’들의 능력치가 전반적으로 크게 향상됐습니다.》

《명성이 50상승합니다.》

며칠간 성에 머무르며 판게니아를 오가길 반복했다.

모두 미궁전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아이작과 이자벨라와 함께하는 수련도 잊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심연 미궁’이 열렸습니다.》

《‘심연 미궁’은 모든 워프와 연결됩니다.》

《입장을 위해선 1h의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이 소모됩니다.》

드디어, 심연 미궁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지구 곳곳에도 ‘워프’가 생성됐다.

판게니아에는 이미 존재하는 워프들에 강제로 연결되었다.

모든 워프에서 ‘심연 미궁’으로 향할 수 있게끔 말이다.

나를 비롯한 수많은 도전자가 준비를 끝마친 상태.

지체할 시간 따윈 없었다.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 1h를 소모합니다.》

《남은 잔여 시간은 968h 38m입니다.》

《‘심연 미궁’에 입장합니다.》

《‘심연 미궁’에 입장하여 무작위 ‘행동 조건’이 추가되었습니다.》

《고개를 5초 이상 숙이고 있으면 미궁에서 강제 퇴장됩니다.》

《‘행동 조건’은 매일 바뀝니다.》

미궁에 입장한 모든 이들에게 부여되는 조건!

‘까다롭군.’

겉으로 보기엔 쉬워 보이지만, 의식적으로 행동을 바로잡지 않으면 퇴장당하기에 십상일 것 같았다.

하물며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미궁에서 신경 써야 할 게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패널티였다.

그것도 매일 바뀌는 데다, 정말 사소한 행동에 제약을 걸어버리면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었다.

‘오히려 좋다.’

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나한텐 대비책이 있으니까.

《‘영원군주의 심장’이 심연 미궁의 무작위 조건을 하나 삭제합니다.》

《‘행동 조건’이 삭제됐습니다.》

일단 하나 지우고 시작하자.

미궁상인

썩은 물로 질척이는 바닥.

무언가가 썩는 고약한 냄새.

화아악!횃불에 불을 붙이고 주변을 둘러본다.

“······!”

아이작은 두 눈을 의심했다.

이자벨라도, 나도 마찬가지였다.

심연 미궁.

그 이름처럼 쉽지 않은 장소이리라 예견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이곳은······ 심연 그 자체로군.’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들이 주변을 가로막고 있다.

그리고 그 벽에는 수많은 종의 ‘손’이 연결되어 있었다.

손은 살아 움직였고, 잡히는 모든 것을 벽으로 끌어당겼다.

또한, 손에 저항하다가 찢겨나간 시체들로 바닥은 붐볐다.

장엄하며 괴이하기 짝이 없는 광경. 허나, 지체할 틈은 없다.

“둘 다 ‘행동 조건’이 뭐지?”

“양손을 3초 이상 맞잡으면 안 된답니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지 말라고······.”

역시 까다롭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걷는데 제약을 두는 조건은 아니라는 것.

“후계자님은 어떤 조건이십니까?”

“없다.”

“없을 수도 있습니까?”

아이작의 두 눈에 의아함이 생겼다.

“하지만, 있는 것처럼 행동할 거다.”

“아. 혼란을 주시려는 거군요?”

고개를 끄덕였다.

행동 조건. 들어보면 대부분 ‘~을 하지 마라’는 조건이 주류를 이뤘다.

나는 ‘영원군주의 심장’에 의해 조건이 삭제됐지만, 남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그렇다면 이걸 역으로 이용해 혼란을 줄 수도 있을 터.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오른손을 연속으로 휘두르지 말 것. 오늘은 이걸로 하지.”

자의적인 행동 조건이 추가된 순간이었다.

*

끝없이 펼쳐진 벽.

그 사이로 진창을 헤치며 걷자.

쉬이이이익-!

푹!

화살이 날아와 옆구리에 박혔다.

‘컥!’

순간 비명을 내지를 뻔했다.

“후계······.”

“쉿.”

하지만 검지를 코에 대고 둘을 침묵시켰다.

관통당한 옆구리가 미칠 듯이 쓰라렸지만 지금은 대처가 더 중요했다.

바람을 가르며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미처 대처하기도 전에 옆구리를 관통시킬 정도의 속도.

소리를 듣고 순간적인 기지로 몸을 틀지 않았으면 심장을 저격당했으리라.

‘트랩.’

사람이 쏜 게 아니다.

함정이다.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살피자 벽에 석궁이 설치되어 있었다.

어떤 간 큰 놈이 저 벽에 석궁을 설치할 생각을 했을까.

저 지점의 함정은 나로서도 의외였다.

“우리보다 앞서있는 트랩퍼가 있다. 그것도 상당한 레벨의.”

트랩퍼.

저건 분명 사람이 설치한 것이다.

연사 기능은 없지만 범위에 들어온 사람의 심장을 저격하게끔 설계되었다.

콸콸콸!

박힌 화살을 빼내고, 미리 준비해온 물약을 들이부었다.

꿀렁꿀렁 새어나오는 피가 멎자 상처에 새살이 돋았다.

“어떻게 저희보다 앞섰을까요?”

이자벨라가 상처부위에 붕대를 덧대며 물었다.

열리자마자 들어왔으니, 우리가 선두일 줄 알았다.

그런데 앞서며 함정을 설치한 놈이 있다.

그것도 우리 모두의 감각을 속일 정도의 실력을 지닌.

“입장 위치가 우리 앞이거나, 탈것이라도 준비한 게 아니고서야······.”

아이작이 답했다.

미궁의 입장 위치는 무작위다.

물론, 그렇다고 미궁의 중심부로 입장되진 않겠지만 미세한 차이가 있을 수는 있었다.

‘귀찮게 됐군.’

트랩퍼는 상대하기 가장 귀찮은 클래스 중에 하나다.

특히 이런 한정적인 공간에선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고레벨의 트랩퍼라면 단순히 영역을 밟는 게 아니라 시간차를 두고 공격해오는 함정을 설치할 수도 있었다.

“이자벨라는 후방을, 아이작은 전방을 주시한다.”

“예.”

“예.”

*

함정이 많다.

그러나 한 번 유념하면 목숨이 위협받을 정도는 아니다.

고심하여 설치하기보단 양으로 승부를 보고 있었다.

말인 즉, 우리가 따라잡고 있다는 걸 안다.

설치하는 속도보다 그것을 뚫어내는 속도가 훨씬 빠르기에 발목을 잡을 용도로 대충대충 설치하고 있는 것이다.

‘잡았다.’

저 멀리서 보이는 한 무리.

마침내 따라잡았다.

계속해서 함정을 설치해대는 두명과 그 둘은 보호하는 전사 한 명.

“버, 벌써 따라잡았다고?”

“뭐야, 저 새끼들!”

두 트랩퍼가 당황하여 소리쳤다.

자신이 설치한 함정이 파훼당하고 있다는 걸 진즉 눈치챘을 테니 당연한 반응이다.

“깨작깨작 함정이나 설치하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다. 나만 믿어라.”

웃통을 벗은 까무잡잡한 피부의 전사.

머리를 일자로 따고 배틀 엑스를 들고 있는, 영락없는 바바리안.

【Lv.9】

레벨도 높은 강자였다.

그러나 저 머리 스타일을 보면 분명히 사막의 대전사다.

머리를 일자로 땄다면, 사막여왕 측근의 호위병이라는 의미였다.

그들을 바바리안이라고 불렀으니까.

“······ 음, 잠깐. 익숙한 얼굴이 보이는군.”

바바리안의 시선이 한곳에 머물렀다.

이자벨라.

이윽고 그녀를 확신한 바바리안이 크게 웃어버렸다.

“하하하! 뱀공주, 도망자가 여기에 있었군!”

“도살자 야구모······.”

“성각자이니 뭐니하는 놈과 눈이 맞더니 결국 도망간 게 이곳이냐?”

“네가 왜 이곳에 있지?”

이자벨라가 차갑게 물었다.

그러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막에서 여왕을 수호해야할 바바리안이 왜 심연 미궁에 있는 건가?

“이곳이 너의 무덤이다, 뱀공주. 여왕님을 배신한 배신자여!”

문답무용이었다.

불도저처럼 돌진해오는 바바리안을 보며 이자벨라가 말했다.

“···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그러도록.”

같은 9레벨.

예전이었으면 말렸겠으나, 그녀 역시 성장한 뒤였다.

“뱀공주! 사막에서도 나를 이기지 못했는데 지금이라고 결과가 달라질 것 같은가!”

“나는 뱀공주가 아니다. 쓰레기.”

둘이 맞대결을 하는 사이 나와 아이작은 동시에 바바리안을 스쳐 달려나갔다.

애초에 바바리안도 우리에게 관심이 없었다.

바바리안이 자신들을 지켜주지 않자 두 트랩퍼가 당황했다.

“뭐, 뭐야!”

“야구모! 비싼 돈을 주고 고용했으면 제값을 해야할 거 아니냐!”

“FUCK! 로그아웃!”

“로그아웃!”

로그아웃하면 강제퇴장 된다는 규칙을 이용하려는 수작이다.

그렇다면 바바리안 야구모와 달리 이 둘은 플레이어라는 뜻.

곧이어 그들의 모습이 겹쳤다.

이곳 판게니아인과 지구인의 모습이 번갈아가면서 나타나고 있었다.

동시에 그들의 등 뒤로 워프가 생성됐다.

워프는 둘을 빨아들이려고 했으나.

캬캬?

어느덧 내 어깨 위에 앉아있던 헬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어 헬의 전신을 감싼 연기가 붉게 물들었다.

뚝!

순간 둘을 빨아들이던 워프가, 멈춘다.

“뭐, 뭐야. 왜 로그아웃이 안 돼?”

“왜, 왜 이래! 장난해?”

이상한 일이었다.

로그아웃을 하면 미궁에서 강제퇴장이 되어야 정상이다.

등 뒤로 생성된 워프가 몸을 빨아들여 원래의 위치로 강제이동 시키는 원리였다.

그런데 둘은 여전히 트랩퍼의 모습으로 바닥을 기었다.

‘헬은 범위 안의 워프를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헬은 워프를 잘라내는 것뿐만이 아니라, 불허하고 승낙하는 기능도 갖추고 있었다.

다만, 아무 워프나 잘라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몇 가지 실험을 해본 결과 헬은 ‘주인 없는 워프’를 잘라낼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범위 안에서 워프가 발현되면 그것을 조작하는 것도 가능했다.

바로 지금처럼.

놈들이 워프를 타는 것을 헬은 ‘불허’했다.

‘심연에선 워프를 타지 않으면 로그아웃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한 가지 정보를 더 얻었다.

이곳은 심연이다.

일반적인 대륙과 달리, 여신의 손이 크게 닿지 않는 곳이었다.

워프를 타고 본체를 원래 있던 곳, 대륙으로 옮기지 않으면 제대로된 로그아웃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로그아웃을 하면 자동으로 워프부터 생성되는 것이다.

터벅.

터벅.

천천히 다가가자, 두 트랩퍼의 눈에 공포가 깃들었다.

“사, 살려줘!”

“왓 더 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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