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65화 (65/317)

불결함의 마창도 린치 길이가 길고, 투척용으로 쓸 수는 있지만, 단발성이다.

별걸음쟁이나 원죄의 지팡이는 마법사가 쓰기 좋은 장비였다.

남은 건 하나.

《‘샤티로스의 공포’를 선택했습니다.》

【샤티로스의 공포(신화)】

-공포의 화신 샤티로스가 애용하던 활.

-활시위에 건 화살에 ‘공포(10Lv)’ 효과를 부여한다.

-‘공포(10Lv)’에 빠진 적은 시야를 잃고 무작위 능력치가 10 하향된다. 공포가 풀리기 전까지 피격자는 어떤 능력치가 떨어졌는지 확인할 수 없다.

-민첩+5

-착용조건 : 활 숙련도 8Lv, 힘 80

짧지만, 강력하다.

피격당한 대상에게 공포 효과를 건다.

그것도 일반적인 공포가 아니라, 실명과 능력치 하락을 옵션으로 달고있는 격이 다른 공포다.

이만한 디버프 효과는 거의 없다.

저주술사가 메인 스킬을 초월시킨 것과 비슷할 정도였다.

하물며 저주가 풀리기 전엔 무슨 능력치가 떨어진 건지 확인도 할 수 없다니.

이름 그대로 공포가 따로 없었다.

‘활 숙련도를 올려야겠군.’

문제는 착용조건이었다.

활 숙련도.

웨폰 마스터와 손재주를 더해도 6레벨. 2레벨이 부족하다.

물론, 걱정은 하지 않았다.

히든 특성 ‘손재주’가 있는 이상, 8레벨 정도는 순식간에 찍을 테니.

‘찬란한 영웅의 성좌가 남긴 보상.’

이제 진짜로 마지막이었다.

찬란한 영웅의 성좌. 그가 ‘의지’와 ‘던전’을 제거하는 조건으로 내건 대가!

메인 퀘스트를 깨고 보상목록을 기다릴 때 만큼이나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 계십니까?”

똑똑.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문앞에 섰다.

한 명이 아닌 다수.

“들어와라.”

내가 허락하자, 문이 열리며 세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작, 이자벨라, 그리고 세렝게티.

“셋 다 무슨 용무지?”

“그게······.”

상기된 얼굴.

무언가를 강하게 갈망하고 욕망하는 표정들이다.

이어 세렝게티가 말했다.

“저희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

잠깐.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제자라니. 잘못 들은 건가?

“세렝게티. 너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지 않느냐?”

마왕의 저주가 다시 시작되기까지 앞으로 기껏해야 5시간.

와이저 후작과 허드슨과 보내기에도 아쉬울 시간이다.

그런데 나를 찾아와선 대뜸 제자로 받아달라고?

“‘의지’와 싸우며 후계자께서 저희 몸을 움직이실 때 깨달았습니다. 저희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가르침을 주십시오.”

“······ 부탁드립니다.”

강해지고자 하는 욕망은 이곳 판게니아를 살아가는 이라면 모두가 갖고 있는 욕구다.

게다가 자신이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 남이 더 잘 활용한다면, 그야 충격을 받을 만도 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제자는 생각도 못 해본 일이기에.

《‘연계 퀘스트(1) : 제자 육성하기’가 도달했습니다.》

《가르침을 주어 제자를 육성하십시오.》

《가르침의 결과에 따라 명예와 결속력이 오릅니다.》

《이후 ‘제자’의 업적에 따라 ‘스승’의 명예가 상승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제자’의 악명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으니 제자를 받을 때 주의하십시오.》

《‘연계 퀘스트(2) : 세력화’와 이어집니다.》

‘명예 퀘스트라.’

이건 한 마디로 명예 퀘스트다.

그것도 흔치 않은 연계 명예 퀘스트였다.

마침 헬의 먹이로 명예를 올릴 필요가 있었는데, 잘됐다.

짧게 고민한 나는 들고 있는 활을 바라보았다.

‘샤티로스의 공포.’

이걸 사용하려면 활 숙련도를 올려야 한다.

그런데 마침, 활 숙련도를 올릴 제물들이 제스스로 나타난 것이다.

《퀘스트를 승락했습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명예작에 활 숙련도까지 올릴 절호의 기회.

이런 달콤한 꿀과도 같은 기회를 차버릴 리가.

‘왜 웃으시는 거지?’

‘가, 갑자기 한기가!’

‘······!‘

셋은 동시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옥의 입구에 발을 들였다는 것도 모른 채.

*

《띠링!》

《새로운 공지사항이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지구와 판게니아를 잇는 ‘심연 미궁‘ 등장까지 240시간.》

《‘심연 미궁‘에 입장하기 위해선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이 필요하며, 입장한 시간만큼 소모됩니다.》

《기타 ‘심연 미궁‘에 관련한 내용은 업데이트 된 공지사항을 반드시 참고해 주십시오.》

마왕

영주성의 넓은 외각 쪽의 벽에 란돌프를 포함한 네 명이 모였다.

“지금부터 한 명씩 돌아가면서 내가 쏘는 화살을 열 번 피한다.”

간단하기 그지없는 주문.

이거 설마 테스트인가?

셋은 긴장한 채 란돌프가 든 활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세렝게티. 너부터다.”

호명을 받은 세렝게티가 나섰다.

슉-

즉시 시작된 시험.

평범한 훈련용 활과 연습용 화살이다.

처음엔 피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적당히 각을 잡고 쏘는 화살이야 눈감고도 피할 수 있었으니까.

‘나를 너무 물로 보시는군.’

세렝게티는 내심 미소를 지었다.

처음 의지의 방에서 란돌프에게 몸을 맡겼을 때 얼마나 전율했던가.

그녀는 별을 먹어 초월한 초월자였다. 잠자는 시간마저 줄여가며 자신을 채찍질하고 단련해온 기사였다.

그런데도 란돌프의 제어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교하기 짝이 없는 움직임과 연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스킬과 위치이동을 보고 있노라면 이게 정말 자신의 몸이 맞는지 의심조차 들 지경이었으니.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어.’

자신이 개구리인 것조차 모르고 우쭐했다.

빌헬름.

기사왕이 보기에 얼마나 자신이 개구리 같아 보였을지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그래서 도시에 도착한 이후로도 계속 그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허드슨과의 시간도 물론 중요했지만······.

-허드슨. 나 참을 수가 없어.

-뭐, 뭘? 뭘 못 참는다는 거야?

-이대로면, 나······!

-세렝게티!

-나 터져버릴 것 같아!

-그, 그럼 참지 마.

-정말? 그래도 돼?

-갑작스럽지만, 마음의 준비는 됐어. 이제 우리가 드디어 하나가 될······.

-고마워. 나 다녀올게!

-······응?

세렝게티는 참지 못하고 결국 방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다른 두 명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셋이 모이니 자연스럽게 경쟁심리가 생기기 마련.

세렝게티는 의지를 불태웠다.

‘활 다루는 실력도 제법이시긴 하지만, 이 정도쯤이야!’

솔직히 처음에는 의아했다.

갑자기 활을 쏘겠다고?

그런데 웬걸.

검만 잘 쓰는 줄 알았는데 활도 제법 다룰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정교한 검술에 비하면 그냥 ‘기본’은 할 줄 아는 수준이었다.

‘여섯 번, 일곱 번!’

세렝게티는 뛰어난 눈썰미와 전광석화의 속도로 화살을 피하고 있었다.

돌아가면서 열 번씩 피하는 게 란돌프의 주문.

모두 피해서 자신의 실력을 확실하게 새겨주리라.

‘열 번!’

주먹을 쥐었다.

열 번을 모두 피한 것이다.

“다음.”

즉시 다음 순번으로 넘어갔다.

세렝게티가 씨익 웃고는 이자벨라와 아이작을 바라봤다.

어떠냐는 듯.

너희들도 자신처럼 할 수 있겠냐는 듯.

그러나 이자벨라와 아이작도 모두 열 번을 피해내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다음.”

······ 끝이 아니었나?

한 번 도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하는 모양이다.

다시 세렝게티가 영주성의 벽 외곽에 섰다.

슉-!

퍽!

외벽에 박힌 화살.

식은땀이 났다.

간발의 차이. 가까스로 피했기 때문이다.

‘더 정확해졌어······?’

갑자기 실력이 향상됐다.

아니, 어쩌면 실력을 감추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장장 3시간.

셋은 돌아가면서 쉬지 않고 란돌프의 화살을 받아냈다.

“본격적으로 가지.”

이후 란돌프가 훈련용 활을 바꿨다.

검은색의 장궁. 묘하게 기분 나쁜 기운을 흘려내는 활이었다.

하지만 훈련용 활보단 훨씬 강력해보였다.

저 활에 건 화살에 맞으면 그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한 대씩 맞고 시작하겠다.”

갑자기 한 대씩 맞고 시작한다?

셋이 의아하게 바라봤지만, 그 의혹은 금세 풀렸다.

툭-

바로 앞에서 화살을 짧게 쏘아내어 약한 타격감만 준 것이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는데.

<스아아아아아!>

“······!”

순식간에 시야가 어두워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몸도 왜인지 둔해진 느낌.

······설마?

“그 상태에서 화살을 피하도록.”

그제야 셋은 무언가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

<‘활 숙련도’가 7레벨로 상승합니다.>

<‘활 숙련도’가 8레벨로 상승합니다.>

<‘샤티로스의 공포’ 착용 제한을 만족했습니다.>

<‘활 숙련도’가 9레벨로 상승합니다.>

반나절 간 주야장천 활을 쏘아댄 결과 숙련도가 9레벨까지 올라갔다.

중간에 한 번 활을 바꾼 건 그때 마침 활 숙련도가 8레벨로 격상한 탓이었다.

이 속도면 며칠 내로 10레벨도 가능할 것 같았다.

“오늘은 여기까지하지.”

“헉! 헉! 헉! 커허어어억!”

“하악! 하악!”

아이작과 이자벨라가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온 몸에 상처가 안 난 곳이 없었다.

극한의 상태에서 극한까지 몸을 몰아붙인 결과.

그 와중에 세렝게티는 마왕의 저주가 시작되어 다시 영주성으로 끌려갔다. 저주가 시작되기 전까지 사력을 다했으니 참 열정 하나는 대단하다고 해야할지.

《‘제자’들의 전반적인 능력치가 상승했습니다.》

《명예가 30 오릅니다.》

노력의 결실은 제법 달콤했다.

하루만에 명예 30이라니.

어지간한 명예작 퀘스트 두 개는 해야 달성할 수 있는 수치였다.

나야 진짜 수련이 아니라 숙련도작을 한 것 뿐이었으니, 그야말로 일타쌍피.

영주성으로 돌아가서 가볍게 샤워를 한 뒤 방으로 돌아왔다.

‘중간에 뭐가 떴던 것 같은데.’

천으로 물을 닦아내며 잠시 고민을 해본다.

모든 집중을 활에만 쏟고 있어서 다른 곳에 신경쓸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중간에 뭔가 떴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곧이어 눈앞에 ‘공지사항’이라는 문구가 작게 떠올랐다.

‘공지사항?’

이런 게 있었던가?

플레이어가 된 이후 공지사항은 본 적이 없다.

아니, 게이머였을 때도 근 1년간은 공지사항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공지사항을 확인하자 곧 관련된 내용이 주르륵 떠올랐다.

《공지사항 - ‘심연 미궁’이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234시간 11분 뒤 판게니아와 지구를 잇는 ‘심연 미궁’이 등장합니다.

-‘심연 미궁’에 입장하기 위해선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이 필요합니다. 조각은 입장한 시간만큼 차감됩니다.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이 부족하면 강제로 퇴장됩니다.

-재입장시 처음 입장한 장소로 되돌아갑니다.

-‘심연 미궁’에선 시련과 경쟁을 통해 다양한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낮은 확률로 ‘미궁 상인’이 등장합니다. 미궁 상인은 한정적인 특별한 물건을 판매하며, 등장할 경우 그 위치가 모든 입장자에게 공지됩니다.

-‘심연 미궁’의 끝에 있는 ‘미궁의 지배자 – 검성 라일리’를 제거하면 클리어가 완료되며, ‘심연 미궁’이 종료됩니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새로운 미궁의 업데이트.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검성 라일리?’

미궁의 지배자라 일컬어지는 존재의 이름을 확인한 순간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 것이다.

검성 라일리.

판게니아의 세계관을 설명할 때 한 번씩 등장하는 이름이었으니까.

태초의 검이라 불렸으며, 무수히 많은 무공을 세웠으나, 심연에 삼켜진 자.

현 대륙에서 가장 강력하다 알려진, 백왕조차 껄끄러워했던 아르혼 제국의 먼 조상이자 건국의 기틀이 된 영웅 중 한 명이었다.

그 이름이 왜 갑자기 ‘심연 미궁’에서 튀어나온단 말인가.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만 있으면 입장할 수 있다. 플레이어가 아니어도 된다는 소리다.’

플레이어만 입장할 수 있다는 대목은 어디에도 없다.

입장조건은 그저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을 보유할 것.

말하자면 크람델의 괴물들도 입장하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는 뜻이다.

‘설마 제국에서······?’

내심 아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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