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진대.
콰직!
아이작의 벼락과도 같은 돌려차기에 복사체의 목이 꺾인다.
무기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몸을 쓰는 싸움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의지 역시 마찬가지다.
의지 또한 싸움에는 이골이 나 있거늘.
절대로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거늘······!
놈은 한계를 끌어내고, 넘어서고, 바닥까지 긁어서 자신에게 맞서고 있다.
경이로움을 넘어서 예술과도 같은 움직임에 의지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투······신.’
놈은, 싸움의 신이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을 이토록 몰아붙일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넌··· 뭐냐. 뭐냔 말이다!!”
아이작과 이자벨라의 분신체를 잃은 의지가 비명을 내질렀다.
이제, 결과는 물 보듯 뻔했다.
절대로 질 수 없는 게임을 졌다.
더욱 짜증나는 건, 분신체를 본체로만 죽이고 있었다.
지금처럼.
그의 앞에 세렝게티의 본체가 나섰다.
3:1로 압살할 수 있음에도 1:1로 붙어보자는 것이다.
어디 한 번 발악해보라는 것이다.
‘이런 개 같은······!’
*
툭-
의지가 복사한 세렝게티의 목을 잘라냈다.
그 순간 정신이 돌아오며 ‘의지’가 절망하기 시작했다.
-아아아!
의지의 몸이 찢어지고 검은 체액이 줄줄 흘러나온다.
마지막 게임에서 패배한 자의 말로.
자신이 주도했으며 자신했기에 모든 걸 걸었지만, 놈이 자신있어하는 ‘게임’은 나 역시 자신있어하는 분야였다.
《‘데미갓의 의지’가 파멸합니다.》
《누적된 ‘오염된 명예’가 던전을 침식합니다.》
오염된 명예.
이곳에 도전한 자들이 죽으며 남긴 명예를 놈이 모조리 흡수했던 모양이다.
-다, 죽어라!
정말 끝까지 구질구질한 놈이었다.
놈의 체액과 오염된 명예는 던전의 모든 것을 녹여나갔다.
가만히 있으면 그대로 침식당한다.
‘워프는 열려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의지가 열어둔 워프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의지가 죽은 이상 워프의 지속시간 역시 짧아졌을 터.
“정신차려라.”
“아.”
상기된 표정으로 서있던 세 명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이어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깨달음을 상기하기엔 여의치 않은 상황.
주변을 파악한 세렝게티가 입을 열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합니다.”
세렝게티의 말대로였다.
내 품에서 무언가가 빛나지만 않았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천상의 정령알’이 ‘오염된 명예’를 흡수하기 시작합니다.》
그건 바로 천상의 정령알이었다.
일전 정령의 탑에서 ‘혼돈’의 끝을 보고 구한 정령알.
명예와 악업을 먹어 성장하던 그 알이, 의지가 흘리는 ‘오염된 명예’를 빨아들이며 흡수하기 시작했다.
-네놈은······ 끝까지! 머, 멈춰라! 아, 안 돼!
의지가 발악하는 게 더 심해졌다.
놈은 죽음을 넘어선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이윽고 의지가 품은 모든 ‘오염된 명예’를 천상의 정령알이 빨아들였다.
그 순간.
쩌적!
팬텀을 죽여라!
-놀랍군.
백성전의 성좌들이 결과를 보고 짧게 평했다.
제아무리 찬란한 영웅의 성좌가 남겨둔 찌꺼기라고는 하나, ‘의지’의 능력은 어찌됐든 그의 것이었으니.
영웅을 다루고, 움직이며, 한계를 뛰어넘게 하는 일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던 희대의 천재.
그 천재의 재능을 어느정도 이어받은 ‘의지’가 저토록 허무하게 무너질 줄은.
그저 놀랍다는 말 외엔 할 말이 없었다.
“······ 확실히, 대단하군.”
찬란한 영웅의 성좌 역시 어이가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아예 상대가 안 됐다.
그의 셋을 동시에 관조하며 움직이는 기술은 절로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뿐만인가?
본래 인간은 자신의 능력의 절반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는 세 명의 능력을 120%까지 끌어올렸다.
그들의 능력을 면밀하게 파악해놓지 않으면 불가능한 기예다.
아이작, 이자벨라, 세렝게티.
그들 자신보다도 그들을 더 잘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가?
본인보다 본인을 더 잘 안다는게?
‘규격외의 신비를 얻은 게 요행은 아니었다는 거로군.’
실력이 있다.
의외성도 있고.
그래서 다른 자들보다도 그에게 더 시선이 갔다.
백성전의 성좌 모두가 찬성하여 보상을 올려준 적은 여태껏 한 번도 없었으니까.
까탈스럽기 그지 없는 성좌들이 모두 찬성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그게 요행일 리 없건만.
‘성좌들조차 반반이라 생각한 것을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비록 내기에는 졌으나 마음은 시원하다.
한점 의혹 없이 패배했으니 약속대로 ‘특별한 보상’을 줄 생각이었다.
“흠, 저건······?”
계속해서 그를 지켜보던 찬란한 영웅의 성좌는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모든 성좌가 동시에, 새로이 나타난 ‘무언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든 시선을 끌 정도의 무언가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어난 존재를 확인한 성좌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저건······!”
-허······!
*
그 순간, 모든 플레이어의 눈앞에 떠오른 두줄의 글귀.
《‘데미갓 특성 던전’이 클리어되었습니다.》
《명예의 전당이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그것은 모두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데미갓 특성 던전? 그 쓰레기 같은 던전?”
“거길 누가 클리어했다는 거야?”
“설마?”
모두가 혐오하며 멀리하는 최악의 파티던전.
데미갓 특성 던전이 클리어되었다는 말.
하지만 그곳은 모두가 포기한 던전이다.
팬텀도, 그라시아도, 마스터도, 그 외의 모든 최상위 랭커들이 도전했다가 욕을 내뱉으며 나오는 게 바로 데미갓 특성 던전이었다.
깨라고 만든 곳이 아닌데, 거길 대체 누가?
순간 모든 플레이어들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한 사람.
“란돌프!”
“미친······!”
“거길 진짜 깼다고?”
“말도 안 돼!”
믿기지 않지만 진짜였다.
란돌프는 ‘메인 퀘스트 6 : 파티 던전 클리어하기’의 전당 1위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었으니까.
이번에도 압도적인 차이로.
그렇다면 데미갓 특성 던전을 클리어한 게 란돌프라는 의미.
데미갓 던전과 같은 특수하고 특별한 장소는, 클리어하면 ‘역사’로 기록되어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공지가 된다.
그러니 거짓일 리는 없었다.
“······ 팬텀을 내 앞으로 끌고와라. 저항이 심하면 죽여도 좋다.”
“예스, 마스터.”
그 공지를 보자마자 마스터는 ‘그림자’를 움직였다.
던전을 깼다면 아직 그곳에 있을 것이다.
란돌프를 잡을 절호의 기회였다.
제아무리 란돌프가 날고 긴다고 해도 절대로 그림자들을 상대할 순 없다.
그림자는 별을 먹은 초월자조차도 사냥하도록 훈련된 강자들이니.
‘정말로 그곳을 클리어할 줄이야······.’
그림자가 사라진 뒤, 마스터는 살짝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팬텀이 ‘데미갓 특성 던전’을 클리어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빌헬름으로도 실패한 장소를 굳이?
‘보여주겠다는 거냐? 너와 우리의 차이를?’
이제는 팬텀이 무슨 생각을 갖고 움직이는지 알 것 같았다.
놈은 보여주려는 것이다.
격의 차이.
그들과 자신간의 클라스의 차이를.
그들이 몇 년을 준비하고 뭘 하든지, 절대로 자신을 넘어설 수 없다는 걸 재인식시켜주는 것이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빌헬름을 플레이하던 그때처럼.
빠드드득!
‘재수없는 새끼.’
마스터는 팬텀이 싫었다.
재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서만 고고한 학처럼 구는 게.
플레이어가 되고 나서도 그건 변하질 않았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플레이어가 된 직후 당황하며 죽어나가기 일쑤다.
제대로된 도움을 받지 않으면 초반에 죄다 죽어버린다.
판게니아는 홀로 살아가기엔 녹록치 않은 곳.
그들은 살기 위해 뭉치기 시작했고, 무리를 이끌며 마스터는 왕이 되었다.
그런데 팬텀은 그런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듯 혼자 모든 걸 해내고 있었다.
덕분에 명예의 전당 순위가 또 뒤로 밀려났다.
전당의 순위가 밀린다는 건, 결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자신의 위엄이 훼손되었다는 뜻이다.
모든 플레이어가 전당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제거하지 않으면 내 자리까지 위협할 거다.’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영웅들의 자리도 위협하기 시작할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 둘 란돌프의 이름을 부르짖고 따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지리라.
그 전에 제거해야한다.
제거하지 못하면 잡아들이기라도 해야했다.
마스터가 리모콘을 들어 벽면에 걸린 TV를 틀었다.
-괴물이 두렵나요? 우리 워리어만 믿으세요!
-슈퍼 히어로! 슈퍼 히어로! 지구를 지키는 슈퍼 히어로!
-‘타차원 커뮤니티’에서 지금 바로 확인하세요!
모든 채널과 매체가 디맨션 워리어의 이야기로 도배되고 있었다.
영웅의 이미지를 쌓고 만드는 건 그의 역할이었다.
이미 3년 전부터 밑바닥부터 작업을 해왔기에,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공든 탑.
자신이 만든 제국을, 놈이 무너트리게 할 수는 없었다.
‘제거하거나, 잡아들이거나, 하다못해 정체를 밝혀낼 수만 있다면······.’
셋중 하나만 이루어져도 자신의 승리다.
허나, 놈이 더 위로 올라오기 전에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래도 걱정은 없었다.
그림자들이 제대로 포착해내기만 한다면 놈에게 미래는 없을 테니.
‘이번에는 절대로 안 놓친다, 팬텀.’
*
《‘메인퀘스트 6 : 파티 던전 클리어하기’를 완료했습니다.》
《내용을 정산합니다.》
《모두가 놀랄만한 파멸적인 결과입니다!》
《총점 350점》
《‘명예의 전당’에 업데이트 됩니다.》
《‘부서진 황금률의 큰 조각’을 획득했습니다.》
《‘찬란한 영웅의 성좌’가 당신에게 특별한 보상을 선물합니다.》
《‘모험의 성좌’가 당신을 찬사합니다. 보상 내용이 한층 업그레이드 됩니다.》
《‘행운의 성좌’가 인자한 미소를 짓습니다. 보상 내용이 한층 업그레이드 됩니다.》
《‘이름 없는 성좌’가 제법이라고 말합니다. 보상 내용이 한층 업그레이드 됩니다.》
······.
《행운의 주사위를 포함한 보상목록의 등급이 51단계 상승합니다.》
《11개의 목록 중 한 가지 보상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극진(極眞) 세이버》, 《찬란한 명예의 로브》, 《절대적인 허무》, 《오염된 왕의 갑옷》, 《오염된 왕의 왕관》, 《오염된 기사단의 원탁》, 《별걸음쟁이》, 《원죄의 지팡이》, 《샤티로스의 공포》, 《불결함의 마창》, 《미궁의 끝자락》
의지가 죽으며 던전이 클리어되자 눈앞에 나타난 보상들.
그 초월적인 보상에, 나는 할말을 잃어버렸다.
11가지의 보상목록은 그 하나하나가 여태껏 나왔던 보상들을 뛰어넘은 탓이다.
적어도 메인 퀘스트 6의 단계에서 받을 수 있는 보상 수준은 아득히 넘어섰다.
‘전부 최상위계의 아이템이다.’
유일급이 아니라면 거의 적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무엇을 고를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겨워 비명을 지를만한.
게다가 ‘찬란한 영웅의 성좌’가 준 보상은 아직 확인도 안했다.
하지만 그런 압도적인 보상들조차도 내 시선을 사로잡진 못했다.
“······ 이게······ 정령, 입니까?”
“생긴게 꼭······.”
“······.”
천상의 정령알을 깨고 나타난 것.
새로이 태어난 정령을 바라보며 셋 모두 기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세렝게티는 정령의 생김새를 보며 확신하는 듯이 말했다.
“정령이 아니라······ 사신 아닙니까?”
주먹만한 크기, 검은 망토처럼 몸 주변에 이글거리는 불꽃과 낫을 든 모습.
뼈로 이루어진 몸과 얼굴. 아무리봐도 영락없는 사신이었다.
물론, 일반적인 사신과 다른 점은 있었다.
바로 날개.
검은색의 날개와 흰색의 날개가 하나씩 붙어 날갯짓을 하는 게 나름 귀여운 맛이 공존했다.
캬캬!
녀석은 기세등등하게 내 어깨 위에 올라왔다.
오염된 명예를 모조리 빨아들이고 태어난 정령이 이런 특이한 사신의 모습이라니.
그런데 분명히 천상의 정령 아니었나?
고개를 돌려 녀석을 유심히 바라봤다.
【Lv. 1】
【천상의 정령】
【정통한 후계자】
【차원베기(1Lv)】
곧이어 떠오른 녀석의 레벨과 정체.
확실히 천상의 정령이라는 꼬리표가 달려있다.
‘천상이 사신과 관계가 있는 건가?’
모르겠다.
히든 특성 천상에 관한 건 모든 게 미스터리였다.
그나마 ‘천상인’이라 이름 붙은 종족특성이라는 것만 신비 얻기의 퀘스트를 통해 알아낼 수 있었으나 그뿐.
‘정통한 후계자.’
정통(正統).
바른 계통, 혈통과 비슷한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