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61화 (61/317)

“어, 어디 가십니까!”

방패를 세운 채 언덕을 빠르게 내려가며 돌진하는 나를 보고 모두가 경악했다.

그러나 개의치 않는다.

폭탄충과 방패가 충돌하고.

쾅! 콰콰콰콰콰쾅!

방패에 닿은 폭탄충은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치이이익!

놈들의 산성이 몸에 닿아 한계에 다다르면.

‘회복.’

《회복술을 사용했습니다.》

《남은 회복술 사용 횟수 : 4회》

나 스스로에게 회복술을 사용했다.

곧이어 전신이 완전하게 회복됐다.

비록 다섯 번밖에 쓸 수 없지만 이만한 회복력이라면, 충분하다.

폭탄충들이 온전히 언덕을 오르기도 전에 나는 놈들의 중심부로 미친 듯이 돌격해나갔다.

한창 모여서 오를 준비를 하던 폭탄충들은, 앞선 폭탄충의 폭발의 여파로 서로 끊임없이 폭발을 일으켰다.

쾅! 콰콰콰쾅! 쾅! 쾅!

고막을 터트릴 듯이 터져나가는 폭발음.

‘회복.’

《회복술을 사용했습니다.》

《남은 회복술 사용 횟수 : 3회》

멈추지 않는다. 고통에 인상을 찌푸려질지언정 빠른 속도로 달렸다.

폭탄충이 언덕을 오르기 전에 최대한 제거할 심산이다.

그러기 위해 온몸을 불사르며 던졌다.

“······허.”

“······저게.”

“······.”

언덕 위에 선 아이작과 세렝게티, 이자벨라는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넋놓고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99%에 달하는 폭탄충들을 제거하고, 회복술을 모두 사용한 나는 손을 들어 세렝게티와 위치를 바꿨다.

이후 다시 언덕으로 오른 세렝게티와 이자벨라가 입구를 막고, 아이작이 남은 폭탄충들을 제거하며 계층의 시련을 완료했다.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식.

데미갓이 짜놓은 판대로 움직일 생각은 터럭만큼도 없다.

내 모든 것을 활용하여 놈이 만든 판을 부술 것이다.

《최단 시간 클리어!》

《명예가 30상승합니다.》

《시련이 완료되었습니다.》

《진행도 50%》

《다음 계층으로 나아갑니다.》

눈앞에 워프가 생성됐다.

벌써 절반. 진행도 50%를 달성했다.

빌헬름으로 도전했을 때보다도 배 이상 빠르다.

그때였다.

《‘빛나는 영웅의 성좌’가 당신의 기지에 박수를 칩니다.》

《‘빛나는 영웅의 성좌’가 당신에게 특별한 퀘스트를 부여합니다.》

《‘룰 브레이커’ 퀘스트가 도달했습니다.》

《모든 규칙을 깨고, 데미갓의 의지와 함께 던전을 소멸시키십시오.》

《성공할 경우 ‘빛나는 영웅의 성좌’가 아주 특별한 보상을 선물할 것입니다.》

《승락하시겠습니까?》

눈앞에 도달한 성좌의 퀘스트.

처음 보는 현상에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성좌가 던전의 소멸을 퀘스트로 지정하다니.

그것도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던전의 의지까지 없애버리라는 내용이었다.

‘아주 특별한 보상이라.’

어쩌면 긴고아와 같은 성좌의 보물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던전에 입성하자 처음부터 나타나 관심을 보였던 존재.

그렇다면, 빛나는 영웅의 성좌와 이 던전에는 어떤 긴밀한 관계가 있는 걸까?

그 순간이었다.

《데미갓의 의지가 당신을 꿰뚫어봅니다. 》

《실패했습니다.》

《데미갓의 의지가 당신을 꿰뚫어봅니다. 》

《실패했습니다.》

《데미갓의 의지가 당신을 꿰뚫어봅니다. 》

《실패했습니다.》

《데미갓의 의지가 당신을 꿰뚫어봅니다. 》

《실패했습니다.》

《데미갓의 의지가 당신을 꿰뚫어봅니다. 》

《실패했습니다.》

······ 뭐하는 거지?

룰 브레이커

모든 건 잘 짜인 판 위에 있었다.

셀 수 없이 긴 세월 동안 변하지 않은 규칙.

그런데 느닷없이 나타난 ‘비정상의 존재’를 ‘의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규칙을 따르지 않는 거지?’

처음 입장할 때부터 네 가지 명제 중 하나를 제멋대로 삭제시켰다.

뿐만인가.

대뜸 변신하더니 스킬을 사용해 워울프를 길들이는 기행마저 선보였다.

치료사를 택한 주제에 방패잡이만 들 수 있는 방패를 들고 진격해, 버티라고 만들어놓은 시련을 혼자 달려가서 깨부숴버렸다.

룰 브레이커.

여태까지 도전해온 인간들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네가 규칙을 지키지 않겠다면 나 또한 지키지 않으리라.’

하여 ‘의지’는 놈을 꿰뚫어 보았다.

그의 눈으로는 꿰뚫지 못할 게 없고, 알아내지 못할 게 없었다.

놈의 약점을 알아내서 가장 어려운 시련을 낼 생각이다. 절대로 깨지 못할 시련에 부딪히어 좌절하거나 죽으리라.

‘꿰뚫어주마. 너의 비밀을, 너의 약점을, 너의 모든 것을!’

비록 이는 던전의 규칙을 벗어나는 행위지만 놈 역시 룰 브레이커였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저 ‘비정상의 존재’를 잡을 수 없다는 걸 의지가 인정한 것이다.

이제 곧 눈앞에 놈의 기억을 비롯한 모든 게 떠오를 터였다.

그중 가장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비밀을 폭로해 놈을 무너트릴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 이게 무슨?’

의지는 당황했다.

그가 인간에게 당황한 건 창조된 이래 처음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 보이지 않았으니까.

아예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비정상의 존재를 꿰뚫자, 어두컴컴한 암흑만이 가득하다.

거대한 무언가가 자신을 가로막고 있다.

하지만, 대체 무엇이?

데미갓의 의지.

위대한 존재로부터 파생된 초월적인 정신체가 바로 자신이다.

게다가 이곳은 던전이었다.

던전에서 절대적인 힘을 갖는 그의 ‘꿰뚫어 보기’를 막아내려면 최소한 그와 같은 동급의 존재여야만 했다.

그렇다면, 저 인간이 자신과 같은 동급이란 말인가?

‘인정할 수 없다.’

데미갓은 계속해서 꿰뚫었다.

끊임없이 실패했으나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수백, 수천 번을 실패하고서야 의지는 고개를 돌렸다.

‘오냐. 네놈을 볼 수 없다면 같이 온 놈들을 꿰뚫어주마!’

*

‘괜한 질문을 한 걸까?’

진실의 방을 지나온 이자벨라는 내심 드는 생각에 주먹을 쥐었다가 펴길 반복했다.

성각자가 맞냐는 물음.

그 물음을 던진 게 자신이었으니.

처음 사막에서 만난 이후 란돌프는 자신의 저주를 풀어주었다.

사막을 벗어나 세상을 보게 해줬다.

워프를 타고 황금의 도시 아르카나에 도착했을 때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하리라.

1년만 봉사하면 자신의 근본을, 핏줄을 찾아주겠다고도 약속했다.

‘그런데도 마음 깊은 곳에서 의심하고 있었지.’

그는 정말 성각자가 맞는 걸까?

그녀가 아는 성각자의 정의는 별을 쫓는 자였다.

하지만 란돌프는 성각자라기 보단, 별의 주인 그 자체였다.

성각자는 별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별의 주인을 찾아주는 역할을 하고있을뿐.

솔직히, 상관은 없었다.

성각자가 아니라도.

이미 그는 수많은 기행으로써 자신을 증명했으므로.

‘거짓말인지, 아닌지 알고 싶었어.’

그냥 이 일말의 의심을 털어내고 싶었다.

성각자, 기사왕의 후계자, 백왕의 인정을 받는 오주력······ 그의 정체가 뭐라도 상관 없었다.

이자벨라 그녀 자신의 문제였을 따름이다.

그리하여 대답을 들었을 때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한숨을 내쉬는 자신의 모습에 넌더리가 났다.

상관이 없다고 했으면서, 누구보다도 더 신경을 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이율배반적이었던 탓이다.

“아······.”

언덕을 혼자 달려가는 란돌프를 보며 이자벨라는 침음을 삼켰다.

거친 폭발음과 함께 폭발충들을 홀로 궤멸직전까지 몰아세운 남자.

그는 네 명이서 할 일을 혼자서 마무리지었다.

남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이.

오늘만이 아니다.

‘불굴의 전사. 쓰러지지 않는 무모한 도전자.’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여태껏 경험해온 란돌프는 항상 도전했고, 단 한 번도 쓰러진 적이 없다.

도리어 자신을 증명하며 쟁취해냈다.

그의 정체는 수없이 많지만, 란돌프는 결국 란돌프였다.

때론 무모하고, 때론 명예로우며, 때로는 냉정하기 짝이 없는.

만약 자신이었다면 어땠을까.

혼자 달려가서 저와 같은 장면을 연출해낼 수 있을까?

폭탄충은 터지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강력한 산성액도 내뿜는다. 살이 녹고 뼈가 드러나는 와중에도 그는 단 한 번도 방패를 쥔 손을 놓지 않았다.

도저히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인내심.

고통에 신음을 흘리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구원자야.’

란돌프는 시대를 아우르는 구원자였다.

자신을 구하고, 도시를 구했으며, 저주를 부수고 멸망의 수문장을 봉인시켰다.

이자벨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나도 도움이 되어야해.’

언제까지 도움만 받고 있을 순 없었다.

그에게 봉사하겠다고 했으면서, 막상 한 게 뭐가 있던가.

그깟 같잖은 의심이나 하고 있지 않았나.

고개를 털며 워프를 넘었다.

《‘진실서약’에 맹세하십시오.》

워프를 넘자, 다시 진실의 방이 나타났다.

‘또?’

이자벨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거저 먹은 것과 다름이 없을 정도로 쉽게 지나간 시련을 다시 반복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별다른 의심 없이 서약을 하고 질문을 적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파티원 전원이 모인 방에서 질문이 시작됐다.

《이자벨라에게 부여된 첫 번째 질문입니다.》

《‘소노라. 그 불쌍한 어린아이를 왜 죽였습니까?’》

《‘그 아이를 죽이면서까지 그렇게 공주가 되고싶었습니까?’》

질문을 본 순간, 이자벨라의 두 눈동자가 격동했다.

*

《아이작에게 부여된 첫 번째 질문입니다.》

《‘광산도시를 매몰시키고 수많은 사람을 죽였으면서, 악업을 정화했다고 기뻐 우는 건 너무 염치가 없지 않습니까?’》

아이작도.

《세렝게티에게 부여된 첫 번째 질문입니다.》

《‘허드슨을 자신의 도피처로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진실한 사랑이 아니라 현실을 외면하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까? 사실은 빌헬름을 더 좋아하지 않았습니까?’》

세렝게티도.

떠오른 질문을 보며,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따위 질문을 대체 누가?

아니, 이 따위 질문 자체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애초에 한 명뿐이었다.

란돌프.

그만이 아는, 알 수 있는 내용들이다.

성각자. 모든 걸 꿰뚫어보는 그의 능력.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는 그가 아니고선 이런 질문을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셋다 당황하여 란돌프를 바라봤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뻔뻔하게도.

‘진실을 말할 수 있을 리가······.’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 방.

하지만, 누구에게도 알리고싶지 않은 사실이 진실이라면?

질문이 던져진 순간 자신을 바라보는 의혹의 눈들.

모두가 자신을 의심하는 것만 같다.

정말 그랬느냐며, 그따위 인간밖에 되지 않는 것이냐며 비웃고 조롱하는 것만 같았다.

두려웠다.

*

······ 나는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내 앞에 떠오르는 장면들.

마치 홀로그램처럼 세 명이 시련을 받고 있는 모습이 비춰진다.

이 시련은 세 개의 방에서 따로 진행되고 있었다.

일전의 진실의 방과는 완전히 다르다.

파티원이 전부 모인 것 같지만, 자신을 제외한 전부가 가짜다. ‘의지’가 만들어낸 환상같은 것이었다.

환상들 사이에서 의지가 낸 질문을 받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리고 질문을 낸 게 나라고 의심하며 경악하는 중이다.

《‘의지’가 자진하여 퇴장하면 이 시련을 멈추겠다고 전합니다.》

참 재밌는 상황이었다.

던전의 주인이 자진퇴장을 권유하다니.

내가 멋대로 던전을 휘젓자 정작 나를 어찌할 수가 없으니, 대신 파티원들을 괴롭히고 있다.

나를 의심하게 만들고, 내 믿음을 깎아먹을 작정이다.

“최악이군.”

어떤 의미에선 마왕보다 더한 놈이었다.

위대한 데미갓의 의지라고 칭송받는 녀석이 이토록 질이 나쁠 줄이야.

쓰레기 같은 던전으로 악명이 높지만, 이곳에서 쓰레기 같은 건 저 의지뿐이었다.

모두가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진실을 마주하고 대답해야함에.

《질문은 세 개. 버텨봤자 너의 신뢰는 벼랑 끝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의지’가 말합니다.》

문제는 대답해야할 게 저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세 개의 질문을 던져서 정신을 완전히 무너트리고, 나에 대한 믿음을 불신으로 바꾸겠다는 소리였다.

확실히, 이 시련을 깨도 문제다.

불신이 생기면 절대로 깨지 못하게끔 설계되어있다.

영원히 나를 원망할 수도 있는 일이다.

차라리 그 전에 다른 던전을 공략하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알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지’가 웃으며 입구로 향하는 워프를 생성합니다.》

출구로 향하는 길. 워프가 비춰진다.

그래. 이젠 확실하게 알겠다.

놈이 내게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알게된 건 그뿐만이 아니다.

“데미갓의 의지여. 네놈도 여기 있구나.”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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