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다른 파티원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세렝게티가 피식 웃었다.
“데미갓 녀석 뭐 이런 시련을 다 만들어놨군요. 생각보다 더 빠르게 공략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비웃은 것이다.
그저 답만 하면 5분도 채 걸리지 않을 계층이니까.
“악명에 비하면 확실히······.”
“······.”
아이작도, 이자벨라도 평온한 표정이었다.
어차피 하나씩만 물어보는 게 전부였다.
대답하기 껄끄러운 질문을 적어넣진 않았겠지.
이윽고 가녀린 여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졌다.
《세렝게티에게 부여된 첫 번째 질문입니다.》
《‘허드슨을 진심으로 사랑합니까?’》
세렝게티가 나를 바라봤다.
내가 이 질문을 한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당연히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살짝 부끄러워하는 기색으로 세렝게티가 답했다.
대답을 보나 태도로 보나 의심할 여지가 없다.
《서약에 따라 판정한 결과, 진실입니다.》
《다음은 아이작에게 부여된 첫 번째 질문입니다.》
《‘왜 도시의 광장에서 울고 있었습니까?’》
아이작의 두 눈이 흔들렸다.
설마 자신이 볼성사납게 우는 걸 누가 봤을 줄은 전혀 몰랐다는 듯이.
조금 껄끄럽지만, 답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 란돌프님께서 제 악업을 지워주셨습니다. 악업 수치가 높아서 아이들은 제게 전혀 다가오질 않았는데, 그날 아이가 다가오며 제게 왜 우느냐 묻는 바람에 더 크게 울게 됐습니다.”
도리어 더욱 상세하게 답을 내놓았다.
어차피 이곳은 파티 던전이다. 아이작은 파티 던전에서 서로의 신뢰가 중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이곳은 악명이 높았고, 대륙 전역을 돌아다니던 아이작은 이곳에 대한 이야기를 수없이 접하고 있었다.
《서약에 따라 판정한 결과, 진실입니다.》
《다음은 이자벨라에게 부여된 첫 번째 질문입니다.》
《‘억양이 특이합니다. 어느 도시 출신입니까?’》
어느 도시 출신이냐니.
이자벨라가 아이작과 세렝게티를 번갈아 쳐다봤다.
적어도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다.
처음 그녀를 만나고 데려온 게 나였으니, 출신성분을 묻는다면 당연히 아이작이나 세렝게티밖에 없다.
“······ 사막 도시, 파이살메르.”
최악의 스타팅 포인트.
악명 높은 사막도시 파이살메르.
여왕에 의해 지배되는 그곳은 대륙인들 모두가 꺼려하는 도시다.
사막도시 출신이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도 많았다.
허나 이자벨라는 당당했다.
애초에 이자벨라의 피부색은 사막도시의 사람들과 다르다.
게다가 다른 도시 사람들이 파이살메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서약에 따라 판정한 결과, 진실입니다.》
그렇게 앞선 세 명의 질문이 끝났다.
이제는 내 차례였다.
앞선 질문들은 상당히 평범했다.
누구나 궁금해하고 물어볼 수 있는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비록 누가 누구한테 던진 질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서로의 입장을 생각해서 적당한 질문만 던져놓은 듯싶었다.
그렇다면, 내게 배당된 질문 또한 별 거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다음은 란돌프에게 부여된 첫 번째 질문입니다.》
《‘당신은 성각자가 맞습니까?’》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 성각자가 맞냐고?
질문을 보고 내심 당황했다.
누가 이런 질문을 했을까.
누군가가 나를 성각자로 믿지 않기 때문에?
아니면 믿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줄 알고 질문을 던진 걸까?
‘성각자.’
성각자가 무엇인가.
별을 가질 자격이 있는 자에게 별을 안내하는 자다.
레벨 10, 모든 능력치 100을 달성한 게이머는 성각자를 찾아야만 별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성각자가 아니다.
처음부터 성각자였던 적이 없다.
그저 일신의 안위와 상황의 모면을 위해 내뱉은 거짓말일 뿐.
하지만, 사실대로 아니라고 말했다간 거짓말을 인정하는 꼴이다.
처음부터 너희들을 속여왔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적어도 이자벨라와 아이작은 큰 타격을 받으리라.
‘그 둘에겐 처음부터 성각자라 말하고 접근했으니.’
별을 찾는 자.
별을 믿고, 별을 신봉하는 자.
미지의 존재는 더욱 크게 다가오는 법.
그 신비함과 성스러움은 나를 가리는 좋은 가면이 되어주었다.
성각자라는 말 한마디에 이자벨라는 나를 살렸고, 아이작도 나를 ‘대단한 무언가’인 양 어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러한 거짓말이 없었다면 이미 나는 죽었을 것이다.
시작하자마자 이자벨라의 손에 죽었겠지.
‘살기 위해서 내뱉은 거짓말이라고는 하나.’
그 거짓말을 계속해서 관철해온 것도 나다.
진실의 방에 입장했을 때를 떠올린다.
···서약에 따라 진실만을 답하라.
심장과 영혼에 새겨진 그 ‘진실서약’에 서명을 한 건 나 자신의 의지다.
“나는-.”
하지만 어느 답을 말해도 진실은 밝혀지게 되어있다.
그럴 바엔 사실을 말하는 게 낫다.
거짓을 말했다가는 도전에 실패하고 추방될 테니까.
재도전 역시 불가능하기에, 차라리 진실을 말하고 달래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계속해서 ‘도전’은 할 수 있으므로.
“성각자가-.”
성각자가 아니라고 한다면, 한 번 깨진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영원히 품고 갈 수도 있었다.
한 번 싹튼 의심은 수백, 수천, 수만 배로 커져 사이를 갉아먹는다.
그래서 나는, 사실을 입에 담았다.
“맞다.”
······ 나는 성각자라는 사실을.
단어의 의미 그대로, 별을 깨달은 자.
별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자.
별에 대해서 누구보다 깊이 탐구하고 그리하여 별에게 선택된 자.
여신에 의해 ‘별 수호자’로 거듭난 내가 ‘성각자’가 아니라면 누가 ‘성각자’란 말인가?
《서약에 따라 판정한 결과, 진실입니다.》
내심, 안도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데미갓이 질문을 왜곡했다.’
질문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모두의 표정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관찰력 재능에 의해 집중하면 솜털 하나의 움직임까지 파악할 수 있었고, 그들의 표정과 동요에 따라 감정을 판단했다.
질문이 진행될 때마다 보이는 미묘한 변화들.
‘질문은 맞으나 어감이 달라.’
처음, 세렝게티에게 질문한 ‘허드슨을 진심으로 사랑합니까?’라는 내용은 내가 적은 게 맞다.
맞지만, 다르다.
‘나는 진심으로라는 단어를 쓴 적이 없다.’
허드슨을 사랑합니까?
허드슨을 진심으로 사랑합니까?
어감이, 무게가 완전히 다르다.
데미갓이 질문을 조금씩 왜곡해 대답하기 껄끄럽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왜곡된 질문에 올바른 답을 내놓을 필요가 없다.
사전적인 의미에서의 성각자인지, 질문한 이가 생각하는 정의에 따른 성각자인지는 각자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였다.
‘왜곡에는 왜곡으로 대응한다.’
예전의 나였다면, 성각자가 아니라는 대답을 선택했을 것이다.
당시의 내게 이 세상은 말 그대로 ‘게임’일 뿐이었으니까.
데이터와 숫자로 이루어진 모든 게 정해져 있는 게임 속 세상이니까.
하지만 이곳은 현실이었다.
감정이 살아 숨 쉬고 서로가 서로에게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진짜 세계.
그리고 진실이라는 것은 상호작용하는 법이었다.
서로가 진실이라 믿는다면 그것은 진실이 된다.
게다가, 딱히 틀린 말도 아니지 않나?
왜곡된 질문에는 왜곡된 대답으로 응하면 그만.
‘진실서약에 질문에 관해서는 일절 논의할 수 없다는 내용을 적은 이유를 알겠군.’
논의할 수 없다.
그것은 말만이 아닌 서로의 표정을 나누는 것조차 금기했다.
하지만, 논의는 없었다.
그냥 내가 보고 혼자서 파악한 것일 뿐이니까.
이들의 표정을.
아이작, 이자벨라, 세렝게티.
이들은 내 앞에서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음.”
내 답을 듣고, 당연하다는 듯이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믿고 있었다.
처음부터 의심하지 않았기에 내 대답은 진실이다.
서로 의도를 숨긴 채 들어왔던 예전의 공략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신뢰 관계.
그것은 데미갓의 허튼 수로 쉽게 무너질 게 아니다.
*
데미갓이 질문을 왜곡한 의도를 파악하자, 그 뒤는 너무 쉬웠다.
당황할 필요가, 의심할 필요가 없어졌으므로.
빠르게 클리어하고 다음 계층으로 나서자 다시 세상이 어두컴컴해졌다.
이윽고 내 앞에 푯말 하나가 나타났다.
《다음 계층의 시련은 ‘입구 막기’입니다.》
《입구를 막고 공략하기 위해선 원거리 공격수 한 명, 방패잡이 두 명, 치료사 한 명이 필요합니다.》
《세 직업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모든 파티원이 준비를 마치면 시작됩니다.》
입구 막기에 필요한 세 가지 영역.
원거리 공격수, 방패잡이, 치료사.
셋 중 하나를 택하라는 듯 눈앞에 세 개의 문양이 떠올랐다.
화살 문양과 방패문양, 그리고 초록색의 기운이 둥실둥실 떠오르는 영역.
‘의논할 시간 따윈 안 주겠다는 거로군.’
서로의 역량과 선택을 알아야만 하는 계층이다.
만약 역할 하나가 부족하거나, 더 많다면 공략은 실패할 것이다.
‘세렝게티는 방패잡이를 택하겠지.’
첫 계층에서 이미 한 번 시켰다. 능력치가 고정된 이상 자신의 쓰임에 대해 세렝게티는 잘 파악하고 있을 터.
‘나머지가 어렵군.’
턱을 쓸었다.
첫 계층때처럼 내가 원거리 공격수를 택하면, 치료사는 누가 하지?
아이작, 이자벨라.
그 둘이 방패잡이와 치료사를 선택할까?
그럼 역으로 내가 치료사를 해야할까?
아이작은 특히 공격에 특화되어 있다. 원거리 공격수를 택할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니 내가 원거리 무기를 쓰는 건 보여준 적이 없군.’
이맛살이 절로 구겨진다.
서로가 가장 잘하는 것.
파티원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만 겹치지 않게 선택할 수 있다.
《모든 파티원이 선택을 완료했습니다.》
*
어둠이 걷히자, 언덕 위였다.
입구 막기.
저 지상에는 족히 수천 마리는 될 것 같은 ‘폭탄충’이 있었다.
폭탄충은 닿는 순간 폭발하는 콩벌레처럼 생긴 괴물이다.
폭발력은 작지만 인체에 닿으면 녹아내리는 강력한 산성을 지니고 있다.
방패잡이 두 명이 필요한 이유는, 저놈들의 폭발을 막아내기 위해서였다.
“방패잡이는 방패를 들어서 입구를 막아라.”
다행이 방패잡이는 두 명이었다.
“예!”
끄덕!
세렝게티와 이자벨라.
그 둘이 합을 맞춰 방패를 들어 언덕의 입구를 막았다.
“원거리 공격수는 방패 위로 넘어오는 폭탄충을 제거하도록.”
“예.”
원거리 공격수는 아이작이었다.
《‘치료사’를 택했습니다.》
《‘치료사’는 선택한 대상을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남은 회복술 사용 횟수 : 5회.》
나는 당연히 치료사였고.
치료사를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뒤에서 상황을 보고 오더를 내릴 수 있는 건 원거리 공격수 아니면 치료사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작이 원거리 공격수를 택할 것 같았다.
애초에 내가 원거리 무기를 쓰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
이자벨라가 살짝 걸렸지만, 그녀는 ‘지휘관’ 스타일은 아니다.
지휘관의 역할인 후방을 맡기엔 적합하지 않으니 방패잡이를 택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옵니다!”
좁은 골목.
폭탄충이 통통 튀거나 구르며 올라오기 시작했다.
크기는 기껏해야 어른주먹만 하지만 그 광경은 가히 압도적이다.
‘여기까지는 정석이다.’
정석 그대로의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역할분배, 위치 고정, 대비까지는 완벽하다.
‘있는 그대로 게임을 진행해줄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나는 데미갓의 의도대로 움직여줄 생각이 터럭만큼도 없었다.
머리를 쥐어짜낸다.
이 상황을 역으로 타개할 방법.
놈이 만든 판을 깰 수 있는 수!
“세렝게티, 방패를 내게 다오.”
“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나를 바라본다.
“내가 신호를 보내면 나와 위치를 바꿔라.”
“괜찮으시겠습니까?”
“방패술을 익힌 적 없는 너보단 내가 잘 할 거다. 내가 오른손을 들어올리면 그 즉시 위치를 바꾸도록. 이후 모두 내가 지시한 대로 행동한다.”
“하지만 이 방패는 사용조건이 있습니다.”
“괜찮다.”
방패의 사용조건.
이미 파악한 뒤다.
손을 뻗자 세렝게티가 순수히 방패를 내주었다.
<‘폭탄충 방패’의 숙련도가 낮아 착용할 수 없습니다.>
방패를 쥘 수 없다는 말.
하지만 내가 방패를 쥐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히든 특성 웨폰 마스터에 의해 ‘폭탄충 방패’의 숙련도가 생성되었습니다.>
<‘폭탄충 방패’의 착용조건이 해제되었습니다.>
<웨폰 마스터로 인해 ‘폭탄충 방패’의 숙련도가 5레벨로 상승합니다.>
<손재주로 인해 ‘폭탄충 방패’의 숙련도가 6레벨로 상승합니다.>
방패잡이를 택하면 ‘폭탄충 방패 숙련도’라는 게 생긴다.
본래는 그게 있는 사람만 착용할 수 있지만, 웨폰 마스터는 모든 장비의 숙련도를 5레벨로 올려주는 히든 특성이었다.
드는 순간 처음 쥐는 무기도 ‘숙련자’로 만들어주는 특성.
거기에 손재주로 인한 +1레벨까지.
도합 6레벨. 숙련도가 오르자 방패를 쥔 손아귀에 힘이 절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