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59화 (59/317)

“아, 한 명에게 완전히 무장을 몰아줄 생각이시군요?”

“아니.”

이 역시 아니다.

“그럼 뭡니까?”

“방어구는 네가 무장한다. 다만, 무기는 내가 갖지.”

“······ 예?”

“스킬은 사용할 수 없다지만 ‘위치 교환’ 권능은 사용할 수 있을 거다. 다수의 적들이 나타나면 그중 우두머리와 위치를 바꾼 뒤 버텨라.”

“능력치가 낮아져서 하루에 두 번 정도밖에 못 씁니다.”

“그러니까 버티라는 게다.”

“저는 방패술을 제대로 익힌 적이 없습니다.”

“믿는다.”

“맙소사.”

설마가 현실이 되었음에 세렝게티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허나, 이게 가장 현실적인 사용방법이다.

내가 저 ‘위치 교환’ 권능을 가졌다면, 방어 위주로 훈련했을 것이다.

반면에 세렝게티는 ‘위치 교환’ 권능을 공격 위주로만 사용했다.

학살을 죽인 것처럼 적을 농락하고 민첩하게 기만하는 전술을 사용하고자 방어와는 완전히 담을 쌓은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필요없다.

“내가 우두머리를 죽일 때까지만 버텨라. 그럼 살 수 있을 거다.”

“······ 죽을 힘을 다해 버텨보겠습니다.”

*

도구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장비를 제외한 모든 것이라고 보면 된다.

즉, ‘이것’ 역시 사용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콰르릉!

깨갱!

워울프의 무리 사이로 번개가 내리쳤다.

거대한 거체의 괴물을 보며 워울프 무리는 순간적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히드라곤!

‘히드라곤의 혼’ 역시 도구였다.

그 위용은 감히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헉, 헉, 헉!

히드라곤의 머리들이 순식간에 지쳐간다.

‘······ 히드라곤도 모든 능력치가 20으로 제한이 되나보군.’

소환한 소환수 역시 능력치 제한이 생긴 듯싶었다.

저 거구의 몸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능력치 20은 터무니없이 부족했으니까.

아무래도 위압감을 주는 토템 용도 외엔 사용하기 힘들 것 같았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푹!

작은 혼란을 틈타 세렝게티가 위치를 바꾼 워울프의 우두머리를 죽였다.

킁?

컹컹!

우두머리가 죽자, 워울프 무리는 순간 혼란상태에 빠졌다.

워울프들을 쓸어버릴 절호의 기회.

아그작!

나는 시체 까마귀의 핵을 꺼내어, 먹었다.

투둑, 투두두둑!

순식간에 형체가 변하며 시체 까마귀가 됐다.

이 역시 ‘도구’이니, 사용할 수 있었던 게다.

그리고 내 예상이 맞는다면.

‘······ 시체 까마귀의 스킬은 사용할 수 있다.’

엄밀히 따지면 시체 까마귀의 왕이 되어 스킬을 사용하는 건, 시체 까마귀의 핵을 먹고 그 핵에 새겨진 스킬을 사용하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인간으로 되돌아오면 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고로,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망자의 왕’ 스킬이 워울프 우두머리의 혼을 지배합니다.>

긴고아로 빼앗은 스킬 역시 사용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혼을 주입해 워울프 우두머리를 되살려냈다.

능력치가 낮아 이 한 마리가 한계지만.

<히든 특성 ‘비스트 로드’에 의해 워울프 우두머리의 지배력이 강해졌습니다.>

킁킁?

아우우우우!

워울프들이 우두머리 근처로 모여든다.

적의는, 없었다.

솔직히 반신반의였다.

진짜로 이게 되리라고는 확신하지 못했는데.

‘······이게 되는군.’

*

‘믿음 없는 자들이여.’

데미갓.

던전을 설계하고 시련을 부여하는 절대적인 존재.

그는 죽어서 의지만 남았지만, 오랜 세월동안 던전은 클리어되지 않았다.

믿음이 없었기에.

서로 신뢰하지 못했기에.

까다로운 입장조건까지 내걸었으나 마찬가지였다.

인간은 욕망을 이겨내지 못한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려는 본능에 항상 휘둘려왔다.

‘인간은 정말로 어리석구나.’

의지는 고개를 저었다.

오랜세월 인간들을 지켜봤으나 그들에겐 희망이 없다.

시간이 아무리 흐르고 흘러도 인간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애써 고심하여 만들어놓은 시련 하나조차 돌파하지 못할만큼 어리석었다.

이번에 도전한 자들도 마찬가지이리라.

‘······감히.’

그런데 이번 도전자들은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입장할 때부터 자신이 내건 네 가지 명제 중 하나를 삭제시켰다.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자 강제로 워프시켰으나, 놈은 자신이 던전을 설계한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층을 나아가고 있었다.

믿음, 명예, 정직.

이 세 가지가 던전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건만.

허나 던전에 입장한 이상, 의지가 개입할 여지 역시 없었다.

그러니 신조차도 던전에 입장하면 던전의 규칙을 따라야만 한다.

그럴진대.

규칙 따윈 아랑곳않으며 던전을 클리어해나가는, 위대한 의지조차 상정하지 못한 존재가 나타났다.

변신을 하고, 워울프 우두머리를 언데드로 살려내더니 지배력으로 점차 무리를 늘려가는 게 아닌가.

본래라면 서로가 등을 맡기고 의지하며 나아가야하는 구역이었다.

워울프 무리와 마주하며 결속력을 다지라는 뜻으로 만든 시련의 장소였건만!

그런데 놈은 아예 워울프 자체를 길들이고 있다. 20마리에서 시작한 무리는 순식간에 50, 100마리로 늘어났다.

심지어 워울프들을 훈련시키기까지 한다.

오랜 세월 동안 던전에 도전한 인간은 수없이 많았지만.

‘뭐 저런 놈이······!’

저런 놈은 처음이었다.

진실게임

“연합장님께선 클리어하기 가장 어려운 던전이 어디였어요?”

던전 입구에 모인 한국연합의 플레이어들 중 한 명이 물었다.

그러자 연합장이라고 불린, 황금빛 갑주와 투구를 쓴 남자가 말했다.

“벼락칼날 던전.”

“벼락칼날 던전이면 그 11레벨 던전이요?”

“그래. 엘리트 레이드 보스 몬스터 벼락칼날.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강했다.”

“지금 저희가 공략하려는 이 던전도 11레벨 던전 아닌가요, 근데?”

연합장은 거대한 동굴의 입구를 바라봤다.

지금 그들 연합이 공략하려는 던전은 천공고래 던전이다.

천공고래가 주인으로 있는 곳이며 마찬가지로 11레벨이었다.

이 던전을 공략하고자 모인 한국의 최정예 플레이어만 20명.

“그때보단 지금이 강해졌으니까. 나도, 연합원들 수준도.”

연합장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 연합은 엄청나게 강해졌다.

이대로면 머지않아 한국도 공식적으로 판게니아에서 대도시 하나를 갖게 될 것이다.

“아. 그럼 가장 쓰레기같았던 던전은요?”

“쓰레기 같았던 던전? 그런 건 왜?”

“나중에라도 가급적이면 피해가려고요.”

쓰레기 같은 던전이라.

가장 어려운 던전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모두가 각기 다른 답을 낼 것이다.

난이도가 높거나, 입장제한이 말도 안 되거나, 공략이 까다로운 곳들은 많았으니.

주관적인 경험에 따라 ‘어려움’의 정의는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쓰레기 같은 던전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같은 답을 낼 것이다.

“······ 데미갓 특성 던전.”

“아! 거기 유명하죠.”

“연합원은 그곳에 발을 들이는 것도 금지다.”

“금지(禁地)인 이유가 뭐예요?”

“사람을 나쁘게 만드니까.”

“사람을 나쁘게 만든다뇨?”

연합원이 의아해하자 연합장은 인상을 구겼다.

과거의 나쁜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 탓이다.

“선하기만 한 인간은 없다. 마찬가지로 악하기만 한 인간도 없지. 하지만 그 던전은 인간의 나쁜 부분만을 철저하게 부각시킨다.”

“······ 예를 들면요?”

“도전하는 사람들마다 내용물이 다르긴 하지만, 내가 도전했을 땐 가짜를 심어놨다. 모두의 기억을 일정부분 지우고 투표로 가짜를 고르게하는 계층이 있었지.”

“고르면 어떻게 되는데요?”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사람은 죽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다 진짜였더군.”

농락도 아니고 그런 짓을?

데미갓이라 이름 붙은 던전은 하나같이 위대한 존재들과 그들의 ‘의지’가 만들어낸 합작품 아니던가?

“미친······.”

“넷이 들어가서 나만 살아나왔다. 그 유명한 팬텀도 정복하지 못한 던전이니까 말은 다했지.”

“팬텀이 정복 못한 던전이 있었어요?”

연합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팬텀은 전설이다. 신화다. 그가 공략하지 못한 던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알려졌지만, 실상은 다르다.

“몇 개 있다. 그중 하나가 데미갓 특성 던전이고.”

“하기야······ 팬텀은 배신이라면 신물이 날 텐데. 아, 그러고 보니 지금쯤이면 그도 파티 던전에 도전중이겠죠?”

“그렇겠지.”

팬텀의 플레이어 캐릭이라 유추되는 란돌프.

란돌프는 메인 퀘스트 5, 신비 얻기를 환상적인 점수로 깼다.

게다가 차원 균열도 혼자 공략해버렸다.

덕분에 지금 플레이어들은 난리가 난 상태다.

차원 균열의 왕을 공략하여 얻어야할 보상을 하나도 못 얻은 탓이다.

뿐만인가.

막심이 죽었다. 8영웅 중 하나인 그의 죽음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현실에서도, 판게니아에서도.

그 파장은 결코 작지 않다.

머지않아, 플레이어들 사이에도 균열이 생기며 거대한 파도가 치는 날이 올 것이다.

‘그 전까지 최대한 힘을 키워놔야 해.’

풍랑에 휩쓸려 죽지 않으려거든 덩치를 불려야만 한다.

한국의 플레이어들이 살아남으려면 판게니아에도 대도시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판게니아와 지구 양측의 공략을 시작해야만 했다.

적어도 다음 차원 균열이 생기기 전까지 대도시를 갖는 게 연합장의 계획이었다.

그래도 많이 늦다. 이미 앞서나가는 자들에 비하면.

“팬텀은 어느 던전에 도전하고 있을까요?”

“글세. 확실한 건 데미갓 특성 던전은 아닐 거다.”

배신이라면 신물이 나는 팬텀이 다시 배신을 부추기는 데미갓 특성 던전에 도전하진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팬텀을 알고, 데미갓 특성 던전을 아는 모든 이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빠드득!

연합장은 이빨을 갈았다.

‘젠장. 그때의 기억만 떠올리면 입안이 쓰군.’

그곳은 정말 쓰레기 같은 던전이니까.

*

《계층의 왕 ‘청랑’을 쓰러트렸습니다.》

쿠우우웅!

거대하기 짝이 없는 청색의 늑대가 마침내 쓰러지며 죽음을 알렸다.

백마리가 넘는 워울프에게 둘러싸여 소위 ‘다굴’을 맞았으니, 버틸 재간이 없는 것이다.

‘6시간.’

이곳 계층을 공략하는데 걸린 시간이다.

본래라면 일주일은 내리 사냥하며 장비를 갖추고 도전해야 하는 녀석이 청랑이었다.

하지만 최단시간으로 클리어해야하는 특성상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곳을 깰 생각은 없다.’

처음부터 이곳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깨려는 생각 따윈 하지도 않았다.

《최단시간 공략입니다.》

《업적 ‘워울프 무리의 주인’을 달성했습니다.》

《명예가 10오릅니다.》

《백성전의 몇몇 성좌들이 슬쩍 눈을 빛내기 시작합니다.》

《‘빛나는 영웅의 성좌’가 던전 공략에 깊은 관심을 보입니다.》

백성전의 성좌들이 하나, 둘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메인 퀘스트 5, 신비 얻기만큼은 아니지만 어차피 공략이 끝날 때쯤 가면 대부분의 성좌들이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빛나는 영웅의 성좌라.’

그런데 특이한 건 빛나는 영웅의 성좌가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대목이었다.

그것도 나한테 관심을 보이는 것도 아니고, 던전 공략에 관심을 보이다니.

신비 얻기 때를 제외하면 단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는 성좌의 이름.

던전을 제대로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행운이나 모험의 성좌처럼 매번 등장하여 보상목록을 업그레이드 시켜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음 계층으로 넘어갑니다. 이전 계층에서 얻은 것들은 모두 초기화됩니다.》

쉬아아아!

워프를 넘어서자, 처음 골랐던 장비들도 벗겨졌다.

당연히 지배했던 워울프도 전부 초기화된 상태였다.

깜깜한 어둠밖에 존재하지 않는 곳.

주변을 둘러보자 세렝게티도, 아이작도, 이자벨라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허공에 떠있는 종이 몇 장과 팬 하나.

《‘진실의 방’에 입장했습니다.》

《입장한 파티원에게 묻고 싶은 질문을 한가지씩 적어주세요.》

《질문은 익명이 보장됩니다.》

《단, 파티원 모두가 ‘진실서약’을 하지 않을 시 진행되지 않습니다.》

진실서약.

일종의 계약서다.

오직 진실만을 말할 것임을 서약하는 계약서.

서명으로 내 이름을 적는 순간부터 계약을 효력을 발휘하며 만에 하나 거짓을 말할시 추방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 최악이군.’

특성 던전이라면서 진실의 방은 대체 왜 필요한 걸까?

빌헬름으로 도전했을 때도 본 적 없는 계층이다.

이런 던전을 만들어놓은 데미갓은 역시 제정신이 아니었다.

파티원 전체가 서약하지 않으면, 진행조차 되지 않는다니.

직접 서명하는 순간 내가 가진 히든 특성들도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어찌됐든 나 스스로 동의한 일이니 말이다.

정말로 ‘진실’을 말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파티원들 전원이 나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해 질문이 별 것 아니라면, 그냥 웃으며 넘어갈 수도 있을 터.

오히려 최단시간 클리어를 목표로 하는 내게 있어선 정말 꿀 같은 시련일 수도 있었다.

《‘진실서약’을 파티원 전원이 완료했습니다.》

《이제 질문을 작성해주십시오.》

한 사람당 한가지씩.

총 세 개의 질문을 대략적으로 적어넣었다.

다른 파티원들도 마찬가지로 질문을 적었다면, 모두가 세 번씩만 진실을 말하면 클리어가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간단한가.

생각하기에 따라선 거저 먹는 셈이었다.

《모든 파티원들의 질문 작성이 완료되었습니다.》

《본인이 질문한 내용에 대해선 일체 함구하십시오.》

《함구하지 않을시, 던전에서 추방됩니다.》

쿠웅-!

커다란 무언가가 들썩이는 소리와 함께 어둠이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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