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57화 (57/317)

“앤드류 사제. 악업이 몇이 됐지?”

“······674에서 374가 됐습니다.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녔으면 악업이 이렇게나.”

“한 번에 300정도씩 정화되나보군. 두 장이 더 필요하다.”

성배를 꺼내들어, 다시 앤드류 사제의 손을 씻겼다.

그러자.

“커헉······!!”

앤드류 사제의 두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면죄부 한 장을 더 만들 수 있었다.

예상대로다.

내 입가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앤드류 사제는, 완벽한 면죄부 셔틀이 되었다.

*

악업이 완전하게 씻겨나갔다.

아이작은 믿을 수가 없었다.

크람델이 아니면, 그가 다른 인간의 도시에 들어서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이 악업 때문이었다.

그가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준다.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며 자연히 이목을 끌게 된다.

심할 경우, 경비대들이 찾아와 그를 감옥에 넣기도 하였다.

크람델을 제외한 모든 인간의 도시에서 그래왔다.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는다.’

아이작은 떨리는 기분으로 조심스럽게 도시의 광장으로 나섰다.

본래라면 그가 서있는 것만으로도 주목을 받아야 정상이다.

악업이라는 건 그런 거니까.

그런데, 아무도 그를 신경쓰지 않는다.

신경은커녕 자기 할 일을 해나가고 있었다.

“아저씨! 왜 울어요?”

“아······.”

6살쯤 되어보이는 한 남자아이가 다가와 아이작에게 말했다.

그 순간 아이작의 양손이, 전신이 꿈틀대며 떨리기 시작했다.

악업에 가장 민감한 건 사제와 아이들이다.

특히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악업을 감지할 수 있었다.

악업 수치가 높아진 이후 아이작의 근처에 어린아이가 다가온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울면서 도망치면 그나마 다행이었지.

“엄마! 이 아저씨 어른인데 울어!”

“애는, 너가 또 이상한 장난이라도 친 거 아니니?”

“아냐! 나 아무 것도 안했는데?”

이런 밝은 아이의 목소리를 들어본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

물론, 그는 나쁜 짓을 많이 했다.

도시 하나를 무너트리기도 하였다.

전쟁을 방해하고, 도시의 주인들을 털어왔으며, 살인도 셀 수 없이 하였다.

사제들은 그를 혐오했다.

면죄부는커녕 성기사들을 대동하여 죽이려들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믿어주는 사람?

없었다.

단 한 명도.

크람델에 영원히 박혀서 괴물들과 어울리며 죽는 삶이라 생각했는데.

그조차도 하루하루가 편했던 날이 없다.

겉으로는 의연한 척 했지만, 언제 괴물들이 자신의 정체를 알아볼까 항상 노심초사 해왔던 것이다.

아이작이라고 괴물들의 무리에서 살고 싶었겠나.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삶을 언제나 그려왔다.

-나는 너의 모든 것을 믿는다, 까악.

그런데, 갑자기 그를 믿어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처음이었다.

비록 시체 까마귀의 모습이긴 했으나,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모든 걸 믿어준다니.

솔직히 사기꾼인 줄 알았다.

협박을 하거나, 자신을 이용해 무언가를 하려는 자들은 셀 수 없이 많았으니까.

그런데 그는 사기꾼이 아니었다.

가짜가 아닌 진짜였다.

그리하여 면죄부까지 거리낌없이 사용해 자신의 악업을 지워준 것이다.

-너의 죄를 사한다, 아이작.

죄를 용서해준다며 머리에 손을 얹었다.

별 거 아닌 듯이 행동했지만, 그게 얼마나 큰 용기와 결단을 필요로하는 일인지 아이작은 잘 알고 있었다.

이런 감정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 이토록 맹목적인 믿음을 받아본 것 역시 처음이었다.

그렇다면, 이 믿음을 배신해선 안 된다.

지금까지와는 달라져야만 한다.

새로 태어난 기분이 이러할까.

“감사······ 감사합니다······ 끅······ 끄흑.”

아이작은 양 손을 들어 얼굴을 닦았다.

하지만 눈물이 계속해서 뚝뚝 바닥에 떨어졌다.

어린아이라도 된 것처럼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

준비는 끝났다.

남은 건 진격뿐.

메인 퀘스트 6.

‘파티 던전 클리어하기.’

파티 던전은 단순히 여러명이서 공략하는 던전을 뜻하는 게 아니다.

기본적으로 파티 던전은 파티원들의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그렇기에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악랄하다 알려진.

‘데미갓 특성 던전.’

그곳으로 향할 모든 준비가, 마침내 끝났다.

영원군주의 심장

히드라곤의 마차에 몸을 싣고 ‘기사의 정원’을 뒤로했다.

이자벨라, 아이작, 세렝게티.

그리고 나까지 총 4인의 조합.

“몸은 괜찮나?”

“예. 날아갈 것 같이 가볍습니다.”

마차 안에서 세렝게티에게 묻자, 그녀가 양쪽 다리로 걷는 시늉을하며 흔쾌히 답했다.

역시 최상급 엘릭서다.

그나마 걱정거리는 ‘마왕의 저주’였는데, 일시해지된 동안은 크게 무리가 없는 듯싶었다.

그래봤자 56시간이지만.

‘최단시간 클리어.’

세렝게티가 깨어있는 동안 끝을 봐야만 한다.

데미갓 특성 파티 던전은 모두가 ‘극악’을 넘어 ‘악랄’하다고까지 평한 불가해의 던전이었다.

완벽하게 클리어한 사람은 전무.

그나마 최고성적도 진행도 80% 부근이었다.

그 성적을 낸 게 나니까 확실하다.

‘내 성적을 내가 깨야만하는 상황이군.’

가볍게 턱을 괴었다.

빌헬름으로도 완전하게 정복하지 못한 던전이다.

그런 곳을 지금 파티구성으로 클리어할 수 있을까?

‘데미갓 특성 파티 던전의 입장조건은 4인이지.’

데미갓 특성 파티 던전.

데미갓은 신원불상의 초월적인 존재가 만들어놓은 던전의 앞에 붙는 수식어다.

고대 창세기에 존재했다는 그들은, 탑과 마찬가지로 던전에 여러 조건과 함께 시련을 설계해놓았다.

그 조건 중 하나가 바로 ‘4명’의 파티로 입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무조건 4명.

그 외에도 파티원 전원이 ‘악업’이 있으면 안 되고, ‘파티장’의 명예가 500이상이어야만 한다는 조건 역시 달려있었다.

‘오직 명예로운 자만이 입장할 수 있는 던전. 던전을 만든 데미갓이 신성한 존재였다는 뜻이겠지.’

하여간에.

빌헬름으로 도전했을 때의 파티구성은 솔직히 지금보다 좋았다.

고위사제도 있었고, 방어에 특화된 수호자도 있었으며, 탐색에 능한 도적도 있었으니까.

반면 지금 파티 구성은······.

‘······ 파티 구성이 너무 공격적이긴 한데.’

암살자 두 명, 기사 한 명, 나 역시 공격일변도의 전사다.

방어력은 전무하다.

일단 부딪쳐서 부수지 않으면 부서지는 조합이었다.

걱정은 들지만, 그때보다 나은 건 바로 ‘신뢰형성 관계’였다.

‘적어도 배신은 안 하는 파티원이니.’

파티 던전은, 배신과 뒤통수로 얼룩진 최악의 장소다.

아무리 파티조합이 좋아도 누구 한 명이 배신하면 끝장난다.

그리고 빌헬름으로 플레이할 땐 그야말로 통수와 통수의 무한한 향연이었다.

믿었던 용병이, 믿었던 기사가, 믿었던 누군가가 매일같이 배신을 때리던 상황.

‘세 명 다 배신자였지.’

심지어 나를 제외한 전원이 배신을 때렸다.

서로 보상을 독차지하려고 아귀다툼을 벌였다.

그걸로 진행도 80%부근까지 간 게 기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선 오히려 지금 구성이 나았다.

적어도 배신은 안 할 테니까.

아니······ 할 수도 있나?

하기야, 과거에도 그들이 배신하리라곤 전혀 생각 못 했으니까.

“누군가가 뒤에 따라붙었습니다.”

그때 불쑥 세렝게티가 입을 열었다.

워프를 타고 도시를 벗어나, 데미갓 던전으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 음. 전혀 몰랐다.

아이작도, 이자벨라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눈치다.

“얼굴 한 번 보시겠습니까?”

“그러지.”

고개를 끄덕인 세렝게티가 발을 툭 털었다.

그 순간, 세렝게티가 사라졌다.

텔레포트라도 한 것처럼.

더욱 놀라운 건.

“컥············?!”

세렝게티가 있던 자리에, 웬 남자가 있는 것이다.

남자는 놀라서 기겁했지만 내게는 익숙했다.

위치교환.

세렝게티는 원하는 상대와 자신의 위치를 교환할 수 있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무려 초월하여 얻은 별의 권능이다.

나는 당황한 기색의 남자를 쳐다봤다.

머리가 덮수룩한 남자.

【Lv. 10】

게다가 레벨도 10이다.

10레벨의 강자가 뒤를 따라붙었다.

남자는 이내 침착해하며 소매를 걷어붙였다.

툭.

그 순간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자의 자리에 다시 세렝게티가 나타났다.

“얼굴 보셨습니까?”

“머리가 길어서 얼굴은 못봤다. 다만, 소매에 암기를 숨겨놨더군. 암살자 타입 같은데.”

“어떡할까요?”

“죽여라.”

“알겠습니다. 겸사겸사 얼굴도 좀 봐야겠군요.”

툭.

남자가 나타났다.

여전히 소매를 잡은 자세 그대로.

“이게 대체.”

툭.

툭.

“무슨.”

툭.

툭.

“그만.”

툭.

툭.

발자국 소리가 날 때마다 남자는 마차에서 벗어나 점차 멀어지고 있었다.

끊임없이 위치가 바뀌며 세렝게티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툭. 툭. 툭. 투투투툭.

마침내 초원의 한 가운데에서 세렝게티와 남자가 만났다.

“풉!”

남자의 얼굴을 본 세렝게티가 짧게 평가를 내렸다.

*

학살은 확신했다.

메인 퀘스트 6의 클리어를 위해 란돌프는 반드시 이곳으로 올 것이라고.

‘모두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놈은 온다.’

항상 그랬다.

지난 다섯 번의 메인 퀘스트에서 란돌프는 항상 모두의 예상을 웃돌았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데미갓 특성 던전.

절대로 클리어할 수 없다고 전해지는 파티 던전을 클리어하려고 놈은 나타날 것이다.

‘입장 조건이 까다롭기 그지없지만, 란돌프는 해내겠지.’

악업이 없는 4인의 파티원.

게다가 파티장 명예 500이상!

다른 놈들은 말한다.

벌써 어떻게 저 조건을 맞추겠느냐고.

파티원은 둘 째 치고, 명성 500을 어떻게 지금 시기에 맞추느냐고.

파티장은 플레이어만 될 수 있으니, 세력이 없는 란돌프에겐 불가능한 일이라고.

학살도 똑같이 생각했다.

그래서 몇 번이나 ‘상식적인’ 수준에서 저격을 해왔다.

‘상식을 깬다. 놈은 무조건 이곳에 온다.’

모든 이들이 상식으로 정해놓은 선.

그 선을 깨야만 팬텀을, 란돌프를 저격할 수 있다.

확신했다.

메인 퀘스트 6, 파티 던전 클리어하기.

놈은 반드시 이곳 ‘데미갓 특성 던전’에 나타난다.

이번에야말로 저격에 성공한다.

성공해서.

‘팬텀을 죽인 자로 기억되리라.’

판게니아를 플레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팬텀은 최고다. 신이다.

그런 신을 죽인 자신이야말로, 신살자가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 생각뿐이었다.

빌헬름의 사망판정 뒤, 학살은 플레이어가 된 팬텀을 추격하여 죽일 생각밖에 없었다.

“············ 왔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팬텀을 찾았다.

뿔 달린 히드라곤을 타고오는 마차.

가는 방향으로 보아 ‘데미갓 특성 던전’으로 향하는 게 분명하다.

그리고 이 시기에 그곳으로 향할 인간은 란돌프밖에 없다!

‘드디어!’

학살은 내심 만세를 부르짖었다.

얼마나 찾고 기다렸던가.

몇 번이나 판단미스를 내려 피해갔지만 이제는 안 놓친다.

‘너의 질긴 명운도 오늘로 끝이다, 팬텀.’

오랜 기다림이 드디어 끝났다.

오늘이 지나면 모든 플레이어가 알게 되겠지.

학살은 조용히 히드라곤 마차를 뒤따랐다.

그리고.

“컥············?!”

갑자기 눈앞의 시야가 바뀌었다.

마차 안.

주변에 보이는 건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

즉시 소매를 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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