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아니고서야 이런 타격이 가능할 리 없다.
“도망자 막심. 너는 여기서 죽는다.”
그때였다.
품에서 놈이 무언가를 꺼냈다.
잔처럼 생긴 황금색의 무언가.
그것의 입구를 바닥에 대자.
줄줄줄줄!
물줄기가 줄줄이 흘러나와 바닥을 적신다.
바닥을 흐르는 물줄기는 이윽고 입구를 틀어막았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황금잔에서 흘러나온 물의 정체를 알아차린 막심은 경악했다.
“성배라고······?”
······ 성배라니.
그것도 저만한 양질의 성수를 생성하는 성배라니!
성배가 무엇인가.
교단이 모시는 신의 성스러운 힘이 깃든 잔을 뜻한다.
그야말로 신의 성유물.
당연히 성배는 교황이 아니면 손도 댈 수 없다.
심지어 무한하게 성수를 생성해내는 성배는 막심이 알기로 없었다.
그렇게 흘러나온 성수는 마치 결계처럼 주변을 가둬갔다.
콸콸콸콸!
그걸로도 모자라, 놈은 자신의 머리 위로 성수를 들이부었다.
미친놈이 따로 없다.
성수를 저따위로 사용하는 놈도 처음보았다.
교단의 최상위계 성기사들도 성수를 저렇게 사용하진 않을텐데.
직후 그 미친놈이 미소지었다.
“어디, 다시 한번 벌레처럼 도망쳐 볼 테냐?”
놈의 미소를 보며 막심은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진짜로 뭐하는 놈이지?
쓰레기는 쓰레기통으로
【Lv. 10.5】
10도 아니고 10.5라.
다름 아닌 막심의 레벨이다.
정상적으로 초월했다면 ‘★’으로 레벨이 보였을 터이나, 막심이 레벨을 올린 방식이 정상적이지 않았기에 표기가 다른 것이었다.
‘악마 숭배자.’
놈에게서 느껴지는 진한 악취.
악마 숭배로 데몬 하트를 얻고 강해진 게 분명했다.
이 세상에는 ‘악’이 하나가 아니다.
악마, 마족, 사신, 심연······ 모두가 각기 다른 역할과 영역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그중 악마는 극소수의 ‘악업’과 관련된 퀘스트를 내어주는 존재.
앤드류 사제가 기겁하며 ‘진정 영웅이 맞느냐’고 물을 만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길 수 없겠지.’
레벨의 차이, 능력치의 차이.
하지만 괘념치 않는다.
성수로 저 데몬 하트의 힘을 봉인시키면 그만이니까.
도망칠 퇴로조차 막은 채, 이곳에서 생사를 건 결투를 시작한다.
“가소롭군. 아무리 발악해도 레벨의 차이는 못 좁힌다.”
허나, 막심 역시 도망가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데몬 하트의 마력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해도 상대의 레벨은 고작 6.
몇 가지 꼼수를 부려서 자신을 잠깐 상대할 순 있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막심이 자세를 잡았다.
나 또한, 자세를 잡았다.
극 철검 두 자루.
검의 숙련도를 올려 ‘극의’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최강의 검!
《검의 숙련도가 7Lv로 보정됩니다.》
《검의 숙련도가 8Lv로 보정됩니다.》
《‘극의’효과로 인해 검의 숙련도가 10Lv로 보정됩니다.》
이 두 자루가 숙련도 레벨을 4 올려주어, 10에 다다르자.
《기사왕 빌헬름의 검술, ‘천지개벽’의 ‘천’을 재현합니다.》
나는 빌헬름의 검술을 재현해낼 수 있었다.
란돌프의 몸으로, 빌헬름의 기억을 지닌 채.
허나 괜찮다. 기사왕의 기억과 경험은 고스란히 별을 통해 얻었으니까.
“음······?!”
순간 막심은 기겁했다.
분위기가 변했다.
영역을 장악당했다.
느릿하게 다가오는 검을, 왜인지 맞이할 수 없을 것 같다.
스악!
위에서 아래로.
평범하게 휘둘러지는 검.
채-엥!
단검을 걸어 막는다.
하지만 옆구리로 다가오는 검마저 막아낼 순 없을 것 같다.
본능적으로 몸을 틀어 피한 뒤 한 발자국 뒤로.
다시 한 발자국 뒤로.
이상한 일이다. 막을 수 있음에도, 막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기세가······!’
상대의 기세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상대의 기세에, 잡아먹혔기 때문이다.
노련하기 그지없는 검사.
검을 쥔 채 평생을 검과 함께 살아온 그런 검사만이 내뿜을 수 있는 기세였다.
하지만 상대는 플레이어 아닌가?
‘플레이어가 어떻게 이런 숙련된 검사의 기세를······!’
치이이이익!
등이 탄다.
성수로 가로막힌 길.
성수의 기운이 벽처럼 세워져 막심의 퇴로를 막고 있었다.
찍어눌러야 하는데, 찍어 눌리지 않는다.
도리어 눌리고 있는 건 자신이었다.
막심이 입술을 깨물었다.
‘겁먹지 마라. 그래 봤자 레벨 6일뿐이다.’
그래. 처음부터 겁을 먹을 필요가 없다.
상대의 기세에 잡아먹힐 필요가 없는 게다.
고작 6레벨을 상대로 쫄아버리면 천하의 막심이 아니다.
단검을 제대로 쥐었다.
검과 검을 나눈다.
느릿하게 눈에 들어오며 날아오는 철검.
막지 못할 리가 없음에도, 막을 수가 없다.
하나를 막으면 나머지 하나가 머릿속에서 지워진다.
맹점?
‘맹점을 노려오는 검격조차 아니다.’
간혹 맹점을 노리는 검술이 있다.
하지만 상대는 대놓고 들어오고 있다.
쌍검을 들었지만, 마치 양손에 대검을 들고 있는 것 같이 묵직하다.
기세로써 한 자루의 검을 감춰버리고 있는 게다.
‘이건 대체 무슨 검술이지?’
본 적 없는, 경험해본 적 없는 검술.
하지만, 말이 안 된다.
어떻게 4의 레벨이 뒤집힌단 말인가?
아무리 고견한 검술을 지녔다고한들 능력치가 낮으면 무소용이다. 속도와 힘으로 압도적으로 찍어버리면 그만이니.
“고작 이 정도인가?”
그가 말했다.
실망했다는 듯이.
“고작 이 정도로 구원을 논했나?”
······ 빌어먹을.
막심은 후회했다.
진즉에 도망쳐야 했다.
후회가 들지만 이미 늦었다.
놈의 눈빛.
저 무저갱 같이 깊은 눈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새하얘졌으니까.
“고작 이 정도로.”
챙!
막심이 단검을 던졌다.
도망쳐야 한다.
검격을 나눈 건 10합에 불과하지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많을지도 모르지만, 상관없었다.
이제는 알았으니까.
실력의 차이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레벨이 전부가 아니라는 진리를!
치이이이익!
“크아아악!”
하지만 넘을 수가 없다.
성수의 벽.
온 몸이 타들어갈 것만 같으나 이제는 막다른 골목이었다.
막심이 몸을 돌렸다.
‘젠장. 젠장. 젠장!!’
살고싶다.
살고싶다.
미치도록 살고 싶었다.
성수를 뒤집어 쓴 저 미친놈.
놈은 후계자 따위가 아니다.
그의 진짜 무위(武威)에 대해서 막심은 무지했으나, 이제는 알겠다.
오롯이 홀로 모든 것을 평정했던 자.
투신(鬪神)이라 불렸으며,
심연의 지배자들도 그 이름을 들으면 경기를 일으켰던,
만마(萬魔)의 천적.
······기사왕 빌헬름.
그에 대한 소문이, 단 하나의 과장도 없었다는 것을.
플레이어가 된 그의 실력이 녹슬었으리라, 모두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 눈앞에 있는 자는 기사왕 빌헬름 그 자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알겠다.
후회가 막심했으나 이미 늦었다.
“고작 이 정도로 영웅이라 칭했느냐?”
“패, 팬텀, 사, 살려······.”
스컥!
그게 막심의 마지막 단말마였다.
*
실망이었다.
진심으로.
고작 이 정도의 수준으로 8영웅을, 나와 어깨를 나란히하는 영웅이라 논하다니.
명예도, 실력도 없는 놈이 욕심을 부린 것이다.
‘레벨만 높지, 실력은 형편없다.’
막심과 검을 맞대자 그 즉시 알았다.
‘그간 자신보다 약한 자와만 싸웠군.’
약한자. 굳이 싸움의 기술이 없어도 이길 수 있는 약자들.
그런 이들과 싸우고 이겨왔다.
반대로 이길 수 없을 것 같을 땐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그러니 레벨만 높을뿐 알맹이가 없다. 능력치는 높아도 그 능력치를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른다.
본래라면 자신보다 약한 적과 싸워서 10레벨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악마 숭배자. 악마의 퀘스트로 레벨업을 해왔다.’
차라리 허드슨이 나았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악마에게 손을 빌리진 않았으므로.
더불어 한 가지 지식이 추가됐다.
‘게이머는 악마숭배자가 될 수 없지만, 플레이어는 될 수 있다······.’
악마 숭배자들.
그들은 여신을 배신한 배신자들이다.
여신을 방해하고, 대륙을 심연에 가라앉히려고 작정을 한 놈들이었다.
하여 게임에선 그런 악마숭배자들을 사냥하는 퀘스트가 몇 번 나왔다.
그러나 게임을 평범하게 할 땐 악마숭배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된 지금은 그조차도 가능하다.
‘네임드 NPC인 줄 알았던 자들이 사람이고, 사람이라 생각한 자들이 악마숭배자가 됐다.’
악마 숭배자가 된다는 건 인간임을 버린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들이 주는 힘은 결코 공짜가 아닌 탓이다.
‘나를 방해한 게 그럼 악마 숭배자인가?’
지독하게 내 플레이를 방해해왔던 놈들이 있다.
당시에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무슨 놈의 게임 NPC들이 이토록 배신을 해대는지.
통수의 통수의 통수가 당연시된 일상.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신의 기사라 불렸던 나를, 악마 숭배자들이 방해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쫘아악!
나는 막심의 배를 갈랐다.
두근! 두근! 두근!
아직도 뛰어대는 검은 심장.
그 위로 성수를 부었다.
-끼아아아아아악!
그러자 비명 소리와 함께, 심장이 쪼그라들며 본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작은 악마의 형상이었다.
하지만 성수에 의해 발버둥치다가, 이내 돌처럼 굳어버려 죽었다.
《업적 ‘악마 사냥꾼’을 달성했습니다.》
《플레이어 ‘막심’을 살해했습니다.》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72h)’을 강탈합니다.》
막심을 죽이자 놈이 갖고 있던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을 강탈해왔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막심’의 심장에 새겨진 ‘좌표의 저주’가 소멸합니다.》
성수를 뿌려 악마를 죽인 이유.
막심이 죽으면 자동으로 좌표가 전달되게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수에 의해 모든 저주가 씻겨나갔다.
그 직후 멈췄으니, 좌표 역시 전달되지 못했다.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막심이 죽으면 누군가에게 좌표가 전달되도록 저주를 걸어놓았다. 아마도 8영웅 중 한 명일 터.’
막심에게 좌표의 저주를 걸어놓을 놈들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8영웅뿐이다.
그들 중 누군가가, 막심이 죽으면 그 즉시 달려오고자 이런 저주를 걸어놓은 것이었다.
‘막심은 미끼였군.’
이것 역시 나를 노리기 위함이었을까?
가장 약한 막심을 내가 가장 먼저 노리리라 생각해서?
확실한 건 막심에게 ‘데몬 하트’를 넘겨 ‘8영웅’으로 둔갑시킨 놈이 있다.
데몬 하트 안에 저주까지 걸어놓는 치밀함마저 갖춘 놈이었다.
성수에 의해 저주는 사라졌지다만.
‘재밌군.’
생각보다 아주 멍청이들은 아닌 모양이다.
누군지는 몰라도 상황이 재밌게 돌아간다.
확실한 건 이제는 봐주지 않으리라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NPC도 아니고, 이곳 역시 게임이 아니었으므로.
막심이 죽었다는 사실 역시 곧 알게 되겠지.
명예의 전당이나, 황금률 상점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터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여전히 하나뿐이었다.
‘압도적으로 강해지는 것.’
이런 장난질을 칠 생각조차 못 할 수준으로 강해지는 것뿐.
그리하여 압도적으로 찍어누르는 것뿐이다.
그때였다.
<‘망자의 왕’ 스킬로 망자 ‘막심’을 지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막심’은 ‘레이드 보스(10Lv)’ 망자입니다.>
<‘막심’을 지배해 민첩이 영구적으로 1 상승합니다.>
망자의 왕이 발동하여 막심을 지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