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해야 첫 번째 침략이다. 별 거 없겠지.’
‘최대한 멋있게 처리해야돼.’
‘차원 균열의 왕이라고 해봤자 어차피 하급 심연의 지배자 수준일 거다.’
모두 낙관하고 있었다.
공략할 방법은 커녕 침략해온 괴물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더 멋있게 카메라에 담길지를 고민는 중이었다.
고작 10%.
그 정도 급에서 쳐들어오는 괴물이라고 해봤자 별 거 없을 테니까.
하지만 자신만만하던 영웅들의 태도는 한순간에 바뀌었다.
“잠깐, 뭐······?”
“공략······ 누가······?”
동시에 그들은 동시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차원 균열의 왕’의 공략이 진행 중입니다.》
《‘차원 균열의 왕’이 죽었습니다.》
순식간에 죽었으니까.
그야말로 압살이다.
하지만 어느 차원 균열에서도 괴물이 관측되지 않았다.
대체 누가?
누가 공략중이란 말인가?
심지어 죽였다니?
《‘망자의 왕 아흐람’이 부활합니다.》
《2페이즈로 돌입합니다.》
“아흐람······!”
몇몇 영웅들은 부활한 왕의 이름을 보곤 기겁했다.
설마 차원 균열의 왕이라는 게 망자의 왕 아흐람일 줄이야!
마계의 첫 번째 지옥, ‘망자의 늪’을 관장하던 수문장.
대원정에 참가한 자들이라면 그 공포를 뼈에 사무치도록 잘 알 수밖에 없었다.
무려 대원정의 절반에 달하는 인원이 놈에게 죽었기 때문이다.
‘아흐람 정도의 괴물이라면 몰래 공략할 수가 없을 텐데?’
놈이 다루는 망자와 혼종들은 그 크기만 수미터에서 수십미터에 다다른다.
게다가 아흐람 자체가 최상위계의 언데드 데스나이트였다. 혼자서 지형을 바꿔버릴 수준의 강자가 나타났는데 몰래 공략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망자의 왕 아흐람’이 죽었습니다.》
······ 모든 플레이어는 도저히 떠오른 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3분도 안 걸려서 아흐람을 공략했다고?’
‘그게 가능해?’
‘그라시아나 마스터 정도의 강자가 아니고서야!’
아흐람이 부활한지 3분이 채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라시아도, 마스터도 모두 공략을 진행하고 있지 않았다.
제 3자.
8영웅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공략을 진행중이다.
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진행 중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혼종 융합체 아흐람’이 부활합니다.》
혼종 융합체!
아흐람은 끝없이 부활하고 있었다.
부활할 때마다 강해지며, 공략의 시간도 길어지는 중이다.
혼종의 융합체라니.
이름만 들어도 공포 그 자체였다.
앞서 공략한 시간과 달리 5분이 넘어서자, 플레이어들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실패했나보군.’
‘몰래 공략하려다가 힘에 부치기 시작했나?’
‘누군진 모르겠지만, 이제 우리 차례다.’
이대로 멍하니 서서 끝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욕심을 부리다가 죽었다면 어차피 순위에는 반영되지 않을 테니.
도리어 자신들만 도와준 우스운 꼴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기대는 순식간에 박살났다.
《‘혼종 융합체 아흐람’이 죽었습니다.》
《‘검은 별 아흐람’이 부활합니다.》
“······.”
《‘검은 별 아흐람’이 죽었습니다.》
《‘메인 퀘스트 ??? : 차원 균열의 왕 제거하기’가 완료되었습니다.》
“지금 뭐라는 거야?”
“······ 뭐 이런 좆같은 경우가 다있어?”
플레이어들은 자연스럽게 거친 속내를 입밖에 내놨다.
그 정도로 어이가 없었으니까.
공략은커녕, 침략도 해오지 않았다.
괴물은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뭐?
공략 완료?
메인퀘스트가 끝났다고?
이윽고 하늘에 떠오른 ‘판게니아’가 서서히 지워져간다.
그쯤되자 사람들도 하나, 둘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왜 괴물들 안 나타남?
-뭐야, 사라지는데?
-하늘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설마 이게 끝?
세계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침략해온다는 괴물들은 전혀 보이지도 않았다.
단순히 위협만 주고 물러난 꼴이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그런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여유가 없었다.
도리어 흔들리는 동공으로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보았으니까.
《‘메인 퀘스트 ??? : 차원 균열의 왕 제거하기’의 기여도를 판별합니다.》
《기여도 순위에 따라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1위 – 란돌프》
《명예의 전당에 업데이트됩니다.》
“······!”
“······!!!”
기여도 1위.
순위 명단에 존재하는 단 한 명.
···란돌프의 이름을.
*
멸악의 거인과 드라무트를 비롯한 모든 별 수호자들.
그들은 여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시체 까마귀가 ‘별 수호자’로 인정받은 건 전례가 없던 일이었으니!
하지만 별 수호자들은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현재 시체 까마귀, 란돌프가 쥐고 있는 저 별이 그를 자신의 수호자로 인정한 것을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우리와는 조금 다르다.”
그때, 멸악의 거인이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이에 별 수호자 하나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무엇이 다르다는 거지?”
“우리는 대지의 여신 ‘레아’를 따르는 수호자들이지만, 저 시체 까마귀는 창공의 여신 ‘피나’의 유일한 수호자다.”
32개의 별은 대지의 여신 ‘레아’의 것이다.
하지만 33번째 별, 저것은 분명히 창공의 여신 ‘피나’의 한쪽 눈이었다.
허나 그게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는 없다.
여신 레아와 피나는 쌍둥이었으므로.
둘이 함께 존재하지 않으면 세계도 존재할 수 없으니까.
엄밀히 말하면 결국 같다고 볼 수 있다.
멸악의 거인은 이에 정정했다.
“그렇다고 해도 같은 별 수호자인 이상, 우리와 대등한 ‘자격’을 지닌 건 분명한 바. 시체 까마귀의 별 수호자 승격을 나는 정식으로 인정하겠다.”
“으음. 확실히, ‘유일 등급’의 신비마저 파괴했지.”
“게다가 아흐람을 봉인시켰다.”
“초월종이라면 자격은 충분하다.”
별 수호자들이 하나, 둘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시체 까마귀는 단순한 시체 까마귀가 아니었다.
무려 유일 등급의 신비를 파괴하고, 아흐람마저 봉인한 초월종이다.
외관이 차이일뿐 격 자체는 별 수호자가 되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잠깐. 그는 별 수호자가 아니다.”
그때였다.
멸악의 거인은 돌연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 백왕. 우리의 일에 끼어들지 마라.”
“우리라니, 그는 이미 오주력이다. 별 수호자 따위가 아니라.”
“그게 무슨 소리냐?”
백왕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나는 그에게 오주력의 자격을 부여했다. 다른 주력들도 동의했지.”
정확히는 반반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별 수호자와 주력은 서로의 영역이 완벽하게 다르다.
결코 중복될 수 없다.
반드시 둘 중 하나만 될 수 있다.
게다가 백왕이 이미 주력의 자리를 주고 침을 발라놓았다.
그것을, 별 수호자들이 뺏어갈 수는 없다고 명백하게 밝혀놓은 것이다.
그러나 멸악의 거인은 고개를 저었다.
“별이 인정한 순간 그는 별 수호자다. 여신께서 부여한 자격을, 고작 네놈 따위가 넘어선다는 건 불가한 일.”
“모든 일에는 인과라는 게 있는 법이다. 신조차도 이 인과율에서 자유롭진 못하지. 내가 먼저 자격을 부여했으니, 어련히 알아서 꺼져라.”
“기어코 피를 보겠다는 말인가?”
“여신에 대한 예의로 너희를 크람델에 들였다만, 내 인내심은 여기까지다.”
“웃기는구나, 백왕이여. 너를 내가 두려워할 줄 아나?”
둘의 눈빛이 허공에서 격렬하게 부딪쳤다.
결코 한 치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왜 나의 거취를 네놈들이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냐, 까악?”
가만히 듣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다.
내 거취를 두고 두 괴물이 싸우고 있는 셈이다.
멸악의 거인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라, 이미 정해진 것······.”
“아니, 란돌프의 말이 맞다. 거취는 스스로 정하는 게지.”
허나 백왕이 거들었다.
동시에 모든 별수호자들과 백왕, 사주력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어디 한번 결정해보라는 듯이.
하지만 이조차도 마음에 드는 대답은 아니다.
나는 천천히 멸악의 거인과 백왕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어느 쪽이 내게 더 큰 이익이 되는지 증명해라, 까악.”
처음부터 저 둘은 전제가 잘못됐다.
애초에, 스카우트하려면 연봉부터 부르는 게 정상 아닌가?
*
극적인 협상안이 타결되지는 않았으나, 내 의도를 확실히 알아들은 두 진영은 시간을 두고 논의를 해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내 몸값을 측정해서 제대로 담판을 짓겠다는 것이다.
그 사이, 나는 사왕의 성에서 내가 얻은 것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레벨 6.’
벌써 레벨이 6에 다다랐다.
아흐람을 죽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게 더욱 큰 경험치로 돌아온 듯싶었다.
이로써 6.
다른 평범한 캐릭터였다면 진즉에 9는 찍었을 것 같지만, 레벨을 올리는데 필요한 경험치가 늘어난 덕분에 이득도 보았으니 아쉬울 건 없었다.
무엇보다.
‘상태창.’
<상태창>
이름 : 란돌프
직업(Class) : 별의 계승자
<능력치>
레벨 : 6
힘 : 82(72+10) 체력 : 82(72+10) 민첩 : 82(72+10)
지능 : 82(72+10) 마력 : 82(72+10)
<활성화된 히든 특성>
【허무】
【손재주】
【올 마스터】
【웨폰 마스터】
【거인의 항마력】
【드루이드의 자연친화력】
【철혈군주의 심장】
【비스트 로드】
【황금의 은총】
【천상(天上)】
【돌연변이】
【대식가】
【대현자】
【영원의 란돌프】
절로 미소가 머금어진다.
능력치가 아주 달콤했으니까.
레벨은 6인데 능력치는 평균적인 10레벨 수준이다.
두 개의 별을 쟁취했고, ‘별의 계승자’ 클래스 특성으로 인해 모든 능력치가 10이 상승한 덕이었다.
열네 번째 히든 특성이 박혀있는 것까지 확인하자 형용 못할 웅장한 기분이 들었다.
레벨업만 느릴 뿐, 능력치의 성장 자체는 그 이상이었으므로.
‘누가 봤으면 버그 캐릭터라고 할 수준이군.’
내가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인데 다른 사람이 봤다면 기겁을 했으리라.
레벨업, 그리고 별.
하지만 이 또한 전부는 아니다.
‘메인 퀘스트 1위. 나 혼자 기여 했으니 당연한 일이지.’
유일무이한 참가자.
당연히 나밖에 없으니 1위 역시 내 차지였다.
‘그나저나.’
나는 이번에 얻은 보상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백금의 찬란한 빛을 내뿜는 네모난 물건.
‘플래티넘 박스라니.’
생전 처음 보는 보상이다.
이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다른 메인 퀘스트와 달리 침략의 경우 순위에 따라 보상이 정해져 있었고 1위에게 주어지는 건 바로 이 플래티넘 박스였다.
-크아아아악!
그 순간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발버둥치는 아흐람이 시선에 들어왔다.
아흐람은 긴고아가 머리에 채워져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게다가 모습도 예전과는 아주 달랐다.
‘많이 작아졌군.’
긴고아가 아흐람을 봉인하자 어린아이 크기 정도로 줄어들었다.
‘아흐람을 쉽게 봉인할 정도라.’
이름 없는 성좌의 머리카락은 강력하기 짝이 없는 봉인구, 긴고아였다.
긴고아를 머리카락으로 변신시켜서 연출한 게 분명했다.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아흐람을 봉인한 것을 보며 내심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고아는 마물만 봉인하는 게 아니라, 봉인한 마물의 능력을 하나 가져온다.’
단순히 봉인만 하는 것이었다면 다소 아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긴고아의 진짜 능력은 봉인한 대상의 능력을 훔쳐오는 데 있었다.
대식가 히든 특성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게다가 능력을 고스란히 가져오지.’
아흐람의 능력 중 하나가 고스란히 내게 입혀졌다.
대식가는 먹은 종으로 변신하여 스킬을 처음부터 올려야 하지만, 긴고아는 대상이 지닌 고유의 스킬 자체를 그대로 사용하게 해준다.
물론 긴고아를 사용한다고 무조건 봉인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멸악의 거인이 붙잡고 있지 않았다면 봉인은 실패했을 것이다.
‘대상을 10초간 고정해둬야 한다는 제약이 있지만, 멸악의 거인 덕에 긴고아를 씌울 수 있었지.’
게다가 대상에게도 경고가 간다.
그러나 10초만 고정할 수 있으면, 긴고아는 상대가 무엇이든 봉인시킨다.
그 대상이 설령 마왕이나 신이라고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