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47화 (47/317)

“랭커들의 움직임은 모두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보고하도록.”

“예, 마스터.”

“‘차원 균열의 왕’이 나온 곳을 우리가 가장 먼저 특정해내야 한다. 자잘한 균열의 괴물을 죽이는 것보단 왕 하나를 죽이는 게 나을 테니.”

“명심하겠습니다, 마스터.”

전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서 마스터는 여전히 펴지지 않는 미간을 애써 문질렀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공략이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 각지에 퍼트린 세력은 전사들만이 아니다.

그에게 협력하는 수많은 집단들.

미국의 정부조차도 마찬가지였다.

실시간으로 세계 각지의 정보가 눈과 귀로 보고되는 중이다.

하지만 어느 한 곳에서도 차원 균열을 통해 괴물이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없다.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자신이 모르는 누군가가 공략을 진행하고 있는 게 아니고서야.

‘반드시 찾아내야한다.’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칠 수 없었다.

몇 년간 갈고 닦아 자신이 주인공이 될 절호의 이 기회를.

*

그라시아는 잠실 롯데타워의 옥상 난간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군.”

분명히 하늘에 균열이 열렸다.

지상에선 한국의 군인들과 플레이어들이 침략을 대비하고 있었다.

충돌만이 남은 상황에서 정작 적들이 침략해오지 않았다.

‘진행도가 빠르게 오르고 있다. 누군가가 공략을 진행하고 있다는 말일텐데.’

대체 누가?

순간 팬텀이 스쳐지나갔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팬텀이 아무리 대단한 재간을 지녔다고 해도 플레이어가 된지 반년도 되지 않았다.

고작 그 시간만에 강해지는 건 아무리 팬텀일지라도 한계가 있다.

‘침략이 시작되면 히드라곤의 주인도 나타날 줄 알았다만.’

그라시아가 아직도 한국에 있는 이유.

히드라곤의 혼을 지닌 플레이어를 찾기 위함이다.

앞선 두 차례의 침략에서 그가 나타났으니, 균열이 열릴 때 역시 모습을 보이리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균열은 열렸지만 문제는 침략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수우우우웅!

그라시아의 주변으로 검들이 늘어섰다.

“건드려보면 반응이 나오겠지.”

작게 중얼거린 그라시아가 검들을 차례대로 균열을 향해 쏘아댔다.

쿵! 쿵! 쿵! 쿠르르릉!

하지만 검들은 균열을 통과하지 못했다.

균열에 닿자 튕기며 되돌아온 것이다.

검들을 뭉쳐서 쏘아내도 마찬가지였다.

‘파괴불가의 워프라. 공략이 완료되기 전까지는 안 없어지나보군.’

이만한 공격에도 꿈쩍하지 않는다면 파괴불가의 옵션이 붙어있다는 말이었다.

물론, 파괴불가 옵션도 ‘파괴신의 망치’ 같은 게 있으면 부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저 워프 하나 부수는데 쓰자고 사용하기엔 너무 아까웠다.

《‘차원 균열의 왕’이 죽었습니다.》

“······ 뭐?”

순간 그라시아는 화들짝 놀랐다.

어지간한 일에는 꿈쩍 안 하는 그라시아라고 해도, 이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차원 균열의 왕이 갑자기 죽었단다.

대체 어디서 뭘 하다가 죽은 건지 알 겨를이 없다.

《‘망자의 왕 아흐람’이 부활합니다.》

《2페이즈로 돌입합니다.》

《진행도 20.5%》

“······.”

······ 부활 패턴이었나.

후. 숨을 돌렸다. 갑자기 공략이 완료되었다면 끔찍한 기분이었을 테니까.

그 사이에 진행도가 20%를 넘어섰다.

‘아흐람?’

그런데, 아흐람이라.

한 번 죽어야 본색을 드러내는 보스 몬스터인 모양이다.

아흐람이라는 이름은 어딘가 익숙했다.

‘분명히 마계의 첫 지옥을 지키는 수문장이 아흐람이었지.’

대원정에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대원정에 대한 이야기는 자세히 알고 있었다.

차원 균열의 왕이 아흐람이라니.

그때 제대로 공략하지 않았던 걸까?

‘기사왕 빌헬름이 병사들을 희생시켜 진행했다. 제대로 공략하지 않고 욕심을 내어 마왕을 잡으려다가 모든 걸 망쳤다.’

그리고 이제는 마계의 수문장이 살아서 지구를 침략하려고 한다.

그 말인 즉슨, 빌헬름이 제대로 아흐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결국 대원정은 실패했고, 마계와 마왕은 지구를 노리고 있다.

‘쯧, 역시 내가 마왕을 죽여야 했던가.’

그라시아가 대원정에 참가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 별을 먹어야 했으니.’

당시의 그는 초월 중이었다.

결국 초월에 성공했고 더욱 강력한 힘을 가졌다.

지금이라면, 빌헬름도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빌헬름이 죽이지 못한 마왕도 죽일 수 있을 터였다.

‘히드라곤의 혼만 찾으면 유일등급 검을 완성시킬 수 있다.’

여기에 히드라곤의 혼만 찾으면 모든 게 완성된다.

유일 등급의 검은 이미 한 자루 있지만, 그것과 짝이 되는 나머지 한 자루를 구하면 무적이 될 테니까.

더 이상 자신을 적대할 수 있는 존재는 판게니아에도, 지구에도 없을 것이다.

설령 빌헬름이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마찬가지.

다만.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었다.

《진행도 24.1%》

“······ 버그인가?”

*

안락한 침대에 누워있는 기분이 이러할까.

흔히들 팀게임에서 동료가 게임을 끝까지 이끌어 나갈 때, 우리는 ‘버스 탔다’는 말을 쓰곤 한다.

그 말대로였다.

나는 지금 확실하게 고속 버스······ 아니, 안정적인 제트기를 타고 있었다.

구아아아아아아!

아흐람이 비명을 내질렀다.

멸악의 거인이 전장을 휘저으며 달려가 순식간에 뭉개버렸기 때문이다.

허무하게 죽었지만, 아흐람은 부활했다.

‘2페이즈.’

부활 패턴의 2페이즈.

손에 쥔 검은 별의 힘을 흡수한 아흐람은 되살아난 뒤 더 강해졌다.

―나는······ 불사신······ 이다············!

쿠아아아아앙!

아흐람이 소리를 내지르자 검은 파장이 일며 멸악의 거인이 밀려났다.

불길하기 짝이 없는 검은 불길을 쏟아내며 대검을 들자 별 수호자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어찌됐든 메인 퀘스트다.

‘기여도 순위에 따라서 보상을 지급한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이곳에 존재하는 플레이어는 나밖에 없다.

기여도가 낮아도, 여기서 공략을 끝내면 내가 1등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작은 기여도라도 얻기 위해선 약간이라도 힘을 보태야하는 거고.

나는 기세등등한 아흐람을 보며, 손을 들어올렸다.

콰칭!

불길하기 짝이 없던 검은 불길의 ‘신비’가 사라진 순간이었다.

―············ 멸망께서 내려주신············ 나의 힘을············!

아흐람이 당황했다.

접근을 막던 검은 불길이 사라지자, 멸악의 거인이 다시 미쳐 날뛰었다.

멸악의 몽둥이를 들고 휘두를 때마다 지형이 붕괴되며 아흐람이 납작해졌다.

《‘망자의 왕 아흐람’이 죽었습니다.》

《‘혼종 융합체 아흐람’이 부활합니다.》

《3페이즈로 돌입합니다.》

두 번 부활한 아흐람은 혼종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수만에 달하는 혼종들이 아흐람에게 빨려들어가더니 몸을 수복하며 거대한 방패를 만들었다.

쾅!

그리고 그 방패는, 멸악의 거인이 휘두르는 몽둥이마저도 막아냈다.

―크하하! 다······ 심연에······ 가라 앉아라!

멸악의 거인이 방패를 미친 듯이 두들겨대기 시작했다.

별 수호자들과 사주력들 역시 늪의 혼종들을 압도적으로 찍어누르고 있었다.

가히 장관이지만, 백왕은 팔짱을 껸 채 지켜만 보는 중이다.

“왜 지켜만 보는 거냐, 까악?”

“‘나’는 어디까지나 구경만 하겠다고 약속했으니 말이다.”

참 대단한 녀석이다.

이 상황에서도 정말 구경만 할 줄은 몰랐다.

반대로 사주력들은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크람델의 지하에 나타난 아흐람과 혼종들을 제거하고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중이었다.

백왕이 물었다.

“그러는 너는 왜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것이냐? 네가 개입하면 훨씬 쉽게 끝날 텐데?”

“나도 신비만 파괴하겠다고 말했다, 까악.”

“······ 그래서 신비만 파괴중이었나.”

백왕이 너털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제 1의 벽’을 파괴한 순간, 백왕은 어느정도 나의 허세를 ‘진실’로 믿기 시작했다.

유일 등급의 신비.

그것을 파괴했다는 건, 내가 규칙을 비틀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니까.

“슬슬 끝나가는군.”

백왕이 멸악의 거인과 아흐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혼종을 흡수해 절대적인 방어력을 지닌 방패를 만들었지만, 멸악의 거인 앞에선 시간을 버는 용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 괴물 같은 놈······!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처럼, 몽둥이로 끊임없이 내려 찍어대자 방패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가만히 지켜보는게 불쌍할 지경이었다.

《‘혼종 융합체 아흐람’이 죽었습니다.》

《‘검은 별 아흐람’이 부활합니다.》

《4페이즈로 돌입합니다.》

벌써 4페이즈.

그 순간 진행도가 60%를 넘어갔다.

4페이즈에 들어서자 본격적으로 검은 별의 힘이 아흐람을 잠식해나갔다.

“음······.”

백왕이 침음을 흘렸다.

쥐고있던 검은 별을 흡수한 순간, 아흐람의 전신에서 마력이 폭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위험하군.”

백왕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위험을 감지했다.

아흐람의 마력이 심상치가 않았다.

이윽고 백왕이 주저없이 등을 돌렸다. 손톱을 꺼내어 공간을 가르자, ‘망자의 늪’으로 변한 필드에 구멍이 생겼다.

백왕의 손톱은 그저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모든 걸 벨 수 있었다.

곧이어 백왕의 주변으로 사주력들이 모두 모였다.

아흐람의 근처까지 들어가있는 건 멸악의 거인뿐.

“그대도 같이 가지.”

백왕이 넌지시 내게 말했다.

이제부턴 같은 식구이니, 함께 가자는 것이다.

나는 저 멀리 있는 별 수호자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른 별수호자들과 멸악의 거인은 두고 가는 거냐, 까악?”

“어쩔 수 없다. 곧 놈이 폭발하면 이 공간 자체가 허물어질 것이다.”

벗어나지 않으면 위험하다.

백왕조차도 위협을 느낄 정도로 위험한 대폭발이 일어날 징조였다.

헌데 별 수호자들과 멸악의 거인은 이미 너무 멀리 있다.

그리고 백왕이 자리를 뜰 정도라면, 미처 벗어나지 못한 모든 것들이 소멸할 것이었다.

‘위험을 탐지하는 능력 하나는 신적이었지.’

백왕의 위험탐지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마치 미래를 보듯이 백왕은 움직일 수 있었다.

그가 물러날 정도라면 별 수호자들은과 멸악의 거인의 소멸은 확정이라고 봐야된다.

‘드라무트, 안다사르······.’

문제는 저 사이에 드라무트와 안다사르의 머리도 있다는 것이었다.

드라무트는 그나마 인간에게 호의적인 별 수호자다.

아니었다면 별의 주인이 내가 되었다고 한들, 내 말을 그렇게까지 따르진 않았으리라.

강제성이 있다고는 할지라도 드라무트 역시 인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안다사르의 머리 역시, 앤드류 사제를 생각하면 반드시 가져가야만 했다.

“여기 남아있을 생각인가? 그다지 좋은 생각 같지는 않군.”

“저 폭발 정도는 막아주겠다, 까악.”

“······ 별의 폭발을?”

검은 별의 폭발을 어떻게 막겠냐는 듯.

약간의 불신이 섞인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저 검은 별의 폭발은 단순히 강하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천천히, 품에서 머리카락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름 없는 성좌의 머리카락’을 사용합니다.》

메인 퀘스트 5, 신비 얻기를 클리어하자 성좌들이 직접 내민 백 개의 보상.

그중 내가 고른 목록은 이것 ‘머리카락’이었다.

‘자신의 신체부위를 내어준 유일한 성좌.’

도구가 아닌 신체부위다.

설령 머리카락이라고 할지라도,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런 내 선택은 성공적이었다.

긴고아

‘용납할 수 없다.’

멸악의 거인은 별을 검게 물들인 저 존재를 용납할 수 없었다.

멸악의 거인 뿐만이 아니다.

이곳에 있는 모든 ‘별 수호자’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별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저 별 자체가 여신의 상징이다.

감히 여신의 상징을 악으로 물들이며 사용하는 저 ‘악’ 그 자체를 어찌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멸해야 한다.’

가루도 남기지 말아야 했다.

멸악의 거인은 기꺼이 나서서 아흐람과 맞섰다.

감히 멸망의 하수인 따위가 별을 물들여 사용하는 걸 내버려둘 순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흐람은 계속해서 부활했다.

마침내 세 번의 부활을 끝으로 검은 별의 힘마저 흡수해버렸다.

“감히······!”

멸악의 거인은 자신의 모든 걸 쏟아냈다.

하지만 검은 별을 흡수한 아흐람은 적대자들을 모조리 소멸시킬 생각뿐이었다.

―다······ 죽어라······!

자폭이다.

별과 함께 폭사시켜 영원히 없애버리겠다는 뜻이었다.

가공할 마력이 아흐람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걸 빨아들이며 터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멸악의 거인도, 다른 별 수호자들도 아흐람의 자폭은 예상하지 못한 수였다.

그것도 검은 별과 함께 터진다면 이 공간 전체가 사라질 것이다.

도망치기엔 늦었다. 빨아들이는 힘이 강력해 벗어날 수 없다.

이대로는 열에 달하는 별 수호자가 한꺼번에 죽는다. 그리하면 남은 별들조차도 위태로워질 건 자명한 일.

“그렇게 놔두진 않는다!”

멸악의 거인이 아흐람을 끌어안았다.

거인의 항마력과 그가 가진 스킬들로 말미암아 자폭의 피해를 최소화할 생각이었다.

“멸악의 거인!”

“희생을 자처할 셈인가?”

“멍청한 짓을!”

별 수호자들이 놀라서 소리쳤다.

즈아아아아아!

그 순간에도 아흐람과 검은 별의 마력은 이내 터질 것처럼 팽창했다.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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