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46화 (46/317)

무엇보다 현재 내 뒤에 있는 괴물들이 어떤 괴물들이던가.

절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세계관 최정상급의 존재들이 아니던가!

특히 백왕과 저 멸악의 거인은 진짜배기 괴물이다.

‘멸악의 거인도 있다. 충분히 가능해.’

멸악의 거인은 빌헬름의 마지막 별을 담당했던 수호자였다.

그래서 잘 안다.

더불어 가장 사이가 안 좋은 별 수호자이기도 했다.

드라무트처럼 온화한 놈이 결코 아니니, 조금이라도 아는 척을 했다간 그대로 내 머리를 터트릴 것이다.

하지만 놈의 무력은 별 수호자들 중 최강이었다.

이용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수는 없을만큼.

‘최강의 패가 두 장이나 잡혔다.’

사고의 전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안 이용할 수가 없겠다.

오히려 이용하지 않으면 멍청한 짓이다.

저 안에 든게 뭔지는 나만 알고 있지 않나.

“뭐 하는 거지?”

“뜸을 들이더니 뒤로 물러난다?”

“역시 유일 등급의 신비를 깨는 건 불가능한 모양이군.”

별 수호자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 말처럼 나는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서는 중이었다.

괜히 신비 앞에서 얼쩡거리다간 그대로 저 악몽들에 살해당할 테니까.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고나서야 천천히 오른손을 들었다.

‘손을 들 필요는 없지만, 이 정도 페이크는 줘도 괜찮겠지.’

신비를 파괴하고자 한다면 눈에 담기만 해도 된다.

그러나 손동작을 추가함으로써 이 괴물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심어줄 생각이었다.

또한, 후에 적으로 돌아서게 된다면 이 동작이 0.1초의 시간이라도 벌어줄 것이다.

나는 천천히 장막의 신비를 바라보았다.

‘사라져라.’

*

‘뭐 하는 거냐?’

드라무트는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란돌프가 한참이나 신비 앞에서 멈춰있었기 때문이다.

“시간낭비로군.”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낫겠어.”

“고작 시체 까마귀 따위가, 유일 등급의 신비를 없앤다는 건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별 수호자들이 고개를 저었다.

이 시간낭비를 지금이라도 멈추자며.

동시에 그들의 눈이 드라무트를 바라봤다.

시체 까마귀를 추천하고, 데려온 건 모두 드라무트였다.

이곳에 모인 별 수호자들 중 가장 어리며 약한 신화종의 뱀.

“보는 눈을 더 길러야겠구나, 요르문간드의 후손이여.”

“패기는 좋았다만······.”

별 수호자들이 그럴 줄 알았다는 눈빛으로 드라무트를 흘기곤 혀를 찼다.

본래 저주계열의 시체 까마귀를 신성한 별의 근처에 다가가게 한다는 발상 자체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드라무트의 자신감은 쓸데없는 패기에 지나지 않았다.

“뒤로 물러서기까지?”

“쯧쯧. 포기할 생각인가보군.”

이제는 확실해졌다.

저 시체 까마귀는 유일 등급의 신비를 파괴할 수 없다.

물론, 신비를 파괴한다는 것 자체가 경악할 능력이지만, 모든 신비를 파괴하는 게 아니라면 기대할 필요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다.

‘역시 벅찬가보군.’

백왕 역시 물러서는 란돌프를 보곤 어깨를 으쓱했다.

하기야, 유일 등급은 절대적이다. 모든 것의 시초이자 기준이 되는 게 ‘유일’이라는 등급이 가지는 의미였다.

그것을 파괴한다는 건 세계의 규칙을 비튼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신화의 관을 모조리 돌파했대도 규칙을 비틀 힘을 탑이 부여할 리가 없지 않은가.

‘괜한 기대였나?’

찰나지만 백왕은 분명히 느꼈다.

자신의 신비가 저 시체 까마귀를 두려워하는 것을.

백왕이 지닌 신비 역시 유일 등급이었다. 수많은 신비들을 합쳐서 오롯이 자신에게 입혔으니, 감히 신비로써 그를 뛰어넘을 존재는 없다시피 하였다.

존재의 규격이자 권능.

단순히 착각이었을까?

저 시체 까마귀가 내뱉은 말들은 허언에 지나지 않았단 말인가?

그때였다.

“음?”

모두의 초조함과, 기대와, 실망 속에서 시체 까마귀가 한 손을 들어올렸다.

동시에.

쩌적-!

유일 등급의 신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

“신비에 균열이······!”

신비에 균열이 생기며 갈라지자 순식간에 분열되며 장막이 깨졌다.

순식간에.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경악을 금치못했다.

정말로 신비를 깨트릴 줄이야.

그것도 유일 등급의 신비를!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에 놀라움은 훨씬 컸다.

하지만 신비가 사라진 이후에 안에 있던 것들에 그들은 더욱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저건?”

“심연의 망자들?”

“아니다. ‘멸망’의 하수인들이다.”

“놈들이 별을 오염시키고 있었구나!”

별 수호자들은 신비의 안에 있던 존재들을 그 즉시 파악해냈다.

판게니아를 지옥으로 바꾼 멸망.

그 멸망을 따르던 하수인들이 신비의 안에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저 워프는 멸망이 대륙을 침략할 때 사용한 ‘차원 균열’이다.”

“‘묵시록’의 내용 그대로군.”

“······ 다 쓸어버려야한다.”

놈들의 앞에 나타난 거대하기 짝이 없는 워프.

저게 차원 균열이라는 걸 그들은 한눈에 알아보았다.

‘묵시록’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었으니까.

<‘제 1의 벽’이 소멸되었습니다.>

<‘차원 균열’이 생성되었습니다.>

<주변의 필드가 ‘망자의 늪’상태로 변형됩니다.>

주변의 필드가 급속도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크람델의 지하는 순식간에 ‘망자의 늪’으로 연결되었다.

그 주변에 있었던 이들 역시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너는, 초대받지 않은 자.

차원 균열의 왕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검은색 갑주와 투구.

마찬가지로 검은색의 철갑을 두른 거대한 말을 탄 거인!

그런데 그 모습이 내게는 왜인지 익숙하다.

‘첫 번째 지옥의 왕, 마계의 수문장 아흐람.’

미친.

마계를 관통하는 여덟 개의 지옥.

그중 첫 번째 지옥인 ‘망자의 늪’을 관리하는 수문장이자 망자왕 아흐람이 분명했다.

마계에는 총 여덟 개의 지옥이 존재했으며 그 하나하나가 정말 지옥이라 불릴만큼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망자의 늪에서만 대원정에 참가했던 절반의 병사가 죽어나갔으니까.

‘분명히 죽였을텐데?’

하지만 아흐람은 역시 내가 죽였다.

죽인 놈이 살아있다.

하물며 놈의 수하들도 버젓이 살아있었다.

―기······ 사··············· 왕!

아흐람의 눈을 오직 내게만 향해있었다.

별 수호자들도, 백왕조차도 아흐람의 눈에 담겨있지 않았다.

놈이 나를 알아봤다.

기사왕 빌헬름이었던 나를.

자신을 죽였던, 나의 존재를.

‘별에 의해 더 강해졌다.’

심지어 예전보다 더 강해진 것 같았다.

아흐람이 검게 물든 별을 들었다.

흐아아아아아아아아!

그 순간 망자들이 격동하며 거대한 혼의 구를 만들었다.

수많은 시체와 망자들로 합쳐진 끔찍한 혼종들.

그리고 그 사이에 또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안다사르의 얼굴은 왜 또 저기있는거지?’

어디 갔나 했더니.

이제는 살갗 혼종의 핵이 되어버린 안다사르의 얼굴.

머리는 하얗게 변했고 표정도 악귀가 따로없지만 안다사르가 분명했다.

대환장 파티가 따로없었다.

*

그 시각.

동시에,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게······ 뭐야······?”

“다른 세상?”

“하, 하늘에 왜······.”

하늘에 판게니아 대륙이 비추고 있었다.

마치 충돌이라도 할 것처럼.

“설마 저게 그 타차원?”

“아······! 이 상황 ‘타차원 커뮤니티’에서 봤어!”

“그럼 본격적으로 침략이 시작되는 거야?”

모두가 경악하며 공포에 떨었다.

이미 두 차례 타차원의 괴물들이 침략을 해왔다.

그 가공할 괴물들이 파괴한 건물과 죽인 인간의 숫자는 수십만에 다다랐다.

그마저도 디맨션 워리어들이 아니었다면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이후 ‘타차원 커뮤니티’에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대략적으로 알려주었다.

지금까지의 침략은 타차원의 척후병들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

‘차원 균열이 열리면 본격적인 대침략이 시작된다.’

······ 마스터.

그는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건물의 옥상 위에서 현재의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삼십에 달하는 전사들과 함께.

《판게니아 붕괴율이 10%를 달성했습니다.》

《‘메인 퀘스트??? : 차원 균열의 왕 제거하기’가 시작되었습니다.》

《30일간 차원 균열의 왕을 제거하지 못하면 모든 차원 균열이 열리며 ‘멸망’이 출현합니다.》

《이후 판게니아와 지구의 완전 침식이 진행됩니다.》

《보상 : 기여도 순위에 따라 차등지급》

《실패시 : 지구에 ‘멸망’ 출현》

첫 번째 차원 균열이 열리며 대대적인 침략이 시작됐다.

하지만, 예상하고 있었다.

‘이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스터를 비롯한 수많은 랭커들이 이 날을 손꼽아 고대하고 있었다.

오늘이 지나면, 세상은 완벽하게 변하리라.

플레이어들이 군림하는 세상으로 뒤바뀔 것이다.

마스터는 이 날을 위해 3년간 준비했다.

물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차원 균열의 왕을 제거하고 그라시아를 넘어선다.’

그라시아.

명실상부 최강의 인간.

하지만 마스터는 이번 기회를 발판삼아 놈을 뛰어넘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그라시아라도 자신만큼이나 세력을 일구진 못했을 테니.

그리고 차원 균열의 공략이야 말로 세력 싸움이다.

그라시아가 최강의 인간이라고는 하나, 동시다발적으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여하는 건 불가능하다.

마스터는 3년 동안 세력을 쌓고 기반을 다져왔다.

이 싸움, 질 수가 없다.

그런데.

“······ 왜 안 나타나는 거지?”

마스터의 표정이 점차 구겨져갔다.

차원 균열은 분명하게 열렸다.

세계 각지에 동시다발적으로.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 것도 나타나지가 않았다.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다.

《‘차원 균열의 왕’의 공략이 진행 중입니다.》

《진행도 1.3%》

《진행도 2.5%》

《진행도 7.8%》

“······ 뭐냐, 이건.”

성좌의 보물

차원 균열이 열리고, 퀘스트가 시작되며 ‘공략’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정작 하늘에 보이는 건 잔상처럼 비춰지는 판게니아 대륙과 곳곳에 열린 검은색의 ‘차원 균열’뿐이었다.

균열이 열렸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먼지 한톨 나오는 게 없었다.

그런데 진행도는 계속해서 제멋대로 올라가고 있었다.

“······ 다른 곳도 같은 상황인가?”

“예, 마스터. 지금 전부 균열만 열려있을뿐 침략해오는 괴물은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변에 모인 모든 전사들이 세계 곳곳으로 연락을 취하는 중이었다.

결론은 ‘침략은 없다’였다.

“그럼 이건 누가 진행하고 있는 거지?”

마스터는 이맛살을 구겼다.

침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진행도 되지 않아야 정상이다.

아무도 공략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니까.

《진행도 11.3%》

······ 하지만 진행도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었다.

플레이어가 되면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것이 상태창과 붕괴율이다.

붕괴율이 10%에 다다르면 첫 균열이 지구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플레이어의 뇌리에 때려박는다.

그 정도로 중요하고, 그 정도로 위험한 일.

당연히 쉬울 리가 없다.

그래서 몇 년을 준비한 것이고.

‘육안으로 보이는 차원 균열만 다섯 개.’

육안으로만 다섯 개다.

세계 전체에 열린 차원 균열의 숫자는 수만개가 넘을 것이다.

그 차원균열 전체로 괴물이 침략해온다면 못해도 수십만 마리는 되어야 한다.

시시각각 파괴가 진행되고 비명이 들려오며 세계는 폭발해야만 했다.

플레이어들이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을 사용해 강림한 뒤, 그 위용을 만천하에 알리며 최종적으로 차원 균열의 왕을 자신이 잡는 그림.

“그라시아는?”

“아직 한국에 있다고 합니다.”

그라시아가 아직도 한국에 있다.

왜?

그 작은 땅떵이에 뭐 먹을 게 있다고 이렇게 길게 표류한단 말인가.

균열이 일어날 징조가 보였으면 미국으로 되돌아와야 정상 아닌가?

‘반나절이면 미국에 올 수 있을 텐데.’

검성 그라시아. 그는 수천 자루의 검을 동시에 다룬다.

심지어 그 한 자루, 한 자루가 보물이 아닌 게 없었다. 하늘을 날고 공간을 접는 검 쯤이야 차고 넘쳤다.

그런데 놈은 균열이 열렸음에도 한국에 있다.

그 작은 땅에서 열리는 균열이라고 해봐야 몇 개 없을 터.

‘다른 노림수가 있나?’

진행도가 가파르게 올라갈 때 가장 먼저 의심한 게 그라시아다.

놈이 혼자 차원 균열의 괴물들을 독식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국에 있다면, 적어도 그라시아에게 차원 균열의 공략은 가장 중요한 목적은 아니다.

놈에게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한국에 있다는 뜻이다.

그게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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