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어디 갔지, 까악?”
“나도 모른다.”
“누가 몰래 가져가기라도 했다는 건가, 까악?”
“가능성은 있겠군. 정확히 1년 전에 사라졌으니.”
······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무려 사왕의 실험실이다.
그의 성 아래에 위치한.
침입자를 죽이는 수많은 도구와 마법구들이 사방에 널려있는!
이런 곳을 감히 누가 들어와서, 그것도 안다사르의 얼굴을 훔쳐간다는 것인가.
“듀라한의 몸은 본능적으로 얼굴을 찾지 않나, 까악?”
“시도해봤다만 번번히 폭주할 뿐이었다.”
“내가 저 몸을 안정화 시킬 수 있다면, 까악?”
“그럼 기꺼이 내어주지.”
사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냥 내어주는 건 아니다.
자신도 해내지 못한 몸체의 안정화를 내가 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었다.
이걸 시체 예술가의 대결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사왕의 저 해골눈에서 왠지모를 흥미진진함이 느껴진다.
“내 예술은 혼자 행해야 한다, 까악.”
“혼자 하는 타입인가?”
“그렇다, 까악.”
“아쉽군. 지켜보고 싶었는데.”
사왕이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내가 저 몸체를 안정화시키는 걸 사왕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
오히려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내 가짜 예술을 진짜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을 테니까.
“시간은 얼마나 주면 되나? 내일 발표까지는 당연히 힘들테고, 한 1년쯤······.”
“10분, 까악.”
즉답하자 사왕의 멈칫했다.
“······ 10분? 장난이 심하군.”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싶었다.
1년간 안정화 작업을 펼쳤으나 실패하였다. 그것을 시체 까마귀가 고작 10분안에 해결을 보겠다고 말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10분이면 충분하다, 까악.”
“흠······ 그 자신감이 맞기를 바라지.”
오만이 도를 넘어섰다.
10분 뒤에 실패한 시체 까마귀의 얼굴을 보는 것도 재밌는 일이리라.
사왕은 어깨를 으쓱하며 실험실을 나섰다.
*
정확히 10분 뒤.
“······ 어떻게 한 거냐, 대체······.”
믿을 수 없다는 눈초리로 사왕이 안정화 된 안다사르의 몸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왕은 눈이 없는데도 당황한 게 느껴질 정도다.
그럴 수밖에.
미칠 듯이 발광하던 신체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하기 그지없다.
봉인구를 해제한 뒤에도 멀쩡히 서있었다.
자신이 1년이 걸려서 실패한 일.
그걸 고작 10분만에 해냈다.
말이 10분이지, 사실상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무슨 마법을 부린 거냐? 알려다오.”
“예술의 기법을 묻는 건 예술가 사이의 금기다, 까악.”
“믿을 수가 없다······!”
인정하기도, 믿기도 어려웠다.
시체 까마귀와 마찬가지로 사왕 역시 시체로 예술을 행하는 자.
하지만 자신의 기술이 더 뛰어나다고 자신했다.
아무리 초월종이라고 해도, 예술의 영역까지 자신을 넘어설 수는 없으리라 여겼다.
이 분야에 있어서 최고의 실력가가 바로 사왕 자신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가 못한 걸 시체 까마귀가 보란 듯이 해냈다. 그것도 고작 10분 만에.
지난 1년이란 시간이 주마등처럼 사왕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내가 쓰려고 했다만.’
사왕이 경악하고 있을 때, 나는 내심 아쉬워했다.
안다사르의 육체가 불안정한 이유는 한 가지였다.
‘카오 상태였다.’
정확한 명칭은 카오틱(Chaotic).
게이머들은 일정수준으로 악업을 쌓으면 카오 상태가 된다.
워프를 이용할 수 없거나, 경비대에게 쫓기거나, npc들이 혐오하며 퀘스트를 주지 않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외적인 반응 말고도, 카오 상태가 되면 캐릭터 자체에도 디버프가 걸린다.
‘카오 상태에 빠지면 광란에 걸리지.’
광란(狂亂).
한 마디로 미치는 것이다.
게임상에선 특정 능력치가 소폭 떨어지는 정도에 그쳤지만, 이곳은 게임이 아니었다. 진짜로 광란에 걸려 폭주하고 있었다.
이 카오 상태를 풀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밖에 없었다.
선행으로 명성을 쌓는 것.
그리고 면죄부.
전자는 오래걸리지만, 후자는 한 방에 끝낼 수 있다.
앤드류 사제가 준 면죄부는 내가 사용할 계획이었지만, 계획은 언제든 바뀌기 마련이었다.
‘어차피 한 장 더 있으니까.’
앤드류 사제의 면죄부는 아직 한 장이 남았다.
그걸 내가 가지면 그만.
딸을 구하는데 썼으니 달라고 하면 거절은 못할 것이다.
‘인간과 달리 괴물들은 카오 상태에 무지한 모양이군.’
하기야 괴물들이 악업을 쌓는다고 카오 상태가 되는 것도 이상했다.
오히려 명성이 올라가면 모를까.
게다가 안다사르는 본래 인간이었으니 그 구조가 아예 다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의아한 건 왜 카오 상태야 빠졌냐는 것이었다.
‘어차피 죽었는데 왜 카오가 된 거지?’
이미 안다사르는 엘드리치가 되었을 때 죽어서 언데드가 됐다.
정화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시체인 건 변함이 없었다.
언데드가 악업을 쌓는다고 카오 상태가 되는 건 여러모로 이상한 일.
이건 조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약속대로 이 예술품은 내가 받아가겠다, 까악.”
“······ 정말로 무슨 수를 썼는지 알려줄 순 없는 건가?”
“생각해보겠다, 까악.”
“······! 부디 긍정적인 방향이면 좋겠군!”
사왕은 시체 예술에 진심인 놈이었다.
그래도 꼴에 통하는 게 있다고 여긴 모양.
이 악취미와 친하게 지내기는 싫지만, 사주력 중에 그나마 우호적인 것 같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적으로 돌리면 가장 피곤할 스타일이다.
겉으로라도 우호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나는 듀라한 안다사르의 몸에 말했다.
“네 얼굴이 있는 곳으로 향하거라, 까악.”
*
듀라한의 몸은 계속해서 자신의 얼굴이 있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얼굴을 찾지는 못했다.
“저곳은 별 수호자들이 모여있는 온천이다.”
별 수호자들이 모여있는 온천.
크람델의 중심부에 위치한 가장 큰 장소.
그곳으로 계속 듀라한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별 수호자들은 온천을 조사하고 있다. 아마도 여신의 눈물이 섞이기 시작한 1년 전의 일 때문이겠지.”
1년 전.
크람델의 본격적인 변화의 바람이 분 시기.
온천이 번화하고 괴물들이 안정화한 게 그때부터였다.
“오주력이여. 별 수호자들과 우리는 불가침의 관계다. 괜한 짓은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왜냐, 까악?”
사주력과 백왕.
하늘 무서울 줄 몰라도 되는 격의 괴물들이, 별 수호자들에게 쩔쩔매는 이유를 모르겠다.
“서로 엮여봤자 절대로 좋은 꼴을 못 보니, 당연한 것이다.”
사이가 그다지 좋지는 않은 듯 보인다.
별 수호자와 크람델은 불가침의 불문율이 있다.
하기야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별 수호자라는, 결국 별의 주인인 인간과 엮일 수밖에 없다.
설령 그들이 인간을 돕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주력의 입장에선 별 수호자는 배신자 같은 느낌일 수도 있겠다.
허나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 있었다.
“불가침이라면서 크람델에 별 수호자들이 들어오는 건 괜찮은 건가, 까악?”
“별과 여신에 관련된 것은 그들에게 절대적이다. 우리도 그 두 가지는 양보할 수밖에 없다.”
양보라.
사왕이 그 단어를 꺼내니 여간 안 어울리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로써 확실해졌다.
“아직 나는 공식적으로 오주력이 아니지 않느냐, 까악.”
오주력이 아닌 나에겐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걸.
공식발표가 있기 전까지 나는 오주력이 아니라 크람델에 들른 손님일 뿐이었다.
사왕이 난감해 했다.
“그렇다면 더더욱 아니 될 일이다. 별 수호자들과 엮여서 문제가 생겨도 그저 ‘방문자’라면 우리는 도와줄 수 없다.”
오주력이라면 도와주겠으나, 오주력이 아니라면 돕지 못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기대도 안 하고 있었다.
“도움은 필요 없다, 까악.”
말마따나 정말 도움 따위 필요 없었다.
나한테는 비장의 수가 있으니까.
여전히 의아해하는 사왕을 뒤로한 채 나는 크람델의 가장 큰 여관으로 발을 옮겼다.
*
별 수호자.
그들은 대부분 신화종, 혹은 환상종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그 이상의 취급을 받는다.
별을 수호하는 수호자는 그 이상의 힘과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으므로, 일반적인 괴물들과는 궤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본래라면 그들은 별의 수호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들이 모이는 건 수천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일.
그리고 현재, 열이 넘는 별 수호자들이 크람델의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33번 째 별이 확실하군.”
“여신 ‘레아’의 몸은 아니다. 그녀의 몸은 32조각으로 흩어졌어. 그럼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피나······.”
“쌍둥이 여신인 그녀가?”
“가능성은 높겠지.”
“확실히 확인하려면 저 ‘너머’를 봐야할진대.”
“유일 등급의 신비로 막혀있다. 저만한 신비를 사용해 누군가가 고의로 막아둔 것인진 아직 알아볼 일이야.”
“시간이 걸리겠군.”
별 수호자들이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드라무트는 슬쩍 온천을 나왔다.
옛 왕이라고 불리는 드라무트지만, 이곳에 모인 별 수호자들은 그에게 있어서도 ‘벽’같은 존재들이었으니.
드라무트는 이중 가장 약하고, 어린 막내여서 대화에 쉽게 낄 수가 없다.
끼고 싶어도 아는 게 있어야 끼는데 아는 것도 없다.
보아라.
자신이 사라져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지 않은가.
저들 별 수호자들이 드라무트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증거였다.
한숨을 내쉰 드라무트가 천천히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 뭐냐, 넌? 시체 까마귀?”
방에 들어선 순간 드라무트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웬 시체 까마귀가 자신의 방에 있었다.
별 수호자들의 방은 철저하게 분리되어야 할 텐데도.
어디서 잘못 들어온 걸까?
“오랜만이다 드라무트, 까악.”
“잡아먹히고 싶지 않으면 냉큼 꺼지거라. 장난칠 기분이 아니니.”
캬아아아!
입을 벌려, 먹는 시늉을 했다.
처음 보는 시체 까마귀.
저딴 것과 자신이 구면일 리가 없지 않은가.
기분은 안 좋지만, 사고를 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크람델에서 문제를 일으켰다간 괜히 혼나기만 할 테니까.
그러니 도망가라.
오줌을 지리며 도망간다면 살려는 주겠다.
그러다가 문득 드라무트가 인상을 구겼다.
“그런데 내 이름은 어떻게······?”
······생각해보니 이상하다.
시체 까마귀 따위가, 지고한 별 수호자인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그때였다.
쩌어어억!
시체 까마귀가 가슴팍의 핵을 스스로 빼자, 전신이 울퉁불퉁 뭉개지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신비 파괴
쩌어어억!
시체 까마귀가 가슴팍의 핵을 스스로 빼자, 전신이 울퉁불퉁 뭉개지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녹아내린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겁을 너무 먹어서 스스로 생명을 끊는 것인가?’
이 일련의 행동을 드라무트는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물이 스스로 핵을 떼어내다니.
핵을 잃은 마물은 죽는다. 너무 겁을 먹은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였다.
하기야 제정신이었다면 별 수호자의 침실에 발을 들였겠나.
“음?”
그러나 의아함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날개가 빠지고, 살과 뼈가 녹아내리자, 그 안에서 웬 인간의 형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 인간은 어딘가 굉장히 낯이 익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 넌······!”
“모습이 조금 변했기로서니 주인을 몰라보다니, 그러고도 네가 나의 충실한 종이라고 할 수 있나?”
“네, 네가 여길 어찌······!”
경악을 넘어선 불신.
하지만 눈앞에 있는 저 인간은 분명 현실이었다.
드라무트의 전신이 바짝 쪼그라들었다.
사막의 성지.
그곳의 가장 깊은 영역에 존재하는 별이 잠든 산.
그 산과 별을 수호하는 게 드라무트의 역할이다.
본래 별의 주인은 빌헬름이었으나, 빌헬름은 죽고 별은 다시 산에 떨어졌다.
이후 자신의 영역에 갑자기 나타난 인간이 바로 란돌프였다.
자격이 한참 부족함에도 별의 주인이 된 정체불명의 인간!
“게다가 방금 그 모습은 분명······ 시체 까마귀였을 텐데.”
분명히, 시체 까마귀였다.
외관도, 냄새도, 그 존재력조차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시체 까마귀가 란돌프로 변했다.
아니, 란돌프가 시체 까마귀로 변해있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시체 까마귀일 때는 분명히 별의 자취가 느껴지지 않았다.
헌데 란돌프로 변하자, 자신이 수호하는 별의 자취가 느껴졌다.
단순히 가죽을 뒤집어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존재가 되어있었다는 말이었다.
그 외에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
또한, 녹은 깃털과 살덩이들은 꺼낸 핵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원래대로 돌아오면 시체 까마귀 왕의 스킬은 사용하질 못하는군.’
나는 내심 혀를 찼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핵을 떼어내는 것만으로 완전무결하게 ‘스위칭’ 되었다.
시체 까마귀의 왕으로 있으면 장비를 착용하지 못하는 대신 관련된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반대로 란돌프로 돌아오면 시체 까마귀의 스킬을 사용 못 하는 대신 장비를 착용할 수 있었다.
게임으로 치면 변신, 아바타, 혹은 코스튬 같은 느낌.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바였으니 크게 실망할 일은 아니다.
지금은 그보다 드라무트가 더 중요했다.
“드라무트. 네가 여기 있는 이유는 33번째 별 때문이겠지?”
“······ 인간은 이곳에 있으면 안 된다.”
“조금 전에 보았던 내 모습이 인간 같던가?”
드라무트가 입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