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40화 (40/317)

경외

아이작과 이자벨라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점점 더 많아지는데?’

‘······.’

‘우리끼리라도 튀어야 할 거 같지 않나?’

절레절레.

이자벨라가 고개를 젓자 아이작은 미간을 찌푸렸다.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신비의 탑이 변화하기 시작하자 크람델 전역에서 괴물들이 모여들었다.

뿐만인가.

궁기가 등장하더니, 이제는 크람델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사주력 전원이 함께하고 있다.

빠져나갈 구멍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 변신을 알아볼 수도······.’

아이작은 내심 불안했다.

이 많은 괴물 중에 자신이 인간임을 알아보는 존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되면 즉살이다. 절대로 살아서 나가지 못하리라.

하지만 위험한 건 자신만이 아니었다.

‘호되게 엮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군.’

눈앞의 반룡인 여자와 시체 까마귀의 왕.

이 둘이 등장하며 아이작의 일상은 순식간에 변했다.

지난 1년간 아무도 자신을 찾아내지 못했건만.

유유자적한 크람델에서의 생활이 끝나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받은 게 있으니 무를 수도 없다.

하여, 아이작은 미치도록 묻고 싶었다.

‘지금 이 상황을 만든 게 설마 시체 까마귀인가?’

반룡인 여자에게.

이자벨라. 그녀의 눈빛에 묘한 확신이 차 있었으니까.

하지만, 물어볼 수가 없다.

입을 여는 순간, 아무리 작은 소리라 하더라도 저들은 잡아낼 테니.

주변에 모인 수만 마리 괴물들의 미묘한 움직임마저도 전부 읽고 있을 터.

수상한 낌새가 보이는 즉시 목이 잘릴 것이다.

아니면 돌이 되어 영원히 문에 걸릴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최악이다.

‘어떻게 빠져나가야할지 고민해봐야겠어.’

아이작은 턱을 쓸었다.

자칭 성각자. 시체 까마귀의 왕을 빼돌릴 수단을 고민했다.

탑이 열리는 순간 기존에 입장해있던 100마리의 괴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올 것이다.

그들 중 성각자만을 빼돌릴 수.

사주력의 눈과 십만에 다다르는 괴물들의 눈을 피해서 이동시킬 방법······.

‘그딴 게 있을 리가.’

내심 고개를 젓는다.

아이작이 아무리 도망에 능하다고 해도, 사주력을 피해 달아날 순 없다.

가진 모든 걸 쏟아부은들 10초 이내로 잡힐 것이다.

···솔직히 5초도 안 걸릴 것 같지만.

세상에서 제일 빠르다는 궁기와 달리기 시합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광역으로 퍼져나가는 메두사의 눈을 피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고, 대토룡이 숨결 한 번만 내뱉어도 모든 퇴로는 막힐 테다.

사왕에게 영혼을 붙잡히면 더더욱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겠지.

도망칠 수단은 수천, 수만가지가 있지만 이곳에서 먹혀들만한 건 그중 하나도 없었다.

꿀꺽!

‘그런데······.’

침을 삼킨 아이작이 사주력들을 유심히 살펴보곤 고개를 갸웃했다.

‘사주력이 전부 긴장하고 있는 것 같은데······?’

뭔가 이상하다.

탑 앞에 모인 사주력들이 묘하게 긴장한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말도 안 된다.

사주력(四主力)이 어떤 존재들이던가.

그 하나하나가 무소불위의 제왕들이다.

웬만한 도시 하나는 혼자서 쓸어버릴 수 있는 괴물들 말이다.

일례로 사왕은 현재 ‘네크로벨리’라 불리는 대도시를 한꺼번에 쓸어버린 적이 있다.

번성하던 왕국의 수도였던 그곳은 사왕에 의해 고작 하루만에 시쳇더미로 변했다.

그렇게 지금은 시체와 무덤만이 남아있는 죽은자들의 도시가 된 것이다.

이후, 인간들은 사주력이 있는 이곳 크람델에는 절대로 발을 뻗치지 않는다.

하물며 사왕과 같은 급의 존재들이 무려 넷이 모였다.

마왕조차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괴물들이, 긴장을 하고 있다고?

그것도 고작 탑의 변화 때문에?

‘고리가 다섯 개가 되는 순간.’

분명한 건 고리가 네 개일땐 이만한 긴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리가 다섯 개가 되는 순간, 그들은 겉으로 보일 정도로 크게 긴장하고 있었다.

아무리 신화의 시련이라 할지라도 사주력이 긴장하게 할만큼 저 변화에 의미가 있는 걸까?

휘아아아아아!

그때였다.

탑의 정상에 걸린 다섯 개의 고리에 변화가 생겼다.

다섯 개의 고리가 동시에 더 큰 빛을 내더니, 합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의 고리는 마치 왕관처럼 모습을 바꿨다.

······ 그런데 저 왕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성각자······ 시체 까마귀의 왕이 쓴 왕관이잖아.’

미치겠다.

이리보고 저리봐도 시체 까마귀의 왕관이 분명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로 이 변화를 자칭 성각자가 만들어냈단 말인가?

크람델의 모든 마물과 사주력의 관심을 고작 그 한 명이 이끌어냈다고?

“나온다!”

“탑이 열렸다!”

괴물들의 외침과 동시에, 탑에 입장했던 괴물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탑을 나선 즉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사, 사주력······!”

“여기 모여서 다 뭐하는 거지?”

사주력을 포함한 수많은 괴물들.

그러나 같은 괴물이 아니다.

특히 사주력과는 격 자체가 다르니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짓눌려질 수밖에.

감히 그들의 앞에서 떨지 않을 괴물은 이곳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무기를 포함한 신화종들과 피닉스와 같은 환상종들은 그나마 덜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하나, 둘, 사주력들이 탑에서 나와 굳어있는 괴물들을 살펴갔다.

저들 중 틀림없이 초월종이 있을 테니.

다섯 개의 고리를 이룬, 백왕의 업적을 훌쩍 뛰어넘은 진짜 괴물이!

“······ 다들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

그때였다.

탑에서 나온 존재에게 모두가 시선을 주목했다.

그는 눈앞에 사주력이 있음에도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도리어 여유를 부리며 농담섞인 말마저 건네고 있었다.

멀리서 지켜보던 괴물들이 작게 웅성거렸다.

“이무기!”

“확실히 이무기라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

등장한 괴물은 신화종의 이무기였다.

그것도 용이 되기 직전의 이무기!

그를 증명하듯 가슴팍에 박힌 염원구슬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있었다.

‘역시 사주력. 내 가능성을 알아차려버렸나보군.’

이무기는 가슴을 쫙 폈다.

사주력에 이만한 구경꾼들이라니.

이만한 장관이 펼쳐진 이유는 뻔하다.

필시 자신이 얻은 ‘신비’에 반응한 것이리라.

자신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모셔가기 위해 모인 게 아니라면 무엇이겠나!

“내가 얻은 신비는 ‘왕의 증명’과도 같다. 이는 대토룡조차 뛰어넘을 자격 그 자체! 더 말해 무엇하랴. 전설급 신비 ‘환영용의 안개’다!”

이무기의 주변으로 안개가 드리운다.

안개 속에 마치 무지개가 피는 것처럼 일곱가지 빛깔이 쏟아졌다.

환영용의 안개!

전설 등급의 신비이자, 전설처럼 회자되는 환영용의 잔재다.

사주력 중 하나인 대토룡은 언급함으로써 자신의 포부를 밝힌 것과 다름없다.

자신만만한 이무기를 보며 사주력은 차례대로 말했다.

“아니군.”

“아니다.”

“음. 확실하게 아니구나.”

“······.”

만장일치.

대토룡도, 궁기도, 사왕과 메두사 모두가 같은 의견이었다.

저 이무기는 초월종이 아니다.

그 뒤를 이어 피의 종족인 진혈족이 나왔지만 역시나 고개를 저었다.

“전부 아니군.”

대토룡의 말에 사주력이 동의했다.

99명의 입장자들이 차례대로 나왔으나 모두 기대이하다.

이들 전원, 초월종이라 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자신들에게 어떠한 감흥조차 주질 못했으니까.

종족의 값 자체가 다른 신화종이나 환상종들 역시 마찬가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게 초월종이겠군.’

마지막으로 나오는 자가 필시 초월종일 터.

이윽고.

툭.

탑의 마지막 입장자가 모습을 보였다.

마침내 나온 마지막 입장자를 본 모든 사주력들은 실망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음······?”

“시체 까마귀······?”

시체 까마귀의 왕.

······ 모든 입장자들 중에서도 가장 볼품 없는 녀석이었으니까.

*

《‘종의 벽(5)’ 시련을 클리어했습니다.》

눈앞에 떠오른 시련을 클리어했다는 말.

그것도 다섯 번째 시련이었다.

시체 까마귀과 허무, 거인, 드루이드를 거쳐 천상인에 이르는 다섯 단계의 시련이 드디어 종결되었다는 뜻이다.

‘천상인에 대한 시련이 설마 마지막 보상의 거절이었나?’

앞선 네 번의 시련은 모두 전투였다.

특성을 하나씩 추가해가며 해골병사들을 강화시켜온 것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 할 힘이 없었으니, 무려 종족값 20에 다다르는 천상인의 특성은 도저히 깰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때 나타난 ‘마지막 보상’이라는 말.

‘완성된 신화’라는 그 말.

유일급 신비라며 내 이름까지 달아주었다.

그야 끌리지 않았다면 거짓이리라.

백이면 백 모두가 보상을 받고 끝냈을 것이다.

어차피 더 이상의 보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엇하러 도전을 하겠는가. 지금껏 도전해온 모든 이유가 그저 보상의 격상을 위해서였을진대.

하지만 깨름칙한 기분에, 납득할 수 없는 마음에 나는 거절을 해버렸다.

‘······설마 진짜 이게 정답이었다고?’

정답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그럼 천상의 특성은 뭐지?’

내가 궁극적으로 보고자 했던 건 천상인에 대한 특성이었다.

도대체 천상인이 무엇이기에 다른 히든 특성의 두 배에 달하는 점수로 책정이 된 것인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었다.

아니면 이 선택 자체가 ‘천상’과 관련이 있다는 건가?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정한 끝을 향해 달려가는 불굴의 도전자여.》

《오롯이 완성되고자 했던 당신의 선택에 탑이 경외감을 느낍니다.》

《업적 ‘신화 그 자체가 된 도전자’를 달성했습니다.》

《명예가 500상승합니다.》

《탑이 약속합니다. 당신의 도전은 신비의 관에 영원토록 기록될 것입니다.》

《보상으로 규격외 등급 신비 ‘영원의 란돌프’를 획득했습니다.》

규격외.

이것이야말로 생전 처음보는 등급이었다.

유일급 이상의 등급은 규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규격 외(外)였다.

더 이상의 도전과 선택은 무의미 하다는 듯 획득된 것이다.

《백성전의 모든 성좌가 자신의 눈을 의심합니다.》

《존재할 수 없는 것을 존재하게 만든 당신의 완성에!》

《궁극의 신비를 마주한 성좌들이 전율하기 시작합니다.》

《‘메인 퀘스트 5 : 신비 얻기’가 완료되었습니다.》

《‘부서진 황금률의 아주 큰 조각’ 300h(200+100)을 획득했습니다.》

드디어, 크람델에 온 목적을 이뤘다.

바로 메인 퀘스트 5를 압도적인 성적으로 이루는 것!

성좌들이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도리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나는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으니.

《내용을 정산합니다.》

《규격외 등급은 정산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정산이 안 된단다.

존재하지 않는 규격을 점수로 환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인상을 찌푸리자, 또 다른 내용이 떠올랐다.

《만장일치로 최고점수를 부여합니다.》

《총점 500점》

《‘명예의 전당’에 업데이트됩니다.》

《‘행운의 성좌’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듭니다. 보상 내용이 한층 업그레이드 됩니다.》

《‘모험의 성좌’가 당신의 이름을 연신 외쳐댑니다. 보상 내용이 한층 업그레이드 됩니다.》

《‘시계태엽의 성좌’가 당신의 공로를 인정합니다. 보상 내용이 한층 업그레이드 됩니다.》

《‘영월의 성좌’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

《‘이름 없는 성좌’가 조용히 한 손을 보탭니다.》

······.

······.

······.

《레벨이 올랐습니다!》

압도

동시에.

전세계의 모든 플레이어는 경악했다.

“내 눈이 잘못된건가?”

“이런 점수 혹시 봐본사람?”

“왓더?”

“아니······ 이게 가능해?”

“난 250점이 끝인줄 알았는데?”

메인 퀘스트 5의 순위가 바뀌었다는 말과 함께 명예의 전당을 살핀 이들은, 믿을 수 없는 점수를 목격하게 됐으니까.

“500점? 물음표도 아니고 500점?”

메인 퀘스트 5.

신비 얻기.

이 단순하기 짝이없는 퀘스트에 목숨을 거는 플레이어는 없다.

도시에 널린 신비술사에게서 아무런 신비만 구매해도 클리어되는 퀘스트였으니.

게다가 판게니아의 인간들이 사용하는 신비는 원래부터 보잘것이 없다.

왕국을 건설한 왕, 웬만한 도시의 지배자급 신비가 아닌 이상 별다른 옵션조차 붙어있지 않은 게 바로 신비였다.

“······마스터.”

그리고 메인 퀘스트 5의 1위는 본래 ‘마스터’였다.

240점.

2위와 50점 이상의 차이를 벌리며 1위를 굳건히하던 인간계 최강의 괴물!

그는 유적도시 룬델라의 주인이자, 가장 많은 플레이어를 수하로 부려 이미 왕국을 세운 것과 다름이 없는 왕이었다.

이 기록은 절대로 깨질 리 없다고 자신했거늘.

그라시아마저 포기했으니, 어느 누가 감히 자신의 업적을 넘보겠는가.

하지만, 넘봤다. 넘어섰다. 그것도 압도적인 차이로.

절대로 닿을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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