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37화 (37/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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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

“다음 메인 퀘스트도 란돌프가 1위를 할까요?”

강남의 건물 꼭대기.

정식으로 발족한 영웅연합의 본거지에서 누군가가 문득 물꼬를 텄다.

하지만 이 물음은 모든 플레이어가 궁금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과연 팬텀으로 추정되는 란돌프가 메인 퀘스트 5마저도 1위를 할 수 있을 것인가?

게이머 시절 전성기이자 전설이었던 팬텀.

그가 가진 지식은 모든 플레이어를 합친 것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비’에 관해 지식이 있는 자들이라면 결과에 회의적이었다.

“가능성은 있지만, 희박하지.”

“애초에 신비라는 게 뽀대용이니까.”

겉으로 보여주는 용도.

신비라는 것 자체가 멋을 부리는 외에 큰 효용은 없다는 게 정설이다.

“뭐······ ‘지배자’ 급의 신비라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확실히. 대도시의 지배자들이 가진 신비는 최상급에 보유 효과도 있지.”

“이제 메인 퀘스트 4를 완료한 란돌프가 도시의 지배자가 된다? 초월자도 하기 힘든 게 도시를 먹는 건데?”

“마스터처럼 세력으로 밀어붙여서 초창기에 도시를 먹어둔 경우라면 가능은 해. 그런데 팬텀은 세력은 없지 않나?”

란돌프가 1위를 하지 못하리라 확신하는 이유.

최상급의 신비를 얻으려면 그만한 강자이거나, 세력을 가지고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세력으로 밀어붙여 도시를 먹고 지배자가 되면 ‘도시의 지배자’ 신비를 얻을 수 있다.

신비 ‘도시의 지배자’는 손에 꼽히는 성능을 가진 신비였다.

하지만 팬텀은 세력이 없다.

솔로 플레이어.

독고다이로만 움직여왔으니, 이 방법으로 신비를 얻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란돌프가 과연 초월자에 버금가는 강자냐?

‘그만한 강자는 아니지.’

하면, 당연히 아니다.

팬텀이 플레이어로 소환된 건 얼마 지나지 않았을 테니까.

메인 퀘스트 4까지는 지식과 요령으로 1위를 먹었다고 할지언정, 최상급의 신비를 얻는 건 아예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만에 하나 도시의 지배자가 된다고 해도······.”

“음. 마스터의 기록을 깨긴 어렵겠지.”

마스터는 플레이어 중에서도 가장 큰 세력을 갖고 있다.

3년 전부터 암암리에 활동하고 있으며 지금은 ‘타차원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마스터와 함께하는 플레이어는 50명이 조금 넘지만, 비공식적인 그들의 숫자는 백 명이 넘어갈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라시아는 표면적으로라도 ‘대의’를 말하며 어느 정도 실천하려 하지만, 마스터는 자신의 것, 자신의 편이 아닌 존재는 쥐도새도모르게 없애버리기로도 유명했다.

척살단도 운영하며 이권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탓이다.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구설수가 많다고는 해도, 어쨌거나 마스터는 ‘룬델라’의 주인이니······.”

“그러고 보니 왜 룬델라의 주인은 다른 도시의 주인들이랑 신비가 다른거죠?”

“룬델라는 유적도시니까. 일반 도시랑은 궤가 달라.”

마스터가 룬델라의 주인이 되면서 얻은 신비는, 다른 도시의 주인들과 궤가 다르다.

그래서 마스터는 압도적으로 메인 퀘스트 5의 1위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었다.

그 기록은 지금도 화자될만큼 압도적이었다.

“2등이랑 50점 차이가 나니까, 말은 다했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전설적인 팬텀이라도 이번 퀘스트의 1위를 달성하기는 힘들 것이다.

“음. 차라리 이번 퀘스트는 빠르게 넘기는 게 나을지도.”

“그래도 명색이 팬텀인데 순위권에는 들려고 하겠죠.”

그때였다.

“뭐야, 이거. 황금률 상점 왜 안열려?”

연합원 한명이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황금률 상점이 안 열린다니.

이게 무슨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어? 나도 안열리는데?”

“아니, 이게 왜 안 열려?”

“잠깐. 비밀경매장도 안 열리는데요?”

“다른 건?”

“다른 것도······ 다 안 열리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황금률 상점뿐만이 아니었다.

이권으로 얻은 모든 상점이 안 열렸다.

강제로 문을 닫은 것처럼.

한 명이 그런다면 우연이겠지만, 이곳에 모인 열 명이 넘는 연합원 모두가 같은 현상을 겪고 있었다.

"다른 지역 플레이어들한테 연락해봐.”

“지금 하고 있는데 다들 먹통이라는데요?”

“해외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또, 똑같습니다.”

“이상하군. 가끔 한 번씩 그럴 때가 있기는 하지만 모든 상점이 안 열리는 건······.”

동시에 모든 이들이 이맛살을 구겼다.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

자신들이 모르는 곳에서, 자신들이 모르는 상황이.

“······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

<백성전의 모든 성좌가 당신에게 몰두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관음당하고 있다.

그것도 백성전의 성좌들에게.

그야 퀘스트의 보상 등급을 올려주는 존재이니 관심을 끌어서 나쁠 건 없다지만, 아무리 봐도 내가 개고생하고 있는 걸 즐기는 것 같았다.

백성좌 전부가 말이다.

“빌어먹을, 까악! 허무 타입, 까악!”

나는 지금 쫓기고 있었다.

일만에 달하는 해골병사에게.

첫 번째 시련과 다를 바 없어보이지만, 큰 차이가 있었다.

그건 모든 해골병사가 ‘허무’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상극의 속성을 갖게 해주는 바로 그 히든 특성 말이다.

쉬이이이이!

촤르르르르륵!

하늘에서 빗발치는 빛의 화살을 본 적이 있는가?

수만발의 화살이 오직 나 하나를 죽이려고 비처럼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해골병사 주제에, 빛속성의 스킬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해골병사’의 레벨은 도전자의 레벨과 같습니다.>

<‘해골병사’가 ‘허무’로 인한 상극의 속성을 갖게 됩니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자 추가된 정보.

일만의 해골병사가 허무의 속성을 지니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얼핏보면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이는 간과할 수 없는 ‘별 거’였다.

허무는 상극의 속성을 갖게 해준다. 말하자면, 약점을 없애준다는 뜻이다.

그와 별개로 시체 까마귀는 저주속성이었다. 나 역시 허무의 히든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내 스킬까지 그 특징을 갖지는 않았다.

소환한 시체까마귀들이 빛의 화살에 의해 순식간에 도륙당한 것이다.

‘잠깐. 내가 왜 도망치는거지?’

그런데 문득 뛰면서도 의아함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거인의 항마력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정통으로 맞아봤자 스킬의 데미지는 상쇄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수만발의 화살이라도 고작해야 하급 ‘빛의 화살’ 스킬.

레벨 4짜리 해골병사가 쏘아내는 별 마력도 실리지 않은 공격이지 않나.

‘······ 거인의 항마력은 마력으로 만들어진 걸 막아주는 거지, 마력으로 생겨난 물리현상까지 막아주진 않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 수만발의 화살을 정통으로 맞았다간 몸이 분쇄될 것이다.

빛의 화살 때문이 아니라 물리력에 의해 그렇게 될 것이었다.

스킬을 쓴다는 건 마력에 물리력을 더한다는 것.

거인의 항마력은 마력에 의한 타격은 지워주지만 수만발의 빛의 화살이 허공을 쇄도하며 일으킨 물리현상까지 지워주진 않는다.

고로, 가만히 맞고 있으면 내 육체는 갈기갈기 찢긴다.

그럼 어떻게 이 상황을 타파해야할까?

‘해골병사들은 단순하다. 나를 죽이기 위해 모든 걸 쏟아내고 있다.’

해골병사는 지능이 있어도 높지 않다.

나를 죽이려고 빛의 화살을 미친 듯이 쏟아내고 있었다.

실제로 몇 발은 맞았으나 그 정도로는 타격이 크지 않다.

그렇다면.

‘모든 마력을 소진시키면 그만.’

아무리 허무 속성을 지녔대도 마력이 무한하진 않으리라.

‘고작 레벨 4짜리니까.’

고작 레벨 4짜리의 해골병사가 마력이 많아봤자 얼마나 많겠는가!

레벨에 따른 마력 포인트를 최대 40으로 가정해도 빛의 화살 20발 정도가 한계일 것이다.

‘빛의 화살 20만발이라.’

반대로 20만발의 빛의 화살을 소모시킬 수만 있다면, 저놈들 모두가 일반 해골병사와 다를 게 없어진다는 뜻이다.

다만, 이렇게 도망만 치는 식으로는 절대로 20만발을 소진시킬 수 없다.

그 전에 내가 죽을 테니까.

‘모든 해골병사가 나를 인식하고 있다. 10.45m 이내일 땐 스킬을 쏘지 않지만, 그 바깥으로 거리가 벌어지면 빛의 화살을 쏘기 시작한다.’

어그로는 이미 끌렸다.

나는 도망치면서 녀석들의 정확한 인식범위를 계산하고 있었다.

10m 45cm.

정확히 그 이상의 거리를 벌리면 해골병사들은 빛의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반면 50m 이상으로 벌어지면 스킬을 사용하지 않는다.

화살의 사정거리가 딱 그 밑이기 때문이다.

1만 마리의 해골들이 동시에 빛의 화살을 쏟아붙게 만들려면 10.45m의 간격을 유지 하며 50m 안쪽으로 모두 끌어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지형이 존재할리 없었다.

‘놈들은 단순하다.’

게임과 다를바 없을만큼 단순하다.

그걸 이용해야만 했다.

‘놈들의 중심부.’

가장 확실하게 조건을 만족하는 건, 저 군단의 중심부.

수만발의 화살이 빗발치는 저 죽음의 장소로 뛰어들면 모든 화살을 소진시킬 수 있으리라.

어지간한 강심장도 하지 못할 짓이다.

하지만 괜찮다.

걸어서 갈 생각은 없으니까.

“나를 띄워라, 까악!”

새롭게 소환한 일곱 마리의 시체 까마귀들이 발톱으로 내 전신을 옥죄인 뒤 날개를 퍼덕였다.

그러자 본체가 공중에 떠올랐다.

이제 남은 건 도망치며 계산한 거리를 정확하게 이용하는 것뿐.

“멈춰라, 까악!”

해골병사들의 사이로 대담하게 날아올라 49.8m쯤 되는 지점에 멈춰세웠다.

그러자 해골병사들이 하늘 위에 있는 나를 조준했다.

쉭!

쉬쉬쉬쉬쉬쉭!

“더 올라가라, 까악!”

빛의 화살의 사정거리인 50m를 넘어 더 높게 올라간다.

해골병사들이 쏜 화살은 내게 닿기 직전 힘을 잃고 그대로 증발해버렸다.

이거다.

이 거리였다.

나는 끊임없이 해골병사들과의 미묘한 거리 줄다리기를 반복했다.

그러자 하나, 둘 마력을 소진해 멍때리는 해골병사가 늘어나고 있었다.

‘해골병사의 레벨이 높았다면 이것도 꿈도 못 꿀 방법이었겠지.’

레벨이 높다는 건 마력과 스킬의 레벨도 높다는 소리.

무한하게 쏘아내는 빛의 화살의 사정거리가 수백, 수천미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빛의 화살보다 훨씬 상위의 스킬을 사용할지도 몰랐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깨라고 만들어놓은 시련이 아니다.’

신화 신비의 관을 깨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나처럼 모든 재능을 찍은 탓에 필요한 경험치가 미친 듯이 높아서 동레벨의 괴물을 아무리 잡아봤자 레벨업을 할 수 없어야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레벨에 비해 엄청나게 강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이 외에도 물러서지 않는 용기와 빠른 상황 판단력, 게임에 대한 수준높은 이해도 등등이 필요했지만 그 모든걸 종합적으로 갖고 있는 존재가 과연 몇이나 되겠나.

‘깰 수 있는건 나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밖에 없다.

그조차도 내가 7이나 8레벨쯤에 신비의 관에 도전했다면 불가능했을 터였다.

이걸 천운이라고 해야할까?

“2라운드 시작이다, 까악!”

모든 마력을 소진한 채 멍때리는 놈들을 바라보며, 나는 해골병사들의 중심부로 뛰어들었다.

*

까악!

까아악!

시체 까마귀들이 해골병사들을 유린한다.

더 많이 이어지고, 더 많이 합체하고, 더욱 커진 채 해골병사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느 일부러 느긋하게 해골병사들을 상대했다.

이로써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스킬 레벨부터 올려놔야한다.’

다음 단계로 가기 전에 스킬레벨부터 다 올려놔야 한다는 걸.

<‘시체의 예술’ 스킬이 최대치(10Lv)에 도달했습니다.>

<‘시체의 예술’ 스킬이 ‘시체 예술의 거장(1Lv)’으로 초월합니다.>

<‘시체 까마귀 소환술’의 레벨이 최대치(10Lv)에 도달했습니다.>

<‘시체 까마귀 소환술’ 스킬이 ‘상급 시체 까마귀 소환술(1Lv)’로 초월합니다.>

스킬 초월!

단순 숙련도가 아닌 스킬은 10레벨에 다다르면 초월하는 경우가 있었다.

만약 내가 평범한 시체 까마귀였다면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나, 나는 시체 까마귀의 왕이다.

연계되고 초월되는 스킬들이 더 있는 건 당연한 일.

《‘종의 벽(2)’ 시련을 클리어했습니다.》

《보상으로 궁극신화급 신비 ‘허무의 정점’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획득하시겠습니까?》

《획득하지 않을 시, 더 높은 시련으로 넘어갑니다.》

허무 속성의 해골병사 만 마리와 전쟁을 벌여서일까.

오버로드에 이어 허무의 정점이라는 신비가 떠올랐다.

게다가 궁극신화라니. 이런 등급은 또 처음본다.

확실한 건 오버로드보다 상급의 신비일 터.

허나, 여기에서 만족하긴 이르다.

《신비 ‘허무의 정점’의 획득을 거부했습니다.》

이 시련에 대해 어느정도 감이 잡혔으니까.

《도전자가 더 높은 시련에 도전합니다.》

《신비의 관 전체가 요동치며 전율하기 시작합니다.》

《업적 ‘신화의 완성에 도전하는 불굴의 도전자’를 달성했습니다.》

《백성전의 성좌들이 당신에게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어디 한 번 끝장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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