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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나만 가능한 것
신비의 탑.
정식 명칭은 신비의 관.
수많은 괴물이 자신에게 걸맞은 ‘신비’를 얻고자 들어오는 곳.
크람델에 입장한 괴물이라면 온천과 마찬가지로 한 번쯤 거쳐 지나가는 장소였다.
“크람델에서 유독 색이 같은 투구를 쓴 마수들이 많은 이유를 아나?”
“······?”
탑의 벽면에 기댄 아이작이 이자벨라에게 말했다.
이자벨라가 시선을 주자, 아이작은 오른손으로 탑의 벽면을 툭툭 건드렸다.
“이 안에서 얻는 신비에 따라 계급이 정해진다더군.”
“그래?”
“······ 그래? 말이 좀 짧은 것 같다?”
“넌 두 번째 봉사자.”
“그러니까······ 넌 첫 번째 봉사자다?”
끄덕!
이자벨라가 무표정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이자 아이작은 어이가 없었다.
“그럼 선배라고 불러야 하나?”
“아니.”
“혹시 나랑 대화하기 싫나?”
“계속해봐.”
계속 지껄여보란다.
궁금하긴 한 모양.
그 성각자라는 까마귀도 이상하지만, 이 여자도 이상하기로 치면 절대 뒤떨어지지 않았다.
‘이상하다. 내 매력은 인간형 여성이라면 종을 불문할 텐데.’
아이작은 충분히 자기객관화가 되어있다.
객관적으로, 자신은 잘생겼다.
매력도 흘러넘친다.
자신의 매력에 넘어오지 않는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형이라면 종을 불문하고.
그런데 눈앞의 여자는 너무나도 차가웠다. 한기가 풀풀 풍겨댄다.
‘마치 아랫것을 바라보는 듯한 저 특유의 눈. 여왕의 눈빛이군.’
하지만 아이작은 여자에 대해서라면 모두 꿰뚫어 본다.
이자벨라의 저 눈은 절대로 굽히지 않는 여왕의 눈빛이다.
지배하고, 다스려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하다. 시체 까마귀 따위에게 굴할 여자가 아니야.’
다스리던 자가 다스려지고 있다.
그것도 고작 시체 까마귀 따위한테.
완전히 굴종(屈從)했다. 그런데도 기질이 죽지는 않았다. 자칭 성각자를 제외한 모든 자에게 이 여자는 같은 눈빛을 보이리라.
“그럼 너도 1년간 봉사서약을 맺은 거냐?”
“비슷해.”
“넌 뭘 받기로 했지?”
“자유.”
“자유?”
끄덕.
이자벨라는 사막을 벗어나는 순간 이미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완전한 자유는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핏줄을, 자신의 발생지를 알고 싶어했다.
그러기 위해 성각자와 1년간의 봉사라는 계약을 맺은 것이다.
‘사람을 모으고 있다. 1년간 자신에게 봉사해줄 사람을. 무슨 기준으로?’
아이작은 팔짱을 꼈다.
느닷없이 자신을 찾아와서, 모든 걸 알고있다는 듯 이야기를 해댔다. 처음부터 크람델에 자신이 있음을 알고 온게 분명하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그토록 자세하게 알고 있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뒷사정까지 말한 적은 없으니까.
‘정말 성각자라서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건가?’
도무지 모르겠다.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도, 자신에게 시킬 일이라는 것도.
확실한 건 자유를 갈망하는 자를 찾아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저 눈빛. 계속 말해보라는 거로군.’
이자벨라는 아무런 말도 없이 아이작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저 이야기하라는 무언의 압박.
생각보다 궁금증이 많은 여자다.
“······ 어쨌든, 종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신비가 다른 경우가 있다고 한다. 고블린 같은 하위종은 대부분 보잘 것 없는 신비를 얻어서 흰색의 일꾼 투구를 쓰고있지.”
“검은색 투구는?”
“그건 길잡이 전용 색깔이다. 숨겨진 길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신비를 얻은 마수들이 보통 검은색의 투구를 쓰지. 파란색은 일꾼을 다루는 상급자들이고.”
“다른 색은?”
“붉은색은 크람델의 관리자 급이다. 크람델에서 꽤나 힘좀 쓰는, 인간으로 치면 귀족계급이 바로 그들이지. 그 이상의 지배자 계층은 어금니 모양의 왕관을 쓰는데, 사실상 크람델의 왕족이라고 봐도 무방해.”
“인간 같네.”
인간과 같이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이 명확하게 갈려있다.
그런데도 마수들이 끊임없이 크람델에 귀속되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진화의 조각과 여신의 온천수.
대게의 손님들에게 주어지는 것과, 크람델의 부역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예 질 자체가 달랐다.
아이작은 어깨를 으쓱했다.
“인간 같지.”
다른 곳의 마수들은 이렇지 않다.
유독 크람델만, 크람델로 몰려온 마수들만 그렇다.
아이작은 천천히 등을 돌려 탑을 올려다보았다.
‘무슨 신비를 얻으려고 들어간걸까?’
인간의 신비와 마수의 신비는 다르다.
그 의미도, 쓰임새도.
인간의 신비는 단순히 위치의 증명, 혹은 능력의 보조가 전부다.
예컨대 도시의 지배자가 되거나 길드의 주인이 되면 얻을 수 있는 천편일률적인 신비들.
신비술사에게서 구매할 수 있는 단순한 멋부리기용 이펙트들.
‘인간과 마수의 신비는 확실히 다르긴한데.’
인간의 신비는 큰 의미가 없다.
그래서 인간들도 신비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하지만 마수의 신비는 마수 자체의 자격과 같다.
종의 규격과 마수가 지닌 자체적인 격에 따라 얻고 사용할 수 있는 신비가 모두 다른 탓이다.
그런데 시체 까마귀가 신비의 관에 입장했다.
‘시체 까마귀는 아무리 잘 쳐줘야 중급종. 얻을 수 있는 신비라고 해봤자 별 볼일이 없을텐데······.’
설령 관의 끝까지 도달한다고 쳐도 얻을 수 있는 신비는 인간 기준에선 대단한 것이겠지만, 마수들 기준에선 하잘 것 없는 신비일 터였다.
만약 크람델에서 일을 하고자 오른 것이라면, 그 즉시 흰색 일꾼 투구다.
운이 좋아야 파란색 상급자 투구이고.
붉은색 관리자 투구는 등급이 높은 신비와 강력한 무력을 지녀야만 가질 수 있다.
그 이상의 지배자계층은 사실상 되는 게 불가능하다.
‘특별한 마수는 특별한 신비를 지니고 있으니.’
마수의 세계에서 신비는 사자의 갈기 같은 것이다.
누가 더 풍성한 갈기를 갖고 있느냐. 그걸 신비로 판단하는 게다.
신화종이나 환상종 같이 종족의 값 자체가 높은 마수들은 기본적으로 관에서 주어지는 신비가 전설급이라고 하는데, 직접 확인한 적이 없어서 확실하진 않았다.
하여튼 간에.
‘기껏해야 시체의 눈 같은 증폭 신비가 한계다.’
마수는 종족특성과 관련된 신비를 얻기 마련.
시체 까마귀는 저주 특성의 종족이다.
당연히 저주를 증폭시키는 신비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
기껏해야 중급 정도에 이르는 신비이리라.
메두사의 것과 같이, 크람델 전역에 이르는 엄청난 신비를 시체 까마귀가 얻는 건 아예 가능성이 없는 일이니까.
쿠릉!
그때였다.
“탑이······?”
탑과 함께 지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화, 황금빛으로······!”
아이작은 말을 끝맺지 못할만큼 당황했다.
갑자기 탑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크람델에 있으면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탑이 노했다!”
주변의 마수들도 덩달아 놀랐다.
수많은 마수들이 탑을 오르거나, 줄을 선 채 자기 순번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렇게 예상하지 못한 현상에 모두가 놀라고 있을 때.
“탑이 도전자에게 직접 시련을 부여한 거다!”
검은염소 형태의 마수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그로 인해 주변의 웅성거림은 더 커졌다.
“탑이?”
“그런 적이 있었나?”
“탑이 직접 시련을 내려야할만큼 강력한 놈이 들어간 건가?”
“설마······ 방금 들어간 미노타우르스 킹이?”
“아까전에 들어간 어린 환상종이 틀림없다.”
“무슨 소리냐. 당연히 레비아탄이겠지.”
각자 자기만의 추론을 내놓으며 지금의 현상에 주목했다.
들어간 누군가에게 탑의 주인이 직접 시련을 내렸다.
하지만, 탑에 들어간 인원은 많다. 그중 하나에게 특별한 시련을 내렸다면 대체 누가 그 시련의 대상인지는 의견이 분분했다.
아이작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에이, 설마······.
시기가 묘하다.
그가 입장하자마자 벌어진 일.
설마, 그 자칭 성각자가?
아니다. 아이작은 고개를 저었다.
그도 그럴 게, 고작 시체 까마귀에게 탑이 직접 시련을 내릴 리가 없지 않은가.
*
스아아아.
탑이 황금빛으로 변화한 순간, 왕좌에 앉아있던 문의 여왕 메두사가 반응했다.
잠들어있던 그녀의 뱀들이 혀를 내밀며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메, 메두사님께서······!”
“이게 몇년만에 움직이신 건지!”
메두사와 비슷한 형상을 했지만 그 크기가 훨씬 작은 서펀트들.
메두사의 피에 의해 태어난 서펀트들은 그녀의 움직임에 환호를 내질렀다.
‘그 사건’ 이후 입은 상처를 치료하고자, 메두사는 몇 년동안 본체의 움직임을 멈춘 채 오로지 회복에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
촤악. 촤아악.
서펀트들의 손놀림이 분주해졌다.
상급 여신의 눈물이 담긴 온천수를 메두사의 몸에 쉬지않고 적시는 중이다.
그녀와 같은 지고한 격을 지닌 괴물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치유할 수 없었으니.
하지만 메두사의 반응은 지극히 짧았다.
‘신화 신비의 관을 누군가가 열었나보군.’
신화 신비의 관은 이 도시가 ‘크람델’이라는 이름을 갖기 전에 두 번 열린 적이 있었다.
한 번은 백왕.
나머지 한 번은 찬란한 황금빛의 고룡에 의해.
백왕은 신화 신비의 관을 돌파하는데 성공했으나, 황금빛의 고룡은 실패한 뒤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 뒤로 열린 적이 없거늘.’
신비의 관은 마수들에게 신비를 부여하기 위한 장소다.
하지만 신비의 관은 철저하게 종족을 구분한다.
그 모든 종을 초월했던 고룡이나, 백왕 정도가 아니면 신화급의 관은 열리지 않는다.
그럼 그 둘과 비슷한 누군가가 관에 도전했다는 걸까?
‘어차피 성공할 수 없으리라.’
찬란했던 황금의 고룡도 죽음을 맞이했다.
백왕 역시 진절머리를 쳤다.
신화 신비의 관은, 그 종족과 도전자의 격에 따라 불가능한 시련을 연속해서 내는 탓이다.
북부의 수호신인 백왕은 신화 신비의 관에 도전해 막강한 힘과 그에 걸맞은 신비를 얻었으나, 결국 끝에 다다르진 못했다.
-이 신화의 시련은 끝을 보는 게 불가능하다.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백왕이 직접 평했으니 이견은 없으리라.
그래서 확신하는 것이다.
어차피 성공하지 못하리라고.
하지만 만약을 위해 신비의 탑 상공에 눈을 하나 띄워두었다.
탑의 변화는 지켜봐야 했으니까.
*
까악!
까아악!
상공을 날아다니는 시체 까마귀 두 마리.
그 시체 까마귀들과 시야를 공유한 채 나는 절벽의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엄청나군.’
신화 신비의 관에 도달한 즉시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도했다.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그건 끝없이 펼쳐진 해골병사의 행렬.
족히 1만 대군은 될 것 같은 숫자였기에.
‘이걸 혼자서 다 죽이라고?’
문제는 이게 시작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Lv.4】
모든 해골병사의 레벨이 4라는 것.
<‘해골병사’의 레벨은 도전자의 레벨과 같습니다.>
<착용한 장비를 제외한 모든 도구의 사용이 금지됩니다.>
<모든 가호와 수호의 작용이 벗겨집니다.>
일반 몬스터지만 그 숫자가 무려 1만이다.
같은 레벨이라면 많이 잡아야 수십 마리가 한계일 터.
‘내가 일반적인 4레벨이 아니라서 다행이군.’
내 레벨은 4지만, 4의 기준을 아득히 넘어선다.
레벨이 오를 때마다 맥스치까지 모든 능력치가 찍히는데다, 그 능력치도 1.2배에 달했으니.
모든 능력치가 48이면 어지간한 6~7레벨 수준이다.
뿐만인가.
별을 보유해서 모든 능력치가 5가 더 올랐다.
평균적인 7레벨의 강자도 상대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레벨이 높았으면 망할 뻔했다.’
내 레벨이 만약 10이었다면?
10레벨의 해골병사는 평범한 해골병사가 아니다.
스킬을 쓰고 뼈에 마력을 입혀서 그 자체로 검기(劍氣)처럼 변했을 것이다.
검기를 사용할 줄 아는 1만의 검사와 마주하는 셈.
차라리 레벨이 낮아서 다행이었다.
필요 경험치가 너무 많아서 욕이 나왔었는데, 이런걸 전화위복이라고 해야할까?
달그락! 달그락!
해골병사들이 절벽으로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저 물량에 압사할 것이다.
“일어나라, 까악!”
외침과 함께, 대상을 고르고 스킬을 발동하자 상공을 배회하던 시체 까마귀가 수직으로 낙하하며 한 해골병사의 몸 속으로 들어갔다.
달그락!
시체 까마귀는 4레벨의 보스 몬스터.
평범한 4레벨의 해골병사 쯤이야 간단하게 장악할 수 있다.
“합체해라, 까악!”
그리고 시체 까마귀의 왕은, 시체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 수 있었다.
시체의 예술가라는 표현이 맞으리라.
해골병사를 장악한 시체 까마귀가 주변의 해골들을 연이어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후 내 성력을 보태자 장악한 해골병사들이 합쳐지며 거체의 골렘처럼 변했다.
두 마리의 시체 까마귀가 해골병사들을 연결하고 내가 조종한다.
‘시체 조종술, 시체의 예술.’
모두 시체 까마귀의 왕이 된 이후 사용 가능해진 스킬들.
이 시련을 깨는데 이보다 더 좋은 스킬은 없으리라.
“다 부숴버려라, 까악!”
콰아아앙!
*
대체 몇시간을 싸운걸까.
<‘시체 조종술’의 스킬 레벨이 1 올랐습니다.>
<‘시체의 예술’의 스킬 레벨이 1 올랐습니다.>
<‘시체 까마귀 소환술’의 스킬 레벨이 1 올랐습니다. 시체 까마귀 한 마리를 추가로 더 소환할 수 있습니다.>
<‘시체 조종술’의 스킬 레벨이1 올랐습니다.>
<‘시체의 예술’의 스킬 레벨이 1 올랐습니다.>
<‘시체 까마귀 소환술’의 스킬 레벨이 1 올랐습니다. 시체 까마귀 한 마리를 추가로 더 소환할 수 있습니다.>
···.
······.
끊임없이 숙련도가 오른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지닌 히든 특성 ‘손재주’는 모든 스킬과 장비의 숙련도를 +1 해주지만, 그와 별개로 스킬 경험치를 말도 안 되게 빠르게 올려준다.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끝이 없이 몰려오는 해골 병사가 지긋지긋해질 때 쯤.
까악!
까악!
까아악!
어느덧 내 주변을 날아다니는 시체 까마귀는 일곱 마리가 됐다.
스킬 레벨 7. 이대로 10레벨을 찍고 열 마리를 소환하면 스킬의 초월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스킬의 레벨 상승으로 인한 기쁨은 지금 내가 느끼는 행복의 1%도 채 되지 않았다.
“까아아아아악!”
부서진 해골의 산 꼭대기에서, 나는 온 힘을 다해 소리를 내질렀다.
‘이겼다!’
마침내, 일만마리의 벽을 뚫어냈다.
이 징글징글한 놈들!
지금 내 상태가 시체 까마귀의 왕이 아니었다면 절반도 채 없애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는 시체 까마귀의 울음소리마저도 정겨울 지경이었다.
《‘종의 벽’ 시련을 클리어했습니다.》
《보상으로 신화급 신비 ‘오버로드’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획득하시겠습니까?》
《획득하지 않을 시, 다음 시련으로 넘어갑니다.》
설마 이게 끝이 아닌 건가?
난생 처음 보는 신비의 이름.
이걸 얻으면 나갈 수 있다는 말!
‘신화급 신비면 뭐가 됐든 충분하다.’
괴물들이 사용하는 신화급의 신비면 넘을 수 없는 벽이다.
그게 뭐가 됐든 엄청난 효과를 지녔을 것은 자명한 일.
더 이상 싸울 기력도 없었다.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겠다.
이제는 해골만 보면 헛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게 시련의 끝이 아니란다.
허나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시련을 계속 도전하는 건 미련한 짓이다.
그야말로 죽음을 자처하는 짓이었다.
《‘오버로드’의 획득을 거부했습니다.》
누군가가 보았으면 죽고싶어 환장했냐고 소리칠 일.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못 깬다.’
내 생각이 맞는다면, 이 신화 신비의 관을 오를 수 있는 건 지금뿐이다.
레벨이 높아지면 높아질 수록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테니까.
도전하다가 레벨이 오르면 어떡하냐고?
‘어차피 내 레벨은 고정이다.’
해골병사 만 마리를 잡아도 레벨업이 안 됐다.
같은 레벨의 괴물을 수십만 마리, 수백만 마리 잡아봤자 내 레벨은 안 오른다.
말하자면 이곳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만이 끝을 볼 수 있는 장소나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도전자가 더 높은 단계의 시련에 도전합니다.》
《업적 ‘더 높은 신화에 도전하는 무모한 도전자’를 달성했습니다.》
《백성전의 성좌들이 당신에게 몰두하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