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까마귀의 왕
디맨션 워리어.
타차원의 공격으로부터 세상을 지키는 영웅들!
그들이 등장한 이후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느닷없이 출현한 괴물들과 초인으로 변신하는 강림자라니!
열렬한 환호와 걱정, 미래에 대한 불신이 세계 경제를 바닥까지 추락시켰고 수많은 음모론들이 정론처럼 떠들어졌다.
당연히 관련된 인터넷 커뮤니티는 우후죽순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중 세계적으로 가장 폭발적인 성장을 이룬 곳이 있었으니.
<타차원 커뮤니티>
고작 한 달여 만에 총방문자 수 10억 달성의 기염을 토해낸 초거대 공룡 커뮤니티, 타차원 커뮤니티!
‘타차원 커뮤니티’가 이토록 빠르게 성장한 성장동력의 이면에는 다수의 ‘디맨션 워리어’가 있었다.
-워리어님들! 정말 세상이 멸망 하나요? (Lv.0 monsters)
-저희가 존재하는 한 이 세상이 멸망할 일은 없습니다. (W.VV Master)
-워리어님들은 게임처럼 상태창 같은 걸 볼 수 있다던데요! (Lv.0 할젠)
-한국은 게임 강국이라 그런지 재밌는 발상을 하는군요? (W.8 Sera)
-이 커뮤니티에는 총 몇 명의 디맨션 워리어님들이 계시나요? (Lv.0 pelltra)
-저희와 함께 활동하는 워리어의 숫자는 53명입니다. (W.V DarkStar)
-세계에서 가장 강한 워리어님은 누군가요! (Lv.0 angel15)
-당연히 타차원 커뮤니티 주인인 Master님이시죠! (W.8 Sera)
내로라하는 디맨션 워리어들이 직접 타차원 커뮤니티에 상주하며 답글을 달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닉네임 앞에 (W)는 워리어의 줄임말이고, 그 뒤의 숫자나 영어는 워리어들의 등급과도 긴밀한 관계가 있었다.
그들은 세상에 위협이 닥칠 때 미리 알려주며, 괴물이 출현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까지도 상세하게 가이드하는 중이었다.
세계 각국에서도 타차원 커뮤니티를 권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 모두 ‘미지’ 앞에서는 무력했던 탓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일반 페이지’에 국한한 것.
--
세계정부의 고위관료들, 세계적인 유명인사들에게는 VIP 아이디가 따로 주어졌다.
그들은 로그인하면 숨겨진 게시판을 볼 수 있었다.
-<타차원의 괴물>-
-<타차원의 특별한 물건>-
-<엘릭서 경매>-
-<예언자 일지(VIP.7)>-
--
VIP 아이디도 사람에 따라 주어지는 레벨이 다르다.
그 레벨에 따라서 볼 수 있는 게시판 역시 한정되어 있었다.
그중 가장 인기가 많은 건 당연히 ‘엘릭서 경매’ 게시판이었다.
모든 상처를 치유하며 급에 따라 죽은 신경이나 신체결손마저도 재생할 수 있는 ‘엘릭서’에 대해 VIP들은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불로장생의 영약이라고도 불리며, 타차원 커뮤니티가 지켜지고 키워진 밑바탕이 되었다.
예언자 일지는 어떤가.
앞으로 일어날 굵직한 일들을 예언한 예언자의 수기를 볼 수 있다. 이는 어지간한 국가의 수장급만이 확인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위의 등급. 커뮤니티의 주인인 마스터와 통화를 할 수 있는 자격은 미국의 정상을 포함해 전세계에 다섯명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VIP 아이디의 레벨이 아무리 높아도 볼 수 없는 영역이 있었으니.
--
그건 바로 워리어 게시판.
타차원 커뮤니티에 속한, 철저한 검증과정을 통해 선별된 53명의 전사들.
그들만이 볼 수 있는 영역이 따로 존재했다.
-<현상수배(+New!)>-
-<연합 통합 게시판(+New!)>-
-<클래스에 따른 재능 개화>-
-<레벨별 추천 사냥터>-
-<재능과 능력치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일지>-
-<메인 퀘스트 공략과 정리>-
-<현재까지 확인된 히든 특성(+New!)>-
딸칵!
타차원 커뮤니티의 주인이자 최상위 랭커인 마스터.
그가 마우스를 클릭했다.
-<현상수배 현황>-
―토템술사 반야크(위험도 3) / 척살 완료
―혈귀 웨이장(위험도 4) / 척살 완료
―미치광이 학살(위험도 6) / 진행중
―뇌절 아이작 (위험도 7) / 진행중
―용살자 바르무슈(위험도 9) / 진행중
―팬텀 란돌프(위험도 10) / 반드시 생포
······.
현상수배에 오른 백 명 가까운 플레이어들.
현실과 판게니아 양쪽에 안좋은 영향을 끼칠 위험도가 높은 자들을 모아둔 게시판이다.
‘토템술사 반야크가 제거됐군.’
별로 위험한 놈은 아니지만, 현실에서 쓸데없는 말들을 하는 통에 현상수배로 올려두었다.
타차원의 전사들이 판게니아라는 게임에서 왔다는 그런 이야기를 굳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으니까.
그랬다간 전사들의 신비성과 위엄만 손상된다.
‘그 외에는 변동사항이 없다.’
현황만 확인했으면 됐다.
딸칵!
마스터가 다른 게시판을 둘러보았다.
-<현재까지 확인된 히든 특성(+New!)>-
―허무
―손재주
―웨폰 마스터
―비스트 로드
―거인의 항마력
―황금의 은총
―대식가
5년간 알아낸 히든 특성은 총 여섯 개.
그런데 새로운 히든 특성이 추가되었다.
‘대식가라.’
마스터의 두 눈에 흥미로움이 흘러넘쳤다.
단순한 재능이 아닌 히든 특성은, 두 세계를 관통하는 열쇠다.
레벨의 성장과는 무관하게 주어지는 권능과도 같았다.
‘히든 특성의 보유 여부에 따라 같은 성급의 초월자들끼리도 격차가 존재한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히든 특성 하나가 별 하나와 같다.
그 정도로 히든 특성이 갖는 권능적인 힘과 권한은 어마어마했다.
레벨이 오를수록, 초월할수록 일반적인 재능과 달리 히든 특성 역시 ‘성장’한다는 게 밝혀진 탓이다.
그러니, 최상위 랭커일수록 관련된 지식을 알고 있는 건 필수였다.
‘이권으로 새롭게 재능을 얻고 히든 특성을 개화시킬 수도 있으니.’
재능은 캐릭터를 생성할 때 SP로 개화시킬 수도 있으나,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몇 가지 재능조차 갖지 못한 채 게임으로 빙의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재능을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수련을 통해, 사냥을 통해, 특별한 영약 따위로도 충분히 재능을 개화시킬 수 있었다.
허나 그 역시 얻을 수 있는 개수에 한계가 있다.
가장 확실한 건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다보면 얻을 수 있는 이권으로 재능을 개화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히든 특성을 여는 재능 테크트리를 반드시 숙지해야만 하지.’
그러나 ‘히든 특성’은 말 그대로 숨겨진 것인지라, 어떤 재능을 개화해야 열리는 것인지 알려진 게 거의 없었다.
이곳은 히든특성을 얻기위한 ‘재능 테크트리’와 용도에 대해 공유하는 장소.
마스터와 같은 최상위 랭커라면 환장할 수밖에 없는 게시판이었다.
현실적으로 모든 재능을 올리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상위 랭커라도 고작 수십 개의 재능을 보유했을 따름이다.
허나 재능의 개수는 수백여 가지에 다다랐다.
딸칵!
<대식가>
―알려진 것들 중 가장 쓸모없는 히든 특성.
―‘진화’한 보스몬스터의 핵을 ‘포식’하여 포식한 괴물의 특질을 얻게되는 특성.
―문제는 괴물이 지닌 독의 중독과 정신오염이 함께 진행된다는 것.
―해당 히든 특성을 지닌 자를 포박하여 여러 가지 실험을 진행한 결과 보스 몬스터의 진화한 핵에 반응함. 이후 포식하자 반나절만에 정신착란을 일으키며 사망.
―신체 변형과 보스 몬스터의 특질을 어느정도 갖추었으나, 완전한 변화를 이루지는 못함.
―몬스터의 독 역시 포식하면 더욱 강화되고 진화하는 듯함. 독내성을 갖춘 초월자의 신체로도 쉽게 견딜 수 없다고 판단.
―정신오염 역시 마찬가지. 정신을 보호하는 스킬 ‘정신무장의 벽’을 최대레벨까지 갖추게 했음에도 실험자의 정신이 버텨내지 못했음.
―‘건강’, ‘체질’, ‘인내’, ‘불’, ‘어둠’, ‘허’, ‘적응력’, ‘미각’, ‘감응력’, ‘표현력’ 재능을 전부 맥스치까지 찍을시 해당 히든특성이 발현된다고 판단.
마스터가 인상을 찌푸렸다.
‘히든 특성 중에도 이런 쓰레기가 있군.’
보유자를 반드시 죽이는 히든 특성이라니.
게다가 찍어야만 하는 재능들이 너무 많다.
굳이 찍어야하나? 싶은 재능들도 몇 가지 있었다.
성능이 확실하지도 않은 히든 특성을 발현시키자고 저런 재능들을 올리기엔 너무나도 큰 부담.
“쯧.”
마스터가 고개를 저으며 컴퓨터를 껐다.
시간만 낭비했다고 생각하며.
*
<‘포식’한 시체 까마귀 핵의 강력한 독기가 ‘거인의 항마력’에 의해 분쇄됩니다.>
<‘포식’한 시체 까마귀 핵의 저주와 강력한 정신오염이 ‘철혈군주의 심장’에 의해 무력화됩니다.>
<‘비스트 로드’에 의해 진화한 특성의 지배력이 상승합니다.>
<‘돌연변이’에 의해 변화와 적응을 완료합니다.>
<‘대식가’ 특성이 ‘시체 까마귀의 왕’으로 진화했습니다.>
천천히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까만 깃털과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리.
‘시체 까마귀가 됐다.’
나는 지금, 시체 까마귀가 됐다.
어디를 둘러봐도 시체 까마귀다.
‘이게 대식가의 특성인가보군.’
대식가. 여태껏 단 한 번도 발현되지 않았던 히든 특성.
특성 발현의 조건이 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아무래도 ‘진화한 핵’이 그 조건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완벽하게 ‘변신’할 수 있을 줄이야. 변신술사가 흉내내는 것보다 훨씬 완벽하다. 나는 지금 시체 까마귀 그 자체였다.
‘시체 까마귀의 왕.’
그것도 일반적인 시체 까마귀가 아니다.
머리를 매만지자 만져지는 작은 왕관.
진화한 끝에 왕이 되어버린 게다.
‘왕’이라 이름 붙는 몬스터들은 그 격 자체가 일반 보스 몬스터와는 확연히 달랐다.
‘관련된 스킬도 생겨났다.’
예컨대 스킬들.
시체 까마귀의 더 진보된 스킬들을 사용할 수 있었다.
<‘시체 까마귀 소환’을 사용합니다.>
<보유한 성력에 따라 소환되는 숫자가 다릅니다.>
나는 그 스킬들 중 하나, 시체 까마귀 소환을 사용했다.
까악! 까아악!
내 품에서 두 마리의 시체 까마귀가 튀어나와 주변을 빙빙 돈다.
평범한 까마귀보다 조금 더 큰 크기를 가진, 보스 몬스터 시체 까마귀였다.
보스 몬스터인 시체 까마귀를 소환하는 건 오직 왕만이 사용할 수 있는 권한.
소환된 녀석들을 흡족하게 바라보며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이 핵이 의태의 매개체로군.’
가슴팍에 마치 아이언 맨처럼 보라색 핵이 박혀있었다.
이게 부서지면 의태가 풀리는 것 같다.
반대로 부서지지만 않으면 계속해서 이 모습을 유지하거나, 원할 때 의태할 수도 있을 듯싶었다.
“······!”
나를 바라보는 이자벨라의 두 눈이 격동하는 중이었다.
“위험하지 않다, 까악.”
“서, 성각자······ 님?”
“나다, 까악. 크람델로 가는 게 한결 쉬워졌다, 까악.”
왜 말끝마다 까악까악 거리는 거지?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가 없었다.
까악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말을 끝맺은 기분이 안 들었다.
이자벨라가 여전히 떪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모습으로 혼자 크람델로 가시겠단··· 겁니까?”
“너도 같이 간다, 까악.”
툭! 투두둑!
바닥에 떨어트린 장비들을 보며 이자벨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성각자님의 무장이 아닙니까?”
“미켈라 세트다, 까악. 셋 다 착용하면 천룡인의 날개를 가질 수 있다, 까악.”
아. 미치겠다.
하여간 내가 크람델로 들어가려는 방법은 간단했다.
미켈라 세트의 천룡인 효과가 바로 크람델로 들어가는 숨겨진 입장티켓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시체 까마귀의 왕’이 되었으니, 저 천룡인 효과는 필요가 없다.
“가자, 까악.”
까악!
까아악!
까마귀 두 마리가 함께 울었다.
“······.”
그 모습을, 이자벨라는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돌연변이 특성으로 던전의 숨겨진 길을 따라 반나절을 걷자, 검은색 투구를 쓴 이족보행의 큰 쥐를 발견할 수 있었다.
【Lv. 8】
저 쥐 역시 진화한 보스 몬스터였다.
“음? 이 길은 ‘길잡이’만 볼 수 있는 길인데?”
괴물쥐가 의아함에 손톱을 세웠다.
인간임을 들킨 걸까?
하지만 공격적인 상황은 얼마 가지 않았다.
가까이서 나와 이자벨라의 모습을 확인한 괴물쥐가 즉시 손톱을 감췄기 때문이다.
“아! 미안합니다. 제가 시력이 안 좋아서. ‘시체 까마귀의 왕’과 ‘반룡인’이시라니. 이건 또 굉장히 희귀한······ 두 분 다 크람델로 향하는 중이십니까?”
“그렇다, 까악.”
“저를 따라오십시오. 길을 잘못 들었다간 ‘심연’으로 빠질 수도 있습니다.”
괴물로의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길잡이마저도 구분할 수 없다. 완벽한 시체 까마귀의 왕이 되었다는 증거다.
이윽고 길잡이 괴물쥐가 앞장서며 크람델로 안내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