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32화 (32/317)

────────────────────────────────────

────────────────────────────────────

대식가

“싼다! 싼다!”

“야!”

“나 바지 벗었다!”

“아, 안 돼!”

“으윽······!”

“······.”

“······ 뭐야, 아무도 안 나오네?”

주섬주섬 바지를 올려 입은 소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단검을 쥐고서 습격을 준비하던 이자벨라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씰룩씰룩.

애써 웃음을 참는 것 같은 얼굴.

하지만, 이곳은 네크로벨리였다.

죽은 자들의 도시.

그런 네크로벨리와 이어진 지하던전에 어린 소년과 소녀가 있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게다가 대화 내용.

‘몰래카메라를 언급했다.’

판게니아에 몰래카메라가 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지구에서 소환되었단 말인가?

이 역시 의아하다.

‘내가 마지막 소환자였다.’

플레이어가 되기 전 빌헬름을 플레이할 때 동시접속자는 1이었다.

즉, 나 외의 모든 게이머는 이미 플레이어로 소환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갑자기 새로운 소환자라고?

‘판게니아의 붕괴와 관련이 있나?’

붕괴. 침식.

10%에 다다르면 열리는 ‘최초의 균열’과도 연관이 있지는 않을는지.

“어! 사람이다!”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소년이 소리쳤다.

외관으로 보기에는 열둘 정도.

적당한 살집에 고생한 적 없는 것 같은 귀여운 얼굴이다.

안경을 쓰고, 코끼리가 수놓아진 파란 반팔티를 입고 있었다.

“봐봐, 몰래카메라랬지?”

“이런 곳에 사람이······? 까마귀 울음소리는 안 들리는데.”

소녀는 그보다도 더 어려 보였다.

뒤로 길게 머리를 땋고 주근깨가 인상적인 소녀였다.

하지만 소년에 비하면 굉장히 침착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저씨. 몰래카메라 맞죠?”

“우리도 갇혔다.”

“에······?”

그러자 소년의 두 눈망울이 짙게 떨리기 시작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지금부터 길을 찾아야 하는 처지였으니, 찾지 못하면 미아와 다를 바가 없었다.

네크로벨리의 지하던전은 시시각각 길이 바뀌기 때문이다.

소년이 양손을 펼치고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망했다.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이야.”

“그래도 어른이잖아. 우리 같은 꼬꼬마들보다는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낫지.”

“그런가?”

“아저씨, 그리고 예쁜 언니. 저는 진하고, 이 뚱땡이는 진우예요. 두 분은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우리는······.”

이자벨라가 입을 열려는 걸, 내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지?”

진하가 입술을 쭉 내밀곤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까마귀 소리가 들릴 때마다 괴물들이 튀어나오는 통에. 핸드폰도 잃어버려서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건지······.”

“지구에서 소환됐나?”

“당연히 지구인이죠. 그럼 아저씨는 지구인 아니에요? 외계인?”

지구. 이름으로 보건대 한국인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귀여워 죽겠다는 눈빛이로군.’

이자벨라는 이미 두 아이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 같다.

그런데 이자벨라가 이렇게나 아이를 좋아했던가?

“혹시 아저씨도 게임하다가 소환됐어요?”

“비슷하다.”

“판게니아?”

“······.”

“역시 그 게임이 문제였구나. 저 뚱땡이가 잠깐 맡아달라고 해서 맡아주는 게 아니었는데.”

진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야기로 들어보건대 둘이 한 캐릭터를 키우다가 소환된 것 같다.

“어쨌든 여기 가만히 있으면 죽도 밥도 안 될 거 같아요. 까마귀가 울기 전에 빨리 벗어나야 해요.”

“까마귀?”

“네. 까마귀가 울 때마다 괴물들이 나타나요.”

곰이 굴을 차지하듯 던전 역시 주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던전은 그 주인에 따라 특성과 특징 따위가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던전의 주인을 죽여야, 비교적 자유롭게 던전을 조사할 수 있다.

“얌전히 따라와라.”

나는 앞장서서 걸어 나갔다.

*

언데드 종류의 괴물들.

던전의 특정 구역마다 좀비들이 서성대고 있었다.

‘까마귀가 울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나 보군.’

다만, 공격성은 없었다.

가만히 지나가도 쳐다도 안 보고 벽에 머리를 박을 뿐이었다.

규칙만 준수하면 클리어하기 어려운 던전은 아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살아있는 거겠지.

“아, 배고파.”

“초코바 다 먹었어?”

“다 먹은 지 오래야.”

“잠깐. 이 돼지야, 내꺼 하나 남겨놓는다매?”

“아 맞다.”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말이 많았다.

어른을 봐서 긴장이 풀어진 것처럼.

그리고 이자벨라는 미소를 지은 듯 안 지은 듯한 얼굴로 두 아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지나갈 때마다 이자벨라는 시선을 주었던 것 같다.

황금도시 아르카나에서도, 기사의 정원에서도.

특히 천진난만해 보이는 아이일수록 이자벨라의 시선이 머무는 시간은 길어졌다.

까아아악-!

까악!

“까, 까마귀!”

“흐익!”

순간 까마귀가 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윽.

그어어!

멈춰있던 좀비들이 사방에서 출몰한다.

아이들은 겁에 질려 몸을 움츠렸다.

슥!

하지만 좀비들의 레벨은 기껏해야 3.

좀비 천 마리가 있어도 이자벨라의 상대는 못 된다.

눈 깜짝할 사이에 좀비 다섯 마리의 목을 취한 이자벨라가 단검을 털었다.

‘능력치가 올라갔다.’

숲에 정령을 건넨 뒤 받았던 천년 묵은 만드라고라. 그것을 섭취하고 이자벨라의 움직임은 군더더기 없이 좋아졌다.

재능이 개화하며 능력치도 오른 것 같다.

그오오오!

좀비를 처리하자 그다음에 나타난 건 구울이었다.

레벨 4.

역시나 이자벨라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그녀는 평소보다도 더 빠르고 깔끔하게 적을 두동강내고 있었다.

순조로운 진행이지만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던전의 군집이 이상하군.’

상식적으로 던전은 비슷한 레벨의 괴물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기 마련이다.

이처럼 여러 종류의, 레벨 편차가 큰 괴물들이 한 던전에 모여있는 경우는 없었다.

좀비(3Lv) 다음엔 구울(4Lv), 구울 다음엔 구울 나이트(6Lv)라니.

스팟!

이자벨라가 구울 나이트의 목을 벤 순간이었다.

“음!”

돌연 이자벨라의 몸이 굳더니 축 늘어졌다.

레벨 6의 구울 나이트에게 방심해서?

아니, 언데드에게 당한 것이 아니다.

진하와 진우.

어느덧 뒤로 다가온 두 아이의 손이 전갈의 꼬리처럼 변형되어 있었다.

이자벨라의 두 눈동자가 거칠게 떨렸다.

까아악!

까아아아악!

임무를 달성한 두 아이가 동시에 까마귀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두 아이는 미끼였다.

던전의 주인이 던전에 들어온 인간을 사냥하고자 던져둔 미끼.

나 역시 정신이 몽롱해진다.

어느덧 강력하기 짝이 없는 마비 독이 혈관을 타고 전신을 돌고 있었다.

어찌할 새도 없이, 몸이 축 늘어졌다.

*

까마귀 묘지의 주인.

거대한 시체 까마귀가 풍성한 만찬을 앞에 두고 환호를 내질렀다.

“먹는다. 이세계의 인간들. 나는 또 진화한다. 지식과 힘이 흘러넘친다!”

이자벨라는 녀석을 보곤 이를 악물었다.

일반적인 시체 까마귀는 말을 할 수 없다.

크기도 훨씬 작다.

하지만 눈앞의 시체 까마귀는 달랐다.

‘몸이······ 움직이지가······.’

강력한 마비 독에 중독된 이자벨라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설마 아이들도 언데드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바로 옆에 있었음에도 왜 몰라본 건지 황당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알아보기엔 너무나도 사람 같았다.

심장이 뛰고, 부패하지도 않았으니까.

‘평범한 시체 까마귀가 아니야.’

시체 까마귀는 시체를 파먹고 파먹은 시체를 조종하는 괴물이다.

그러나 눈앞의 시체 까마귀는 시체를 분장하고 진짜 사람과 구분할 수 없게끔 했다.

평범한 시체 까마귀와는 궤가 다르다.

그렇다고는 해도, 실수다. 자신답지 않게 경계를 풀어버렸다.

아무리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앞에 뒀다고 하지만 절대로 경계심을 누그러트려선 안 됐는데.

사막과는 전혀 다른 괴물의 이질적인 방식에 당한 것이다.

“진화한다! 먹는다! 진화한다!”

시체 까마귀의 두 눈은 광기 자체였다.

어지간한 사람도 한 번에 들어갈 것만 같은 커다란 부리.

웬만한 건물만 한 크기의 시체 까마귀가 존재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다.

숨이 막혀온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까마귀의 두 눈을 본 순간부터 마비는 더욱 심해졌다. 마비만이 아니라 강력한 저주마저 곁들여졌다.

의지는 약해지고 마음은 꺾여간다. 온몸을 죽음이라는 공포가 서서히 잠식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만히 먹히는 것 외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눈을 파먹히고, 내장을 쪼아대며 시체 까마귀는 만찬을 즐기리라.

시체 까마귀가 부리를 열었다. 그러자 보이는 톱날 같은 이빨들. 살려달라는 수많은 시체의 비명이 그 안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멍청한 인간들!”

“시끄럽다, 빌어먹을 까마귀.”

······그 순간이었다.

기절한 듯 누워있던 성각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은 듯 몸을 풀어대기 시작했다.

이자벨라도 꼼짝하지 못할 지독한 독.

게다가 저주가 결합 되어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도 성각자는 유유자적한 움직임으로 검 두 자루를 꺼내 들었다.

촤륵!

시체 까마귀가 날개를 펼쳤다.

거대한 날개에서 풍압이 일며 수많은 눈이 나타났다.

모두 시체 까마귀에게 먹힌 자들의 눈이다. 수백 개의 눈은 저주를 증폭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었다.

감히 자신의 저주로부터 더 멀쩡할 수 있겠느냐는 자신감이었다.

독이 왜 안 통한 건지는 몰라도 이 저주를 피하는 건 불가능했으므로.

증폭되고 또 증폭된 환몽의 저주. 영원히 잠들어 자신이 먹히는 것조차 모르게 될 것이다.

퍼석!

두툼한 살덩이가 잘리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덩어리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떨어진 건 바로 시체 까마귀의 머리였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

시체 까마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독도, 환몽의 저주도 통하지 않는 인간이라니!

무엇보다 언제 머리를 베였는지 모르겠다. 역으로 저주에 당한 것처럼 인간의 움직임을 인식할 수가 없었다.

-인간 따위가!

있을 수 없을 일이 벌어졌다.

자신은 절대적인 포식자.

먹이 따위에게 죽는 굴욕을 감내할 수 있을 리가!

후웅! 후우웅!

시체 까마귀는 그간 먹어치운 모든 사념을 모아 저주를 일점에 집중시켰다.

던전 전체에 퍼진 저주가 단 한 명의 인간을 죽이고자 모여들었다.

-······통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그마저도 통하지 않는다.

저주 자체에 마치 면역이라도 된 것처럼.

저건······ 저건 인간이 아니다. 인간일 리가 없다.

자신의 통상적인 개념과는 전혀 다른 생명체였다.

-······!

인간과 눈이 마주친 시체 까마귀는 전율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자신의 이해 범주를 아득히 넘어서는 알 수 없는 저주가 저 안에 담겨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저 저주에 잡아 먹힐 것만 같았다.

진정한 피라미드 최상위의 포식자. 처음부터 먹이는 자기 자신이었다는 걸 시체 까마귀는 깨닫게 됐다.

하지만 시체 까마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쿠우우웅!

시체 까마귀의 동체가 쓰러지며, 마침내 완전한 죽음을 맞이했다.

*

처음부터 이상했다.

왜 아이들이 던전에 있는지.

그것도 현대의 옷을 입은 채로 던전을 헤매고 있었는지.

‘기억을 먹고, 그 기억을 토대로 재현해냈기 때문이겠지.’

두 아이는 소환된 플레이어였을 것이다.

하지만 플레이어로 소환되면 당연히 이곳 세계의 몸을 갖게 된다.

입던 옷가지를 가져올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아마도 이곳이 그 아이들에게는 메인 퀘스트 1, 생존의 현장이었으리라.

그러나 잔인하게도 퀘스트에서 생존하지 못한 아이들은 시체 까마귀의 먹이가 되었다.

‘레벨 4의 괴물이 레벨 8까지 성장했다.’

저만한 레벨의 상승이라니. 성장보다는 차라리 진화가 맞다.

플레이어를 잡아먹은 시체 까마귀는 강해졌다. 몸집이 커지고 지능이 높아졌다. 이후 계속해서 플레이어들을 유혹해 죽여온 것이다.

시체 까마귀가 강해질수록 던전도 심화됐을 테니까.

레벨 편차가 큰 괴물들이 우글댄 이유가 이제야 설명이 된다.

하지만 찾기 여간 까다로운 놈이다.

본체는 뒤에 숨기고 인간의 아이를, 그것도 플레이어라면 무조건 반응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살아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이용했다.

악질이 따로 없으나 걸려든 사람도 꽤 있었겠지.

놈은 그렇게 플레이어를 방심하게 만들고 독으로 마비시킨 이후 산 채로 잡아먹는 방식을 채택했다.

‘관찰력이 없었으면 나도 속았을 거다.’

정교하기 짝이 없었지만 내게는 관찰력의 재능이 있었다.

히든 특성이 아니더라도, 최대치로 찍힌 관찰력은 심장박동에 따른 미세한 떨림의 엇박자마저 잡아낼 수 있었으니.

여기에 다른 증거들이 추가되자 확신한 것이다.

다만, 눈치챈 기색을 보였다간 본체가 숨을 게 자명했기에 속아줬을 따름이었다.

‘아무런 대책 없이 저 독에 당하면 10레벨도 위험하겠군.’

이자벨라를 경직시킨, 오직 마비를 위해 응축된 마력 독.

시체 까마귀가 진화하며 독의 성질은 더욱 강해졌다.

둘 다 마비를 당한 듯 보이자 시체 까마귀가 자신있게 모습을 드러낸 이유였다.

하지만, 시체 까마귀는 감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거인의 항마력’에 의해 ‘마력 독(8Lv)’이 완전하게 분해됩니다.>

<‘철혈군주의 심장’에 의해 ‘환몽의 저주(9Lv)’가 상쇄됩니다.>

<‘월광나비’가 주변의 이질적인 기운을 몰아냅니다.>

내가 자신의 천적임을.

‘나는 대책을 세울 필요가 없다만.’

일반적인 저주나 독 따위로 나를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

히든 특성은 평범한 특성보다도 절대적인 우위에 있으므로.

그런 것들이 무려 13개다.

웬만한 상황은 제알아서 대처가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시체 까마귀 자체가 원래부터 던전에 숨어 언데드를 부리는 보스 몬스터다.

본체 자체는 공격력과 방어력이 허약하기 그지없었다.

즉, 숨은 본체를 찾아낸 그때부터 이미 승부가 갈렸다는 것이다.

《‘까마귀묘지 지하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던전의 주인 ‘시체 까마귀’가 죽어 던전이 원래의 형태로 되돌아옵니다.》

생각보다 손쉽게 던전은 클리어되었다.

던전의 주인이 죽자 모든 언데드가 사라지고, 시시각각 변하던 던전의 지리가 고정되었다.

이제 던전의 탐색도 훨씬 수월해질 터.

하지만 아직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었다.

《‘모험의 성좌’가 믿고 있었다는 말과 함께 당신의 목숨을 건 모험심에 찬사를 보냅니다. 보상 내용이 한층 업그레이드됩니다.》

《‘행운의 성좌’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행운을 빌어줍니다. 보상 내용이 한층 업그레이드됩니다.》

《‘행운 주사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합계 세 단계 위의 보상 목록을 획득합니다.》

《네 가지 목록 중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마땅히 주어져야 할 보상의 시간!

‘오.’

짧게 감탄했다.

······ 백성전의 성좌들이 돌아왔다.

여신의 출현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백성전의 성좌들은, 메인 퀘스트 4를 클리어했음에도 인상을 찌푸리며 보상 내용을 업그레이드해주지 않았다.

완전히 등을 돌린 건 아니었던 모양.

둘이라도 출현해 주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떠오른 보상목록을 바라봤다.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 9h(6+3)>, <진화한 시체 까마귀의 핵>, <눈 수집자의 깃털>, <증폭의 고서>

네 개의 목록.

이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보물들!

그중 유독 눈에 띠는 게 있었다.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

시체 까마귀가 플레이어들을 잡아먹어서일까?

설마 던전 보상으로 황금률의 조각을 얻을 수 있을 줄이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황금률의 조각과 증폭의 고서. 이 두 개가 제일이군.’

황금률의 중요성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입이 아픈 수준이다.

또한, 증폭의 고서는 스킬의 효과를 증폭시켜주는 도구였다. 하나쯤 갖고 있으면 요긴하게 쓰일 터.

부르르르!

그런데 갑자기 목록 하나가 붕 뜨며 보라색으로 변했다.

‘······ 뭐?’

변화가 생긴 건 ‘진화한 시체 까마귀의 핵’이었다.

하지만 철혈군주의 심장에 의해 당황은 찰나에 지워졌다.

도리어 저게 무엇으로 인한 현상인지 빠르게 짐작이 갔다.

‘내가 가진 특성과 관련이 있다.’

이런 변화를 일으킬 만한 건 히든 특성밖에 없다.

나는 생각을 바꿔 고를 보상 목록을 수정했다.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 9h(6+3)’을 선택했습니다.》

《‘진화한 시체 까마귀의 핵’을 선택했습니다.》

이후 천천히, 까마귀의 시체에서 검은색의 핵이 떠올랐다.

그런데······.

꿀꺽!

“음!”

······ 배가 고프다.

진화한 시체 까마귀의 핵을 보자마자, 미칠 듯한 허기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배에서 천둥이 치고, 침샘에선 침이 폭발한다.

철혈군주의 심장으로도 제어되지 않는 배고픔. 정신이 아니라 육체가 강렬하게 원하고 있다.

이 허기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동시에.

《‘대식가’가 발현됩니다.》

히든 특성 ‘대식가’가 발현되었다는 소리.

지금까지 한 번도 발동한 적이 없던 특성이 이 ‘진화한 시체 까마귀의 핵’을 보며 반응하고 있었다.

‘먹으라는 소리군.’

괴물의 핵을 먹는 인간이라.

나는 핵을 쥐었다.

그리고.

아그작!

우그적! 우그적!

핵을 먹어치웠다.

그 순간.

《포식을 완료했습니다.》

《‘특성 진화’가 시작됩니다.》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