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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드라이어드는 숲의 특성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다르다.
바스락 숲은 본래 바위 정령에 의해 만들어진 숲이었으나, 바람의 정령을 품은 현재 모두가 기본적으로 ‘바람계열’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다.
“사냥이다!”
“사냥의 시간이다!”
“히리리리리리-!”
생성된 워프를 통해 넘어온 드라이어드는 50이 넘었다. 기본 7레벨의 강자인 그들이 전장에 대거 등장하자 순식간에 판도가 바뀌었다.
거침없이 바람을 타고 달려나간 드라이어드에 의해 다크 고블린 군단의 전열은 단번에 무너졌다.
구오오오!
꽈아아앙!
뿐만이 아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합쳐지더니 거대한 네이처 골렘으로 변했다.
네이처 골렘이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수십의 다크 고블린이 피떡이 됐다.
“친구의 부탁이다! 워프까지 단번에 뚫어내라!”
하이 드라이어드.
【Lv.9】
허나 단순한 레벨 9가 아니다.
하이 드라이어드는 숲의 수호신이요, 숲의 주인이자 드라이어드의 군주였으니.
무려 엘리트 레이드 보스 몬스터다.
레벨 9에 이른 9인이 파티를 맺어 사냥해야 하는.
괜히 보자마자 도망칠 궁리를 했던 게 아니다.
덕분에 길을 뚫고 워프에 닿기까지가 이보다 수월할 수 없었다.
화르르르르륵!
별 할퀴기.
별로 이루어진 벽이 세워지며 고장 난 워프가 파괴되었다.
《가열된 워프 하나를 파괴했습니다. 1/3》
《‘검은 살갗 혼종’ 소환까지 남은 시간 9분 01초》
《워프를 통해 ‘혼종’이 튀어나오기 시작합니다.》
남은 두 워프에서 일반 혼종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라색의 거대한 문어처럼 생긴 괴물이 허공을 떠다니고 있었다.
어지간한 건물 한 채와 비견된만큼 크다.
【Lv.8】
게다가 레벨도 만만치 않았다.
일반 혼종이라도 웬만한 보스 몬스터 뺨치니까.
“심연의 괴물이로군! 실로 불길한 놈이다!”
“처리 가능하겠나?”
“맡겨만 줘라, 친구여!”
하이 드라이어드는 자신감이 넘쳤다.
정령의 알을 통해 숲에 생기가 돌아와서인지 파이팅이 엄청났다.
곧 하이 드라이어드의 한 손에 거대한 창 하나와 활 하나가 들렸다. 줄기로 이루어진 창을 활시위에 걸더니, 혼종을 향해 쏴버렸다.
콰르르르르르르릉!
대지를 진동시키며 뻗어나간 창이 혼종의 미간을 뚫었다.
“일단 하나는 처리했군!”
즉사한 혼종을 바라보며 하이 드라이어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역시 엘리트 레이드 보스 몬스터. 격이 다르다.
게다가 내가 아는 일반적인 하이 드라이어드보다 더 강한 것 같았다.
‘하이 드라이어드 역시 숲의 상태에 긴밀하게 영향을 받지. 정령의 탑에서 얻은 정령의 알은 일반적인 정령보다 더 강하니.’
아마 그 영향일 터였다.
정령의 탑에서 직접 얻은 정령은 그 힘이 일반적인 정령보다 몇 배는 강하다.
그런 알을 숲에 맡겼다. 숲은 전보다 훨씬 건강해졌고, 하이 드라이어드 역시 그 이상으로 강해졌다.
‘정령이 부화하면 10레벨을 찍을 수도······.’
그럼 하이 드라이어드가 아니라 슈퍼 드라이어드인가?
적이 아니라 친구라서 다행이다.
그런 어줍잖은 생각과 함께 나는 다음 워프까지 달려나갔다.
《가열된 워프 하나를 파괴했습니다. 2/3》
《‘검은 살갗 혼종’ 소환까지 남은 시간 8분 05초》
《워프를 통해 ‘혼종’이 튀어나오기 시작합니다.》
《워프를 통해 ‘암흑전사’가 튀어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순식간에 두 개의 워프를 파괴시켰다.
남은 건 단 하나.
“음! 친구여. 숲이 아닌 곳에서 싸우면 우린 오래 싸울 수가 없다.”
문제는 드라이어드들의 상태였다.
완강하게 밀어붙이던 기세가 죽었다.
이곳은 숲이 아닌 인간의 도시. 드라이어드가 살아갈 수 없는 공간인 탓이다.
바다에서만 살 수 있는 물고기가 육지로 나온 것과 같았다.
그 증거로 시간이 지날수록 탱글했던 피부가 쭈글쭈글하게 말라가고 있었다.
“··· 여기까지 도와준 것만 해도 충분하다. 고맙다, 친구여.”
쉽게 건너왔지만, 그게 얼마나 어려운 선택인지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텔레포트 북을 통한 워프는 하루에 한 번만 생성할 수 있으며 일방통행이다.
반대편에서 건너왔다면 다음날까지 돌아갈 수 없다.
만약 암흑공간에 의해 도시가 몰락한다면 그들 역시 전멸할 수밖에 없는 결정이었다. 그것을 그저 ‘친구’라는 이름 아래에 고민없이 달려와준 것이다.
이 얼마나 단순하고······ 믿음직 스러운가.
인간보다 낫다.
그러니 그들의 선택을 나는 존중한다.
그들의 믿음과 그들의 행동 모든 것에 예를 표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암흑전사.’
문제는 암흑전사다.
혼종과 레벨은 같지만 혼종보다 훨씬 빠르고 기민했다.
그나마 혼종은 움직임이 굼떠서 공략법만 알면 피할 수 있다지만, 암흑전사는 이야기가 달랐다.
저 암흑전사를 재치고 워프를 파괴하는 건 힘들다.
하지만.
“앤드류 사제!”
나는 저 멀리 있는 앤드류 사제를 향해 소리쳤다.
기사의 정원에 있는 유일한 여신교 사제이며, 구호소의 주인인 그라면 충분히 나를 도울 수 있을 테니.
“오롯이 나만을 위해 기도하라! 오직 나만을 ‘추앙’하라!”
*
앤드류 사제는 인상을 찌푸렸다.
분명히 들었기 때문이다.
무시해도 되겠으나 그 내용은 앤드류 사제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지금······ 추앙의 기도를, 외우라고?’
추앙기도. 혹은 추앙을 위한 기도문.
여신과 맞닿은 최고위급의 사제만이 사용 가능한 자기희생의 주문이다.
물론 여신을 찬양하면 자기희생이 아니지만, 여신이 아닌 다른 자를 추앙하면 그것은 자기희생의 기도문으로 바뀌어버린다.
최고위 사제에게 여신이 아닌 다른 자를 위한 추앙 기도문을 외우라는 건 죽으라는 말과 같았다.
특히 자격없는 이를 추앙하면 죽음의 위험은 더욱 커진다.
‘내가 추앙의 기도문을 사용 가능하다는 걸 어찌?’
성녀를 제외하고 여신교에서도 여신의 찬양이 아닌 추앙의 기도문을 정식으로 사용 가능한 사제는 열 손가락에 꼽는다.
앤드류 사제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단 한 명을 제외하면 누구에게도 알려준 적이 없었다.
추앙의 기도문을 사용할 수 있는 사제들은 모두 끝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여신이 아닌 다른 자를 추앙하는 건 극죄다.’
그 자체만으로도 가장 큰 ‘죄’다.
그 자체만으로도 여신교에서 이단자 취급을 받는다.
하여, 그는 조용히 구호소에서 봉사하며 생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기사왕 빌헬름······ 그에게만 알려주었거늘.’
그러니 외지인이 알 턱이 없다.
하지만 분명히 들었다. 오직 자신을 추앙하라고, 기도하라고.
짚어본 걸까? 그냥 우연히 해본 말은 아닐까.
“그는 기사왕의 후계자라오, 앤드류 사제.”
와이저 후작이 옆으로 다가와 한 마디 더 보탰다.
“세렝게티가 인정했으니, 확실할 것이오.”
“아······.”
세렝게티라면, 기사왕을 최측근에서 보좌한 그녀가 인정했다면 틀림없을 것이다.
‘어쩐지. 왜 그토록 눈빛이 익숙한가 싶었더니······.’
기사왕 빌헬름의 눈빛과 저 남자의 눈빛이 묘하게 닮아있었다.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그렇다면 자신에 대해서도 기사왕 빌헬름이 전한 것이겠지.
빌헬름에겐 빚이 있다.
면죄부를 주었으나, 그것만으로도 부족한.
그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어줘도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빌헬름은 죽었다.
앤드류 사제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은총이 가득하신 여신이시여,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영광할 성령이시여······.”
양손을 모으고 추앙의 기도문을 외웠다.
하지만 그 대상은 여신이 아닌 저 남자, 기사왕의 후계자였으니.
앤드류 사제의 심장에서 뻗어나온 성스러운 기운이 이내 란돌프에게 닿았다.
신이 아닌 인간에게.
자격 없는 이에게.
이는 목숨으로 사죄해야 할 극죄다.
하지만.
“아······!”
동시에, 전율했다.
“여, 여신!”
“여신께서 강림하셨다!”
“아아아!”
··· 모두가 보았으니까.
란돌프의 머리 위에 여신이 깃드는 모습을.
황금의 빛이 출렁이며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는 여신의 모습을.
*
《가열된 워프를 모두 파괴했습니다.》
《소요시간 3분 56초》
《‘메인 퀘스트 4 : 암흑공간의 틈새를 메워라’가 완료되었습니다.》
《내용을 정산합니다.》
《‘특이점’의 개입으로 정상적인 정산이 불가능합니다.》
《총점 ???점. ‘명예의 전당’에 업데이트됩니다.》
《‘부서진 황금률의 큰 조각’을 획득했습니다.》
《백성전의 성좌들이 인상을 찌푸립니다.》
······.
······.
《이권 ‘황금률 상점’이 오픈되었습니다.》
《Tip : 황금률 상점에선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을 사용해 특별한 재능, 혹은 물건과 영약 등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는 ‘신화종’과 같은 아주 특별한 것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
······.
《‘암흑 군단’이 심연 속으로 돌아갑니다.》
《‘신의 살갗 혼종’이 다음을 기약하며 당신을 두 눈에 담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
도시는 지켜졌다.
고장 난 워프는 전부 파괴됐고, 암흑의 군단들도 모두 틈새로 돌아갔다.
하지만, 모두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드라이어드와 하이 드라이어드가 갑자기 출현한 것만으로도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광경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보다도 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광경을 두 눈에 담았다.
‘분명히······ 여신이 강림했다.’
강림한 여신은 란돌프의 이마에 입을 맞춰 축복을 걸었다.
그것은 단순한 추앙 기도문의 수준이 아니라, 여신의 축복 그 자체였으니.
그런 경우는 본 적이 없다. 들어본 적도 없다.
여신교에서 성녀나 성황이 기도문을 외운다고 여신이 나타나진 않으므로.
와이저 후작은 두 눈을 비볐다.
란돌프에게 깃들었던 여신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모습은 분명.
한순간이지만, 찰나와 같은 순간이지만······ 암흑전사를 죽이는 모습에서 와이저 후작은 후계자 따위가 아닌 진짜 ‘기사왕 빌헬름’을 보았다.
여신의 기사라고도 불리던 기사왕의 모습을 말이다.
툭-
그때였다.
돌연 앤드류 사제는 무릎을 꿇었다.
란돌프에게. 여신의 기사에게.
툭, 툭.
이윽고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하나, 둘,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자연히 그렇게 되었다.
압도적인 광경을, 신을 영접했으니까.
감히 신 앞에 허리를 뻣뻣하게 들고 마주할 인간이 존재하겠는가.
적어도 이곳엔 없었다.
와이저 후작도 마찬가지였다.
“여신이 아닌 나를 추앙했으니 그 죄가 절대 가볍지 않을 터.”
란돌프가 앤드류 사제를 향해 다가왔다.
아무리 기사왕의 후계자라고는 하나, 그 역시 인간이다.
인간에게 추앙 기도문을 사용했으니 여신교가 알게 된다면 파면을 면치 못하리라.
모든 신성력을 사용한 앤드류 사제는 10년은 더 늙었다. 다시 회복하려거든 못해도 수년간 끊임없이 신앙을 올려야 한다.
물론, 신앙을 올릴 기회는 이제 없을 것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이윽고 지척까지 다가온 그가 입을 열었다.
“기사왕께서 말씀하셨다. 그대의 죄를 자신이 안고 가겠다고. 그대가 자신에게 준 면죄부를, 그대에게 사용하겠노라고.”
··· 과거, 앤드류 사제는 기사왕 빌헬름에게 면죄부를 준 적이 있었다.
여신교의 사제는 살아생전 3장의 면죄부를 발급할 수 있었는데 앤드류 사제가 면죄부를 발행한 건 오직 기사왕뿐이었다.
면죄부는 실물이 없어도 된다.
단 한 번 죄를 사할 수 있는 자격이니까.
하지만 면죄부는 세습되지 않는다. 기사왕도 아닌 그의 후계자가 면죄부를 사용할 권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만나서 반가웠다, 앤드류 사제.
구호소에서 그가 떠나갈 당시 자신에게 남겼던 말.
본 적도 없는 이가 그런 말을 남겨서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왜인지 이해가 된다.
“아아.”
그럼에도······ 앤드류 사제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 외에는.
그 누구도 지금 이 상황에 무어라 말을 할 수는 없으리라.
천천히.
그가 앤드류 사제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너의 죄를 사한다, 앤드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