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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딴 쓰레기 같은 게임이 다 있냐 <1권 끝>
와이저 후작의 두 눈에 거친 파문이 일었다.
500명의 기사와 함께 대원정을 떠난 세렝게티.
비록 딸이었지만 그의 유일한 자식이었으며, 별을 먹어 초월한 ‘초월자’였다.
그런 딸이 하반신이 잘린 채 말에 묶여 돌아온 것을 봤을 땐 얼마나 좌절했던가.
딸을 깨우고자 하지 않은 게 없었다.
도시의 곳간은 텅 비었고, 제대로 잠을 잔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렝게티는 깨어나지 않았다.
“오오. 세렝게티······.”
딸아이의 두 눈에 초점이 돌아온다.
멈춰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별의 축복과 함께 눈을 뜬 세렝게티가 자신을 바라보았다.
와이저 후작의 눈망울이 촉촉하게 젖었다.
손을 뻗어, 격하게 안아주리라.
지난 세월 동안 너무 야속한 아비였으니까.
매일 쉬지 않고 검만 휘두르게 했던 못난 아비니까.
그런 와이저 후작의 마음을 눈치챈 세렝게티가 힘겹게 닫힌 입을 열었다.
“허드슨······!”
······누구?
순간 와이저 후작은 환청을 의심했다.
허드슨이라니. 그게 누구지?
당연히 여기선 ‘아버지’라든가, 하다못해 ‘영주님’이라는 말이 나와야 정상 아닌가?
“세렝게티!”
뒤에서 여태껏 존재감 없던 사내놈 하나가 뛰쳐나가 세렝게티의 손을 꽉 붙잡았다.
기사왕의 후계자와 함께 들어온 두 명 중 한 명이다.
단순한 시종 같은 게 아니었나?
세렝게티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을 지었다.
“이거 꿈 아니지? 어떻게 허드슨, 네가 내 앞에······.”
“꿈 아니야. 나 여기 있어. 늦어서 미안해. 나, 나는 네가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줄 알고······ 아아.”
허드슨이 왈칵 눈물을 흘렸다.
세렝게티의 손을 마주 잡은 채 몸을 떨었다.
그는 황금도시 아르카나에서 의원이 되어 돌아오려고 했다. 이후 정식으로 허락을 받고 결혼식을 올리는 게 허드슨의 목표였다.
하지만 대원정에서 세렝게티가 폐인이 되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허드슨은 갈 수 없었다.
‘살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살아만 있으면 된다.
최대한 빨리 시의원이 되어 돌아가면 후작도 자신을 인정해줄 것이다.
그녀가 하반신을 잃었다면 자신이 다리가 되어주면 될 뿐이었다.
깨어나지 못한다고 해도 좋다. 살아만 있다면, 자신이 영원토록 보살펴줄 테니까.
‘조금만 더 늦었으면 나는······.’
돌이켜보니 후회된다.
미련한 짓이었다. 무리해서라도 찾아오는 게 맞았다. 모든 걸 갖추고서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은 자신의 오만과 욕심에 지나지 않았다.
세렝게티의 건장하던 몸은 어느새 깡 말랐다. 한 손으로 자신을 들어 올리던 그녀였건만, 이제는 자신이 반대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더 늦었으면 그녀는 이곳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영원히 만날 수 없었을 터였다.
사이엔 공작은 전리품처럼 그녀를 자신만 볼 수 있는 공간에 보관했을 테니.
‘카지노를 정리하고, 정령을 얻은 채 이곳으로 돌아왔다. 란돌프님이 아니었으면 나는 다신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었겠지.’
허드슨은 란돌프를 바라봤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었지만, 이 모든 게 란돌프의 계획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처음 카지노에 나타나 난리를 피워 자신을 끌어낸 것부터, 그는 자신의 염원을 정확히 꿰뚤어 카지노를 정리하게 만들었다.
정령의 알을 얻고, 자신감도 생겼다.
무려 정령의 탑을 올라 정령의 주인이 됐으니!
이제 못할 게 없다. 원하는 건 전부 할 수 있다. 그것이 비록 천길낭떨어지로 몸을 던지는 일일지라도.
“2,000만 골드, 드리겠습니다.”
허드슨이 허리를 빳빳하게 세우고 등을 돌렸다.
와이저 후작. 그가 당황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음에.
“세렝게티를 제게 주십시오, 아버님.”
“아···버님? 지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지, 이 미친놈은?”
“돈이 급하지 않으십니까? 2,000만 골드면 도시의 급한 불은 끌 수 있을겁니다.”
스릉!
와이저 후작이 직접 검을 뽑았다.
그리고 허드슨의 목에 겨눈 채 말했다.
“네놈 따위가 무엇이기에?”
“저는······.”
뭐라고 말해야할까.
자신을 설명할 길이 없다.
시의원도 아니고, 카지노도 팔았다.
평범한 인간. 플레이어. 그딴 걸 말할 수도 없는 노릇.
허드슨이 란돌프를 바라봤다.
“저는 그분의 충실한 종입니다.”
와이저 후작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종 따위가, 지금 내 딸을 데려가겠다는 건가?”
허드슨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분은 별을 보고 별과 소통하시는 분입니다. 자연과 숲의 존경을 두루 받는 분이며, 기사왕의 후계자이자 기사왕보다도 더욱 환하게 빛날 분이십니다. 그런 분을 따르는 제가, 어찌 평범한 종일 리 있겠습니까?”
“그 세치혀를 당장······.”
“그만.”
뭐 하는 거야, 지금?
나는 작게 혀를 차며 둘 사이를 말렸다.
그러고 보니 허드슨은 장사꾼이었다. 무언가를 포장하는데 도가 튼.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다들 감동을 주체할 수 없는 건 알겠지만, 마왕의 저주가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다.”
“······ 그럼?”
와이저 후작이 검을 허리춤의 검집에 집어넣었다.
확실히. 허드슨이라는 이 허무맹랑한 놈을 지금 바로 죽여도 시원찮지만 그보단 세렝게티의 저주를 푸는 게 먼저였다.
“기껏해야 오늘 하루 눈을 뜨고 있는 게 전부일 거다. 저주를 완전히 풀기 위해선 다른 ‘별’을 찾아야만 한다.”
성력을 높이는 방법은 레벨업하는 것과 별을 찾는 것뿐이다.
기사왕 빌헬름이 죽고 흘린 다섯개의 별.
하나는 회수했으나, 네 개가 남았다.
다른 놈의 손에 들어가면 별의 기억이 훼손된다.
‘별의 계승자 클래스가 가진 시크릿 효과. 별의 직전 주인의 기억을 읽는 게 가능하다면, 최대한 빨리 별들을 회수해야된다.’
별이 훼손되거나 오염되기 전에.
아직 기사왕 빌헬름의 기억을 갖추고 있을 때, 되찾아야만 했다.
만약 누군가가 그 별의 주인이 된다면 빌헬름의 기억을, 스킬을 영영 되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전부 나가라. 나는 그녀에게 들어야할 말이 있다.”
훠이훠이. 손을 저어 방에서 당장 사라질 것을 촉구했다.
곧 허드슨과 와이저 후작이 복잡한 눈빛을 지으며 문 밖으로 나갔다.
태풍이 휘몰아칠 것만 같은 분위기지만, 내 알 바 아니었다.
“당신은······?”
방 안에 둘만 남은 상황에서 세레게티가 내게 말했다.
“나는 기사왕 빌헬름의 후계자. 그의 최후를 전해들으러 왔다.”
“······ 그에겐 후계자 같은 건 없습니다.”
허나 세렝게티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지 않았다.
과연 나의 최측근.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라면 이런 허무맹랑한 거짓말이 먹히지 않을 거라고 이미 예상했다.
아직 그녀의 별은 떨어지지 않았으니까.
“이자벨라. 아무도 못 듣게 해라.”
즉시 문 밖에 선 이자벨라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쎄신이다. 이자벨라가 나선 이상 쥐새끼 한 마리도 근처에 얼씬거리지 못한다.
확실하게 주변이 정리된 이후, 나는 세렝게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의 최후에 관해 말해다오. 유일한 목격자인 너라면 당시 상황을 나보다도 더 잘 알고 있을 테지.”
“······!”
마지막 목격자라는 사실을 안다.
허나 여기까진 추론할 수 있는 영역.
하여, 쐐기를 박았다.
“나는 분명히 마왕을 죽였다.”
나는 분명히, 마왕을 죽였다.
하지만 정작 죽은 건 나였다.
대체 왜?
“놈의 핵에 틀림없이 ‘빛의 길’을 꽂아넣었다. 그런데 그 뒤 내 의식은 날아갔고, 나 역시 죽어버렸지. 그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냐?”
세렝게티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
“와, 씨발! 죽였다! 드디어!!!”
컴퓨터 앞에서 나는 만세를 부르짖었다.
마왕을 죽였다!
놈의 머리를 자르고 심장에 검을 꽂았다. 이놈을 죽이려고 몇 시간동안 캐릭터를 컨트롤하고 있는 건지 모를 지경이다.
손가락이 미칠 듯이 아프다. 관절이 나간 듯이.
반나절은 족히 지난 것 같은데.
그래도 죽였다. 모든 보스 패턴과 페이즈를 전부 넘긴데다, 마족에게 쥐약인 유일급 검 ‘빛의 길’을 놈의 핵에 꽂아넣었으니, 마왕 할아버지라도 살아돌아오긴 글렀다.
실제로 마왕이 죽고 놈의 핵에서 혼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레이드 보스 몬스터들이 죽을 때 보이는 양상과 같다.
5년만의 쾌거.
분명히, 클리어하면 꿈을 들어준다고 했지.
무슨 꿈을 빌어볼까. 한 100억쯤 달라고 해볼까?
이런 망겜의 정체모를 회사가 100억이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응······? 뭐야? 아니, 아니아니아니. 잠깐만. 뭔 갑자기 블루스크린이야?”
순간 화면이 새파랗게 물들었다.
모니터를 때려봐도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게 대략 10여초.
다시 화면이 돌아왔을 때, 마왕의 웃음소리와 함께 모니터 위로는 ‘Game Over’라는 아주 익숙한 글자가 떠있었다.
“이거 뭔데?”
어이가 없었다.
분명히 마왕을 죽였는데 블루스크린이 뜨면서 내가 죽었다.
-으하하하하!
게다가 스피커를 통해 전해지는 저 마왕의 웃음소리는 뭔가. 놈이 살아있다는 건가?
‘아. 이거 처음부터 못 깨게 만들어놓은거네.’
블루스크린이 뜬 것도 뭔가 이상하다. 아무래도 게임사에서 마왕을 못 죽이도록 설정해놓은 것 같았다.
‘개좆망겜 같으니.’
소원을 들어주기가 어지간히 싫었던 모양.
허탈하게 의자에 앉았다. 5년간의 노력이 전부 물거품이 됐다.
하지만 물거품이 된 것보다 더 슬픈 건 클리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원대한 목표. 내 삶에서 드디어 무언가를 이룩해낸다는 그 목표가 상실됐으므로.
‘어차피 못깬다고······.’
처음부터 깨라고 만든 게임이 아니다.
빌어먹을 게임사. 역시 이럴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말까지 어찌할 수는 없었다.
“아놔, 뭐 이딴 쓰레기 같은 게임이 다 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