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3화 (23/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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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남자, 그라시아

김하나는 긴장한 표정으로 금발의 남자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라시아.

모든 디맨션 워리어들이 숭상하는 남자!

미국에서 그가 보여준 무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으니.

감히 최강의 남자라 불릴 만 했다.

그런데 인터뷰 중 갑자기 그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 팬텀. 그가 소문대로 한국인이라면, 만나보고 싶군요. 우리는 훌륭한 콤비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그에게 아주 많은 ‘이권’에 대한 정보를 줄 수 있으니.”

“팬텀이 누구죠?”

“타차원에서 제 ‘강림체’와 함께 마왕과 싸운 여덟 명의 영웅 중 한 명입니다. 빌헬름이라고도 불리지요. 우리는 이곳 지구에서 다시 힘을 합쳐야 합니다.”

“그분도 엄청난 분이신 것 같군요?”

“예. 그리고 이건 오프 더 레코드로, 김하나 기자님에게 제 개인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만.”

김하나가 주변에 눈치를 주자 카메라가 꺼졌다.

오프 더 레코드. 비밀을 보장해 주겠다는 의미다.

그러자 그라시아가 여태껏 보인 적 없는 진중하기 짝이없는 얼굴로 말했다.

“‘히드라곤’의 주인과는 무슨 사이입니까? 그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꿀꺽!

꿰뚫릴 것만 같은 그라시아의 눈빛에, 김하나가 긴장한 채 마른침을 삼켰다.

*

기사의 정원.

발란 왕국의 정규 기사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도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작은 호수와 명예로운 기사들의 석상이 존재하는 곳.

아름다우며 지조 있는 외관은 그 자체만으로 낭만이었다.

“··· 추모식 중인가 보군요.”

하지만 그와 별개로 도시의 분위기는 우중충했다.

정중앙 광장에 박힌 커다란 비석. 비석엔 이름들이 적혀있으며 그 밑으로 추모의 꽃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모두 대원정에서 희생당한 기사들의 이름이다.

‘기사는 모두 전멸했다.’

500명의 기사는 모두 용기와 명예를 아는 자들이었다. 마계의 최전선에서 마족들을 상대로 싸우고 죽는 걸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빌헬름의 카리스마가 압도적이긴 했으나 그들의 성향 자체가 그렇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용기있게 앞서나간 자들은 전부 죽었다.

결국 나 홀로 마왕과 대적했고, 나 역시도 기사들과 같은 최후를 맞이했다.

“혹시 아는 이름이라도 있으십니까?”

“······ 아니.”

비석에 새겨진 아는 이름?

없다.

수많은 기사의 이름을 내가 하나하나 외웠을 리 없지 않은가.

내게는 그저 게임이었을 따름인데.

중요한 네임드 NPC 정도를 제외하면 모른다. 이 비석에 새겨진 이름 중 아는 이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단 한 명도.

“빌헬름! 이 나쁜 새끼! 내 아들 돌려내라, 내 아들 돌려내!”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머지않은 곳에서 노파가 가슴을 두드리고 있었다.

“시온, 돌아온다고 하지 않았니! 걱정말라고 하지 않았니! 내가 너를 어떻게, 어떻게······ 꺼억!”

이내 뒷목을 부둥켜 잡더니 노파가 쓰러졌다.

내 몸은 어느새 달려나가 쓰러진 노파의 등을 받치고 있었다.

“성각자님?!”

돌발행동에 허드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자벨라도 제법 당황한 눈치다.

나는 노파를 둘러업곤 그들에게 말했다.

“······ 구호소로 가지.”

*

성직자가 운영하는 구호소는 일반 백성들을 치료해주는 병원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 ‘기사의 정원’에 존재하는 구호소는 대륙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여신교’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으나.

“나 죽네, 나 죽어!”

“으어어!”

······ 보다시피 환자가 넘쳐났다.

건물 안과 밖 모두 정상적인 사람이 없었다.

인력도 물자도 부족하다는 방증.

허드슨이 상황을 살펴보곤 인상을 굳히며 말했다.

“제가 치료하는 게 낫지 않습니까?”

“소용없다.”

물의 수호는 외적인 병을 치료하는 스킬이다.

마음의 병을 치료할 순 없다.

하지만 구호소의 주인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봐.”

어깨에 二가 그려진 수도복을 입은 자. 여신교의 상징이다.

사제 아랫급의 부제로 보이는 남자에게 말을 걸자, 남자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답했다.

“환자시면 줄을 서서 기다려주세요. 죄송합니다!”

“앤드류 사제가 안에 계시나?”

“계시긴 하지만······ 아! 그거 만지면 안 된다니까요!”

“급한 환자다.”

“··· 그래도 줄을 서셔야 합니다. 아니면 50골드 기부하시던가요!”

돈을 받는다?

구호소는 여신교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고는 하나, 실상은 도시의 기부금에 의존해 굴러가는 게 현실이었다.

도시의 규모에 따라 구호소의 규모 역시 달라지기 마련.

이곳 ‘기사의 정원’은 발란 왕국의 13개의 대도시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규모다.

환자에게 돈을 요구할 정도로 구호소의 운영이 어렵지는 않다는 뜻이다.

‘구호소로 보낼 기부금조차 말랐다. 도시 재정이 파탄났나보군.’

그런데 이제 대놓고 기부금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것도 50골드나.

도시재정이 파탄이 나서 구호소로 보낼 지원조차 불가능해졌다는 의미였다.

어쩔 수 없이 구호소도 각자도생하고 있는 것이고.

황금도시 아르카나에서야 수백골드도 하루면 탕진한다지만, 일반적으로 50골드면 서민의 한달 월급 수준.

‘수도복을 세탁할 시간마저 없다······.’

나는 급히 주변을 돌아다니며 환자를 체크하는 부제들을 쳐다봤다.

모두 한결같이 다크서클에 옷에는 뗏국이 좔좔 흘렀다.

제대로 씻지도 못했는지 얼굴과 머리에도 기름기가 상당하다.

잘 시간도, 씻을 시간도 없이 바쁘다. 교대할 인원이 없다는 것이다.

“기부 안 하실 거면 기다리십시오!”

부제들은 아예 이쪽을 신경도 쓰지 않았다.

촤르륵!

순간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린 부제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컥!”

바닥에 골드가 쏟아진다.

셀 수 없이 많은, 엄청난 양의 골드가.

나는 그중 1만 골드의 가치를 가진 골드바를 가리키며 말했다.

“큰거 열 개면 되나?”

“치, 친절하게 모시겠습니다, 형제님!!”

*

지긋한 흰수염과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남자.

사제 앤드류가 노파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푸른빛이 쏟아지며 노파의 굳은 안색이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

“애, 앤드류님이 왜···?”

노파가 눈을 뜨고 앤드류를 보며 당황한 채 말했다.

앤드류가 자상하게 미소지었다.

“이분들이 쓰러진 메이 자매님을 데려오셨습니다. 조금 더 늦었으면 아주 큰일날 뻔했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민폐를 끼쳤군요······.”

메이라 불린 노파가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앤드류가 질책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또 그곳에 가셨습니까?”

“··· 계속 눈에 밟히는 걸 어떡합니까.”

“재단은요? 올 겨울까지 납품해야할 옷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그래도 하셔야 합니다. 아니, 안되겠습니다. 제가 매일 가서 진척상황을 확인해야겠어요.”

“애, 앤드류님이 그랬다간 도시 사람들이 저한테 돌을 던질 겁니다. 이곳 구호소 일로도 바쁘실텐데······ 제발 그러지 말아주세요.”

“그럼 제가 가서 확인하지 않도록 일 열심히 하실 겁니까?”

“예에······.”

메이가 수긍하자 앤드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대로였다.

이 도시의 유일한 구호소. 그곳의 주인인 앤드류는 당연히 도시민들과 밀접한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명예를 올리는 퀘스트를 주로 줬었지.’

일명 ‘명예작’이라 불리는 퀘스트들 중 상당수를 앤드류가 줬다.

그래서 명예가 중요한 클래스의 캐릭터를 키울 땐 필수로 앤드류를 거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앤드류가 이 도시에서 어떤 존재인지도 너무나도 잘 알았다.

“감사합니다, 정말······.”

그녀가 재차 나를 향해 감사를 표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어 그녀가 나간 후 방 안에는 나와 앤드류만이 남게 되었다.

“······.”

고요한 적막.

둘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오갔다.

먼저 입을 연 건 앤드류였다.

“메이 자매님의 하나뿐인 아들이 얼마전에 실종됐습니다. 대원정에 참가했다가. 그 뒤로 항상 홧병을 달고 사시지요. 말렸어야하는데 자기가 못 말렸다면서.”

“······ 그래보이더군.”

“자매님의 아들 시온은 기사왕을 동경하고 있었습니다. 기사왕과 함께 마왕을 몰아내겠다며 열의에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시체조차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 한없이 0에 가까운 희망이 자매님을 저렇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죽었겠지요. 앤드류가 씁쓸하게 이어서 말했다.

“메이 자매님 뿐이겠습니까. 많은 분들이 가족을, 친구를 잃었습니다. 유일하게 생환하신 세렝게티님은 입을 꾹 닫고만 계시니······.”

“그런 이야기를 내게 하는 이유가 뭐지?”

“들으셔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앤드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현인(賢人)이었다. 진정한 사제라 인정되는 몇 안 되는 현자 말이다.

내 눈만 보고도 그 이유를 짐작해냈으니까.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 철혈 군주의 심장에 의해 내 감정에는 전혀 동요가 없을 텐데도.

“10만 골드나 기부하신 건 이유가 있어서이겠지요. 그래, 무슨 이유로 이 늙은이를 찾아오셨습니까?”

10만 골드면 구호소도 숨통을 틜 수 있다.

적어도 1년은 돈 걱정 없이 환자들을 받아도 될 금액.

마른 하늘에 단비와 같았다.

허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이상한 걸 요구해오면 아쉬워도 거절해야겠군.’

돈이 급하지만, 돈에 영혼까지 팔지는 않는다.

돈이 필요한 건 오직 환자들을 위해서다. 도시민들에게 봉사하기 위해서였다. 주객이 전도되는 부탁을 해온다면 아쉬워도 거절할 수밖에.

‘가끔 면죄부를 달라며 접근하는 상인들이 있으니.’

아마도 높은 확률로 그런 경우이리라.

여신교의 사제는 살면서 세 장의 면죄부를 발급할 수 있다.

그리고 앤드류 사제는 아직 한 장의 면죄부밖에 발급한 적이 없었다.

‘면죄부는 오직 그에게밖에 준 적이 없지.’

단 한 명, 기사왕 빌헬름에게만 한 장의 면죄부를 줬다.

그래서 거금을 주면 면죄부를 살 수 있다고 믿는 상인들이 가끔 자신에게 다가오곤 했던 것이다.

“목적은 이미 이뤘다.”

순간 앤드류 사제가 이맛살을 구겼다.

목적을 이뤘다고? 면죄부가 목적 아니었나?

설마 메이 자매를 치료한 게 진짜 목적이었다고?

“······ 무슨 목적을 이뤘다는 말입니까?”

당황하는 앤드류를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비켜!”

“비켜라!”

곧이어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철이 바닥을 밟고 끄는 소리.

상당한 무게감과 함께 등장한 무리들은 역시나 기사였다.

“앤드류! 영주님께서 안쪽의 손님을 보고자 하신다!”

문을 열고 들어오려하자, 이자벨라와 허드슨이 막아서고 있었다.

첨예한 대치상황.

“이게··· 무슨······.”

앤드류가 당황했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다.

나는 그들의 방문을 예상하고 있었다.

기사의 정원의 주인, 와이저 후작은 지금 돈이 아주 절실할 테니까.

10만 골드의 거금을 구호소에 쾌척하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할 것이다.

모두가 볼 수 있게끔 바닥에 돈을 흘렸으니, 후작의 귀에 들어가는 건 순식간이었겠지.

직접 돈을 건네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효과적이다.

“다시 만나서 반가웠다. 앤드류 사제.”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바깥으로 향했다.

“다시······?”

복잡한 눈빛을 던지는 앤드류 사제를 뒤로 한 채.

*

와이저 후작가.

고풍스러운 외관의 대저택으로 기사들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갔다.

이후 접견실에 도착한 뒤 고풍스러운 느낌의 탁자에 앉았다.

탁자 위에 놓인 다가와 차.

누가 봐도 손님을 접대하는 자리.

‘겉모습은 별 볼 일 없어 보이는군.’

와이저 후작은 초대한 세 명을 눈여겨보았다.

특히 가운데에 앉은 남자. 구호소에 10만 골드를 쾌척했다지.

‘떠돌이 상인인가? 물자를 끌고 오진 않은 듯싶은데. 이곳저곳 여행하는 부잣집 도련님일 수도 있겠군.’

어찌 됐든 돈이 많은 건 확실해 보인다.

뒤에 대동한 여자와 남자가 착용한 장비들은 상당한 고가의 물건이었다.

와이저 후작이 미소를 머금었다.

“갑자기 이런 식으로 초대해서 미안하오. 사과하겠소.”

풍만한 체구의 남자, 와이저 후작.

이 도시의 주인, 과거 수많은 기사가 동경했던 존재.

하지만 지금은 살이 찐 돼지일 뿐이었다.

그를 보자 허드슨은 미친 듯이 떨어대기 시작했다. 식탁 아래로 양손을 부여잡고 애써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약소하지만 사과의 표시로 준비했소.”

그러나 와이저 후작은 허드슨을 못 알아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아예 관심이 없었던 걸까.

아무렴. 상관은 없었다.

후룩!

나는 잔을 들어 홍차를 입에 머금은 채 말했다.

“본론부터 이야기하지.”

“······이야기하지?”

순간 와이저 후작이 인상을 찌푸렸다.

‘···미친 건가?’

새파랗게 어려 보이는 놈이 말을 놓는다. 그것도 감히 후작의 앞에서. 궁금해서 데려오긴 했지만 와이저 후작은 이 도시의 주인이다.

눈 앞의 몇 명 쯤이야, 손 짓 한 번에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었다.

‘별 볼 일 없는 놈이면 혼쭐을 내주마.’

설령 살아서 나가더라도 멀쩡히 두 발로 걸어 나가진 못할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 들어나 보자는 눈빛으로 와이저 후작이 남자를 쳐다봤다.

“나는 빚을 받으러 왔다. 와이저 후작.”

“······ 빚?”

순간 와이저 후작의 입안이 써졌다.

그가 빚을 진 곳은 많다.

‘쯧, 실수로군.’

좋은 손님일 줄 알았더니 빚을 독촉하고자 보낸 것이었나.

처음부터 정문으로 들어오면 기사들이 입구에서부터 막았을 테니,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궁금증을 돋은 모양이었다.

무작정 안으로 들인 게 실책이다.

하지만 곧 와이저 후작은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기사왕 빌헬름.”

갑자기 그 이름이 왜?

모두가 의아해하는 것도 잠시.

툭.

··· 나는 천천히.

그리고 느긋하게 깍지를 켠 채, 몸을 축 늘어트려 탁자 위에 발을 올렸다.

예의라고는 눈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행동.

“······!”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스릉!

문앞에서 대기하던 기사들이 검을 뽑아든다.

와이저 후작의 얼굴 또한 와락 구겨졌다.

탁 위에 발을 올려? 감히 자신의 앞에서?

혼쭐만 내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죽여야겠다.

와이저 후작이 오른손을 들었다. 내리는 즉시 기사들이 달려들어 저 버르장머리 없는 놈의 머리를 자를 것이다.

저딴 놈이 기사왕을 언급하며 자신에게서 빚을 받겠다는 것 자체가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와이저 후작이 천천히 손을 내리려던 찰나.

“내가 그의 후계자다.”

······························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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