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22화 (2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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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기사, 세렝게티

알을 주지 않으면 숲과의 전투가 시작된다.

그러나 준다고 해도 문제다.

“음. 뭐 하는 거지?”

천상의 알을 내밀어봤지만 역시나 하이 드라이어드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천상의 정령이 담긴 알은 오직 나만 볼 수 있으니 당연한 일.

하물며 자연계의 정령도 아닌지라, 숲을 부활시키지도 못한다.

진짜로 도망쳐야 하나.

퀘스트 실패 시 명성이 깎이는 게 마음 아프긴 하지만······ 별 할퀴기로 벽을 세우고 이자벨라와 허드슨이 30초만 버텨주면 텔레포트 북을 사용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받아라, 숲의 주민.”

진지하게 도망을 고려하고 있을 때 이자벨라가 앞으로 나섰다.

곧이어 그녀가 하이 드라이어드에게 정령의 알을 건넸다.

알을 받아든 하이 드라이어드의 두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바, 바람의 정령!”

바람 정령의 알.

죽은 숲을 살릴 수 있는 자연계의 정령!

그 크기로보나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나, 숲은 예전보다 더 활력을 얻고 커질 것이다.

바위의 정령보단 바람의 정령이 숲을 키우는덴 훨씬 적합하니까.

하이 드라이어드의 두 눈에 환호가 들이찼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그대들은 우리 숲의 은인이자 친구다!”

“숲이시여!”

“만세!”

지켜보던 드라이어드들도 잔뜩 흥분한 채 함성을 내질렀다.

동시에.

<<‘바스럭 숲’에 바람의 정령을 선물했습니다.>>

<<‘서브 퀘스트 : 숲에 정령 되돌려주기’가 완료었습니다.>>

<<보상 : 업적 ‘드라이어드의 친구’, 숲의 보은>>

<<‘텔레포트 북’에 ‘바스럭 숲’ 웨이포인트가 생성됩니다.>>

<<현재 텔레포트 북에 등록된 웨이포인트는 3곳(사막의 성지, 아르카나의 시궁창, 바스럭 숲)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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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가 완료됐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하지만 문구는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 솔직히 조금 놀랐다. 이자벨라가 정령의 탑에서 시련을 깨고 얻은 정령의 알을 망설임없이 내어주리라곤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정령의 가치를 모를 리는 없다.

오히려 너무 잘 알아서 탈일 터.

“······.”

내가 빤히 바라보자 이자벨라가 어깨를 으쓱했다.

별일 아니라는 듯이.

그제야 이 또한 내가 그녀에게 주문한 ‘봉사’의 하나임을 깨달았다.

사막을 빠져나가는 대신 이자벨라는 내게 1년간 봉사할 것을 맹세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것 또한 내어주며 헌신적으로 봉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오늘은 축제를 벌여야겠구나!”

하이 드라이어드가 함박 웃음을 지은채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

<<명예의 전당이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메인퀘스트 3 – 탑 오르기’의 순위가 변경됩니다.>>

<1위, 240점. 란돌프>

<2위, 219점. 그라시아>

<3위, 191점. 민트초코맛있어요>

<4위, 188점. 흑요>

<5위, 180점. 마스터>

<6위, 175점. 학살>

······.

<<‘학살’의 ‘탑 오르기’ 순위가 한단계 하락했습니다.>>

<<메인 퀘스트 3의 이권 ‘수호벽’의 레벨이 6Lv -> 5Lv로 한단계 하락합니다.>>

투신의 탑 앞에서 대기하던 학살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이건 또 뭔 개소리야?’

느긋하게 란돌프로 추정되는 인물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순위가 떨어졌다.

그리고 순위가 떨어지며 수호벽의 레벨도 같이 하락했다.

‘내가 태풍의 탑을 오르느라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메인 퀘스트 3의 경우 100위 안에 들면 ‘수호벽’이라는 이권을 준다.

10위부터 100위까진 모두 1Lv의 수호벽을 주지만 1위에서 9위까지는 각 순위마다 ‘수호벽’의 레벨에 차등이 있었다.

그라시아가 몇 개월동안 레벨링을 통해 탑을 오른 건 더 높은 레벨의 수호벽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성과를 내서 그라시아는 무려 219점으로 10Lv의 수호벽을 얻었다.

학살도 마찬가지였다.

심혈을 기울여서 ‘태풍의 탑’을 정복하고 5위에 랭크되어 6Lv의 수호벽을 거머쥐었다.

수호벽은 로그아웃 된 ‘현실’의 몸을 지켜주는 용도.

아무리 판게니아의 레벨이 높아도 현실의 몸이 죽으면 소용없다.

하지만 수호벽처럼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을 사용하지 않아도 현실의 몸을 제알아서 지켜주는 기능은 몇 없었다.

수호의 부적 같은 걸 상시로 켜둘 수는 없었으므로.

그래서 다들 필사적으로 탑에 오른 것이다.

빠드드득!

‘팬텀. 아니, 란돌프······!’

화병이 나서 죽어버릴 것 같다.

한 번깬 메인 퀘스트는 다시 도전할 수도 없었다.

자신조차 이렇게 화가나는데, 1등을 벌써 세 번이나 빼앗긴 그라시아는 어떤 기분일까?

그라시아는 10레벨의 수호벽을 얻고자 수개월간 최악의 조건에서 레벨링만 했다.

메인 퀘스트를 밀지 않은 상태에서 성장하는 건 한계가 있는데도 무려 7까지 올린 것이다.

거기에 죽음을 무릅쓰고 불멸자의 탑을 꾸역꾸역 올랐다.

그럼에도 219점이건만.

란돌프 이 빌어먹을 놈은 대체 무슨 탑을 올랐기에 240점이란 말인가?

‘대체 무슨 꼼수를 쓴 거냐?’

확실한 건 불멸자의 탑보다 높은 등급의 탑을 올랐다는 뜻.

분명히 정상적인 방법으로 오른 탑이 아니리라.

팬텀은 판게니아의 온갖 지식을 섭렵하고 있으니, 버그라도 사용한 것이겠지. 그게 아니라면 도저히 말이 안 된다.

후웁! 후웁!

학살은 숨을 가다듬었다.

“빌어먹을! 이런 개 같은!!”

하지만 아무리 숨을 가다듬어도 도무지 화가 가라앉질 않았다.

*

<‘메인 퀘스트 3, 탑 오르기’의 순위권이 갱신됐습니다.>

<‘란돌프’의 순위가 1순위로 올라섭니다.>

<240점으로 ‘한계점수’를 넘어섰습니다. 이권 ‘수호벽’의 등급이 격상합니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자 떠오른 글귀들.

1등은 1등인데 이전과는 분명히 다르다.

‘이권 등급의 격상이라.’

메인 퀘스트 3, 탑 오르기의 1등을 거머쥐자 수호벽이라는 이권이 생성됐다.

나는 즉시 수호벽에 관련된 설명을 읽어보았다.

【수호벽(11Lv)】

★ 로그아웃 된 신체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경고해줍니다.

★ 수호벽의 레벨에 따라 보호할 수 있는 강도에 차이가 있습니다.

★ 11레벨의 수호벽은 1성(星) 이하의 공격을 30초간 무효화합니다.

눈이 번쩍 떠진다.

‘한시름 놓았다.’

이 이권은 내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 중 하나였다.

판게니아로 로그인하면 현실의 박현명을, 현실로 돌아가면 판게니아의 란돌프를 이 수호벽이 지켜준다는 말.

그것도 레벨 10을 넘어 초월한 1성의 공격까지도 30초간 무효화시키는 절대적인 방어벽이라니!

‘1등을 하면 10레벨이어야하는 게 한계점수 돌파로 인해 11레벨로 격상했다는 뜻이었군.’

점수에 따라서 정해진 이권의 등급이 격상할 수도 있는 듯싶었다.

게다가 30초면 돌아가서 충분히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도 잔여시간이 72시간이 됐다.’

1등의 보상은 그뿐만이 아니다.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이 24시간 더 추가 되어 72시간이 된 것이다.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면 잔여 시간은 많을 수록 좋았다.

“성각자님, 감사합니다. 제가 정령을 얻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드라이어드가 춤을 추며 축제를 벌이고있는 와중, 허드슨이 다가와서 말했다.

허드슨은 물의 정령알을 얻었다.

재능에 ‘물’이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

“정식으로 계약하려면 부화부터 시켜야지.”

“예. 돌아가면 ‘정령 인큐베이터’부터 사야겠습니다.”

정령알을 부화시키는 가장 대중적인 방법은 정령 인큐베이터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극소수의 대도시에 존재하는 정령협회에서 아주 값비싼 금액을 내면 이용할 수 있었다.

“성각자님은 무슨 알을 얻으셨습니까?”

“나도 모르겠다.”

“······ 예?”

내 대답을 듣고 허드슨이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사실인 걸 어쩌겠나.

천상의 정령이라고는 하나, 나도 정체를 모르겠는걸.

‘천상’이 마계인지 신계인지 아니면 다른 세계인지 알 수가 없었다.

“끼히히히!”

“으하하하하!”

“놀자! 돌자! 춤추자!”

드라이어들이 흥겹게 원형으로 돌면서 춤을 춘다.

“······.”

그리고 그 가운데에, 이자벨라가 있었다.

바람의 정령을 선물한 이자벨라가 우리들 중에 제일가는 귀빈이었다.

하지만 이자벨라는 어쩔 줄 몰라하며 어색하게 서있을 따름이다.

‘알을 두 개 얻어서 다행이었지.’

이자벨라는 정령의 탑을 오르며 두 개의 알을 거머쥐었다.

어쩐지. 쉽게 내주더라니 하나가 더 있었을 줄이야.

그래도 어려운 선택임은 확실하다. 정령의 알은 그 자체로 엄청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정령의 탑’에 올라서 얻은 정령은, 일반적인 정령들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천년 묵은 만드라고라를 선물로 내어주다니.’

이자벨라의 양손에 인간 형태의 식물인 만드라고라가 있었다.

숲의 양기를 빨아들여 천 년을 산 최고의 영약이다.

저런 영약을 먹으면 새로운 재능이 개화된다.

물론, 나는 더 개화할 재능이 없어서 먹으나 마나지만.

“한시라도 빨리 부화시키고 싶습니다. 정령이라면 충분히 제 문제점을 해결해 줄테니까요.”

허드슨의 두 눈에 흥분이 가득했다.

정령과 함께 사냥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는 걸까?

9를 넘어 10으로 오르는 길. 혼자서는 불가능해도 정령과 함께라면 가능할 수도 있었다.

“그 전에, 같이 가야할 곳이 있다.”

“아직 들를 곳이 남았습니까?”

“그래.”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허드슨이 주먹을 움켜쥐며 결의에 찬 눈빛을 보였다.

세상 끝까지 따라올 기세다.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무조건 따르겠다고?

“그 말, 반드시 지키길 바라마.”

*

“······.”

허드슨은 무조건 따르겠다던 말을 후회했다.

그는 워프를 넘어, 자신의 앞에 놓인 영지를 그저 넋놓고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꿀꺽!

“왜··· 이곳을······?”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보겠나?”

“발란 왕국의······ 와이저 후작가의 영지 아닙니까······?”

그야 알아볼 수밖에.

세렝게티.

함께 미래를 약속하고 비밀약혼식을 올렸던 그녀가, 대원정에서 두 다리가 절단되어 돌아온 그녀가 있는 곳이었으니까.

허드슨이 몸을 비틀거렸다.

그녀를 만나기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시의원이 되기는커녕 레벨 10에 이르지도 못했으니.

하지만 성각자가 함께 이곳에 온 이유를 모르겠다. 설마 자신과 세렝게티의 만남을 주선해주기라도 하려려는 걸까?

“가, 같이 가야할 곳이라는 게······.”

재차 침을 삼키며 허드슨이 묻자, 나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이곳이다.”

13개의 대도시로 이루어진 발란 왕국.

그중 ‘기사의 정원’이라 불리는 곳.

하지만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허드슨 때문이 아니다.

‘대원정의 끝, 마왕과 전투를 벌인 그날.’

500의 기사들과 함께 대원정에 참가했으며, 나를 구하다가 함정에 빠져 하반신을 잃은 순백의 기사 세렝게티.

그녀는 대원정 당시 내 최측근이었다.

또한 내가 마왕과 싸우는 것을 본 유일한 목격자였다.

그러니 알고 있을 것이다.

······ 나의, 기사왕 빌헬름의 최후에 관한, 당시 이해할 수 없었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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