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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적인 보상
발견(發見).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 여태껏 없었던 것을 찾아냈다는 뜻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천상의 정령을 ‘발견’했다.
5년 차 썩은 물 플레이어인 나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정령을.
공교롭게도 내가 가진 히든 특성 중 하나인 ‘천상(天上)’과 같은 이름을 가진 정령을 말이다.
우연인가, 아니면 히든 특성으로 인해 발견할 수 있었던 걸까?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발견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혼돈의 탑 정상의 존재이며 미지 그 자체인 빛을 향해 나는 손을 뻗었다.
이어 그 빛 속에서 잡히는 무언가를 꺼냈다.
‘정령의 알.’
정령의 알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정령의 알과는 거리가 있었다.
정령의 알의 표면에는 정령과 관련된 자국이 새겨져있다.
바람의 정령이라면 바람에 긁힌 자국이, 불의 정령이라면 그을은 자국이 남아있는 경우와 같이.
빛의 정령은 알 자체가 빛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천상의 정령을 품은 알은 그 어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깃털에 감싸여 있다.’
하얀색과 검은색의 깃털로 이루어진 알이었다.
비율은 정확히 반반이다.
수백, 수천겹의 깃털이 알을 이루고 있었다.
이런 형태의 알은 나 역시 처음보는 것이었다. 이름만 생소한 게 아니라 알의 형태마저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물끄러미 알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알의 정보를 가진 양피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천상의 정령을 품은 알(???)】
★ 빛과 어둠, 혼돈의 끝인 ‘천상계’에서 떨어진 정체를 알 수 없는 알
★ 오직 ‘천상인’만이 알을 보고, 부화시킬 수 있다.
생각보다 길지않은 설명이다.
하지만 이 안에서 나는 몇 가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천상계라면 신계를 말하는 거다.’
신계. 여신이 기거하는 장소.
천상인은 천족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알을 발견했다는 건 내가 ‘천상인’이라는 방증이었다.
물론 진짜로 천상인일 리는 없었다. ‘천상’의 히든 특성으로 인해 생겨난 일이리라.
‘그렇다면, 천상은 천족과 관련된 특성인가?’
턱을 쓸었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일반화의 오류였다.
‘··· 마족들도 마계를 천상계라고 부르지.’
천상계를 우리는 흔히 신계라고 말하지만, 사실 마계 역시도 천상계라고 불린다. 주로 마족들에 의해서.
그러니 이 설명만으로는 이 알이 신계에서 떨어진 건지, 마계에서 떨어진 건지 알 수 없다.
하얀색과 검은색의 깃털이 반반씩 섞여있는 것도 혼란을 가중시켰다.
‘부화시켜야 확실히 알 수 있겠군.’
당장은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러나 확실한 건 결코 평범한 알이 아니라는 것.
백성전의 성좌들과 탑의 주인들, 정령왕들이 눈여겨보고 있다.
성좌들이야 기발하거나 대단한 것을 발견하면 항상 관심을 가진다지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정령왕들의 관심이었다.
‘정령은 숲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을만큼 강력한 존재다.’
정령은 세상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매개다.
인간과 계약할 경우 자연의 힘을 다룰 수 있게 해주며, 정령의 급에 따라선 거대한 산 하나를 통째로 없애는 것조차 가능하다.
그 정도로 강력한 정령들의 왕.
정령왕들의 위력은 얼마나 강력하겠나.
백성전의 백성좌들, 심연의 틈새를 지배하는 지배자들, 여신을 수호하는 토룡의 거인들, 세상의 북쪽과 남쪽 끝에 있다는 흑제와 백제······ 감히 그들과 비견해도 부족하지 않은 게 정령왕이라는 존재였다.
‘정령왕과 계약한 자는 단 한 명도 없다.’
그렇기에, 이곳 판게니아에서 정령왕과 계약한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정령왕은 절대적인 중립이며, 세상의 일에 결코 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천상의 알’에 모든 정령왕이 관심을 가졌다는 말이 시사하는 무게는 절대로 가볍지 않다.
그만한, 혹은 그 이상의 가치가 바로 이 알에 있다는 뜻이니까.
《정산이 완료되었습니다.》
그 순간 떠오른 새로운 글귀.
메인 퀘스트 3의 내용 정산이 마침내 완료되었다.
이전 메인 퀘스트 1과 2를 놓고봐도 정산시간이 상당히 길었다.
‘다른 탑들과 달리 레벨이 높아야 오를 수 있는 탑은 아니었지.’
정해진 레벨의 규격대로 오르는 탑이었다면 정산이 쉬웠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탑에 따라 정해진 점수의 규격이 존재할 테니.
하지만 혼돈의 탑은 아니었다.
혼돈의 탑을 오르는 건 순수한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생각보다 점수가 낮을 수도 있겠군.’
그래서 생각보다 낮은 점수를 받을 수도 있었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 점수를 매기는 건 주관적인 것이다. 객관적인 지표가 있을 리 만무했다.
점수가 어떻게 책정되는 지는 모르겠지만 앞의 메인 퀘스트들과는 확실히 다른 경우.
너무 많이 기대하면 반대로 실망도 큰 법이었다.
하여, 이 부분에 관해선 살짝 기대를 놓았다.
‘천상의 알을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해.’
숨을 가다듬으며 나는 눈앞에 놓인 정산표를 바라보았다.
<‘메인 퀘스트 3 : 탑 오르기’가 완료되었습니다.>
<혼돈의 탑을 최초로 등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대조불가. 그 누구도 이룩하지 못한 최초의 업적입니다.>
<총점 240점. 메인 퀘스트 - ‘명예의 전당’에 업데이트 됩니다.>
명예의 전당에 업데이트 되었다.
최소한 순위권에 들었다는 말이다.
그 누구도 이룩하지 못한 업적. 여태껏 받아온 점수보다도 높다.
메인 퀘스트 1, 생존의 점수는 220점.
메인 퀘스트 2, 클래스 얻기의 점수는 230점.
그리고 이번 메인 퀘스트 3, 탑 오르기의 점수는 무려 240점이다.
이 정도면 순위를 기대해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보상은 끝나지 않았다.
<초보자의 행운? ‘행운의 성좌’가 결과에 놀라워합니다. 보상 내용이 한층 업그레이드 됩니다.>
<모험 그 자체인 당신에게 흥분한 ‘모험의 성좌’가 입술을 혀로 핥습니다. 보상 내용이 한층 업그레이드 됩니다.>
<‘전투의 성좌’가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낸 당신을 칭찬합니다. 보상 내용이 한층 업그레이드 됩니다.>
<‘저주받은 성좌’가 천상의 알의 주인이 된 당신에게 관심을 표현합니다. 보상 내용이 한층 업그레이드 됩니다.>
<‘검은 빛을 인도하는 성좌’가 당신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보상 내용이 한층 업그레이드 됩니다.>
<‘행운 주사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한 단계 위의 보상목록을 획득합니다.>
<도합 여섯 단계 위의 주사위를 굴립니다.>
<보상 등급이 20단계를 넘어가, 보상의 격이 초월합니다.>
여태껏 등장한 성좌 셋과 처음보는 성좌 둘.
총 다섯 성좌가 호응했다.
거기에 행운 주사위까지 포함되어 보상단계가 여섯단계 격상하자, 보상의 격 자체가 달라졌다는 표시가 떠올랐다.
20단계를 넘어가면 초월한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말.
즉, 혼돈의 탑을 등반하며 얻은 보상의 단계가 최소 14단계 이상이라는 의미였다.
보상에 단계가 있다는 건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체계적으로 세분화되어 있는 듯싶었다.
‘보상의 초월?’
그런데 보상이 초월한다는 게 정확한 의미를 모르겠다.
초월적인 보상을 얻는다는 걸까?
아니면 보상의 급 자체가 달라진다는 걸까?
하지만 나는 곧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아래 스무 개의 보상 중 두 가지 보상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진(眞) 태도’>, <‘참마도(慘魔刀)’>, <‘극(極) 철투구’>, <‘멸(滅) 손장갑’>, <‘진(眞) 체력 포션’>, <‘극(極) 완드’>······.
진, 참, 극, 멸.
위 네 개의 칭호가 붙은 물건은 모두 극에 다다랐다는 뜻이다.
평범한 물건도 저 네 개의 칭호가 붙으면 비교 못할 보물이 된다.
성능도, 옵션도 모두 보물에 걸맞게끔 변화하는데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다. 애당초 초월한 물건은 거래와 양도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직 한 명.
사용자에게만 확실한 힘을 보여주는 장비.
인간이 별을 먹어 초월하듯, 저 네 칭호 역시 초월한 것에만 붙을 수 있었다.
‘··· 보상의 초월이라는 게 이런 뜻이었나.’
너무 놀라서 할 말을 잃었다.
철혈군주의 심장이 아니었다면 심장이 터져버렸을 게다.
저 네 칭호를 붙이기 위해서 필요한 노력은 농담이 아니라 지구 한 바퀴를 걸어서 도는 수준이었다.
다만,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한 탓에 일반적인 장비나 도구 따위를 초월시키진 않지만······ 내가 만드는 게 아니라 주어지는 ‘보상’이었으니.
하나만 선택해도 대박을 외칠텐데 무려 두 개나 선택하란다.
앞선 메인 퀘스트 두 개를 깰 때보다도 나는 확실하게 흥분하고 있었다.
이 흥분을 강제로 가라앉히는 철혈군주의 심장이 지금 이 순간에는 미울 정도로.
‘엄청나군.’
아이템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혀를 내둘렀다.
쏟아지는 보상의 홍수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
탑을 나와, 포탈을 건너던 때였다.
-제법이군, 기사왕.
처음 포탈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던 황금빛의 정령이 말했다.
정령의 탑으로 인도하는 문지기 같은 존재.
하지만 평범한 문지기가 탑을 오르는 자에 대한 내용을 알 리 없었다.
무엇보다 나를 기사왕이라고 불렀다. 기사왕이라면 내가 빌헬름이었던 때의 칭호였다.
이에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지만, 순식간에 포탈이 닫혀버렸다.
······ 황금빛 정령이 단순한 문지기가 아니었나?
“오오. 정말 정령의 탑을 올랐나보군!”
어느덧 눈앞에 하이 드라이어드가 있었다.
주변을 지키는 수많은 드라이어드와 함께 두 눈이 튀어나올 듯 치켜뜨고 있었다.
나는 숨을 들이마시며 물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하루도 안 지났다.”
고작 하루라.
단순한 체감상 느낌이 아니라, 혼돈의 탑에서 나는 최소 백일 이상을 보냈다.
그런데 이곳에선 고작 하루가 지났을 따름이다.
지이이잉!
곧이어 또 다른 포탈이 열리며, 허드슨과 이자벨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헉! 헉! 우웨에에엑!”
나온 즉시 허드슨은 위장을 게워냈다.
그 사이 무슨 고생을 했는지 전신이 멀쩡한 곳이 없었다.
옷은 넝마가 됐고, 머리는 타서 구불구불해졌다.
꾸벅!
이자벨라가 내게 짧게 고개를 숙였다.
허드슨과 달리, 이자벨라는 외형상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집앞을 산책이라도 하고 온 모습이다.
“드루이드여! 그대를 의심한 것을 사과하겠다.”
하이 드라이어드가 격식을 차렸다.
이제야 진심으로 ‘손님’ 취급을 해주는 것이다.
“약속대로 ‘정령의 알’을 숲에 주면 그대를 우리의 영원한 친구로 대우하지. 당연히 그에 걸맞은 보상도 줄 것이다.”
아.
······ 맞다.
분명히 드라이어드의 숲에 정령의 알을 주기로 했다.
문제는 내가 가져온 알이 하나뿐이라는 점이었다.
예전에 빌헬름으로 정령의 탑을 올랐을 땐 정령의 알을 다섯 개나 얻었으니까.
이번에도 다수의 알을 얻을 걸로 생각하고 올랐는데, 정작 얻은 건 ‘천상의 알’ 하나였다.
‘도망이라도 가야되나?’
순간 하이 드라이어드의 눈매가 치켜올라갔다.
“드루이드여! 설마 약속을 지키지 않을 셈인가?”
··· 눈치 하나는 기가 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