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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드라곤 강화
황금도시 아르카나의 시궁창 던전.
최소 8레벨에 이르러야 깰 수 있는 던전의 보상이 무려 두 단계나 올라갔다.
보상목록은 고작 네 개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바람의 인장】, 【돌연변이 선장의 갈고리】, 【흑철 단검】, 【돌연변이 괴물쥐의 핵】
‘다 핵심적인 것들이로군.’
역시 8레벨 던전을 클리어한 두 단계 위의 보상이라서 그런가?
핵심적인 보물만 모아둔 느낌이다.
나는 차례대로 보상목록을 눈여겨보았다.
우선, ‘바람의 인장’은 탈리스만이다.
민첩을 올려주고 바람의 저항을 줄여주기에, 암살이나 궁사계열의 클래스라면 필수로 가져가야하는 근본 탈리스만 그 자체였다.
그리고 ‘돌연변이 선장의 갈고리’와 ‘흑철 단검’은 상급의 보조무기다. 아무래도 이곳 시궁창에 존재하는 장비보상 중에 가장 좋은 것들일 터였다.
보통 갈고리류의 보조무기는 항해 관련 클래스에게 추가옵션을 부여한다. 또한 흑철 단검을 이자벨라에게 주면 그 즉시 전투력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었다.
하지만, 이중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역시나 마지막에 위치한 ‘돌연변이 괴물쥐의 핵’이었다.
‘혼이 아닌 건 아쉽지만 이건 이것대로 쓸만하지.’
돌연변이 괴물쥐의 혼이 나왔다면 만세를 내질렀겠으나, 핵 또한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다. 특히 돌연변이 류의 핵은 가장 핵심적인 기능을 갖고 있었다.
【돌연변이 괴물쥐의 핵(재료)】
★ 괴물쥐에게 돌연변이를 일으킨 정체불명의 핵
★ 짐승에게 먹이면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간혹 특수한 도구나 장비의 재료로도 사용된다.
★★ 비스트 로드(Beast Lord), 보유한 ‘짐승류 혼’ 강화 가능
히든 특성 ‘비스트 로드’를 가진 사람에게만 보이는 히든 옵션.
혼의 강화를 가능해주는 게 바로 이 핵의 가장 핵심적인 기능이다.
‘히드라곤도 짐승류 보스몬스터다.’
설정상 미치광이 박사가 탄생시킨 온갖 짐승의 합성물이 바로 히드라곤이었다. 돌연변이 괴물쥐의 핵으로 강화시키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히드라곤의 혼은 나조차도 처음 가져보는 것이었다.
12인 규모의 레이드 보스 몬스터를 강화하면 무슨 변화가 일어날지 짐작도 가질 않았다.
‘··· 내가 모르는 게 있다니.’
미지(未知)의 영역을 눈앞에 두자 절로 미소가 나왔다.
철혈군주의 심장으로 말미암아 흥분 따위는 하지 않을 텐데도, 흥분이 된다.
나는 지난 5년간 판게니아를 거의 하루도 안 쉬고 플레이했다.
판게니아를 가장 길게 플레이한 게이머이며 그렇기에 이 세계의 전부를 꿰뚫고 있다고 한들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판게니아에는 아직도 내가 모르는 게 무궁무진하다.
클리어가 불가능한 미친 난이도지만 언제나 강한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그 이면엔 이러한 미지의 영역이, 신비(神祕)가 자리잡고 있었다.
‘··· 이러니 내가 이 게임을 못 끊었지.’
물론, 강화한다고 특별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가능성조차도 사랑했다.
<<‘돌연변이 괴물쥐의 핵’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니 더 고민할 필요가 있겠는가?
*
4륜 마차를 통째로 구매했다.
최대한 재질이 튼튼하고 억센 것으로 오더를 넣었다.
물론 내 돈이 아니라 허드슨의 돈으로.
대신 마차를 끌 말은 내가 준비해두었다.
“······.”
마차에 탄 허드슨이 고개를 들어 뚫어져라 앞을 쳐다보고 있었다.
시선과 정신을 한꺼번에 빼앗긴 이유는 마차를 몰고 있는 말 때문이었다.
넋을 놓은 채 금붕어처럼 입만 뻐끔뻐끔거렸다.
‘저게··· 말이라고?’
말이란 무엇인가?
그야 당연히 말은 말이다.
네 발로 달리며 가축 중에 가장 빠르고 오래달리는 동물.
하지만 눈앞에 있는 건 평범한 말이 아니었다.
쿵! 쿵! 쿵! 쿵!
움직일 때마다 지면이 들썩인다.
거대하기 짝이 없는 동체.
아홉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
‘말이 아니라 히드라곤인데······?’
성각자가 마차를 몰 말은 자신이 준비하겠다기에, 허드슨은 별 생각없이 마차만 샀다.
준비를 끝마치고 아르카나를 떠날 때가 되어서야 성각자가 이야기하는 ‘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바로 히드라곤이었다.
그것도 만들어진 조악한 히드라곤이 아니라, 혼을 통해 소환된 완성체!
혼에 새겨진 보스 몬스터는 태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비슷한 외양일지라도, 비슷한 레벨일지라도, 그 격(格) 자체를 감히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히드라곤의 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정설처럼 퍼져있었다.
키메라는 만들어지는 것. 태초의 모습 따위가 존재할 리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있었다. 혼에 의해 소환된 히드라곤이.
‘······ 저건 뭐야?’
허드슨의 눈이 히드라곤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아홉 개의 머리 중 한 개. 중심에 있는 녀석의 머리 위로 코끼리 상아처럼 긴 뿔이 나있다.
이 역시 일반적인 히드라곤에게는 없는 특성.
지이이익.
콰르르릉!
“끄아아악!”
“사, 살려줘!”
“도망쳐!”
바깥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는 아르카나 인근에 자리잡은 도적단이었다.
아르카나를 오가는 상인들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거대 도적단 중 하나이며 공포의 상징이지만, 히드라곤에 의해 날파리마냥 학살당하고 있었다.
특히 뿔에서 쏘아지는 전광(電光). 한 번 기운을 압축하고 쏘아내면 단번에 열이 넘는 도적들이 뼛가루도 남기지 못한채 증발해버렸다.
파괴력이 최소 중급 이상의 번개류 스킬과 맞먹는다.
“바깥이 소란스럽군.”
“······ 레드후드 도적단의 비명소리입니다.”
“그래? 별 일 아니로군.”
성각자가 다시 눈을 감았다.
‘별 거 아니라고?’
······ 저 소리가?
“제발 살려줘!”
“끼아아아악!!”
“엄마아아아아아!!!”
*
10여일간 일곱 번의 워프를 넘고, 두 개의 고위험 고레벨 지대를 지났다.
거의 중앙대륙의 절반을 횡단한 수준이지만 원하는 걸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이것도 아닙니까?”
“음. 이미 죽어있군.”
앞에 놓인 푸른빛을 띠는 나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무 자체가 죽은 건 아니지만, ‘정령의 길’은 이미 닫혀있었다.
‘정령의 나무.’
내가 찾는 건 정령의 나무였다.
정령의 나무란 정령이 태어난 나무를 뜻하는 것이다.
정령이 태어난 나무는 일시적으로 ‘정령계’로 향하는 길을 연다.
그 길에 들어서야만 ‘정령의 탑’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놓인 나무는 정령이 태어난지 한참 지나 길이 닫혔다.
“제 눈에는 다른 나무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보입니다만······.”
허드슨의 눈에는 이 정령의 나무라는 것도 다른 나무와 다를 바가 없었다.
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건지.
쯧. 나는 작게 혀를 차며 말했다.
“어쩔 수 없군.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순 없었다.
나는 미켈라의 칼을 꺼내들었다.
허드슨과 이자벨라가 한 발 물러서자, 칼을 크게 휘둘러 나무를 잘라냈다.
쿠릉!
나무의 허리가 잘리며 그대로 쓰러졌다.
그 순간.
히아아아아아!
숲 전체에서 들려오는 비명같기도 하고 신음같기도 한 소리들.
“드, 드라이어드입니다! 미친!”
허드슨이 해머를 꺼내들어 주변을 경계했다.
곧이어 하반신은 사슴의 것이고 상반신은 인간의 것인 드라이어드 다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령을 잉태한 나무를 베다니.”
“인간이 겁을 상실했구나.”
“처참하게 찢어 죽이자.”
그들은 반요정이었다.
숲을 지키는 숲지기들.
【Lv.7】
레벨7 이상의 괴물들!
그 숫자가 무려 50을 넘겼다.
요정을 잉태한 나무는 그들에게도 무척이나 상징적인 것.
그것을 베었으니, 살려서 돌려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
꿀꺽!
허드슨이 침을 삼키며 긴장했다.
이자벨라 역시 전투태세였다. 저만한 숫자가 달려들면 결코 쉽지않은 싸움이 되리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들의 앞으로 나아갔다.
“‘문’을 열어라. 그리하면 내가 다시 이 숲에 정령을 선물해주겠다.”
“인간이 헛소리를 한다.”
“미친 건가?”
몇몇 드라이어드가 활을 겨눴다.
말이 통하는 놈이 없으면, 이 도박은 실패다.
나는 재차 입을 열었다.
“이 나무의 정령은 이미 죽었다. 이 숲 또한 죽어가고 있다. 나는 정령의 주인 드루이드이니 너희의 숲에 새로운 정령을 선물해줄 수 있노라.”
숲은 정령에 의해 태어난다.
정령이 죽으면, 숲도 죽는다.
그리고 이 숲의 정령은 오래전에 죽었다.
새로운 정령이 태어나지 않으면 이 숲도 결국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말이 통하는 놈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나무만 지킬 줄 아는 단순무식한 드라이어드들이 과연 내 말을 알아먹을지가 최대의 관건이었다.
“쏴 죽이자.”
“꿰뚫어 죽이자.”
“일단 죽이고보자!”
······ 이 무식한 놈들.
어쩔 수 없나?
이러면 포탈을 열고 아르카나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지난 십여일의 노력이 증발하는 순간인가 싶었지만.
“잠깐. 이야기를 들어보겠다. 자칭 드루이드여.”
시선을 돌렸다.
【Lv.9】
수염이 자작한 하이 드라이어드.
이곳 ‘바스럭 숲’의 주인인 듯싶었다.
그냥 수많은 숲 중 하나인가 싶었는데, 하이 드라이어드가 있는 걸 보면 이 숲을 만들 때 생겨난 정령이 제법이었나보다.
‘그나마 다행이군.’
그나마 좀 말이 통할 것 같은 놈이다.
“그 말이 사실인가?”
“사실이다. ‘문’을 열어주면 내가 정령의 탑으로 가서 이 숲에 정령을 데려와주지.”
“우리도 정령의 탑으로 향하는 문은 못 연다.”
“그래도 정령의 시체는 보관하고 있을 텐데?”
“······.”
하이 드라이어드가 입을 꾹 닫았다.
마치 그걸 어떻게 아느냐는 눈초리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죽은 정령을 그냥 숲에 뿌릴 리가 없으니까.
만에 하나 다시 살아나거나, 새로운 정령을 잉태할 수도 있으니 보관하고 있을 터다.
“네가 드루이드인 걸 어떻게 믿지?”
“내가 이 나무를 어떻게 찾아서 베어낼 수 있었겠느냐?”
오직 드루이드만이 정령의 나무를 구분해낼 수 있다.
하이 드라이어드가 베인 나무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거짓이면 너희들은 이 숲의 양분이 될 것이다.”
“사실이면?”
“······ 그에 걸맞은 보상을 내어주지.”
<<‘서브 퀘스트 : 숲에 정령 되돌려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보상 : 업적 ‘드라이어드의 친구’, 숲의 보은>>
<<실패시 : 명예-30, 숲과의 전투>>
숲과의 전투라.
거창하기 짝이 없는 메시지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
정령의 시체라고 내민 건 투박한 돌이었다.
숲의 정령이자 바위의 정령이었던 모양인데.
‘아직 길이 남아있다.’
내게는 보였다.
돌에 새겨진 정령의 길이.
이 역시 드루이드의 능력이다.
드루이드는 정령과 소통하고 정령의 길을 열 수 있는 존재니까.
하지만 입구가 워낙에 좁고 작았다. 일시적으로 넓히기 위한 방법은 하나뿐.
“부숴야 들어갈 수 있겠군.”
“······.”
하이 드라이어드의 두 눈이 잘게 떨렸다.
이 돌은 정령의 시체다. 부수면 영영 사라지는 셈이다.
하이 드라이어드가 겨우 입을 열었다.
“거짓이면······.”
“죽여라.”
깔끔하기 짝이없는 내 대답에 반응한 건 허드슨이었다.
몸을 잘게 떨며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성각자님?!’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은 눈빛을 내게 던졌다.
어쨌든, 허락은 떨어졌다.
남은 건 이 돌을 박살내는 것뿐.
쿵!
주먹을 쥐고 그대로 내리쳤다.
쿵!
계속해서 내리치자, 일시적으로 문이 넓혀지는 게 보인다.
지이이이잉!
곧이어 돌의 위로 황금 빛의 포탈 하나가 생성되었다.
<<‘정령의 탑’으로 향하는 포탈이 생성되었습니다.>>
<<‘허락받은 자’만이 입장할 수 있습니다.>>
포탈의 입구.
저 너머에 입구를 지키는 황금빛의 정령이 보인다.
황금빛에 갑옷과 투구를 걸친 귀여운 녀석이다.
이윽고 정령은 나를 가리켰다.
나만 들어오라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허드슨과 이자벨라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자 황금빛의 정령이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드루이드의 친구인가?
고개를 끄덕이자 황금빛 정령이 다시 말했다.
-등을 맡기고, 생명을 맡길 수 있는 그런 동반자인가?
나는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같이 들어오는 걸 허락하지.
화아아!
포탈이 더 커졌다.
그 찰나와도 같은 순간.
《메인 퀘스트 3 : 탑을 오르십시오!》
《세계 곳곳에 세워진 정체불명의 탑들. 그중 하나를 오르면 메인 퀘스트가 완료됩니다.》
《Tip : 도시마다 존재하는 ‘기초의 탑’에 먼저 오르는 것을 추천합니다.》
《보상 : 내용에 따라 차등 지급》
메인 퀘스트 3이 시작되었다는 메시지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