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16화 (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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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의 신발

“진우 오빠······.”

김서연이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뒤에서 말리고 있지만, 그조차도 가식이다.

저 얼굴에 새겨진 ‘당황’이 남자가 나서서 생긴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바로 자신이 내뱉은 거짓말에 대한 당황이었다.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서로 좋게 헤어진 것도 아니고, 보통 이전 연인을 ‘스토커’ 취급하면서 뒷담을 놓나?

‘마지막 정까지 전부 떨어지게 만드는군.’

그나마 좋았던 추억까지 퇴화하는 기분이다. 돌이켜보니 참 병신같이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걸 믿고 나서는 놈도 정상은 아니었다.

끼리끼리. 천생연분이 따로 없다.

“저기요. 가만히 듣자 듣자 하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거예요?”

그때 김하나가 나섰다.

그녀는 두 눈에 쌍심지를 켠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남자, 정진우가 피식 비웃었다.

“넌 또 뭐야? 돈 받고 연인대행이라도 하는 거냐?”

“뭐라고요?”

“얼마 받았냐? 그래도 싸이즈 보니 한 50? 월급 230 받으면서 좀 무리했나 보다? 내가 두 배로 줄 테니까 낄 곳 안 낄 곳 구분 좀 하지?”

230이라는 구체적인 숫자까지.

아무래도 김서연은 나에 대한 모든 걸 오픈한 모양이다. 좋았던 것 말고, 주로 안 좋았던 것들을 위주로.

5년간의 추억이 시궁창에 처박히는 순간이었다.

“··· 이 가게도 제가 직접 예약한 거고, 도움받은 게 있어서 제가 대접하는 자리거든요?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네 배? 200이면 되지?”

정진우가 품에서 지갑을 꺼내 5만 원짜리 다발을 내밀었다.

그러자 김하나는 썩은 오물을 보듯 더없이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 이딴 새끼가 다있어?”

“이딴 새끼?”

“그래, 이딴 새끼. 돈만 많으면 다야? 사람이 덜됐는데. 대체 나이를 어디로 처먹었으면 사람이 이렇게 형편없게 자랐니?”

“······ 이게 미쳤나.”

정진우가 표정을 굳히며 손을 들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시늉만 하겠지만, 정진우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팔을 휘둘렀다.

김하나가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은 찰나.

탁!

정진우의 팔목을 낚아채자 놈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하, 꼴에 지도 남자라고 나서는 것 봐라.”

“나가서 이야기하지.”

“나가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 무릎 꿇고 사과부터······ 흡?!”

꽈아아악!

말을 이어가던 정진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뼈가 부러질 것만 같은 통증이 불현 듯 손목을 타고 흘러온 탓이다.

‘뭐, 뭐야? 이 새끼 힘이 왜 이렇게 쎄?’

일반인의 악력이 아니다.

지구상에 이만한 악력을 지닌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정진우가 알기로 박현명은 운동과는 담을 쌓은 놈이었다.

일, 집, 데이트가 아니면 방구석에 박혀서 게임만 하는 한심한 인생. 그런 놈이 전문적으로 악력을 훈련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혹시?

‘플레이어?’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을 사용해 동기화한 플레이어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플레이어로 동기화하면 판게니아의 게임 속 캐릭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앞의 박현명은 그냥 박현명이었다.

그럼 이만한 악력을 타고났다는 건데, 그건 더더욱 말이 안 된다.

“이제 나가서 이야기할 생각이 드나?”

“이 새끼가······.”

풀린 손목을 흔들며 정진우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나가서 이야기할 생각이 드느냐고?

아서라.

‘너는 사람 잘못 건드렸다.’

다른 건 다 참아도 이런 형편없는 놈에게 밀리는 건 못 참는다.

박현명과 자신은 격이, 결이 다른 인물이다. 이딴 놈을 상대로 조금이라도 굽히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보다 더 창피한 일은 없었다.

그 순간, 정진우의 전신에 황금빛의 물결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정진우는 플레이어였다.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을 사용해, 현실로 동화시키는 게 가능하다.

판게니아의 전사가 되면 일반인 천 명이 덤벼도 못 이길 초월성을 얻는다.

아무리 악력이 강한들 그래봤자 일반인. 동기화한 자신을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정진우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못했다고 싹싹 빌게 해주마.’

강제로 무릎을 꿇리고 사죄하게 만들 생각에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어차피 세상은 변했다.

앞으로의 세상은 플레이어들이 이끌어나갈 것이다.

이미 디맨션 워리어라 불리며 칭송까지 받는 상황.

고작 일반인 한 명 무력화 시킨다고 누가 자신을 책잡겠나.

“저, 저게 뭐야?”

“디맨션 워리어다!”

“변신? 진짜 변신한 거야?”

정진우의 변한 모습을 본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파란 머리칼. 다부진 근육질의 몸매. 창을 쥔 진짜 전사의 모습이다.

현재 한국에 알려진 디맨션 워리어는 백 명이 채 안 되는 상황. 정진우가 그중 한 명은 아니었지만, 그 희귀한 존재의 출현에 모두가 넋을 놓았다.

그야말로 영웅의 출현!

정진우의 어깨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꿇어, 이 새끼야.”

정진우는 여유로웠다. 황금률의 지속시간이 아깝기는 하지만, 다시없을 기회였다. 김서연의 눈에서 저 박현명을 완전히 치워버릴.

그러나 그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쿠릉!

‘······ 지진?’

그 순간 갑자기 지상이 흔들리기 시작하며 건물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상현상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괴, 괴물이다!”

“아아!!”

거대한 콩벌레들.

1m가량의 크기와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콩벌레가 지하에서 지상을 뚫고 올라왔다.

지구에 존재할 리 없는 괴물들.

하지만, 익숙한 외양이다.

‘치드웜! 침식인가?’

다시 침식이 시작된 것이다.

정진우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고작 레벨 2짜리 괴물이다.’

레벨 2의 콩벌레들이 아무리 많아봤자 결국 콩벌레일 뿐.

속도도 느린 데다 공격성도 낮다.

실제로 치드웜들은 지상에 올라오기만 했지, 막상 인간을 공격하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괴물은 그 자체만으로 두려움을 주는 법.

사람들은 혼비백산하며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너······, 운 좋은 줄 알아라.”

침식이 시작된 이상, 박현명은 문제가 아니다.

정진우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섰다.

이건, 영웅이 될 절호의 기회였으니까.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제가, 저 정진우가 지켜드리겠습니다!”

이전 자이언트 맨티스의 습격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이들이 얼마나 많던가.

정진우라고 진짜 영웅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촤악!

창을 그대로 치드웜에게 내리꽂았다.

치드 웜의 표피가 갈라지며 그대로 폭사했다. 점액질이 사방에 흩뿌려졌지만 정진우는 멈추지 않았다.

레스토랑 내부로 올라온 치드웜은 네 마리.

순식간에 네 마리를 처리한 정진우가, 창을 돌리고 자세를 잡으며 여유로운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찰칵! 찰칵!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핸드폰을 들어 정진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됐다.’

정진우는 내심 환호를 내질렀다.

됐다. 이제 영상이 업로드만 되면, 다음날 자신도 일약 스타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 모습을 상상하자 절로 흐뭇해진다.

쿠릉!

하지만 침식과 침략은 끝나지 않았다.

치드 웜들이 바깥에서도 스멀스멀 기어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엄청난 숫자의 치드웜들이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이 벌레새끼들이······.”

숫자가 많지만, 차라리 잘됐다.

자신의 영웅적인 면모를 온세상에 보여줄 기회였다.

그렇게 입구로 밀어닥치는 치드웜을 몇 마리나 더 잡았을까.

-······ 누가 내 아이들을 죽였지?

치드웜이 아닌 다른 게 들어왔다.

치드 맘바.

치드웜의 표피에 뚱뚱한 인간의 외형을 한 괴물!

독안개를 흩뿌리며 나타난 그 존재를 보고, 정진우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버렸다.

‘메인 레이드 보스가 왜?’

자이언트 맨티스도 필드 레이드 보스였다.

하지만 치드 맘바는 필드 레이드 보스와는 차원이 다르다.

히드라곤과 같이 최소 10명의 인원이 달려들어야 하는 메인 레이드 보스였다. 하지만 히드라곤보다도 급이 높았다.

“아······.”

정진우의 전신이 굳어버렸다.

치드웜의 점액이, 치드 맘바의 스킬로 인해 신경독으로 변하며 정진우의 몸에 마비를 가져온 것이다.

치드 맘바가 죽은 치드웜을 보며 눈을 흘겼다.

-내 가여운 아이들. 저 인간이 아무런 죄 없는 너희를 죽였구나.

“아아······.”

줄줄줄.

치드 맘바가 지척까지 다가오자, 정진우가 지린 오줌이 다리를 타고 바닥에 흘렀다.

죽는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치드 맘바의 손이 정진우의 뺨을 쓸어내렸다. 독 안개에 갇힌 정진우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두 눈알을 뒤집었다.

그리곤.

“다 죽여버리겠다! 이 괴물 새끼들!”

환각 증상이 일어났다.

정진우가 창을 휘두르며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도, 도망쳐!”

“가, 갑자기 왜 이러세요!”

혼비백산. 정진우의 눈에는 사람이 치드웜으로 보이고 있었다.

이윽고 정진우의 두 눈이 김하나에게로 향했다.

순간 김하나의 두 눈에 공포가 들이닥쳤다.

‘아······.’

정진우는 제정신이 아니다.

여태껏 수많은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을 봤지만, 지금의 정진우는 그중에서도 탑급이었다.

살육에 미친 눈빛.

발이 바닥에 붙은 듯 떨어지질 않았다.

“그흑, 그흐흐흐!”

광기다. 미치광이가 따로 없었다.

다다다닥!

이어 창을 들며 정진우가 미친 듯이 김하나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죽어!”

김하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쩌억!

툭!

날카로운 것에 두꺼운 무언가가 잘리는 소리와 함께, 상황은 종료되었다.

김하나는 질끈 감은 눈을 떴다.

그러자 정진우가 당황한 채 자신의 양팔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응? 뭐야. 내 팔 어디 갔어? 이게 왜, 왜 바닥에······?”

붙어 있어야 할 팔이 없다.

정확히 팔꿈치부터 종이가 잘리듯 말끔하게 잘려나갔다.

한참 뒤에야 정진우는 현실을 깨달았다.

“내, 내 팔. 아악! 내 팔!!”

바닥을 뒹굴며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누군가가 자신의 양쪽 팔을 잘랐다.

대체 누가?

정진우가 겨우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자신의 팔을 자른 남자가 있었다.

거대한 대검을 들고서, 일체의 감정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무저갱과도 같은 눈빛으로.

벌레를 보듯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인다.

그는 파괴자다.

자신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숫자의 살육을 저질러온 놈이 분명했다.

“사, 살려······ 살려주세요.”

목숨을 구걸하자, 남자가 고개를 돌려 지나갔다.

자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그저 길을 막고 있어서 베어내기라도 했다는 듯이······.

무시도 이런 무시가 없었다.

하지만 정진우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스아아아!

황금률이 끝났다.

변신이 풀리고, 정진우는 평범한 인간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잘려나간 두 팔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

현실을 자각한 정진우의 두 눈이 절망감으로 물들었다.

꿈이다.

이건··· 꿈이 분명하다.

자신있게 나섰다가 오줌을 지리고, 환각 상태에 빠져서 사람들을 공격했다. 거기다 두 팔까지 잘려나갔다.

이보다 더한 최악이 있을까.

내일이면 자신도 다른 이들처럼 영웅이 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희망은 순식간에 절망으로 바뀌었다.

찰칵!

이 상황에서조차 사진을 찍는 사람, 동영상을 남기는 사람, sns로 실시간 라이브를 진행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리고 저곳에 그의 모든 만행이 담겨있다.

··· 그래. 꿈이다. 이런 게 현실일 리 없지 않은가.

꿈에서 깨어나면 현실로 돌아와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감고 떠봐도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

‘플레이어.’

정진우가 조각난 황금률의 조각을 사용했다.

플레이어라는 증거다.

【Lv. 4】

그런데 레벨이 형편없었다.

플레이어라면 최소한 판게니아에서 1년 이상은 생활했다는 뜻이다.

헌데 레벨이 4밖에 안 된다니.

나처럼 엄청나게 많은 재능을 찍어서 필요한 경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라도 한 건가?

그러나 치드웜을 사냥하는 정진우의 몸짓을 보곤 그것도 아니라고 확신했다.

‘게임과 실제상황은 다르다. 겁 먹고 사냥을 등한시했군.’

레벨 4에 멈춰있는 이유는 죽음이 두려워서다.

모두가 나와 같이 철혈군주의 심장을 들고 시작하진 않을 테니. 오히려 정진우의 레벨이 더 현실성이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란돌프와 동화하며 현실에서도 제법 힘이 강해졌다. 반면에 정진우는 플레이어임에도 평범한 일반인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내가 이상한 건가? 아니면 정진우가 유독 약한 걸까?

의아한 게 많지만, 확실한 건 정진우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머저리라는 것이었다.

갑자기 대량으로 튀어나온 치드웜을 그저 좋다고 죽이고 있으니.

사냥뿐만이 아니라 메인 퀘스트도 제대로 안 밀어본 게 분명했다.

‘클래스 자체는 제법 고위의 창술사 카테고리로군. 클래스 얻기로 순위권에 들어 로그아웃 권한을 얻은 거다.’

클래스가 아깝다.

정진우가 로그아웃을 하고 조각난 황금률의 조각을 사용한 걸 보면, 아무래도 클래스 얻기의 메인 퀘스트로 순위권에 든게 분명했다.

‘··· 치드 웜이 대량으로 서식하는 곳에는 반드시 치드 맘바가 있지.’

어쨌든, 치드웜은 공격성이 없다.

허나, 함부로 죽여선 안 된다.

그랬다간 치드 맘바가 반드시 복수하기 때문이다.

나는 모두의 시선이 정진우와 치드 맘바에게 집중된 사이 조용히 자리에서 멀어져, 인적이 없는 곳에서 조각난 황금률의 조각을 사용했다.

이후 김하나를 공격하는 정진우의 양쪽 팔을 미켈라의 칼로 베어냈다.

-오오. 맛있어 보이는 인간이 있구나.

【Lv. 6】

메인 레이드 보스면서 히드라곤보다도 강한 괴물.

치드 맘바가 나를 보며 입술을 훑곤 입맛을 다셨다.

내 레벨은 이제 고작 3. 히드라곤을 소환한다고 해도 쉽지 않은 싸움이 될 터.

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았다.

《‘미켈라의 갑옷’을 착용했습니다.》

《‘미켈라의 투구’를 착용했습니다.》

《세트 옵션 ‘천룡인’이 발동합니다!》

《‘헤르메스의 신발’을 착용했습니다.》

《착용제한보다 능력치가 낮습니다.》

《‘요정여왕의 눈물’로 ‘헤르메스의 신발’의 착용제한을 대폭 낮춥니다.》

《‘신속’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나는 떠오르는 메시지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미리 비밀경매장을 털어오길 잘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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