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15화 (15/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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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놈들

‘이대로면 의회에 카지노를 넘겨야할 판국이다.’

허드슨.

대상인의 재주를 지닌 그는 거친 포부를 안고 이곳 아르카나에 터를 잡았다.

하지만 주변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그는 지금 극심한 재정 위기를 겪고 있었다.

‘대원정을 빌미로 세금을 올려? 뒷돈은 그대로 받아 처먹으면서!’

빌어먹을 아르카나. 빌어먹을 시의회!

의회는 유흥에 관련된 세금을 올리고, 그간 신고하지 않은 금액에 대해 추징금을 부여했다.

하지만 허드슨은 도저히 납득 할 수가 없었다.

세금을 신고하지 않은 건 전부 의회의 로비를 위해서였다. 하여, 의회는 알면서도 모른 척 해온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탈세’ 명목으로 털어버리는 건 너무 양심이 없지 않나. 아무리 아르카나가 돈이면 다 되는 곳이라지만 의회는 선을 넘었다.

모로 보나 허드슨은 주기적으로 시행되는 의회의 사냥감이 된 것이다. 사냥을 끝낸 뒤 사냥개를 잡아먹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유일한 타개책은 단 하나.

‘더러워서 내가 의원 되고 만다!’

바로 시의회의 의원이 되는 것.

허드슨의 레벨 10에 다다르고자 하는 욕망은 상상 이상이었다.

“······ 진실만을 말하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 제가 진실하지 않다는 말입니까?”

그런 허드슨의 소원을 신이 마침내 들어준 걸까.

기가막힌 타이밍에 찾아온 기적.

하지만 성각자의 제의를 듣고 허드슨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별은 거짓으로 점철된 자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네가 진정으로 자격을 얻으려거든 모든 거짓을 털어버릴 필요가 있다.”

“저는 진실합니다.”

“거짓이다.”

“대체 뭐가 거짓이라는 겁니까? 제 이름이 허드슨인 것도 그럼 거짓입니까?”

“거짓이다.”

“······.”

떡하니 박혀있는 카지노의 이름조차도 허드슨일진대, 성각자는 그조차 거짓이라고 말한다.

물론 반박할 순 없었다.

실제로 허드슨의 진짜 이름은 허드슨이 아닌 탓이다.

‘내가 플레이어인 걸 알고있나? 설마 성각자인 척 하는 사냥꾼 아니야?’

플레이어를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NPC들이 있다.

그들은 플레이어를 ‘죄인’이라 칭하며 발각되는 즉시 처형시킨다. 그들에게 죽은 플레이어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접근하는 방식도, 알아내려는 시도도 가지가지라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방금 전까지 그 어떤 제안이라도 해내겠다고 말했지만 아직은 약간 찝찝한 게 사실이다.

만에 하나 눈앞의 남자가 성각자인 척하는 사냥꾼이라면······.

“세렝게티.”

“······ 잠깐.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그 이름이 튀어나온 순간, 허드슨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리고 재빠르게 주변을 살피곤 숨겨진 버튼들을 차례대로 눌렀다.

실시간으로 감청되고 감시되는 모든 것들의 전원을 꺼버린 것이다.

누군가가 절대로 보고 들어선 안 된다는 듯이.

이어 여전히 새하얘진 얼굴로 물었다.

“그, 그 이름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발란 왕국 와이저 후작가의 무남독녀, 순백의 기사 세렝게티. 그녀와 비밀약혼식을 올렸더군.”

“······?!”

심지어 아무도 모르는 비밀조차 알고 있다.

그녀와의 약혼식은 오직 둘밖에 모르는 비밀이었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다. 그녀 역시 누군가에게 흘렸을 리 없었다.

세상 그 누구도 모를 비밀을, 성각자는 대체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이 정도만으로도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놀라운데, 성각자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카지노는 표면상의 이유일 뿐이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당당하게 시의원의 자리에 올라 후작가에 청혼하는 것 아닌가?”

“······.”

“마침 잘 되었지. 세렝게티는 대원정으로 양쪽 다리를 잃고 폐인이 되었으니. 황금도시 아르카나의 시의원이면 후작가도 거절은 못 할 터. 오히려 두팔 벌려 환영하지 않을까?”

“······.”

“그런데··· 이를 어쩐다. 레벨 10도, 시의원도 아닌 허드슨은 후작가에 아무런 가치가 없을 텐데.”

허드슨의 눈빛이 복잡하게 얽혔다.

그리고 내가 이 모든 걸 알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내가 최후의 게이머이며 동시에 게임 속 최강의 캐릭터 빌헬름이었으니.

당연히 마계를 공격한 대원정에 대해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빌헬름. 지고하며 가장 명예로운 기사왕이시여. 원정에 성공하면 부디 허드슨, 그이를 지켜주세요. 그리고 이것과 제 말을 전해주세요. 먼저 가서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랑했노라고.

세렝게티.

대원정에 참가한 그녀는 중요한 인재였다. 순백의 기사라 불리며 무려 오백의 기사를 이끌고 참전했으니까.

그리고 내가 마왕군의 함정에 빠졌을 때, 나를 대신해 뛰어든 용기있는 자였다. 당시만해도 나는 그게 특수한 이벤트 같은 건줄 알고 있었지만······.

하여 필사적으로 그녀를 살려냈지만 이미 두 다리가 잘렸다. 강력한 저주로 인해 손을 쓰기 힘든 상태였다.

또한, 기절하기 직전 세렝게티는 내게 목걸이를 맡겼다. 거기서 허드슨과 함께 약혼식을 올린 사진을 발견한 것이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 불가능한 일이었지.’

그런데 내가 알기로 세렝게티는 미래를 약속한 남자가 없다.

그런 설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허드슨은 아르카나 대도시의 일개 카지노 주인일 뿐인데 어찌 먼 이국 후작가의 무남독녀와 미래를 약속할 수 있겠는가.

아무런 접점도, 사는 지역마저도 크게 다른 그 둘이.

그게 가능하다면 그건 허드슨이 플레이어일 때 뿐이었다.

‘플레이어와 NPC의 사랑이라.’

허드슨에게 이곳은 게임이 아니다.

현실이다. 이토록 극진하게 열망하는 일이 어찌 그저 게임일 수 있겠나.

넋을 놓은 허드슨이, 반쯤 포기한 태도로 물었다.

“무슨 진실을··· 원하시는 겁니까?”

“모든 것.”

“모든 것이라면······?”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허드슨이라면 내가 알아야 할 이야기들을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예컨대 이 세상에 대해, 플레이어에 대해, 8용사에 대해.

하지만 그것만 콕찝어 묻는다면 의심만 커질 터.

어디까지나 나는 ‘너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취지의 태도여야만 했다. 그 신비감이 허드슨으로 하여금 나를 성각자로 착각하게 만들 테니까.

“처음부터 시작하지. 어디서 태어나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러니, 들어보자.

허드슨의 이야기를.

그의 진짜 인생사(人生史)를.

*

슥슥슥.

나이프 움직이는 소리가 요란하다.

분명히 주변의 대화소리가 많은 편인데 유독 칼질 소리만 귀에 박혔다.

‘······ 삐졌나?’

허드슨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약속시간에 늦어버렸다.

진짜로 그렇게 상세하게 말할 줄 누가 알았겠나.

그렇다고 중간에 멈추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덕분에 8용사를 자처하며 빌헬름을 지우고 영웅 놀이를 하는 놈들의 이름도 알게 되긴 했지만······.

아마 그놈들이 가장 나를 많이 방해한 역적일 것이다. 결코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갈 수 없는 적대적 관계.

“고기는 입에 맞으세요?”

“예. 그런데 여기 비싼 곳 아닙니까?”

긴 침묵을 지나 마침내 대화가 시작됐다.

그런데 장소가 문제다.

청담동 스테이크 하우스.

인당 16만 원짜리 스테이크를 대접하겠다고 약속을 잡았는데, 하필 내가 늦어버린 것이다.

순간 이거 내가 계산을 해야하나······ 하는 생각도 잠시.

“스토커 퇴치해주셨잖아요. 사실 이것도 부족하죠.”

김하나가 미소를 지었다.

스토커. 확실히 제정신은 아닌 놈이었다.

“당연히 해야할 일이었습니다.”

“아니에요. 진짜 용기있는 사람 아니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에요.”

누군가가 위협을 받을 때 나서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위협이 자신에게로 향할 수도 있는 탓이다.

솔직히 나도 조금 놀랐다.

만약 내가 란돌프와 동화되지 않았다면 나설 수 있었을까?

아마 못했을 것이다. 나서고 싶어도 몸이 따르지 않았겠지.

이어 몸을 앞으로 쭉 뺀 김하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뒷자리 여자 그때 같이 있던 분 아니에요? 계속 여기 힐끔힐끔 쳐다보는데.”

······ 김하나도 눈치챈 모양이다.

우리 뒷 테이블에 앉은 여자가 김서연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군.’

김서연은 잠깐 프로필을 내렸던 남자친구와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돈 많은 사업가. 환승이별한 당사자.

확실히 김서연의 현재 남자친구는 척 보기에도 부티가 나는 사람이었다. 명품으로 온몸을 둘둘 감고 시계도 롤렉스를 차고 있었다.

나와는 다르게.

애써 모른 척 하고 있었는데, 알게 모르게 김서연도 이쪽을 신경쓰고 있었나보다.

“신경 안 써도 됩니다. 정말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서요.”

“음, 알겠어요.”

김하나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긴 했지만 더 깊숙이 들어오진 않았다. 남의 남녀 사에 끼어들면 골치만 아프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였다.

“박현명?”

······ 놈이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지만 않았다면, 나도 신경을 아예 접었을 것이다.

“너 설마 우리 서연이 따라서 여기까지 온 거냐?”

“······?”

이건 또 무슨 참신한 헛소리인가.

“그만 좀 질척대라, 새끼야. 내가 다 부끄럽다.”

“오, 오빠. 그만하자.”

“서연아. 네가 너무 착해서 문제야. 이런 건 확실하게 말해줘야 알아먹는다니까? 말을 안하니까 혼자 착각하고 질척대는 거잖아. 스토커처럼. 별것도 아닌 놈이.”

지금 저 년놈들이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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