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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지?
“······ 란돌프가 정말 팬텀인가?”
세 명의 남녀가 강남역 카페에 모였다.
똑같이 생긴 우락부락한 남자 두 명과 미모의 여인.
그들은 구석 테이블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사방이 시끄러운 와중에도 대화를 이어나갔다.
“확실해. 메인 퀘스트 1은 몰라도 클래스 부분에서 그라시아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 건 게임의 해박한 지식 없이는 불가능하니까.”
여인이 말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최상위 등급의 클래스는 실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다. 압도적인 행운과 그 행운마저 뛰어넘는 지식이 뒷받침해야하는 법.
팬텀이 아니면 저 점수는 납득할 수가 없었다.
“5년차 고스트 플레이어 팬텀이 드디어 등장했다. 난리가 나겠군.”
“우리가 먼저 접선할 수 있을까?”
똑 닮은 두 남자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에 여인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어떻게? 몇 년을 찾았는데 결국 못 찾았잖아?”
“그건 그간 팬텀이 진짜 플레이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진짜 플레이어가 됐으니 방법이 있겠지.”
“그럼 ‘피싱’이라도 해볼까? 비밀경매장 열렸을 거 아냐?”
“피싱이라······.”
“메인 3도 1등 먹으려면 아이템이 많이 빵빵해야할 텐데, 당연히 경매장을 이용하지 않겠어?”
피싱. 플레이어들이 사용하는 은어다.
비밀 경매장에 질 좋은 아이템을 싸게 올려놓고, 탈리스만의 ‘쌍둥이’ 능력을 부착시켜 위치를 찾아내는 것이다.
‘쌍둥이 탈리스만’은 서로가 떨어져있어도 위치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옵션.
이를 모르는 초보자들은 싸다는 이유만으로 덜컥 경매장에서 아이템을 구매한 뒤 추적당해 죽거나 강도를 당했다.
게임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하지만 그건 ‘학살’ 같은 저열한 놈들이나 쓰는 수법 아닌가?”
“팬텀이라면 탈리스만의 옵션도 줄줄 꿰고 있을 거다. 눈치 못챌 리가 없어.”
쌍둥이 남자 두 명이 모두 반대의사를 표했다.
피싱은 초보자 사냥을 하는 학살 같은 놈들이나 쓰는 저열한 수법이다.
설혹 쓴다고 해도, 그걸 팬텀이 모를 리 없다.
피싱에 당하는 건 탈리스만의 이름을 모르는 판게니아 1년차 이하 초보자들뿐이니까.
하지만 여인은 쯧쯧 혀를 찼다.
“아직도 팬텀을 몰라? 진짜로 마왕 목따러 간 사람이잖아. 실패하긴 했지만 대원정 일으킬 때 실행력 못 봤냐고?”
많은 이가 그 캐릭터, 빌헬름을 팬텀으로 확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빌헬름은 정말 미친놈이었다.
수많은 방해와 세력들의 와해에도 불구하고 대원정을 일으켰으니까.
유일템을 8개나 지니고도 실패하긴 했지만 빌헬름의 업적은 판게니아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수준이었다.
그야말로 신화 그 자체.
“비밀경매장에 피싱용 아이템이 있으면 좋다구나 하고 살걸? 덤빌테면 덤벼봐라, 들어오면 다 죽인다. 그게 내가 아는 팬텀이니까.”
여인이 눈을 빛냈다.
‘팬텀 빠순이.’
같은 생각을 하며 두 남자는 동시에 머리를 긁어댔다.
“접선한 뒤엔 어떡하지?”
“당연히 우리 길드로 초청해야지.”
“뭣도 없는 우리 길드에 팬텀이 들어올까?”
“노력해야지. 물론 팬텀은 현실에서도 엄청난 사람이 분명하겠지만······ 다른 미친놈들보단 우리가 나아.”
판게니아 플레이어 대부분은 미쳐있다.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채 밥먹듯이 살인을 저지르는 놈들 투성이다.
이전 ‘붕괴’ 현상으로 괴물들이 나타나며 그들중 몇몇은 이미지 세탁에 성공했다. 허나 근본은 어디 가지 않기 마련.
“그나저나 어떤 사람일까? 대기업 C.E.O? 아, 역시 재벌가 아들이려나?”
여인이 눈을 빛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 모습을 보며 두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
<<‘서브 퀘스트 - 성역 탐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탐사율 100%!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수치입니다!>>
<<최초로 사막의 성역을 퍼펙트 클리어했습니다.>>
<<‘텔레포트 북’을 획득했습니다.>>
<<업적 ‘성역 정복자(최초)’를 획득합니다.>>
<<경험이 축적되어 레벨업했습니다!>>
드라무트와 함께 성역을 돌며 탐사율 100%를 달성한 순간.
서브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보상이 나열됐다.
“허!”
보상을 보곤 감탄을 흘렸다.
텔레포트 북과 최초 달성 업적이라니.
파란색의 두꺼운 책을 들자, 관련된 설명이 떠올랐다.
『텔레포트 북(서사)
탐사를 끝마친 장소로 이동시켜주는 마법의 책.
시전시간 30초, 하루에 한 번 쓸 수 있다.
현재 등록된 웨이포인트 - 사막의 성역』
던전, 혹은 장소의 탐사율이 100%에 이르면 그곳으로 다시 이동할 수 있게끔 해주는 책이다.
지역을 이동할 때 순간이동 시켜주는 워프가 있기는 하지만 제한적이고, 원하는 장소로 정확히 이동할 수 없으며, 비싸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걸 말끔하게 해결해주는 서사급의 아이템이다.
‘100만 골드는 받겠군.’
100만 골드. 판게니아에서 대저택을 구매할 수 있는 가격이다.
‘비밀경매장에 올리면 수요가 제법 있을지도.’
메인 퀘스트 2의 순위권에 오르며 활성화 된 비밀경매장.
모든 플레이어가 익명으로 거래를 할 수 있는 곳이다.
팔 생각은 없지만 문득 이걸 올리면 얼마나 수요가 있을지 궁금해졌다.
텔레포트 북 역시 20개 이하로 풀린 ‘초희귀’ 아이템이었으니.
‘거기다가 업적이라······.’
‘업적’을 얻는 건 온갖 시련과 역경을 건너야만 가능한 일이다. 판게니아에서 업적이라 칭송될 정도의 일을 해내야만 획득할 수 있었다.
업적으로 인정되면 명예가 엄청나게 오른다. 명예가 오르면 작위를 얻거나, 특정 명예를 지닌 이에게만 반응하는 네임드 NPC와 우호를 다질 수 있다.
무엇보다.
‘레벨 3.’
드디어 레벨 3이다.
메인 퀘스트를 하나 해결할 때마다 레벨이 오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빠른 편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느려서 탈이었다.
‘재능에 따라 필요경험치가 늘어나는 시스템이지. 아마 지금 내 필요경험치는 평균의 못해도 열 배는 될 거다.’
보통 메인 퀘스트 2를 해결하는 시점에서 최소 4, 높으면 5가 되어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도 이제 3이라는 건 필요경험치가 말도 안 되게 높다는 뜻.
너무 많은 재능을 지닌 탓이다.
‘그 대신 맥스치가 뚫렸다. 레벨당 10의 수치가 12로 고정됐어. 히든 특성 덕분인 것 같은데······.’
물론, 장점도 있었다.
경험치가 늘어난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상상이상의 장점이.
‘상태창.’
상태창을 되뇌자 눈앞에 양피지가 나타났다.
<상태창>
이름 : 란돌프
직업(Class) : 별의 계승자
<능력치>
레벨 : 3
힘 : 36(+5) 체력 : 36(+5) 민첩 : 36(+5)
지능 : 36(+5) 성력 : 36(+5)
······ 레벨업 할때마다 정확히 모든 능력치가 12씩 상승 중이다.
누군가가 봤다면 버그 쓰지 말라고 버럭 소리부터 내질렀을 광경.
평범한 플레이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수치였다.
‘모든 재능이 찍혀서 레벨업할 때마다 능력치가 맥스치로 오르고 있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것도 10이 최대일 터.’
능력치는 지닌바 재능과 경험에 따라 레벨업 할 때마다 무작위로 오른다.
레벨업 할 때마다 개별 능력치가 오르는 건 10이 최대치이며, 극의를 봐야만 10의 레벨에서 100의 개별 능력치를 지닐 수 있었다.
그걸 넘으려면 초월해야 하는 거고.
그런데 나는 12씩 오른다. 그것도 모든 능력치가.
‘레벨 10을 찍으면 2성급 능력치를 지니게 된다는 말이지.’
별을 두 번 먹어서 초월해야 얻을 수 있는 능력치를 레벨 10에 지닐 수 있다. 개사기도 이런 개사기가 없었다.
하물며 클래스 특성인 ‘별 보유 효과’로 모든 능력치가 5나 올라갔다.
5년간 판게니아를 플레이하면서 이건 나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한 번이면 우연이지만 두 번이면 필연.
‘처음보는 히든 특성 중에 이와 관련된 게 있다.’
곰곰이 턱을 쓸었다.
13개의 히든 특성. 이중 나도 처음 보는 건 세 개.
【대식가】, 【대현자】 그리고 【천상(天上)】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중 하나가 아마도 지금 이 현상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이 특성들은 몸으로 부딪히며 차차 알아갈 수밖에.
어쨌든 이번 성역 탐사로 얻을 건 전부 얻었다.
‘그림자 망토, 요정여왕의 눈물, 텔레포트 북.’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셋중 하나도 버릴 게 없다.
모두 드랍율 극악을 자랑하는 레이드 보스 아이템.
특히 ‘요정여왕의 눈물’은 필수 탈리스만이다. 장비에 특수한 옵션을 부여해주는 극히 희귀한 아이템 말이다.
“괴물이다!”
“성역에 거대 해수가 나타났다!”
성역 탐사에 시간을 지체했기 때문일까.
전사들이 하나, 둘 성역으로 들어와 드라무트를 발견했다.
“대전사와 여왕이 들이닥치기 전에 벗어나야합니다.”
이자벨라가 표정을 굳혔다.
전사들의 숫자가 시시각각 늘어나는 중이다. 성역이 봉쇄되기 전에 벗어나야한다.
“드라무트, 날뛰어라.”
스아아아아!
내 명령에 드라무트가 움직였다.
내키지 않아도 주인의 명령. 거부권은 없다.
드라무트가 날뛰기 시작하자 천천히 그림자 망토를 들었다.
“같이 쓰지.”
“예?”
“추적대가 편성되기 전에 사막을 떠나야한다. 그러려면 들키지 않고 이곳을 빠져나가야해.”
“아.”
성역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조용히 빠져나가려거든 이 수밖에 없다.
나나 이자벨라를 직접 병사들이 목격한다면 일이 더 커질 테니.
이자벨라가 망토 안으로 몸을 들였다.
“더 가까이 붙어라.”
“······ 예.”
이자벨라의 눈이 살짝 떨렸다.
이후 바짝 붙어 함께 망토를 쓴 채, 조용히 성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
사막지대를 벗어나는 워프.
워프가 활성화 될 때까지 반나절가량이 걸린다.
“걱정마라. 저주는 풀렸으니.”
저주로 인해 이자벨라는 워프를 이용할 수 없다.
사막지대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별의 축복을 받은 지금이라면, 워프를 이용할 수 있다.
“믿고··· 있습니다.”
이자벨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막의 끝, 반대편은 흑색의 낭떨어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만이 가득했다.
너머를 바라보는 이자벨라의 두 눈엔 간절함과 절실함이 뒤섞여있었다.
오직 워프를 통해서만 다음 지역으로 향할 수 있었으므로.
이 부분은 게임과 똑같았다. 지역이 서로 연결되어있지 않은 점이.
어차피 이자벨라도 돌아가기엔 이미 늦었다. 지금쯤 여왕도 눈치채고 수색대와 추적대를 보냈을 것이므로.
“워프가 활성화 될 때까지 나는 별과 소통해야한다.”
“지켜드리겠습니다.”
내 말의 뜻을 알아들은 이자벨라가 경계의 기색을 보였다.
별과의 소통.
로그아웃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안전지대가 아니다. 로그아웃하면 온갖 짐승이나 괴물, 혹은 추적대가 따라붙을 수도 있었다.
내 안전을 오롯이 이자벨라에게 맡긴 셈이다.
요정여왕의 눈물 말고 수호의 부적을 골랐으면 안전지대를 설정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그 이상으로 요정여왕의 눈물은 훌륭한 탈리스만이니까.
‘일단 희망찬 시작이로군.’
내 앞엔 황금색 카페트를 넘어 로열 로드가 펼쳐져 있었다.
현실과의 연계를 생각해보면 판게니아에서의 성장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앞으로 미래에 더 많은 판게니아의 괴물들이 지구를 침공해온다면.
‘······ 마왕. 놈이 강림할 수도 있다는 거다.’
빌헬름으로도 이기지 못한 괴물이 현실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 전율 어린 멸망이.
자리에 앉아 숨을 크게 들이쉬곤 눈을 감았다.
‘로그아웃.’
<<로그아웃 중입니다.>>
<<캐릭터를 안전한 곳에 대기시키십시오.>>
<>
<<로그아웃이 완료되었습니다.>>
*
쏴아아아!
샤워기의 물을 맞으며 면도를 한다.
샤워를 끝낸 뒤 수건으로 몸을 닦곤 머리를 말렸다.
“후, 시원하다.”
이게 얼마만의 샤워와 면도인지.
오랜만의 샤워가 상쾌하기 그지없다. 진즉에 좀 씻고 살걸 그랬다 싶을만큼.
‘··· 진짜 폐인처럼 살았네.’
화장실을 나와 방의 꼴을 보곤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한 달이 넘도록 외부와의 접촉없이 살았다. 제대로 청소도 안 하고 그냥 막 살아왔다.
자이언트 맨티스가 공격해왔을 때 변신해서 나간 걸 외출이라 부르긴 힘들 테니.
폐인. 하지만 언제까지 상심하며 집구석에 박혀있을 순 없는 노릇.
회사도 때려치웠다지만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치우자.”
마음 먹고 방을 치우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띠리링~
문자가 도착했다는 알림음과 함께 핸드폰이 한차례 떨렸다.
책상에 올려둔 핸드폰을 집고 문자내용을 확인한 후,
나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오빠. 잘 지내지?
··· 내게 비전이 없다며 이별을 통보한, 전 여자친구로부터 온 문자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