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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얻다
옛 왕, 드라무트.
별을 지키는 산지기이며 거구의 몸체를 지닌 거신(巨神)이다. 별의 영기로 인해 몸이 커지고 지혜가 생긴 영물이라는 게 드라무트의 유래였다.
이름. 진명(眞名) 역시 별에게서 계승한 것.
당연히 별을 제외한 그 누구도 몰라야만 정상이다.
오직 별을 소유하고 별의 주인이 된 자만이 놈의 진명을 알 수 있었다.
빌헬름. 최강의 캐릭터였던 바로 나만이.
「내, 내 진명을 어디서 들은 거냐? 빌헬름이 말해준 거냐?」
머리를 한 차례 털고 자리에서 일어난 드라무트가 당황하며 물었다.
“멍청한 놈. 계약 내용조차 잊었나?”
하지만 진명의 언급은 계약으로 묶여있다.
타인에게 발설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물론 지금의 나는 그 계약으로 묶여있지 않으니 마음껏 발산한 것이다.
‘참. 진짜다.’
드라무트의 비늘이 짜르르 울렸다.
산지기는 진실과 거짓 역시 구분할 줄 알았다.
만약 거짓이라면 마음껏 계약을 파기하고 활보하며 저 인간을 잡아먹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진실이었다.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심지어 주인이 돌아왔다는 말조차도.
‘처음 보는 인간이 내 진명에 계약 내용까지 알고 있다. 빌헬름의 이름을 언급까지 했다.’
계약의 불문율. 타인에게 관련된 내용을 조금이라도 언급하는 순간 대상자는 죽고 계약은 파기된다.
하물며 빌헬름은 5성의 초월자다. 말 한마디, 몸짓 하나하나에 격이 서린 주역의 존재가 계약을 파기해가며 누군가에게 비밀을 언급할 이유가 없다.
그런 식으로 파기됐다면, 드라무트가 모를 리도 없고.
‘하지만 빌헬름은 죽었다. 별이 떨어졌으니.’
허나 계약의 대상자가 죽어도 계약은 파기되기 마련이었다.
빌헬름은 죽었다. 다섯 개의 모든 별이 떨어졌다. 완전무결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뜻이고 그에게 얽혀있던 모든 주박 역시 해제되었다는 뜻이다.
당연히 지금 드라무트와 저 인간 사이의 계약은 성립되지 않았다. 진명을 안다고 한들 조금 놀란 것뿐.
“길을 안내해라. 별이 나를 증명할 거다.”
한입에 꿀꺽 삼켜버려도 티도 나지 않을 만큼 연약한 인간 주제에 뭐 저리 당당하단 말인가.
그리고 뭐? 별이 증명을 해?
「네깟 놈이 별을? 별 근처에만 가도 타버릴 것이다.」
드라무트가 비웃었다.
부족하다. 저 인간은 별을 먹을 기준에 한참 미달했다.
드라무트는 별을 지키는 존재. 본능적으로 별에 적합한 레벨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저 인간은 기준에 부합하긴커녕 기초조차 되어있지 않았다.
어찌하여 자신의 신역(神域)에 영향을 안 받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필시 특수한 장비나 도구 따위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 아니겠나.
「혹시 옆에 있는 암컷인간이 도전한다는 걸 착각한 것 아니냐?」
차라리 저 옆의 암컷인간이 그나마 낫다. 물론 그래도 부족하다. 별을 먹을 자는 자신과 대등하거나 자신을 넘어서는 강자여야만 했으므로.
별의 근처에 다가가기도 전에 타버릴 것이다.
별은 기준에 부합하는 자에겐 한없이 너그러우나, 부합하지 않는 자에겐 한 치의 자비조차 없었다.
“내가 도전한다.”
도전? 도저어어언?
「크하하하!」
드라무트가 몸을 베베 꼬면서 웃어댔다.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뒹굴거리며 웃은 드라무트가 겨우 정신을 찾았다.
이렇게 웃은 게 몇백년 만인지.
‘내가 처리하는 것보단 별에 타버리는 게 훨씬 낫겠지.’
차라리 잘됐다. 자신의 진명과 빌헬름마저 알고 있는 요상한 놈. 찝찝하기 그지 없는데 별이 알아서 처리해줄 것이다.
아무리 특별하고 특수한 장비나 도구의 도움을 받고 있다한들 별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별은 오직 대상자가 지닌 능력만을 보니까.
「좋다. 따라와라, 애송이.」
스으윽.
드라무트가 흔쾌히 별로 향하는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
별.
종의 규격을 넘어서며 인지의 초월을 이룰 때 필요한 ‘경계의 초석’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체였다.
죽은 쌍둥이 여신 레아의 조각난 몸을 우리는 ‘별’이라고 불렀다.
판게니아 대륙에는 총 32개의 별이 있었다.
그 부위를 보면 이와 같다.
손가락 열 개, 손등부터 어깨 부위 총 두 개, 몸통 한 개, 머리 한 개, 눈알 두 개, 코 한 개, 입을 포함한 하관 한 개, 귀 두 개, 목 한 개, 하반신 한 개, 발가락 열 개.
여신 레아의 신체부위 서른 두 종.
그 별을 갖고, 시험에 통과하면 비로소 초월할 수 있다.
당연히 부위마다 미묘하게 주어지는 초월성이 다르다.
그리고 이곳, ‘이름 없는 별이 묻힌 산’에 있는 여신 레아의 신체부위는······.
“저, 저게······ 별이라고?”
이자벨라가 기겁했다. 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제단 위에 놓인 ‘별’을 보며 경악하는 중이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별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으나 실물을 보는 건 그녀 역시 처음이었다.
아니, 성각자니 별이니 하는 이야기를 할 때 그게 시체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다.
“저··· 해골이······?”
하관이 잘려있는 해골.
“인사해라. 여신 레아의 얼굴이다.”
“아.”
휘청.
이자벨라의 무릎에서 힘이 빠졌다. 너무 놀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별 앞에선 원래 별별 괴현상이 일어나는 법이었다.
“이 이상은 다가오지 마라. 위험하니.”
드라무트도 저 멀리서 구경만 하고 있다. 내가 어떻게 죽을지 기대라도 하는 모양이다.
이자벨라를 만류한 채 나는 걸어나갔다.
여기서부턴 반반이었다.
성역의 숨겨진 이 천공섬은 모든 영역에서 스킬과 클래스를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산과 별조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에는 이미 클래스를 갖고 있어서 그저 별을 얻고 초월하는 정도로 끝냈으나.
《······.》
글자가 떠오른다.
말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하지만 노이즈가 많았다. 제대로 된 의사소통의 과정은 아니다.
그러나 내게 이런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게 누군지는 알 것 같았다.
죽은 쌍둥이 여신 레아다. 별이 되어 대륙에 흩뿌려진 그녀 말이다.
《허무.》
한 발자국을 더 디디자 더욱 뚜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옮길 때마다, 말소리는 계속해서 추가됐다.
《손재주, 올 마스터, 웨폰 마스터, 거인의 항마력, 드루이드의 자연친화력, 철혈군주의 심장, 비스트 로드, 천상, 황금의 은총, 돌연변이, 대식가, 대현자.》
내가 지닌 열 세 개의 히든 특성들.
그것들을 여신이 읽었다.
그리고.
《‘멸망’과 맞선 자여.》
나는 천천히 여신의 해골을, 별을 양손으로 들어올렸다.
화아아악!
순간 별에게서 찬란한 빛의 무리가 내 몸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별의 계승자’ 클래스를 획득했습니다.>
<‘마력’이 ‘성력(星力)’으로 전환됩니다.>
<주스킬 ‘별 할퀴기(1Lv)’와 보조스킬 ‘별의 축복(1Lv)’이 추가됩니다.>
<별 보유 효과(모든 능력치+5)가 추가됩니다.>
<계승자는 보유한 별의 종류와 숫자에 따라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초월시에도 별의 보유효과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
끊임없이 떠오르는 글귀들.
한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만큼 그 양이 방대했다.
<‘메인 퀘스트 2 : 클래스 얻기’가 완료되었습니다.>
<내용을 정산합니다.>
<유일무이! 모두가 전율할만한 결과입니다.>
<총점 230점. 메인 퀘스트 - ‘명예의 전당’에 업데이트 됐습니다.>
<초보자의 행운! ‘행운의 성좌’가 더 환하게 미소를 짓습니다. 보상 내용이 한층 업그레이드 됩니다.>
<‘모험의 성좌’가 당신의 무모함에 박수를 칩니다. 보상 내용이 한층 업그레이드 됩니다.>
<백성전의 몇몇 성좌들이 당신의 발걸음을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성전의 성좌들?
벌써부터 그들이 나를 주목한다는 말에 기가찼다.
콧대 높은 양반들이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초보자를 주목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빌헬름으로 플레이 할 때조차도 별을 세 개 먹은 시점에서 관심이나 겨우 주기 시작했건만.
‘별의 계승자 덕분인가?’
저건 나도 처음 보는 클래스다.
물론 백성전의 성좌들이 많이 주목해서 나쁠 건 없다.
그들이 보상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주기 때문이다.
나는 뒤에 올, 보상의 내역에 더욱 주목했다.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을 획득했습니다.>
<두 단계 위의 주사위를 굴려 나온 결과입니다. 아래 열개의 보상 중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미켈라의 갑옷’>, <‘미켈라의 투구’>, <‘수호의 부적’>, <‘대적자의 모루’>, <‘해수의 아가미’>, <‘붉은기사의 깃발’>, <‘적토마’>, <‘팔람의 갑옷’>, <‘요정여왕의 눈물’>, <‘그림자 망토’>
그리고 보상과 관련된 글귀 전부를 읽은 나는 절로 한 마디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 개쩌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