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메인 퀘스트 2
“······ 아무런 미동조차 없었다?”
“예.”
여인들의 보고를 받은 이자벨라가 사자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의자 위에 앉아 턱을 쓸었다.
남자라면 반응할 수밖에 없는 미모의 여인들에게 세족을 시켰다. 사막 도시 파이살메르 최고의 대우이며 동시에 성각자를 살피기 위한 덫이었다.
그리고 이 덫은 설혹 남자가 아니더라도 빠져나갈 수 없다.
이들은 심장박동수의 변화와 피부의 미세한 떨림도 감지할 만큼 철저하게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녀들의 손길에 닿으면 진실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게끔 말이다.
그런데 일체의 미동이 없었단다.
당황스러운 일이지만 이자벨라의 입가엔 미소가 피어났다.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이라. 듣던 대로군.’
성각자에 대한 소문과 이야기는 이자벨라도 숱하게 접하고 찾아보았다.
그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게 부동심이다. 오직 별에게 모든 걸 바친 성각자는 현세의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더 보고할 사항은?”
다섯 여인이 차례대로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세족을 시켜달라고 말했습니다. 파이살메르의 예의를 알고 있는 자입니다.”
“궁에 입성하여 오르는데 거침이 없었습니다.”
“벽에 걸린 괴물의 뼈들을 보고도 침착했습니다. 놀라긴커녕 감상하며 발본과 박제실력에 감탄했습니다.”
“피부는 비단처럼 부드러웠습니다. 하지만 근육은 야생마의 그것과 같이 탄력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별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듯했습니다.”
솔직한 여인들의 감상과 보고에 이자벨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하나 예사롭지 않은 게 없었다.
우선, 파이살메르의 예의를 알고 있는 자다. 자처하여 세족을 말할 만큼의 지식이라면 필시 과거에도 파이살메르를 방문해봤던 자라는 뜻이다.
또한 노예나 평민은 궁의 모습에 압도되기 마련이다. 내부에 들어가서도 거침없이 움직였다면 그 신분이 예사롭지 않은 자라는 것이었다.
‘귀족, 혹은 왕족인가?’
당당한 태도와 말투. 자신을 보고서도 흔들리지 않고 반박하는 모습은 확실히 귀족이나 왕족을 떠올릴 법하다.
성각자가 별에게서 태어났다고는 말하지만 그들도 결국 사람의 자식이다. 사람의 자식인 이상 귀천은 있기 마련.
발본과 박제실력을 알아볼 정도라면 전문적인 지식 역시 해박하다. 그만한 지식을 접할 수 있으려면 아무래도 어느 정도의 신분이 필요할 터.
‘피부가 비단처럼 곱고, 근육은 야생마의 그것과도 같다······ 모순적이나, 성각자이기에 모든 게 설명이 되는군.’
성각자. 정말 마법 같은 단어다.
사막에는 성각자가 없으니까. 아무도 제대로 실체를 모르는 자가 이곳에 나타났다. 무슨 말을 해도 자신들은 믿을 수밖에 없다.
생각을 정리한 이자벨라가 말했다.
“별과 소통하는 중이라고 했나?”
“예.”
“직접 봐야겠다.”
“하, 하지만··· 소통을 하지 않으면 성각자의 자격을 잃는다고······.”
이자벨라가 피식 웃었다.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난다고 너희들은 대화를 못 하던가?”
여인들이 입을 꾹 닫았다.
옆에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나는 정도로 대화가 불가능해지진 않는다.
조용한 대화를 원한다면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으면 그만이니까.
단둘만의 대화?
어차피 이자벨라는 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미 둘만 소통하고 있는데 이자벨라가 옆에 있은들 무슨 방해가 되겠는가.
이자벨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성각자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
······ 조금만 더 늦었으면 큰일 날뻔했다.
이자벨라 폰 데르시안. 눈을 뜨자 그녀가 뻔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최대한 빨리 접속해서 다행이었다.
현실에서의 일을 대충 수습하고 나는 다시 판게니아에 로그인했다. 차분해진 이성과 냉철해진 판단력이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이다.
‘현실에 괴물이, 소환된 플레이어들이 나타났다. 그것도 판게니아의 캐릭터로. 이번 대원정이 실패한 원인도 그들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이 판게니아란 게임은 어느 순간부터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잘 지내던 NPC가 갑자기 배신을 때리고, 동료가 돌연 날강도로 변하기 때문이다.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도 그 이상의 방식으로 방해를 해왔다.
이번 대원정 역시 마찬가지.
······ 그런데 그 ‘방해의 요소’가 전부 플레이어였다면?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상당히 많은 숫자의 ‘트롤러’가 존재한다면?
엔딩을 바라지 않는, 혹은 나를 경쟁자라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방해를 해온 것이라면······.
‘다 썰어버려야 한다.’
화합? 친목?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런 방해로 삭제된 캐릭터가 수백이다. 심지어 내 모든 정수가 담긴 최강의 캐릭터도 죽고 삭제당했다.
문득 처음 이곳에 소환되었을 때 병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씨발. 내분만 아니었어도 원정은 성공했을 텐데······!
내가 모르는 내막이 있다.
심지어 마왕은 나 혼자 상대했는데, 어느 순간 ‘8용사’가 되어있었다.
이만한 업적을 조작할 정도의 ‘스피커’가 있다는 의미다. 그 스피커는 개인일 수도 있고, 단체일 수도 있다.
아니, 단체일 것이다.
나로 의심되는 캐릭터를 고의로 방해하고 죽이는 플레이어 단체가 있다. 그리고 나에 대한 소문마저 날조해 판게니아에 정착시켰다.
8용사라니.
죽은 내 마지막 캐릭터의 우월함을, 유일성을 의도적으로 훼손시킨 게 분명하다.
그러니 내가 해야 할 일은 우선 빠르게 강해지는 것.
게임과 현실, 양쪽 모두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 성지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너는 들어갈 수 있겠지.”
그녀가 필요했다.
이자벨라 폰 데르시안.
내가 만든, 하지만 포기하고 버려뒀던 비운의 캐릭터.
나는 그런 적이 없는데 어느새 뱀공주라 불리며 파이살메르의 2인자가 되어있었다.
직접 지은 닉네임도 저게 아니다.
‘아스카 키라라······.’
··· 왠지 미안해졌다. 하지만 판게니아에선 ‘가명’ 취급되는 게 닉네임이었다. 본명과 실체는 이미 존재하고 플레이어가 그 몸에 빙의한다는 설정이니.
어쨌거나.
“누군가를 몰래 데려간 게 들키면······.”
“사막을 떠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잘 생각하고 대답해라.”
이자벨라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가······ 사막을 떠나고 싶어 한다는 걸 어떻게 안 거지?”
“별이 말해주었다.”
“······.”
할 말이 없겠지.
물론 이자벨라가 사막을 떠나고 싶어 한다는 설정은 없다.
그런 설정이 존재할 리도 없고.
하지만 이자벨라는 플레이어의 캐릭터였다. 세상 곳곳을 누비며 엔딩을 봐야 하는 존재 말이다.
그럴진대 저주로 인해 사막에 묶여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실제로 내가 그랬다. 그래서 포기했다.
‘네 번째로 얻은 별이었지.’
그리고 이전 캐릭터를 키울 때 발견했다. 사막의 성지에 숨겨진 지고의 별을. 그 위치는 모든 플레이어 중에서도 나만 알고 있으리라.
단연코 그 별은 특별하다. 얻을 수만 있다면 최대한 빠르게 얻는 게 좋다.
“··· 성지는 허락받지 않은 자를 죽인다.”
“그 부분은 전혀 걱정할 것 없다.”
이미 한 번 끝을 본 곳이다.
그곳에 존재하는 함정 따위는 진즉에 파악을 끝낸 상태.
내 히든 특성 중에는 성역에서 작동하는 것들이 꽤 있었다.
대답을 듣고 이자벨라가 눈을 흘겼다.
“오늘 새벽. 달이 기울기 시작할 때, 깨어 있어라.”
이윽고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휙! 몸을 돌려 떠났다.
*
새벽녘.
“컥!”
왕궁의 지하. 이자벨라를 따라 숨겨진 길을 신속하게 달렸다. 중간중간 보이는 병사들은 이자벨라가 알아서 처리했다.
내가 보고도 시원시원한 손속이었다. 거침없이 병사들을 덮치고 죽였으니.
이자벨라는 암살에 특화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어찌나 민첩한지 대부분의 병사가 자신이 죽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눈을 감을 지경이었다.
‘귀신이 따로없군.’
목이 서늘해졌다.
처음부터 이자벨라가 나를 죽이려 했다면 지금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강자라 불리는 대부분의 존재가 같은 결말을 맞이하리라.
아군인 게 이보다 든든할 수가 없다.
그렇게 거침없이 달리자 거대한 제단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중심에 둔 채 모아이 석상이 주욱 늘어서 있었다.
“이곳이 성지다.”
어쩔 테냐, 그리 묻는 눈빛이다.
정작 본인도 내키지 않는 것 같은 표정이다. 사막의 성지는 그 정도로 복잡하고 어지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갈 순 없다. 그러기엔 너무 먼 강을 건넜다.
이자벨라가 병사들을 모조리 죽인 이유가 무엇이겠나.
‘증거인멸.’
만에 하나라도 자신이 성역에 무단 침입한 걸 알리지 않겠다는 의지다.
돌아간다고 하는 순간 지체없이 내 목을 베겠지.
“내가 먼저 들어가마.”
어깨를 으쓱하며 제단의 지하로 향하는 계단에 들어섰다.
그러자 수많은 글귀가 눈앞을 어지럽혔다.
《숨겨진 사막의 성역에 입장했습니다.》
《서브 퀘스트 : 성역을 탐사하십시오.》
《탐사율에 따라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주의. 성역 탐색의 권장 레벨(8)에 미치지 못합니다.》
《주의. 독기와 마기가 넘칩니다. 항마력이 낮다면 진입하지 않을 것을 권합니다.》
《히든 특성 ‘거인의 항마력’에 의해 보호됩니다.》
《히든 특성 ‘돌연변이’가 적용됩니다.》
숨겨진 성역. 본래라면 레벨 2의 초보자는 들어올 수 없는 곳.
여왕에게 허락을 받거나 강력한 전사들을 물리쳐야 겨우 도달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런 곳을 꼼수를 통해, 이자벨라를 앞세워서 입장했다.
성역 탐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보상은 쏠쏠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처음부터 내가 노린 건 서브 퀘스트 따위가 아니었다.
《메인 퀘스트 2 : ‘클래스 얻기’가 시작됐습니다.》
《성역에서 클래스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이 퀘스트는 클래스를 얻은 순간 종료됩니다.》
《보상 : 얻은 클래스의 급에 따라 차등 지급.》
바로 두 번째 메인 퀘스트.
‘급에 따라 차등 지급이라.’
조건을 보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강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건 세상의 이치다. 판게니아만큼 그 조건이 확실한 곳도 없다.
하지만 첫 번째 메인 퀘스트와는 미묘하게 달랐다.
좋은 클래스를 얻으려면 그만한 행운도 있어야 하는 법.
실력이 좋다고 모두가 우수한 클래스를 가질 순 없으므로.
그러나 걱정은 없었다.
‘이번에도 1등이겠군.’
나는 실력과 행운, 그리고 그 둘을 아우르는 히든 특성까지 갖췄으니까.
13가지의 히든 특성 중 하나, 돌연변이.
‘숨겨진 길이 보인다.’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곳을 볼 수 있게 해주는 특성이 발현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