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4화 (4/317)

────────────────────────────────────

────────────────────────────────────

로그아웃

‘히드라곤의 혼이라니!’

두 눈에 선명하게 박힌 이름들.

공중에 떠 있는 보상들에게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다.

『히드라곤의 혼(Raid)

히드라곤(Lv5)을 소환하여 부릴 수 있다.

히든 특성 – ‘비스트 로드’ 의해 강화 가능』

우선 레이드 보스 몬스터의 혼.

존재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천 번을 넘게 사냥했음에도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기물.

혼이 담긴 돌로 히드라곤을 소환할 수 있게 해주는 최고등급 아티팩트!

레이드 보스 몬스터의 ‘혼’은 가장 극악한 확률로 나오는 보물이다. 탈 수도 있고 소환해서 전투를 돕게 할 수도 있는데 그 희소성 탓에 매물조차 없었다.

‘출시하고 5년 동안 나온 게 고작 하나.’

그중 히드라곤의 혼은 다른 레이드 보스 몬스터의 혼보다도 적었다. 3년 전에 딱 하나 나온 게 전부.

그마저도 사진이 찍혀 커뮤니티에 간접적으로 언급된 게 다다. 아무도 모르는 플레이어였고, 나 역시도 처음 보는 캐릭터였다.

‘운영자 아니냐는 소문만 무성했지.’

어떤 의미에선 유일급 아이템보다 갖기 힘든 게 바로 이 혼이었다.

감개무량. 평소라면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서 박제부터 했을 터.

히든 특성에 의해 강화까지 할 수 있다니 금상첨화다. 전신에 짜릿하고 전기가 흐르는 기분이었다.

‘거기다 미켈라의 칼까지.’

뿐만인가.

거대한 양손검. 무게만 10kg을 훌쩍 넘길 것만 같은 칼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미켈라의 칼(Raid)(Set)

최초의 히드라곤을 죽인 거인 기사 미켈라의 칼. 히드라곤의 저주와 미켈라의 혼이 깃들어 있다.

사용 가능한 적정 능력치 - 힘 20 이상

명예를 아는 자가 사용 시 ‘미켈라의 힘(힘+3)’이 발동된다.

미켈라의 장비 세 개를 모으면 ‘천룡인(天龍人)’을 사용할 수 있다.』

초반을 헤쳐나가는데 이보다 좋은 칼은 없다.

특히 검을 사용하는 부류라면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검이었다. 능력치를 올려주는 무구는 보통 중반부 이후에 몰려있는 탓이다.

세트 옵션도 달려있다.

칼과 갑옷, 투구를 모으면 사용할 수 있는 ‘천룡인’은 변신기술이다. 용의 날개가 등에서 돋아나 장시간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게 해준다.

‘거지 같은 특정 구간을 뛰어넘으려면 미켈라 세트는 필수다. 초반에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라 그렇지······.’

미친 노가다를 요구하는 특정 퀘스트 구간, 숨겨진 던전, 숨겨진 퀘스트 등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바로 저 천룡인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다. 칼과 갑옷, 투구를 모두 모으지 않으면 발동되지 않는데 나올 확률도 더럽게 낮았다.

특히 미켈라의 칼은 그중에서도 가장 구하기 어려운 파츠. 운이 좋았다.

‘그런데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은 뭐지?’

위의 두 가지는 나도 익히 알고 있는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저것. 저 황금색 동전은 처음 본다.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

현실과 판게니아의 ‘동기화’를 가능토록 해준다. On/Off 가능(잔여 시간 24시간).

‘황금률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다.』

죄다 처음 보는 설명이다. 황금률이라는 것도, 이걸 이용할 수 있는 황금률의 상점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말이다.

무엇보다 현실과의 동기화라니.

“미친······?”

뱀공주가 내 단말마를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 미친 게 아니라는 말이다. 뱀공주 이자벨라여.”

급히 주워 담아 본다.

뱀공주 이자벨라 폰 데르시안.

그녀가 잠깐 이상하단 눈빛으로 나를 흘겨보곤 백인장에게 말했다.

“모시거라.”

“예? 여, 여왕께선 다 죽이라고······.”

“귀인(歸人)이시다. 극진히 모셔야 할 것이다.”

*

사막의 대도시 파이살메르.

여왕이 통치하는 절대왕정의 세계!

그곳에서 졸지에 귀인이 된 나는 호화로운 궁전 하나를 통째로 전세 냈다.

‘내가 키운 캐릭터가 파이살메르의 2인자가 되어있을 줄이야.’

궁 안에서 바깥을 보며 사색에 잠겼다.

이곳에 오며 알게 된 건 이자벨라 역시 파이살메르의 실세 중 실세라는 것이었다. 대전사들마저 깍듯하게 이자벨라를 대하는 걸 보고 대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사막의 대전사는 여왕과 여왕이 인정하는 자가 아니면 따르지 않으므로.

“씻겨드릴까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몸을 돌리자 아름다운 여인들 다섯이 일렬로 줄을 서 있었다.

모든 걸 마음대로 하라며 내준 궁. 전세는 전세인데 여자가 많았다. 그것도 아름다운 묘령의 여인들이 즐비했다.

······ 여긴 하렘이었다.

도저히 게임의 안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현실감. 핏줄 하나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작은 숨결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여인들은 얇은 실크 하나만 걸친 채 육감적인 몸매들을 여실 없이 드러내고 있다.

철혈군주의 심장을 지녔다고 한들 아찔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수컷의 본능.

“발만 씻겨다오.”

“예.”

최대한 감정 없이 말했다.

그러자 진흙으로 만든 대야에 물을 받아온 여인들이 내 앞에 다소곳이 앉았다.

발을 씻겨주는 것.

파이살메르에서 외부인을 받아주는 의식이다.

들어온 외부인의 발을 씻겨주지 않는다? 그 사람은 노예라는 의미다. 씻겨주는 이는 손님이라는 뜻이고.

나는 손님이었다. 그것도 뱀공주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파이살메르의 시험이다.’

말 그대로 이 모든 일련의 상황은 이자벨라가 낸 시험이었다.

성각자가 성욕에 눈이 멀 리는 없으니까. 내 반응을 보고 그대로 전달하겠지. 그렇다고 발을 씻겨주는 것조차 마다한다면 사막의 예의를 모르는 자가 된다.

고로, 이 시험의 정답은 발은 씻되 평정심을 갖는 것이다.

촤르륵.

잔잔한 물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살결이 발에 닿는다.

군살 한 점 없는 손. 살결이 그대로 피부에 닿는다.

그렇게 열 개의 손이 내 발을 살살 녹이고 있다.

마치 얇은 솜털로 간질이는 느낌이었다.

나는 애써 생각을 돌렸다.

‘현실로 돌아가는 방법은 없나?’

캐릭터를 만들다가 빨려 들어왔다.

하지만 정작 이 세계에서도 현실에 대한 언급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돌아갈 방법이 있다는 말이다.

‘로그아웃 기능은 안 보인다. 강제로 종료할 수도 없으니······ 잠깐.’

불현듯 든 생각에 나는 상태창을 열었다.

<능력치>

레벨 : 2

힘 : 24 체력 : 24 민첩 : 24

지능 : 24 마력 : 24

······

<판게니아 붕괴까지 : 7.66%>

<<붕괴가 진행될수록 현실과 판게니아의 경계가 허물어집니다.>>

<<붕괴의 정도가 10%를 넘기면 최초의 균열이 진행됩니다.>>

이맛살을 구겼다.

능력치의 성장세도 예사롭지 않지만, 그보다 주시할 점은 그 아랫부분이었다.

처음 봤을 때 붕괴의 정도는 6.12%였다.

그런데 메인퀘스트를 끝내자 1.5%가량이 증가했다.

정말로 100%가 되면 지구와 판게니아가 충돌하는 걸까?

‘명예의 전당에 대한 언급도 있었지. 그건 뭐였을까?’

궁금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의외로 명예의 전당에 관련한 수수께끼는 금세 풀렸다.

관련된 내용을 생각하자마자 눈앞에 창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명예의 전당이 오픈되었습니다.>>

<<메인퀘스트 별 점수에 따라 전당에 이름을 남길 수 있습니다.>>

<<‘메인퀘스트 1 - 생존’의 순위가 업데이트됩니다.>>

<1위, 220점. 란돌프>

<2위, 195점. 그라시아>

<3위, 187점. 민트초코맛있어요>

<4위, 170점. 흑요>

<5위, 163점. 학살>

······.

<<‘생존’의 순위권 내에 들어 ‘로그아웃’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로그아웃할 경우 캐릭터가 무방비하게 노출되니 주의하십시오.>>

‘······ 뭐?’

어딘가 익숙한 이름들.

특히 2위 ‘그라시아’와 3위 ‘민트초코맛있어요’는 가장 오랫동안 같이 판게니아를 플레이하던 동료들이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없어져서 접었나 싶었건만.

‘접은 게 아니라 설마 나처럼 판게니아에 소환된 거였다고?’

둔기로 한 대 맞은 듯 머리가 띵해진다.

내가 만든 캐릭터만 이곳에 있는 게 아니었다.

같이 플레이하던 사람들도 이곳에 있다.

게다가.

‘로그아웃······.’

로그아웃.

즉, 나갈 수 있다. 이 거지 같은 게임 속에서!

“그만.”

내 묵직한 발성에 발을 씻기던 여인들이 멈칫했다.

“예······?”

“다 나가라. 별과 소통할 시간이니.”

“하지만······.”

여인들의 표정에 당황함이 서렸다. 발을 씻기는 건 파이살메르의 예의다. 그것을 거절하는 건 결코 좋은 징후는 아니었다.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제시간에 별과 소통하지 않으면 성각자는 힘을 잃는다. 뱀공주가 진정으로 그것을 바라는지 가서 물어보거라.”

“아······.”

여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대로 그녀들은 모두 뱀공주가 보낸 스파이였다.

뱀공주가 왜 나를 이곳에 들였는지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편한 소통시간 되시길.”

진중한 표정으로 여인들이 고개를 숙이곤 나갔다.

······ 후. 다행이다. 이런 허접한 변명이 먹혀서.

방에 홀로 남은 나는 자세를 잡고 앉았다. 직후 시야의 1시 방향 끝에 떠오른 붉은색 버튼을 눌렀다.

<<로그아웃 중입니다.>>

<<캐릭터를 안전한 곳에 대기시키십시오.>>

<>

시야가 점멸한다.

그리고.

<<로그아웃이 완료되었습니다.>>

세상이 변했다.

*

“······.”

멍하니 시선을 내린다.

컴퓨터 앞 의자 위. 낡은 흰색의 무지반팔 티, 시장에서 대충 산 검은 트레이닝 바지.

패트병에 담긴 담배의 산.

게임을 플레이 하기 전과 같은 복장, 같은 자세, 같은 환경이었다.

‘꿈인가?’

혹시 그간 너무 폐인처럼 살아서 꿈이라도 꾼 걸까?

하지만 꿈이라기엔 너무나도 생생했다.

게다가.

“이런 황금 동전을 내가 갖고 있을 리가 없지······.”

책상 위에 다른 게 있다.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

그 찬란한 황금빛 동전이 내 앞에 있다.

옆엔 작은 가죽 주머니도 놓여있었다.

또한 시야 바깥에 있었던 로그아웃 버튼 자리엔 ‘로그인’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붉은색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천천히 가죽 주머니를 뒤졌다. 그러자 물건 두 개가 딸려나왔다.

“끄으응!”

쿵!

거대한 검 한 자루. 주머니의 입구가 늘어나더니 검을 내뱉었다.

바닥에 놓자 쿵 소리와 함께 집이 들썩였다.

······ 아무리 봐도 미켈라의 칼이다.

거기다 작은 돌 위에 룬이 그려진 아티팩트, 히드라곤의 혼까지 있었다.

“게임은?”

게임창은 닫혀있는 상태였다. 아니, 아예 게임이 지워져 있었다.

마우스를 집고 인터넷을 켰다.

이어 판게니아를 검색하고 사이트에 접속하자.

[존재하지 않는 홈페이지입니다.]

······ 홈페이지가 날아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홈페이지가 말이다.

혹시 몰라 관련된 기사를 찾아봤다.

그런데 서비스가 종료되었다는 그 흔한 뉴스 기사 한줄 없다. 유튜브에 검색해봐도 최소 2년 전의 영상들만 올라가 있었다.

‘대체 언제 서비스가 종료된 거지?’

유튜브 영상이 남아있는 걸 보면 서비스는 되고 있었다는 증거다. 게임 자체가 없던 게 아니라.

사람들이 접속하고 게임을 했던 건 분명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올라오는 영상도,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도 사라졌다.

좋다. 다 좋다 이거다.

의문점은 판게니아에 소환됐다면 나처럼 로그아웃한 사람이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로그아웃한 사람이 있다면 분명히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순위권 내에 든 사람만 로그아웃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숫자가 제한적이라면?

극소수라면?

아직 많은 사람이 게임 속에 갇혀있다면?

남아있는 정보는 적거나, 아예 없을 가능성이 컸다.

‘이럴 줄 알았으면 sns 교환이라도 해둘걸.’

나는 철저히 솔로 플레이어였다. 레이드를 할 때도 혼자서 해결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인사 정도는 주고받을지언정 같이 제대로 플레이한 적이 없다.

당연히 이메일이나 메신저 교환도 일절 없었다.

망할 신비주의. 그게 멋있는 줄 알던 과거의 나를 욕하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식물인간, 실종자 명단······.’

손가락이 빨라진다.

식물인간과 실종자가 근 몇 년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현상에 대해 왈가왈부가 많았다. 어쩌면 판게니아와 관련된 현상일지도 모른다.

쿠릉!

그때였다.

몸이 살짝 떠오를 수준의 진동과 함께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괴, 괴물이다!”

“살려줘!”

동시에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괴물? 갑자기 무슨 괴물?

커튼을 올리고 창문을 열었다. 자욱한 담배 연기가 빠져나가며 바라본 바깥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4m는 되어 보일법한 거대하기 짝이 없는 사마귀가 도심에 나타나 학살을 저지르고 있었다.

촉수처럼 기다란 더듬이로 사람들을 낚아채고, 칼날 같은 앞다리로 막는 모든 것을 베어낸다.

묘하게 익숙한 생김새에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자이언트 맨티스······?’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