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피스
“아놔, 뭐 이딴 쓰레기 같은 게임이 다 있냐.”
모니터에 떠오른 ‘Game over’라는 글자를 바라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심혈을 다해 키운 캐릭터가 공중분해 되는 순간.
마우스를 집어던지지 않은 게 용할 정도로 격한 빡침이 찾아들었다.
하지만 익숙한 듯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며 담배를 물었다.
“······ 벌써 5년 넘게 이 게임 하나만 붙잡고 있는 내 인생도 레전드고.”
담배에 불을 붙이며 창밖을 바라본다.
하기야, 내가 무언가를 쓰레기라고 욕할 처지는 되던가.
현명하게 살라며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 박현명. 하지만 나는 전혀 현명하지 못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창밖에는 어느덧 해가 중천이다.
주말도 아닌 평일. 모두가 열심히 일하고 있을 시간.
개백수인 나는 폐인마냥 씻지도 않고 게임에 몰두 중이었다.
“접을 때가 됐지.”
5년 전에 반짝 인기를 끌었던 게임, 판게니아.
출시 당시 미친 게임이라고 욕도 많이 먹었다.
캐릭터가 죽으면 모든 게 증발해버리며, 플레이어는 다시 처음부터 게임을 플레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례 없는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해 클리어한 사람이 전무하다고.
그래서일까.
잠깐 반짝한 인기는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현재에 이르러선 솔직히 게임을 하는 사람이 나 말고 더 있을지도 의문이다.
홈페이지 서버에 기록되는 동시접속자 수는 항상 0 아니면 1을 기록하고 있었으니.
참고로 0은 내가 플레이하지 않을 때, 1은 내가 플레이하고 있을 때다.
······ 동접자 1인 좆망겜인데 아직도 서버를 안 닫은 게 용하긴 하지만, 뭐.
때마침 시간도 많았다.
직장도 퇴사했고, 매일 잔소리하던 여자친구도 없으니까.
“하, 젠장.”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에 눈을 꾹 감았다.
-오빤 좋은 사람이지만······ 미안해. 비전 없는 사람이랑 언제까지 만날 순 없어. 이제 결혼도 생각할 나이니까.
5년 만난 여자친구에게 대차게 차였다.
나만 같이 사는 미래를 그렸나 보다.
-내 친구들은 다 사짜나 이름난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이랑 만나고 결혼하는데 오빠는······ 하아. 됐어. 그만하자.
그렇게 혼자 정리하고 가버렸다. 나쁜년.
덕분에 비전 없는 회사도 때려치웠다. 앞으로 뭐 하고 살아야 하나. 이참에 기술이나 배울까.
딸칵. 마우스를 집었다.
곧 화면 위로 ‘캐릭터를 생성하시겠습니까?’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원래 인생은 찐찐막이지.’
이전 캐릭터를 만들 때도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러나 원래 마지막의 마지막이 진짜 마지막인 법이었다.
물론 방금 전 삭제 된 캐릭터 말고도 창에는 수많은 캐릭터가 이미 존재했다.
맥스 레벨에 도달한 캐릭터도 있고, 온갖 보물로 치장한 캐릭터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클리어할 스펙은 되지 않는다고 확신한 녀석들.
이 미친 게임은 특정 구간에서 난이도가 말도 안 되게 높다.
이걸 깨라고 만들어놓은 건지 의문인 보스들, 동료인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뒤통수치는 악역들, 현상수배가 걸리면 찾아와서 죽이는 네임드 NPC들 등등······.
예컨대 게임사가 관리를 하는지 테스트하고자 만든 캐릭터 ‘뇌절사기꾼’은 맥스 레벨에 보물급 아이템도 꽤 갖췄지만, 워낙 해괴한 짓을 많이 해놓은 터라 네임드 NPC에게 특급 현상수배가 걸려서 로그인하면 바로 척살 당한다.
세계관 최강급의 몇몇 네임드 NPC는 플레이어의 맥스 레벨을 넘어서기 때문에 이런 녀석들한테 찍히면 캐릭터 삭제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접속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여튼 간에.
“즐겜하자, 즐겜.”
클리어를 위해 목숨 걸고 만든 캐릭터도 결국 삭제됐다.
착용한 아이템을 떠올리니 눈물이 날 지경이다. 다른 캐릭터에서 유일급 아이템을 전부 쓸어 와서 키운 건데······.
판게니아에서 여태껏 밝혀진 유일급 아이템은 총 15개가 있다. 그중 모아둔 여덟 개를 한 캐릭터에 몰빵 한 것이다.
역대급 도박이다. 죽으면 5년이 날아가는.
그런데 죽었다. 캐릭터가 삭제되며 아이템도 전부 날아갔다. 염병······.
‘소울 포인트 160만? 확실히 유일템이 포인트를 엄청 주긴 하는구나.’
하지만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
판게니아에는 소울포인트(SP) 시스템이 존재한다.
캐릭터가 죽을 때 갖고 있던 가치를 포인트로 환산해서 주는 거다.
플레이어는 그 소울포인트로 새로운 캐릭터를 키울 때 이점을 주는 게 가능해진다.
5년 동안 수백 개의 캐릭터가 삭제되며 모은 SP는 8만 정도였다. 그런데 유일템 8개를 가진 캐릭터가 삭제되자 160만 소울포인트가 생긴 것이다.
유일템 뿐만이 아니라 챕터 진행도도 가장 높았다. 클리어에 가까운 스펙이었던 것은 확실했으므로.
‘재능 한 가지에 1만 소울포인트면 떡을 치는데.’
소울 포인트의 대표적인 사용처는 바로 ‘재능’ 부분이다.
캐릭터 생성시 내가 원하는 재능에 포인트를 투자할 수 있고 투자한 포인트 수치에 따라 가파른 성장이 가능한 것이다.
상한선도 마찬가지로 1만 소울포인트였다.
참고로 과거 검술에 1만 소울포인트를 투자했던 ‘명란젓코난’은 검술의 대가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사망했다.
‘평소라면 가장 무난한 번개류 마법 재능에 투자하겠지만······.’
정해진 루트가 몇 개 있다. 가장 무난한 건 역시나 번개류 속성의 마법 재능이다.
그러나 이 게임은 투자할 수 있는 재능의 종류가 수백 가지였다. 160만 포인트면 전부는 아니어도 상당부분의 재능을 맥스치로 찍을 수 있을 터.
‘오대원소 재능에 각각 3천 포인트 이상 투자하면 허(虛)속성이 열리지. 허 속성에 다시 오천 포인트를 투자하면 허무(虛無) 특성을 얻을 수 있고.’
재능이 또 다른 재능을 낳는다. 일종의 히든피스였다. 이런 식의 ‘설계’가 판게니아에는 무진장 많았다. 고인물 중의 고인물인 나도 모두 파악하지 못했을 정도이니 말은 다했다.
‘허무 특성을 가지면 상반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돼. 빛과 어둠 친화력도 같이 찍을 수 있으니 꼭 챙겨가야지.’
이 게임은 서로 충돌하는 속성을 한 캐릭터가 동시에 사용할 수 없다. 도구를 쓰거나, 다른 매개체를 이용하지 않는 이상에는 말이다.
하지만 ‘허무 특성’을 갖고 있으면 이런 상반되는 마법이나 속성 등을 함께 쓸 수 있게 된다.
다만, 허무 특성을 얻는 것 자체에만 이만 포인트를 써야하는지라 다른 재능에 투자할 포인트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어려운 게임. 캐릭터가 죽으면 투자한 SP도 날아간다. 그만큼 뚜렷한 재능을 갖고 시작하기 어렵다.
‘하지만 진정한 즐겜은 랜덤이지. 가자, 올랜덤!’
이것저것 따지면서 루트를 짜봤자 골머리만 아프다. 진정으로 게임을 즐기고 접으려면 올랜덤만큼이나 확실한 게 없다.
특성을 비롯한 모든 것을 무작위로!
파멸적인 선택이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클리어가 아닌 즐겜의 목적.
160만 포인트를 전부 무작위로 건다.
‘어차피 못 깨.’
깨려고 온갖 발버둥이란 발버둥은 다 쳐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게임은 깨라고 출시한 게 아니다.
판게니아 출시 당시, 개발자는 유저들에게 이런 선전포고를 한 적이 있었다.
―게임을 클리어한 사람에게 한 가지 꿈을 이뤄주겠다.
꿈을 이뤄준다. 그게 무엇이든 이뤄주겠다는 그 개발자의 한 마디에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하고 좌절했다.
이후 5년이 지난 지금까지 게임은 클리어되지 않았다.
한 1년 전까진 그래도 사람이 몇 있었는데, 이제는 나 혼자 도전하는 게임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대로 게임을 즐겨볼 생각이다.
‘누른다?’
외형을 무작위로 해본 적은 있지만 ‘전부 무작위’로 선택하는 건 나도 처음이다. 그만큼 비효율적이고 쓸데없는 짓으로 악명높은 게 바로 저 ‘올랜덤’ 버튼이었다.
지난 시간의 정수. 모든 것을 담은 선택이 마음먹었다고 쉽지는 않았다.
나는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딸칵!
눌렀다.
확실하게. 동시에 주사위가 돌아가며 모든 것들이 무작위로 결정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히든피스가 발동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특이점을 만족하여 판게니아에 초대되셨습니다!>
처음 보는 문구가 모니터 위에 떠 올랐다.
“히든피스?”
【빛보다 더 밝고, 어둠보다 더 어두운, 창조와 파멸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자여. 판게니아에서 행복하시기를.】
게임 인트로도 떠오른다.
평소와 같이 스킵 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어어······?”
그 글자들이 모니터 바깥으로 튀어나와 흐믈거린다.
그 순간이었다.
―개 같은 신이여! 네가 만든 모든 세계를 불살라주마!
쇠 긁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눈앞에서 펼쳐지는 지옥도.
지구 위로 판게니아 대륙이 떨어지며 함께 붕괴하고 있었다.
조악한 그래픽이 아니라 실제 상황처럼 보일만큼 퀄리티가 장난이 아니었다.
인트로에 이런 동영상이 있었던가?
그런 의문을 느끼기도 잠시.
내 의식은 저 멀리 사라졌다.